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018년 필자가 열정적인 미술 학도이던 시절, 먼저 필드에 진출한 이들의 뒤를 밟아보고자 성수의 한 아트 페어를 찾았을 때다. 화려한 작품 속에서 생생한 날 것의 느낌으로 촬영한 한 노년 남성의 사진 컬렉션이 유독 시선을 끌어당겼다. 팬티 한 장 혹은 그와 더불어 다 늘어난 티셔츠에 무릎이나 팔을 욱여넣고 소파와 물아일체 된 듯 누워 잠을 청하는 사진 속 남성의 모습. 너무나도 인간적인 그 모습은 아슬아슬하다 못해 적나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단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사람임에도 느껴지는 친숙함은 무엇 때문일까.
박가인 작가의 아카이브 ‘why there is no fun in my life’는 자신의 아버지의 지극히 일상적이고 지루한 삶의 파편을 공유한 작품이다. 사진 속 아버지의 심드렁한 모습은 온몸으로 ‘사는 게 재미없음’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사진 속 주인공 본인은 계속해서 무료한 삶을 이어가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를 구경하는 관객은 마치 바다 건너 불구경하듯 새로운 재미를 느낀다.
필자가 이 재미없는 남성의 열렬한 팬이 된 이래 벌써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그간 인스타그램 아카이브 계정의 업로드는 점차 뜸해졌다. 소위 말해 ‘남 좋은 일만 하던’ 박가인 작가의 아버지. 문득 그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그간 무얼 하고 지내셨을까. 여전히 삶이 재미가 없을까? 개인적인 궁금증 해소와 이 아이러니한 재미를 VISLA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박가인 작가를 찾아가 직접 대화를 나눴다.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미술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가인이라고 한다. 현재 을지로에서 ‘육일봉’이라는 문화공간 겸 술가게를 4년째 운영하고 있다. 육일봉에서 나는 주로 신진작가의 활발한 창작 활동을 위한 이벤트 기획에 힘쓰고 있다. 개인적인 미술 활동도 계속해서 하고 있다. 어쨌든 본업은 미술작가다.
아버지가 “사는 게 왜 이렇게 재미가 없냐”라고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서 시리즈가 시작된 것으로 안다. 어쩌다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졌는지.
하루는 아빠가 장씨 아저씨랑 노래방 간다고 나가면서 “가인아 사는 게 왜 이렇게 재미가 없냐”라고 하더라. 그런데 나는 사는 게 재미없던 적이 없어서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일까 하고 생각해 봤더니 정작 본인이 재미없는 일만 하고 있더라. 지금은 은퇴했지만 그때는 일할 땐데, 그 나이대의 어른들은 퇴근하고 잘 놀 줄 모르지 않나. 장씨 아저씨가 부르면 그때나 나가서 놀지, 평소에는 집에서 TV나 보고 있고 이러니까. 도와줄 생각은 안 하고 아빠의 재미없는 일상을 찍어봤다. 그렇게 2016년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아버지의 ‘재미없는’ 일상을 사진으로 기록하고자 한 이유는?
말한 그대로다. 한 가지 덧붙여 보자면 처음 작업을 시작했을 당시 한창 여성을 대상으로 한 몰카가 유행했을 때다. 여성 몰카를 주제로 다른 작업을 진행 중이기도 했고, 시리즈물처럼 남자 버전으로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옛날에 아빠한테 여자가 너무 많아서 엄마와 내가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일종의 복수 같은 마음도 있었다.
아버지와 자주 대화하는 편인가? 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자주 하는 편이다. 보통 “뭐 하냐” 같은 일상적인 대화부터 정치 이야기까지도 거침없이 나눈다. “윤석열 당선되니까 기분이 어때?”라고 질문하면, “(당선된 지)백일 정도 된 걸 가지고 뭔 판단을 하냐?” 이런다. 본인이 투표해놓고 문제가 생기면 또 엄청나게 욕한다. 그런 걸로 가끔 장난조로 시비를 걸기도 하지. 좀 전에도 메시지를 보냈다.
