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일 ‘힙합 탄생의 날’, 또는 ‘힙합 축하의 날’이 오늘로 50주년을 맞이했다. 힙합이 미국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문화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축하하기 위해 발의된 해당 기념일이 미합중국 상원 의원들에 의해 공표된 것은 2021년. 그리고 2년가량의 시간이 흘러 힙합 탄생 50주년을 기념하자는 발의문은 다시 한번 미합중국 상원 전 의원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누군가 “힙합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힙합은 근본적으로 빈민가에 거주하는 유색인종이 겪는 소외와 억압에서 나타난 문화 운동이다. 따라서 그들에겐 항상 투쟁과 생존이 잇따랐고, 그런 부정적인 현실을 표현하고자 채택한 플랫폼이 예술이며, 변모해 이러한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자 했던 창의적인 배출구가 바로 힙합이다. 거친 현실에 수반되는 특이점들, 때로는 공격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태도로 인해 힙합이 항상 모두에게 사랑받아 온 장르라고 자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힙합은 수십 년간 인종, 언어, 연령, 지리적, 사회경제 등 다양한 차별의 장벽을 초월하며 지금까지 엄존해 왔다.
따라서 ‘힙합 탄생의 날’은 단순한 음악적 성취를 축하하기 위한 것 이상을 의미한다. 그저 저항과 반사회의 상징에서 벗어나,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가 뭉친 힙합이 결국 미국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문화유산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증표로서 필자에겐 감히 받아들여진다. 다시 말해 소외된 이들의 투쟁과 노고는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널리 알린 셈이다. 뉴욕 유니버설 힙합 박물관의 커뮤니케이션 책임자인 르네 포스터(Renee Foster)는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라 믿었던 문화가 그 역사를 기념하는 것을 보게 되어 놀랍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힙합 탄생의 날’의 기준이 된 일자는 바야흐로 1973년 8월 11일, 브롱스 남부의 세즈윅 애비뉴(Sedgwick Avenue) 역에서 DJ 쿨 허크(DJ Kool Herc)가 하우스 파티 ‘Back-to-school-jam’을 개최한 날이다. 사실 이 파티는 쿨 허크의 여동생 신디 캠벨(Cindy Campbell)이 최초로 고안해 낸 것으로, 파티의 근본적인 목표 또한 문화 장르의 번영이 아닌 다가오는 새 학기를 대비해 멋진 옷을 마련하기 위한 기금을 모으기 위한 기획 파티였다. 캠벨 남매는 파티를 위해 브롱스의 한 아파트 건물에 딸린 휴게실을 $25에 대여했다. 입소문을 타고 내려온 방학 끝 무렵의 파티 소식에 3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이내 이 평범한 아파트는 힙합의 발상지로 통하게 됐다.
‘Back-to-school-jam’ 파티에서 DJ 쿨 허크가 턴테이블과 믹서를 활용해 보여준 새로운 믹싱 기술은 힙합 문화의 개막으로 통용된다. 쿨 허크는 두 개의 레코드에서 비슷하게 사용되는 드럼 브레이크 부분을 합치, 그리고 그 구간을 반복시켜 비트 루프를 생성하는 ‘브레이크비트’라는 스타일을 처음으로 선보였고, 당시 그가 새롭게 구축한 음악 위로 댄서들이 보여준 춤이 바로 모두가 알고 있는 ‘비-보잉(B-boying)’이다(*또는 ‘브레이킹’이라고도 부른다). 이렇게 힙합을 대표하는 두 가지 요소가 같은 시기와 장소에서 함께 탄생하기도 하며, 1973년 8월 11일이 힙합의 탄생일로 지정되어야 할 근거는 충분히 타당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힙합의 태동은 1973년 훨씬 이전부터 보여 왔기도 하고, 속된 말로 “시작!”하고 시작되는 것도 아닌 것에 탄생 일자를 임의로 지정해 주는 것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저마다 시작의 기준이 다르고 어떤 기준에 맞출 것이며, 하물며 미국을 대표하는 한 장르의 시작점을 어떻게 정확히 꼬집어 정할 수 있겠으랴.
그렇기에 힙합을 구성하는 4대 요소가 하나로 묶인 1974년 11월 12일을 힙합 탄생의 날이라고 주장하는 측도 있다. 비-보잉, MC, 그래피티, DJ 각 분야의 여러 장르를 하나의 문화로 묶어 명명하기로 했다면, 이 모든 것이 융합된 날을 진정한 탄생일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는 것이 바로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의견이다. 그 어느 쪽도 틀린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힙합의 ‘진정한’ 탄생일에 대한 갑론을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 우리가 유념하고 집중해야 할 부분은 “장르는 구체적인 시작이나 끝이 있는 개념이 아닌, 끊임없이 진화하는 창의적이고 혁명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다가온 50주년, 뉴욕시를 포함한 미국 전체가 축하 행사 준비로 2023년 내내 시끌벅적했다. 각종 축하 공연은 당연지사, 브루클린 공공 도서관에서는 현대 사회에서 힙합을 주류로 만드는데 공신한 아티스트 제이 지(Jay-Z)의 음악, 그리고 그의 일생일대기를 다루는 전시회를 개최 중에 있다. 또한 뉴욕의 대중 교통기관 MTA에서는 힙합 아티스트 4인의 얼굴이 그려진 한정판 메트로카드를, 넷플릭스에서는 여성 힙합 아티스트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나이키에서는 브롱스를 모티브로 한 에어 포스 1 로우 “Bronx Origins” 버전을 릴리즈하며 각자의 방식대로 힙합 탄생 50주년 축하에 나섰다.
힙합이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미친 영향을 표현하기에 단순한 글 만으로는 모자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이 글에 관심을 갖고 읽고 있다는 것은 힙합의 놀라운 수명과 지속가능성 정도를 설명하기엔 충분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50년의 세월 간 자유와 저항을 대변하는 문화를 개척해 낸 모든 이에게 찬사를 바친다.
이미지 출처│The 50th Anniversary of Hip-Hop.com, Sean Mccabe,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