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삼각지 #3 GORE PLANT

몇 년 사이 솜씨 좋은 음식점과 더불어 멋들어진 카페와 와인바가 속속 생겨나며, 서울의 새로운 핫플레이스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삼각지. 식도락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란 동네지만, 그만큼 볼 것 또한 넘쳐난다.

‘돌아가는 삼각지’의 세 번째 주자는 희귀 식물을 파는 플랜트 숍 ‘고어 플랜트(Gore Palnt)’로 삼각지역 4번 출구 바로 앞 길게 늘어선 빌딩 한편에 뿌리내리고 있다. 정겨운 벽돌 건물을 지나 좁은 테라조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너른 창으로부터 비치는 햇빛과 함께 도심 속 작은 식물원이 펼쳐진다. 눈에 익숙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 돋보이는 특별한 식물을 파는 공간으로 함께 입장해보자.


고어 플랜트라는 공간, 그리고 본인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고어 플랜트는 삼각지에서 아프리카 식물과 희귀 다육 식물을 판매하는 플랜트 숍이다. 나는 고어 플랜트를 운영 중인 안봉환이라고 한다.

고어 플랜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다소 생소한 아프리카 식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라면.

학창 시절부터 식물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이를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쩌다 대학교를 의상학과로 진학했는데, 졸업 후 패션 유통에 관련한 일을 오래 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다 어느 순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시기가 왔다. 식물을 좋아하니 자연스레 그에 관한 사업을 구상했다. 점차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세우며 남들과 다른 걸 시도해 보고 싶었고, 그게 아프리카 식물이었다.

본인이 생각하는 아프리카 식물의 매력은 무엇인가.

패션 산업에서 일하며 옷과 함께 아트 토이나 빈티지 장난감, 인센스 챔버 같은 멋진 조형물을 자주 접했고,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아프리카 식물에 심취한 이유도 비슷하다.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했던 독특한 외형 때문에 하나의 근사한 오브제처럼 보이는 거지. 살아있는 식물이지만, 식물 같지 않은 모순된 모습이 아프리카 식물의 매력 중 하나인 것 같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희귀하고 특수한 식물인 만큼, 처음 숍을 열었을 때 걱정도 적지 않았을 것 같다.

숍을 처음 오픈했을 때 가장 먼저 가족을 초대했다. 매장에 진열된 식물을 보고 아버지가 한숨을 쉬며 이걸로 밥은 먹고 살 수 있겠냐고 걱정하시더라. 하하. 1층도 아닌 2층에서 식물 가게를 운영하니 처음에는 찾아오는 손님도 없었다. 숍을 지나치는 사람마저 볼 수 없었지. 하지만, 그런 어려운 순간에도 앞날이 걱정되지는 않더라.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길을 택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걱정을 안고 갈 수 있었고, 조급함을 접어두고 꾸준히 하다 보니 더 빠르게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숍의 위치를 정할 때 서울 내 수많은 후보군이 있었을 텐데, 삼각지에 자리 잡게 된 연유라면.

일단 내가 용산구에 오랜 시간 살았다. 한창 아프리카 식물에 빠졌을 때 이런 식물을 구하려면, 아무리 가까워 봐야 서울 근교, 아니면 먼 지방까지 가야 했기에 내가 사는 곳 주변에 아프리카 식물을 파는 곳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 바람을 내가 이루게 된 거지. 용산구 이곳저곳을 보다가 삼각지까지 왔다. 꼭 1층이 아니더라도 식물에 필요한 채광이 좋고, 지하철역과 인접한 곳을 원했는데, 지금의 자리가 딱 그런 곳이어서 빠르게 계약했다. 아, 합리적인 월세도 한몫했다.

처음 자리를 잡았을 때도 지금처럼 삼각지 상권이 활발했었는지 궁금하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붐비는 거리는 아니었다. 이제 막 삼각지에 식당이나 와인바를 준비하는 몇몇의 사장님이 고어 플랜트에 놀러온 기억이 난다. 당시엔 삼각지가 이 정도로 핫해질 거라고는 생각 못 했지.

한창 뜨고 있는 동네에서 공간을 운영하는 이로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우려는 없는지.

용산구의 전통적인 상권이라면, 이태원, 한남 일대가 우선일 것이고, 그 이후 경리단길이 급격하게 성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긴 침체기가 왔지. 그러면서 그쪽 상권이 삼각지, 신용산으로 많이 내려왔다. 또 한편으로는 최근 을지로에서 장사하던 이들이 삼각지에 하나둘 가게를 내고 있다. 덕분에, 감각 있고 취향이 확실한 공간이 삼각지 곳곳에 생겨나며, 자연스레 많은 이들이 몰리고 있다. 실제로 주변 상가의 권리금과 월세가 꽤 많이 올랐다. 뭐 한동안은 계속 오르지 않을까 싶지만, 아직 별걱정은 없다.