어떤 얘기를 했나.
비도 많이 오는데 갈치 낚시하러 여수에 간다 길래, “아빠는 안녕하냐” 물어봤다. 걱정 말라더라 뭐… 난 아직 그렇게 일찍 여의고 싶진 않은데. 내 생각은 안 하지 또.
아버지의 삶이 재미를 상실한 이유가 무엇 때문인 것 같나.
그냥 놀 줄 몰라서. 아빠가 전쟁 때 엄마 손잡고 북한에서 내려온 게 한 살인가 두 살 땐가. 1949년, 50년 이럴 때다. 그때부터 양아버지 밑에서 눈칫밥 먹고 자라면서 계속해서 자수성가의 삶을 꿈꿔 왔던 거다. 막 엄청나게 잘 사는 건 아니라 해도 집 있고 마누라, 자식 다 있고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격이니 성공한 인생은 맞지. 그런데 그렇게 젊을 때부터 고생하며 살다 보니 여유, 여가가 없는 거다. 노는 방법은커녕 뭘 해야 재밌는 지도 모르고 기껏해야 낚시하러 다니는 게 아빠의 유일한 낙이다. 이제는 그러지 않지만, 내가 어릴 적엔 처자식 있는데 여자나 만나러 다니고. 요새는 배낚시가 아빠 인생의 재미 중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
아버지가 사진 업로드를 흔쾌히 응하시지는 않으셨을 듯한데. 촬영은 사전 협의 후 진행되었나.
미리 얘기하면 재미없지. 잘 때만 몰래 찍으니까 아빠는 내가 이 작업을 시작한 지도 몰랐다. 아빠는 SNS를 안 하니까 아예 확인할 방법이 없지. 그래서 계정을 만든 지 6개월 정도 지나서야 나 이거 만들었다? 하고 보여줬다. 그랬더니 “에잉, 쯧!” 이러더라. “전국 망신시키는 년!” 평소처럼 이러고 말길래 ‘아 이렇게 해도 되나 보다’하고 아빠 사진으로 전시도 하고 그랬다. 그때 사람들이 아는 척해 주니까 막상 또 ‘관종’처럼 좋아하더라. 내심 부끄러워는 하는데, 그것도 본인 젖꼭지가 보여서 부끄러운 게 아니라 그냥 사람들이 알아 봐주니까 부끄러운 거지. 그래서 그렇지 수치심 같은 건 없으신 것 같다.
한창 이 시리즈를 전시할 때, 전국적으로 망신시킨다고 아버지와 다퉜다고 들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가끔 인스타그램에 사진이 업로드되는데, 요즘은 어떻게 받아들이시나.
항상 장난처럼 지나갔지, 살면서 아빠랑 심하게 다툰 적은 없다. 딱 한 번 최근에 진짜로 다툰 적이 있다. 코를 뚫었더니 뺀찌로 잘라버리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작년 11월부터 본가에 못 가고 있다. 어떻게든 되겠지. 아무튼 간에 자취를 시작하면서 직접 찍을 수가 없으니 작년에는 엄마한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근데 엄마한테 부탁한 사진은 한계가 있다. 직접 찍어야 구도도 잡고 재밌는 포인트도 캐치하기가 쉬운데.. 그러다 보니 올해는 아직 업로드를 못했다. 아카이브도 충분히 됐고. 사실 아빠는 아마 내가 엄마한테 부탁한 건커녕, 계속 올리고 있는지도 모를 거다. 같이 살았으면 계속했을 텐데 엄마도 귀찮아하고, 나도 내 인생이 있다 보니.
사진 외에도 다른 매체를 활용한 시리즈 작업이 있는 걸로 안다.
