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건축과 독자 사이의 적막을 깰 질문 하나 던져보겠다. 세상에서 제일 마음 편한 건축가는 누구인가? 그건 바로 ‘안도 타다오(Ando Tadao)’다 (안도 나 다오). 어떤가, 재미있지 않은가? 사실 이보다 더 유쾌하고 흥미로운 것은 그의 건축일 것이다. 그 아무리 건축에 무관심할지라도 ‘안도 타다오’란 이름에 꽤 익숙한 것에 비해, 그의 생애와 건축에 대해 우리는 정작 몰라도 한참 모른다. 대개 그를 수식하는 ‘정규 건축 교육을 받지 아니한’ 또는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한’ 어느 일본 건축가 정도로만 알고 있을 터이지만, 이런 몇 가지의 수식어로 그를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마침 여기 그가 일생을 바쳐 이룩한 작품과 유산을 그가 설계한 작품 안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개최됐다는 소식 하나 전한다. 안도의 건축과 가까워질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을 것.
강원도 원주시 소재의 ‘뮤지엄 산’에서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며 건축물 설계를 맡은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개인전 ‘안도 타다오-청춘’ 전이 오는 7월 30일까지 개최된다. 지난 2013년 한솔문화재단에 의해 개관한 뮤지엄 산은 국내에 위치한 안도 타다오 작품 9점 중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작품으로, 그의 건축 철학이 온전히 담겨 있는 대표작이다. ‘건축이란 무엇이며, 건축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란 질문으로부터 시작한 이번 전시는 “청춘”이란 주제 하에 총 4부로 구성, 뮤지엄 산 전체에 걸쳐 진행된다. 이를 통해 그의 건축 인생을 회고함과 동시에 건축의 원점과 역할에 대해 재고할 기회를 마련했다. ‘청춘’이란 전시 제목에 걸맞게 250점을 관통하는 그의 도전 정신이 깃든 젊은 관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특징.
1부 ‘공간의 원형(Primitive Shapes of Space)’에서는 초기부터 중기까지에 걸친 안도 타다오의 작품을 다룬다. 특히, 일본 건축계 내에서 그를 주목 받게 만든 ‘스미요시 주택(Sumiyoshi House)’를 비롯해 세계적인 건축가로 발돋움하게 만든 ‘빛의 교회(Church of the Light)’ 등 60년대 말부터 90년대 중반 사이 진행된 프로젝트들의 도면과 스케치, 모형을 감상할 수 있다. ‘풍경의 창조(Landscape Genesis)’란 이름으로 진행되는 2부의 경우, 안도 타다오의 공공 건축 프로젝트들을 감상할 수 있으며, 3부 ‘도시에 대한 도전(An Urban Challenge)’에서는 그의 건축적 도시적 실험이 세계 공공장소에 미친 영향력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가 30년간 진행 중인 ‘나오시마 프로젝트(Naoshima Project)’ 는 3부의 조미료가 되어주고 있다. 전시의 끝인 4부 ‘역사와의 대화(Dialogues with History)’는 다양한 역사적 건축물의 레노베이션 프로젝트를 통해 그가 추구하는 진정한 건축의 역할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의 건축 세계를 갈무리하고 있다.
이처럼 뮤지엄 산 전반에 걸쳐 진행되는 4부 구성의 전시는 때로는 통시적으로, 때로는 공시적으로 그의 건축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을 것. 안도 타다오는 누구이며 그는 왜 세계적인 건축가가 된 것일지에 대해서 말이다. 지금부터 그 궁금증을 함께 해결해보자. 1941년 오사카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 익히 알려져 있듯 원래 그는 건축가가 아닌 복싱 선수로서 커리어를 먼저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프로 복싱 선수로서의 생활을 정리하게 되는데, 그쯤 그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에 대한 서적을 탐독하며 인생의 전환을 맞이한다. 특히 르 코르뷔지에의 도록이 닳도록 트레이싱지로 따라 그리며 근대 건축 언어를 독학한 것은 이미 유명한 일화.
그를 직접 사사하기 위해 떠난 유럽 여행에서 안도 타다오는 르 코르뷔지에, 아돌프 로스(Adolf Loos)와 알바 알토(Alvar Aalto) 등 근대 건축 거장들의 작품들을 비롯해 판테온(Pantheon) 신전과 같은 유럽 고전 건축 직접 경험하고 느끼며 독자적인 건축 언어를 구축하게 된다. 4년간의 유럽에서의 답사를 마친 그는 각종 인테리어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행 후 마침내 1969년 ‘안도 타다오 건축연구소’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건축가로서 행보를 이어가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력이 그의 건축에 미친 영향에 대해 궁금해질 수밖에 없을 것. 뮤지엄 산의 사례를 통해서 특징을 살펴보고 그의 생애가 작품에 미친 영향에 대해 논해보자.
