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 속 살아 숨 쉬어 온 컬트 갑옷의 대명사, ‘Siberian Bear Haunting Amor’

기괴한 사진을 남몰래 모아두는 고약한 취미를 가진 이라면 언젠가 한 번쯤 위 사진을 보았을 테다. “헬레이저(Clive Barker’s Hellraiser)”의 고대 실사 버전을 보는 듯한 해당 갑옷에 붙은 캡션은 ‘1800’s Siberian Bear Haunting Amor’. 글자 그대로 ‘시베리아 곰 사냥 갑옷’이라니, 아무리 19세기라지만 설마 저 옷을 입고 곰에게 덤볐을까. 강철 갑옷을 입었다 한들 곰에게 덤빌 수 있는 용기가 가상하거니와 전신을 스파이크로 덮은 해괴망측한 갑옷을 어떻게 제작했는지에도 의문이 든다.

‘Siberian Bear Haunting Amor’는 2012년, 지금은 더는 찾아볼 수 없는 웹사이트 ‘Retronaut’에 소개된 이후 관심을 끌기 시작해 현재까지 레딧(Reddit)을 비롯한 각종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 컬트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그 정확한 출처를 밝히려 애썼지만 아쉽게도 그 기원과 목적 등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한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제 투구와 1인치 간격으로 약 2cm 가량의 철 스파이크가 박힌 ‘Siberian Bear Haunting Amor’는 호러, 컬트적 아우라를 내뿜으며 다방면에서 차용돼 왔다. 일례로, 해당 갑옷에 너무 매료된 체코의 인디밴드 엔딩(Ending)은 “Bear Hunting Amor”라는 곡을 발매하기에 이르렀고 뮤직비디오를 통해서도 그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패션계 역시 이를 차용한 듯한 모습을 연이어 보이며 그 컬트스러운 명맥을 이어왔다. 뎀나의 발렌시아가(Balenciaga)부터 레이캬비크에서 탄생한 으스스한 돌묵상어 장갑까지, ‘Siberian Bear Haunting Amor’와 어딘가 닮은 패션 아이템들을 모아봤으니 새로운 이미지로 환생한 그 모습을 함께해 보자.


Balenciaga 20 Fall

역대 컬렉션 중 ‘Siberian Bear Haunting Amor’와 가장 유사한 피스가 등장한 컬렉션을 꼽자면, 뎀나 스스로가 ‘가장 어두운 쇼’라 칭했을 만큼 어둠의 기운이 쇼 전반을 지배했던 발렌시아가(Balenciaga)의 20 Fall 컬렉션을 빼놓을 수 없겠다. 비록 상의에 그친 발렌시아가표 헌팅 아머지만 ‘Siberian Bear Haunting Amor’의 촘촘함이 온전히 표현됐으며, 비록 철제는 아니지만 더욱 비대해진 스파이크가 무시무시한 아우라를 풍긴다.

해당 컬렉션은 뎀나가 그의 고향 조지아의 정교회에서 목격했던 검은 사제복에서 영감을 얻어 완성한 것으로, 종교적 순수성과 미니멀리즘을 녹여냄과 동시에 육체, 섹스 등 종교적 목적의식 속에 숨겨진 사제들의 비밀스러운 욕망을 표현했다.


SANKUANZ 21 AW

중국 출신의 디자이너 샹구안 즈(Shangguan Zhe)가 2013년 설립한 브랜드 산쿠안즈(SANKUANZ)는 ‘Cool&Hardcore’를 바탕으로 독특한 시각적 언어를 구사해 왔다. 2015년에는 LVMH Prize 결선 진출자로 선정될 만큼 그 창의적 스타일은 이미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팬데믹을 ‘인류에 대한 자연의 처벌’로 해석한 21 AW 역시 그 결과물 중 하나.

팬데믹의 슬픔을 극복하려는 인류의 의지가 드러나는 산쿠안즈의 21 AW 컬렉션은 ‘슬픔을 슬픔으로 상쇄한다’는 다소 가학적인 명제 아래 작동한다. 인류 스스로가 자신을 향한 공격성과 증오를 날카로운 메탈 스파이크와 버클 가죽 스트랩으로 표현한 것.

비록 스파이크의 간격이 꽤나 벌어지며 ‘Siberian Bear Haunting Amor’의 실제 실루엣과는 다소 괴리가 생겼지만(마스크만은 헬멧과 꽤나 닮은 듯하다),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어두운 배경이 컬렉션의 우울한 분위기를 더하는 산쿠안즈의 21 AW 컬렉션은 그 컬트적 분위기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Egon Lab 20AW

한편 꽤나 부드러운 무드의 현실판 ‘Siberian Bear Haunting Amor’ 역시 존재한다. 파리를 기반으로 하는 프랑스 패션 레이블 에곤 랩(Egon Lab)이 20 AW를 통해 선보인 스파이크 가죽 셋업이 그 주인공. 과연 로맨스와 펑크를 기조로 브랜드를 운영 중인 그들의 정체성에 걸맞는 제품이 아닐 수 없는데, 같은 시즌에 발매된 장미 가죽 셋업과도 환상의 커플룩을 이룬다.

특히, 브랜드 디자이너 중 한 명인 플로랑탱 글레마레크(Florentin Glémarec)의 조부모가 브랜드 앰버서더인 만큼 그들이 등장한 룩북이 눈에 띈다. 스파이크 가죽 셋업을 착용한 룩북을 보면 제아무리 날카로운 스파이크 가죽  셋업일지라도 그 모습이 꽤나 사랑스러워 보이는 아이러니를 경험할 수 있을 것.


SRULI RECHT 12 SS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출신의 디자이너 스룰리 레흐트(Sruli Recht)가 2012년 선보인 컬렉션 ‘Cast by Shadows’ 속 가장 화제가 됐던 돌묵상어 가죽 장갑. 여태 소개해 온 스파이크 제품들에 비해 스파이크의 크기만 놓고 보자면 가장 볼품없어 뵐 수 있겠다. 허나 어른들 말 하나 틀린 것 없다고, 작은 고추가 맵다 하지 않았나. 스룰리는 해당 제품을 설명하며 “상어가 무는 것보다 이 거칠거칠한 표면이 더 위험하다”라고 겁을 주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장미 가시 같은 스파이크가 촘촘히 박힌 모습이 보기만 해도 손끝이 아린 기분이 든다.

스룰리 해당 장갑을 제작하게 된 에피소드 또한 전했는데, 어느 날 작업실 밖으로 지나가는 트럭에서 축축하게 빛나는 무언가를 보고 트럭이 멈출 때까지 좇아 얻은 것이 바로 돌묵상어 가죽이란다. 과연 그 집념에 버금 가는 음침한 결과물이 아닐 수 없다. 시베리아에 버금 가는 혹독한 추위가 함께하는 레이캬비크판 스파이크 패션 아이템, 돌묵상어 스파이크 글로브. 그 우울하고 고혹스러운 자태를 함께 감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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