‘사는 게 왜 이렇게 재미가 없냐’ 페인팅. 그림 속 글씨는 아빠가 친필로 써준 것이다. 아빠 몰래 찍은 사진으로 티셔츠 굿즈를 만들기도 하고, 아빠와의 대화 카톡 캡처 이미지 정도가 있겠다. 자세한 대화 내용은 @bahcgaain.fanpage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아버지 사진을 소개해달라.
계정에 첫 번째로 올렸던 ‘비 더 레즈 (Be The Reds)’ 티셔츠를 입고 누워있는 사진을 제일 좋아한다. 처음 찍어본 건데 어떻게 색감도, 구도도 딱 맞더라. 역시 사진은 처음 걸 못 이기는 것 같다. 이후에 계속 다른 사진을 찍어봐도 그걸 이기는 사진이 없다. 두 번째로 좋아하는 건 ‘홀리 파더(Holly Father)’다. 저 손 모으고 잠든 자세가 너무 홀리(Holly)해 보이지 않나. 죽은 것 같기도 하고. 탄 자국이 약간 샴고양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두 장을 제일 좋아한다. 그리고 낚시한 물고기랑 같이 찍은 사진도 좋아한다.
낚시하는 사진도 인터뷰이가 찍어준 건가.
낚시 동호회 사람들이 서로서로 찍어준 사진이다. 동호회 이름도 되게 웃기다. ‘매너낚시’였나. 그리고 낚시 갔다 오는 길에 휴게소에서 어묵 사 먹는 셀카 같은 것도 가끔 찍어 보내는데 그것도 웃기다.
유일하게 표정이 밝을 때는 모두 낚시랑 연결돼 있다.
그런 것 같다. 아 그리고 티비랑 아이패드, 스마트 워치 정도. 초를 다투는 사람도 아니면서 시계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본인이 얼리어답터라면서 출시되자마자 샀더라. 하여간 이해가 안 된다.
맞다. 패드를 들여다보는 사진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정확히는 갤럭시 패드다. 밥 먹을 때도 계속 패드를 들여다보고 있어서, “아빠 밥 먹을 땐 패드 하는 거 아니야” 이랬더니 “내가 너한테 피해를 줬니”라고 맞받아치더라. 밥상머리 교육이 안 돼 있다. 급한 것도 아니다. 고작 낚시 동호회 영상 정도 보고 있다. 꼴 보기 싫다.
사는 게 재미없는 아버지도 낚시할 때와 패드를 만질 때만큼은 행복해 보인다. 요즘 아버지가 새롭게 재미를 붙인 게 있다면.
없다.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낚시찌나 루어 같은 것들을 종류별로 잔뜩 사다가 다듬고, 물고기 잡아 오면 엄마가 그걸로 요리해 줘서 먹는 정도. 가끔 그런 건 있다. 전시에 쓰려고 “아빠, 나 사슴 좀 그려줘” 이렇게 말해 놓고 방에 들어갔다 나오면, 사슴은 진작 다 그려 놓고 붓글씨도 써 놓고 꽃도 그려 놓고 그런다. 가끔 이런 거 던져주면 재밌게 잘 논다. 그냥 애 키우는 것 같다. 뭘 해야 재밌는지 몰라 해도, 뭔가 놀 거리를 하나 던져주면 좋아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 줄 생각은 없다.
은퇴하시기 전에는 무슨 일을 하셨나 물어봐도 되나.
트러커였다. 커다란 통나무 싣고 다니는 화물차로 평생 연안 부두를 왔다 갔다 하셨다. 은퇴하고 지금은 곱창집 알바를 다니신다. 눈 뜨면 할 일이 없고 기력이 남으니까 거의 직원처럼 매일 새벽부터 나가서 아직도 돈을 버신다. 아빠가 맨날 “야, 내 친구들 다 혈압약 먹는데 나는 아무 약도 안 먹고 괜찮아” 이런다. 너무 정정하니 에너지를 어디다 써야 할지 모르는 거지. 원체 활기찬 분이기도 하고.
최근 올라온 사진들은 표정이 좀 더 좋아 보이더라.
