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위의 열정, 데저트 블루스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하라(Sahara)’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사막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하라만의 독특한 음악이 존재하고, 그것이 제법 매력적이라면 어떨까. 소위 ‘데저트 블루스(Desert Blues)’라 불리는 장르 이야기다.

네오 티파니그어(Neo-Tifinagh)로 ‘Tishoumaren’이라고 불리는 이 장르는 주로 사하라 북부나 서부 알제리, 말리, 니제르, 나이지리아 등지에서 접할 수 있다. 이는 사하라에 가장 넓게 퍼져 살고 있는 유목민인 투아레그족(Tuareg) 고유의 스타일과 블루스 록의 융합이다. 이 장르는 데저트 블루스, 말리 블루스, 투아레그 록, 사하라 록, 타캄바 록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투아레그족이 터전으로 삼았던 이들 지역은 20세기에 프랑스 식민 지배를 받았다. 식민 통치 시절 프랑스 식민정부에 반발하는 투아레그 레지스탕스 저항 운동이 있었고 식민 통치가 끝난 이후에는 이들 지역이 말리, 알제리, 니제르, 리비아, 차드 등으로 나누어졌다. 이렇게 쪼개진 국경선과 정부에 반발하여 투아레그족을 비롯한 소수민족들은 자치권을 행사하기 위해 저항했으나 1973년 심각한 가뭄으로 인해 다수가 유목을 포기하고 도시로 피신하게 되었다. 이들은 경제적, 정치적으로 소외되었지만, 저항적인 기질로 청년들 사이에 독특한 문화가 생기게 되었고 자부심 역시 되찾았다. 사람들은 기타라는 악기가 가진 저항성에 매료되었고, 데저트 블루스는 이들의 저항과 애환에 일렉트릭 기타가 접목되면서 탄생하였다. 그야말로 사하라 레지스탕스들의 노래인 것이다.

사막 위의 뜨거운 열정을 그대로 간직한 데저트 블루스. 그 매력적인 음악과 눈여겨볼 아티스트를 하단에서 함께해 보자.


데저트 블루스의 창시자: 티나리웬(Tinariwen)

알제리와 말리에 뿌리를 둔 투아레그 밴드 티나리웬은 데저트 블루스의 슈퍼스타로 종종 언급된다. 그룹의 리더격인 이브라힘 아그 알하비브(Ibrahim Ag Alhabib)는 어렸을 때 카우보이가 기타를 치는 서부 영화를 본 후 플라스틱 물통과 막대기, 낚싯줄로 기타를 만들어서 치는 흉내를 내곤 하였다. 이브라힘은 알제리의 난민 캠프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밴드를 결성했으며 이들은 가족들이 정부군에 의해 처형된 적이 있는 분노가 가득 찬 투아레그 청년의 전형이었다. 이들은 파티와 결혼식에서 공연을 시작했으며 밴드는 공식 이름이 없었지만, 사람들은 투아레그어로 사막의 아이들이라는 뜻을 가진 ‘Kel Tinariwen’이라 불렀다고 한다.

1980년,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는 차드, 니제르 등으로 영토 확장을 하고자 투아레그 청년을 징집한 일이 있었다. 이브라함과 그의 동료들 역시 징집되어 긴 시간 동안 훈련을 받았으며 이 기간 밴드는 다른 투아레그 뮤지션을 만나 사람들이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노래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빈 카세트테이프만 있다면 자신들의 음악을 녹음해 무료로 배포하였고 곧 테이프는 사하라 전역으로 퍼지게 되었다. 밴드는 이후 이브라함의 고향인 말리에 돌아왔으나 1990년 말리의 투아레그족은 정부에 반기를 들었고 이들은 반군으로 참전하였다. 1년 뒤, 평화 협정이 체결되고 이들은 이제 음악에만 전염하기로 마음먹었다. 티나리웬은 점차 주목받기 시작하였고 2001년 말리에서 열린 페스피벌, ‘Festival au Désert’의 헤드 라이너로 공연한 뒤, 유럽, 북미, 일본, 호주 등 전 세계에서 공연하여 찬사를 받았다. 2007년 [Aman Iman] 앨범은 세계적인 히트를 쳐 여러 유명한 뮤지션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으며 지금까지 왕성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티나리웬의 독특한 매력 중 하나는 아랍과 서아프리카의 모달 음계와 서구 악기와의 만남, 이국적인 타마셰크 언어로 부르는 노래가 조화롭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아프리카 음악을 모르는 이라도 친숙함과 낯섦이 동시에 느껴지게 만든다. 억압받아 온 소수민족으로서, 반군으로 참전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로서 반전과 전투, 자연에 대해 노래하니 무척이나 감동적인 블루스다. 말리의 다른 기타리스트들인 부바카 트라오레(Boubacar Traoré)나 알리 파르카 투레(Ali Farka Touré)의 영향을 받은 흔적들이 보이지만 티나리웬은 훨씬 더 격렬하다. 어떤 트랙들은 개러지 펑크같이 느껴질 정도로 거칠고 어떤 트랙들은 목가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레드 제플린의 보컬 로버트 플랜트는 티나리웬을 듣고 ‘이것이 내가 평생 찾고 있던 음악’이라고 평했다고. 아마 티나리웬만큼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데저트 블루스 밴드는 당분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심플하고 강렬한 리프를 가지고 있는 노래. 사막 한복판에서 아이가 춤추는 모습은 이들 집단이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사막이 전장이 되어버린 세태를 담담히 부르는 트랙. 아름다운 애니메이션 P/V가 몽환적이다.
티나리웬의 데뷔 LP인 ‘The Radio Tisdas Sessions’의 오프닝 트랙으로, 쓸쓸하지만 강건한 느낌을 준다.

