Y2K 본연의 맛, KLOZ HORSE의 04 Spring 쇼

최근 몇 년간 세계 패션계는 과거로의 회귀를 택했다. 매 시즌 줄줄이 쏟아지는 ‘Y2K 맛’ 컬렉션만 봐도 세상 모두가 20여 년 전 아날로그식 로맨틱함을 그리워하는 듯 보이지 않나. 물론 불가항력적 시간의 흐름으로 ‘맛’에 그칠 수밖에 없는 요즘 세대의 패션이지만, 이토록 애절한 안타까움이야말로 그 시절 향수를 자아내는 최고의 조미료일 것.

20년 세월이 축적해 온 녹진한 레트로함은 분명 존재 자체만으로도 팬들의 구미를 당기는 요소가 분명하다. 그 어떤 조미료를 첨가한들 2000년대 초에 두터운 뿌리를 내리고 Y2K 본체의 맛을 흉내 내기란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 진한 맛의 정수를 보여줄 컬렉션 중 하나가 바로 2003년 LA 패션위크에 모습을 보인 클로즈 홀스(KLOZ HORSE)의 2004 Spring 쇼다.

클로즈 홀스는 LA 아티스트 루이스 카레온(Louis carreon)이 설립한 브랜드로, 사실 앞서 언급한 컬렉션을 제외하면 공식적으로 공개된 컬렉션이 없을 뿐 아니라 브랜드 관련 정보 역시 전무하다. 그나마 찾을 수 있는 거라곤 240p 저화질로 유튜브에 업로드된 컬렉션 영상과 SNS에 게시된 누군가의 4줄짜리 설명뿐. (이마저도 감사한…)그의 설명에 따르면 루이스 카레온은 해당 컬렉션을 선보이기 위해 블레이저, 청바지, 폴로 티셔츠 등을 중고숍에서 구매했고, 이를 찢고 봉합하고 스프레이를 뿌려 디자인을 가미하는 등 다채로운 방법을 활용해 새로운 컬렉션 피스를 완성해 냈다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런웨이 위로는 지금은 촌스러움의 대명사로 전락한 정장 조끼(일명 KCM 베스트)를 시작으로 블레이저, 헌팅캡, 핀 스트라이프 셔츠 등 200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템이 모습을 보였다. 특히 카모플라주와 국방색으로 무장한 룩이 대거 등장하며 레트로적 매력을 한껏 배가했으며, 이에 더해 국내에서도 이효리를 필두로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스모키 화장을 한 남, 여 모델이 줄지어 등장하며 그 시절의 추억과 매력을 고조시켰다.

온라인 세상에 유일하게 남겨진 클로즈 홀스의 04 봄 컬렉션은 비단 옷뿐만 아니라 화려한 모델 라인업과 그들의 런웨이 위 행태로 그 매력을 더했다. 쇼를 대표하는 모델로 가장 먼저 검색 엔진에 등장하는 배우 아론 폴(Aaron Paul)을 시작으로 니콜 렌즈(Nicole Lenz), 타린 매닝(Taryn Manning), 에드워드 펄롱(Edward Furlong) 등 루이스 카레온과 친분을 쌓아온 할리우드 배우들을 비롯해 각 분야의 셀럽이 쇼를 채웠는데, 이들의 춤을 추는 듯한 자유분방한 워킹과 신체의 민망한 부분을 깜찍하게 부각하는 포즈가 관객을 웃음 짓게 만들었다. 또 한 가지 특기할 점은 런웨이에 오른 모델 절반이 담배를 태우며 퇴폐미 넘치는 워킹을 선보였다는 것. 이에 더해 극강의 화려함과 과감한 노출을 패션으로 승화한 패리스 힐튼(Paris Hilton)류의 스타일 역시 그 시절을 대표했던 아이콘의 모습을 전달했다.

모델이 차례로 목욕 퍼포먼스를 선보인 팔로마 울(Paloma Wool)이나 런웨이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진행한 키드슈퍼(KidSuper)처럼, 2020년대 역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창의적 시도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고자 하는 패션 브랜드들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비록 온라인 세상에 갇혀 희미하게 존재하고 있지만,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온전히 전하던 그때 그 시절의 모습에 괜시리 더 끌리는 이유는 무얼까. 만약 당신이 시간의 흐름에 역행해 자꾸만 과거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어리석은 패션 러버라면 클로즈 홀스의 04 Spring 쇼가 분명 좋은 방향 추가 될 것.


이미지 출처 |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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