안도 타다오의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정답은 분명 ‘자연’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자연은 우리 머릿속에 자리 잡은 울창한 나무들과 야생 동물이 뛰노는 ‘자연’과는 거리가 멀다. 돌, 물, 바람, 빛과 그림자와 같은 자연적 요소들을 인위적으로 재배치하고 있는데, 이를 두고 많은 이들이 ‘추상화된 자연’이라 표현하곤 한다. 뮤지엄 산을 잘 보면 드넓은 노출 콘크리트 벽에 의해 빛과 그림자는 극적으로 드리우며 명암의 대비를 만들어 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워터 가든(Water Garden)’이라 불리는 본관 입구의 수공간은 자연 상태의 물과 달리 어떠한 움직임도 없이 잔잔히 하늘과 건축물 전체를 반사하고 있다.
이처럼 안도의 건축물은 자연적 요소들을 인위적으로 배치함으로써 통념에서 벗어난 극적인 경험을 유도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건축과 사용자 간의 진정한 소통이 이뤄진다. 쉽게 말해 치킨이나 통닭구이가 아닌 닭고기 육회를 통해 닭고기 본연의 풍미와 질감을 즐기는 것과 비슷하다 볼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콘크리트라는 재료에 대해서 논하지 않을 수 없는데, 안도 타다오는 ‘노출 콘크리트’를 줄곧 사용해 왔다. 노출 콘크리트는 어떤 마감재도 입히지 않은 구조체가 그대로 드러난 것으로, 안도의 건축에서 콘크리트는 구조체 그 자체보다는 자연을 매개하는 소재로 기능한다.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고?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논의에 지쳤을 테니 영상 하나 보면서 쉬어 가보자.
위 영상은 2021년 뮤지엄 산 내 ‘명상관’에서 진행된 뮤지션 박지하의 ‘Temporary Inertia’ 퍼포먼스로, 안도의 건축과 박지하의 음악이 절묘하게 어울려 큰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여기서 잠깐. 무엇이 보이는가? 우리는 콘크리트 돔이 만들어 내는 반구 형태의 공간을 확인할 수 있다. 특이한 점은 공간을 만들어 내는 돔 그 자체보다 돔이 만들어 내는 ‘무의 공간’에 더 집중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가? 공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안과 밖을 나눠주는 경계를 나눠주는 벽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그렇기에 벽은 눈에 띄기 마련인데,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 벽은 단지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경계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콘크리트 벽이 주는 시각적인 육중함 또한 느껴지지 않으며 구조체가 만들어내는 공간이 풍요롭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차갑고 조용한 공간 내부로 빛은 극적으로 흐르며 대리석처럼 빛나는 콘크리트가 자연처럼 느껴질 정도.
이러한 면모를 두고 안도의 건축을 ‘일본적’이라 평하곤 한다. 그가 만들어 낸 건축 세계는 일본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유럽의 모더니즘을 변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안도는 르 꼬르뷔지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하는 방식과 벽이 존재하는 바가 그러하다. 그 외에도 램프를 통한 ‘건축적 산책’을 도모했는데, 우리는 이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볼 것이다.
건축적 산책. 필자는 이에 대해서 일전에 이야기한 적이 있다. 램프를 거닐며 전체 풍경을 파악하는 것이 핵심. 이처럼 일정 동선과 시야를 유도하는 것을 근대 건축의 기하학적 특징이라 일컫는데, 안도의 건축 또한 이러한 특징을 보인다. 하지만 유럽에서 통용되는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복잡한 동선과 이에 따른 다양한 시퀀스를 만들어 내는 안도의 램프는 전형적인 동양 건축과 혼합된 형태를 띠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뮤지엄 산 내부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이처럼 안도 타다오는 유럽의 근대 건축을 단순히 답습하고 모방하는 것이 아닌 일본인으로서 정체성을 반영하여 근대 건축의 어법과 일본 전통 건축의 어법을 적절히 혼합해 그의 독자적인 건축을 평생에 걸쳐 이룩한 건축가이다. 때문에 그의 건축은 제법 단순해 보일지언정 시간과 자연을 고스란히 담아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이 우리 인간과 닮아 있다.
그는 강연과 기자회견, 전시 내내 청춘에 대해 역설하곤 했다. 푸른 봄을 일컫는 이 단어가 명시적으로 규정한 시기는 없다. 그 말인즉슨 인간 생애에 영원한 봄도, 겨울도 없을 테지만 우리는 꽤나 긴 계절을 누릴 수 있는 셈이다. 여전히 자신이 청춘이라 자신 있게 말하는 어느 대가를 보면서 스스로 자문할 필요가 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청춘을 살고 있는가? 돌아오지 않을 시간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늙지 않는 콘크리트와 빛, 물 그리고 건축처럼 우리 일생의 봄날도 오래 지속되길 희망하는 바. 제법 안도 타다오의 건축과 친해진 기분이 드는 지금, 푸른 봄의 기운과 함께 신속히 원주로 향하는 교통편을 알아보는 건 어떨지.
뮤지엄 산 공식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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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정보
일시 | 2023년 4월 1일 ~ 2023년 7월 30일
장소 | 뮤지엄 산 (강원 원주시 지정면 오크밸리2길 260)
Photographer | 박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