숍에서의 하루 일과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고어 플랜트는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운영하고,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문을 닫는다. 보통 출근 후 바로 온라인 배송 업무를 시작, 배송을 마친 뒤에는 온라인 스토어에 상품을 게시한다. 식물이라는 게 일반적인 공산품과는 달리 그 개체마다 크기나 수형 등의 차이가 있어 모든 식물을 개별 업로드해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꽤 바쁘다. 온라인 스토어 관련 업무를 마친 뒤에는 매장에 있는 식물을 돌보거나 중간중간 고객 응대를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매장을 열지 않는 때에는 보통 무얼 하나.

최근에는 곧 식물에 관한 책이 한 권 나오는데, 감수를 맡게 되어서 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외에는 브랜드와 미팅하기도 하고. 사실, 가장 중요한 일은 식물 농장에 다니는 거다. 고어 플랜트와 거래하는 농장이 몇 군데 있는데, 전부 서울과는 거리가 좀 있어서 농장을 오가며 식물을 사입하고, 씨앗 파종도 하고, 나름 바쁘게 지내고 있다. 하하.

발란사(Balansa)와 사운즈 굿(Sounds Good) 등 여러 브랜드, 아티스트와 협업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협업의 배경이 궁금하다.

아프리카 식물이나 희귀 다육식물을 단순히 신기하게 생긴 식물로만 보여주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조금 더 문화적으로 표현하고 싶었고, 그중 하나의 방법이 멋진 브랜드와의 협업이었던 거다. 운 좋게도 주변에 멋진 편집 스토어, 브랜드가 있었고, 이를 자연스레 풀어낼 수 있었다. 난 개인적으로 대중에게 아프리카 식물을 키우라고 설득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이런 문화 속에 좀 더 멋지고 즐거운 취미가 있다는 걸 알리고 싶을 뿐이다.

이제 와 아프리카 식물도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지 않나, 국내 아프리카 식물 문화, 시장의 규모는 어떤가.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COVID-19)가 유행하면서 식물 시장이 엄청 커졌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인테리어와 취미의 일환으로 식물을 키우는 인구가 늘어나며, 식물에 대한 수요가 늘고, 나중에는 식물을 되파는 식테크라는 말까지 나왔다. 알보 몬스테라의 경우에는 이파리 한 장이 200만 원까지 치솟았으니까. 지금에 와서는 그런 관엽 식물의 공급이 늘어난 반면, 수요는 줄어 관엽 식물 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프리카 식물 같은 경우에는 워낙 특수하고, 성장 속도가 더뎌 붐이 일거나, 유행하기 쉽지 않다. 아직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기보다는 천천히, 조금씩 알려지고 있는 단계다.

살아있는 생명을 판매한다는 점에서 여타 숍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업무를 진행할 것 같다. 특별히 신경 쓰는 일이 있나.

아무래도 살아있는 생명을 판매하는 일이니 애프터서비스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플랜트 숍을 하며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가 고어 플랜트에서 식물을 구매한 고객이 1년, 혹은 2년 뒤에 분갈이 문의를 할 때다. 그런 경우에는 고객에게 숍에 방문해달라고 한 뒤 화분값만 받고 분갈이를 해주고 있다.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식물 생육과 관련한 DM 문의가 엄청 오는데, 고어 플랜트에게는 그 응대가 너무나 중요한 일이라 언제나 상세히 답변하고 있다.

각 개체 하나하나가 고가이기에 상당한 판매에 있어서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할 것 같은데.

모든 식물이 고가는 아니지만, 값이 싸든, 비싸든 죽으면 안 되니까. 식물을 구매하려는 고객에게 세심하게 설명한다. 키우려는 장소의 환경을 물어보고, 적절한 채광고 습도 등의 생육 방법을 조언한다거나, 어떤 것에 취약한지 등등 식물을 보내지 않고, 오래 함께할 방법을 안내한다.

고어 플랜트 운영은 단순한 플랜트 숍 운영보다는 브랜딩에 가까워 보인다. PB 상품과 같은 기획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나 역시 플랜트 숍 운영 이전 패션업에 몸담고 있었기에 상품을 하나 만들어 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역시 판매가 문제지. 식물 가게에서 식물을 파는 것과 티셔츠를 파는 건 정말 다른 영역의 일인 것 같다. 식물 하나 파는 건 쉽지만, 티셔츠 한 장, 피규어 하나를 파는 건 정말 어렵더라. 어떻게 보면, 식물을 사러 온 이들에게 아예 다른 성격의 물건을 팔아야 하는 거니까. 고객의 구미를 당기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는 방법 외에는 없는 것 같다.

다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모두를 설득하고 싶지는 않다. 취향의 시대 아닌가. 누구는 이게 취향에 맞을 수 있고, 누구는 안 맞을 수도 있겠지. 내가 좋아하는 걸 누군가 좋아하면, 함께 좋아하고 이러한 즐거움을 나누는 게 고어 플랜트의 목적 중 하나다.

고어 플랜트의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글쎄, 앞으로 주변의 멋진 아티스트나 브랜드, 혹은 편집 스토어와 협업하며, 좀 더 재밌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Gore Plant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 │오욱석
Photographer | 전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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