그렇다. 그래서 내 입장에서는 재미없기도 하다. ‘아 뭐야 잘 지내잖아? 이런…’ 같은 마음이랄까. 그러면서 사진을 잘 안 올리게 된 것도 있다. 처음에 올릴 때만 해도 엄마랑 아빠가 사이가 안 좋았다. 계정 운영을 시작하고 보니 둘이 붙어서 잘 놀러 다니더라. 아마 요즘은 사는 게 재밌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엄마랑 노는 재미 아닐까 싶다. 예전 사진들을 보면 아빠가 되게 우울하고 쳐져 보인다. 엄마랑 잘 놀러 다니게 되면서 근 1, 2년간은 표정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
아버지에게 당신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한다고 말씀드렸나. 반응이 궁금하다.
안 했다. 전시와 인터뷰도 몇 차례 했고, 말해도 ‘에잉 쯧!’ 이러시니까 그냥 말씀드릴 생각을 딱히 안 해봤다. 그래도 아버지에 대한 인터뷰 요청은 근 몇 년 만이기는 하다. 별말은 없으시겠지만 한번 말은 해보겠다. 콘텐츠를 위해서.
수년간 아버지의 사진을 기록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나 생각에 변화가 있었을까. 그런 변화를 가능케 한 조건들은 무엇이었나.
좀 전에 이야기했다시피 처음 시작은 아빠가 우리 가족을 힘들게 한 과거에 대한 일종의 복수 같은 개념이었지, 그다지 애정 같은 것은 없었다. 지금은 애정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때는 애정, 애증 그 무엇도 아니라 그저 하나의 관찰 대상으로 봤다. 어떤 가족이 있는데, 아버지라는 사람이 마누라와 자식을 너무 고생시키고 평소에 빻은 소리도 좀 하고 집에서 빨가벗고 돌아다니고 이러니까 꼴 보기 싫다. 복수하자! 그냥 이거였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세월이 지나면서 아버지에 대한 관점도 바뀌고 그러잖나. 왜 저러나 싶으면서도 가끔 보면 좀 측은한 날도 있고.. 집도 사고 자식새끼 먹여 살리고 지금도 뒷바라지하는 걸 보면 좀 불쌍하기도 하고 기특하고 그렇다. 고생만 하신 우리 아버지 엉엉, 이게 아닌 박승남이라는 사람의 인생을 관찰하려고 했다. 그렇게 나중에 모인 사진들을 봤을 땐 복수의 행위는 애정 같은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일단 장하지 않나. 지금까지 생각으로는 박승남은 나한테 큰 의미를 갖고 있는 사람이자 존재감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모님과 많이 친해져라. 부모님은 하루가 다르게 늙어간다. 평소에 부모님의 사진이나 동영상 많이 찍어 두면 좋을 것이다. 요즘은 “엄마는 탕수육 부먹이야 찍먹이야?” 이런 소소한 질문에 동그라미 치며 부모님을 알아갈 수 있는 문답 자서전 이런 것도 유행하던데, 좋은 것 같다. 왜냐하면 가끔 엄마나 아빠가 “야, 나 젊었을 때 공장 다녔잖아”라고 말하면, ‘공장을 다녔나?’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부모님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은 거다. 부모님의 젊은 시절을 먼저 물어봐도 좋겠다. 우리 아빠이기 전에 박승남, 누구누구의 일생을 한 번 쭉 훑어보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우선 팔자가 기구하잖아. 돈 벌어서 자기한테 쓰고 잘 살 수 있는 걸 괜히 애 낳아서 고생이나 하고.
아무래도 그때는 무조건 다 그래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들 갖고 있었으니까.
그게 가장 불쌍한 점이다. 선택권이 없으니까. 여하튼 부모님을 친밀하게 대하기 쑥스럽다면 가장 쉬운 카톡부터 슬슬 시작해 보길 바란다. 그리고 VISLA… 이제 여기에 나도 나오는 건가? 아 우리 아빠가 나오겠구나. 박승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