각광받는 니제르 기타리스트: 엠두 목타르(Mdou Moctar)

니제르 출신의 투아레그 뮤지션, 엠두 목타르의 연주를 들으면 어딘가 특별하다. 엠두 목타르 역시 티나리웬의 이브라함처럼 기타 없이 자란 기타리스트다. 어릴 적 그의 집안은 무슬림이었고 형편도 좋지 않아 어떠한 악기도 용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다른 투아레그 어린아이들이 그랬듯이 플라스틱 통과 자전거 브레이크 케이블로 기타를 손수 만들었다. 엠두 목타르의 인터뷰에 따르면 투아레그인들에게 기타는 브라질의 축구와 같은 존재라고 한다. 모든 소년들이 기타에 대한 꿈을 꾸며 자신도 그들 중 하나였다고. 반 헤일런의 팬이었던 엠두는 그렇게 에어기타를 치듯 자신이 만든 수제 기타로 끊임없이 연주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탄생시켰다.

엠두의 음악은 대체로 리드미컬하며 부드럽고 펑키하다. 엠두의 독특한 기타 연주는 리듬 기타리스트, 베이시스트와 환상적인 조합을 만들어 내며 퍼커션은 힘이 넘친다. 그의 라이브는 작은 공연 일지라도 소년 소녀들이 있는 힘껏 춤춘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모로코 출신의 뮤지션, 오마르가 한 “한국에서 공연할 때마다 사람들이 너무 수줍어한다고 느낀다. 아프리카에서는 연주하기도 전에 이미 모두 춤추고 있다”라는 말이 이해된다. 엠두는 사랑과 종교, 불평등과 권리, 젠더에 대해 노래하며 모든 차별이 없어질 때까지 음악을 할 것이라 말한다. 이제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으며 니제르에선 브라질의 축구선수, 네이마르와 비견되고는 한다.

엠두가 왼손잡이라서 그럴까. 지미 헨드릭스가 환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파워풀한 라이브.
엠두의 대표곡 중 하나. 사이키델릭하고 그루브하며 다 죽어가는 서구권 록 음악에 일침을 날린다.

총기 대신 악기를: 봄비노(Bombino)

다른 투아레그 뮤지션들과 마찬가지로 봄비노 역시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 나이지리아 투아레그 야영지에서 태어난 봄비노는 10살 때 내전으로 가족과 함께 알제리로 피신했다. 오마라 ‘봄비노’ 목타르(Omara ‘Bombino’ Moctar)는 어린 시절 알제리와 리비아에서 목동 일을 하며 뮤지션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는 어린아이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Bambino’에서 파생된 ‘Bombino’라는 그룹을 결성하고 니제르로 건너가 음악 활동을 이어 나갔다. 2007년, 니제르에서 또다시 내전이 일어났고 니제르 정부는 악기 역시 반란이라 생각하여 모든 기타를 금지하였다. 봄비노는 ‘기타는 총기가 아니라 집을 짓기 위한 망치’라고 표현했으나 동료 음악가 두 명이 처형되었고 그는 부르키나파소로 망명했다.

봄비노는 망명 생활 중 정규 앨범 [Agadez]를 발표하였고 곧 국제적으로 관심을 받게 되었다. 뮤지션 블랙 키스(The Black Keys)는 봄비노에 반하여 다음 앨범을 프로듀싱하겠다 제안하고 이들은 두 번째 정규 앨범을 만들었다. [Nomad]라는 이름의 이 앨범은 빌보드 월드 차트와 아이튠즈 월드 차트 1위로 데뷔하였다. 그 후 그룹 봄비노는 유럽, 미국, 일본, 남미 등에서 인기를 얻고 공연하며 젊은 힙스터부터 월드 뮤직 애호가한테까지 사랑받고 있다. 봄비노는 아프리카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투아레그족을 포함한 수많은 소수민족 역시 총기를 내려놓고 평화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무장봉기보다 음악이 훨씬 효과적인 것을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면서도 그루브하여 저절로 몸이 움직이게 만드는 이들은 대체로 음악이 저항이라는 수식어를 때어가고 있는 동시대에 있어 보석 같은 존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동차 안에서의 잼. 밴드 멤버 구성원들끼리 호흡이 정말 잘 맞는다. 이런 신들린 합을 보면 숭고함이 느껴진다.
앨범 [Nomad]의 세 번째 트랙으로 아름답고 흥겹다.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과정을 다소 장난스럽게 만든 P/V가 유쾌하다.

말리의 전설적인 블루스 뮤지션: 부바카 트라오레 (Boubacar Traoré)

동명의 축구선수가 있는 뮤지션 부바카 트라오레 역시 어렸을 적 축구 선수였다고 한다. 그는 말리가 독립하기 한참 전인 1942년 태어났다. 독학으로 기타를 공부하던 그는 쿠바에 있는 형이 돌아온 뒤 같이 음악에 대해 탐구하면서 점차 성장해 나아갔다. 부바카는 아프리카 만데의 5음계와 미국 블루스 음악을 절묘하게 섞었다. 1960년대 초, 말리는 독립했고 라디오에서는 독립을 축하하는 그의 서글픈 노래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앨범을 녹음하지 않았고 재단사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 나갔다. 사람들은 그를 잊어갔으나 20년이 지난 1987년 TV에 깜짝 등장하였고, 그렇게 부바카는 재기를 하나 싶었다. 그러나 그 직후 그의 아내는 출산 도중 사망하게 되고 이에 상심한 부바카는 프랑스로 떠나게 된다.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인 이민자들을 위해 공연을 하다 영국의 레이블 스턴스(Stern’s) 눈에 띄어 30여 년 만에 첫 번째 앨범을 발매한다.

부바카는 그 이후 유럽, 아프리카, 미국 등 순회공연을 돌며 다시금 인기를 얻었다. 말리의 슈퍼스타에서 국제적인 스타가 되는 순간이었다. 2001년, 그의 삶에 관한 영화 ‘Je chanterai pour toi’가 개봉되었으며 DVD로도 발매되었다(현재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다시금 시간이 지나 사람들이 잊어갈 만할 2011년, 그의 나이 약 70세에 당대 최고의 하모니카 연주자 빈센트 부세(Vincent Bucher)와 컴백하여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었다. 부바카는 이후에도 계속 다른 바이올리니스트, 퍼커셔니스트 등과 작업을 하고 있다. 부바카의 음악은 위에 언급한 그룹들에 비해 더 블루지하고 더 애절하다. 언뜻 들으면 꽤 다른 음악 장르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시대와 민족이 달라도 부바카와 투아레그 그룹은 분명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같을 것이다.

가끔 나이가 꽤 들어 라이브 하는 뮤지션들을 보면 기력이 쇠한 경우가 있는데 이 공연은 그 반대다. 빈센트 부세의 하모니카 연주도 매우 훌륭하다.
‘Kar Kar’는 부바카의 별명인데 밤바라어로 ‘드리블을 너무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 한다. 이 노래는 1960년 말리가 독립했을 때 사람들이 즐겨 듣던 노래 중 하나라고.

이들 외에도 다양한 사하라 사막의 뮤지션들이 있다. 티나리웬을 커버하다 좀 더 다른 매력을 가지게 된 타믹레스트(Tamikrest) 라던가, 부바카 트라오레와 더불어 전설적인 말리의 기타리스트 알리 파르카 투레, 이기팝이 피처링한 노래 “Sahara”의 주인공 송호이 블루스(Songhoy Blues) 등이다. 간혹 어떤 이들은 이 장르의 음악을 들었을 때 낯설어하며 선호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마음을 열고 들어보면 멀고 먼 사하라와 독자 간의 정서적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민속음악이 가진 5음계를 사용한다는 기술적 공통점 이외에도 말로 자세히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느껴질 것이라 확신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사막은 멀고 먼 곳이겠지만, 오늘 밤 이들의 음악을 들어보며 슬픈 역사를 흥으로 승화시키는 마음을 다시금 새겨보면 어떨까.

사하라엔 KFC 같은 게 없다고 노래하는 장난스러운 이기팝의 피처링 덕분에 어떤 면에서는 조금 더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노래. 이기팝은 애니메이션에도 웃통을 벗고 있다.
타마셰크어로 ‘연결’을 뜻하는 타믹레스트의 흥이 가득한 트랙. 투아레그족은 다른 일부 아랍권 문화와 다르게 남녀가 평등하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 | Atavist Magazine, Getty Image, Tinariwen, Mdou Moctar, The New York Times, World Music Central, Sound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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