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ater Spotlight #2 최호진 & 박관주

만약 당신이 스케이트보드를 타본 적이 있다면, 아주 간단해 보이는 트릭조차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걸 느낀 적 있을 터. 어떤 스케이터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만들기 위해 잠자는 시간 말고는 보드 타는 생각만 하다가, 직접 몸을 부딪히고 나서 실패를 겪고 좌절하기도 한다. 그리고 성공할 때까지 시도하다가 결국 원하는 것을 해냈을지라도 적절한 보상은 없다. 그럼에도 이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당신은 이것을 뭐라고 부를 것인가? 이번 인터뷰를 함께한 최호진과 박관주는 그걸 반복하는 친구들이다. 아니 적어도 그런 친구들이었다. 10대 시절부터 스케이트보드에 시간을 갈아 넣은 두 친구는 2023년 현재 조금 다른 길을 향하고 있다.

2000년생 최호진은 여전히 스케이트보드 위의 삶에 전념하며 조금씩 삶의 여유를 찾아가는 중이고, 2003년생 박관주는 성인이 되면서 새로운 삶의 방향을 잡아 나아가고 있다. 같은 곳에서 동행하다가 서로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두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최호진

2020년도 초반 신(Scene)의 루키였던 최호진은 어느덧 국내 스케이트보딩 신 중심에서 활동 중이다. 수많은 비디오에 모습을 비추며 스케이트보딩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올해 자신의 이름을 딴 보드까지 소유하게 되었다. 밝은 성격의 최호진은 명랑한 태도로 인터뷰에 응해주었는데, 인터뷰 중 여러 부상을 이야기하다가도 이후 어떤 스팟에서 촬영할지 고민하고 계획을 짜는 등 영락없는 스케잇헤드였다. 함께 담배를 태우고 차를 마시면서 그가 경험한 스케이트보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24살, 분당에 사는 최호진이다. 팀버샵(Timber Shop), 칼하트 WIP(Carhartt WIP) 코리아 소속 스케이트보더로 활동하고 있다.

어느덧 24살이다. 곧 20대의 나이가 꺾일 텐데 기분이 어떤가?

보드를 타면서 체력적인지 심리적인지는 모르겠지만 20살의 나와는 에너지가 달라진 것 같다. 이전보다 쉽게 지치는 느낌이고, 심리적으로는 겁이 많아졌달까. 보드를 타러 스팟에 가면 이것저것 재고 따지게 된다. 아무래도 최근 보드를 타면서 다쳤고 그런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는지 그 영향이 있다. 특히 발목이 아프다. 몸이 아프니 마음 속에도 부상이 누적된다. 보드를 타면서 느끼는 부담감이 커졌다.

그래도 아직 젊은 나이인데, 좋은 점은 없나?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나가서 촬영도 하고, 수많은 스팟들을 가보고, 크고 작은 부상도 얻어보니, 내가 원하는 스케이트보딩이 무엇이고 어떤 것을 잘하고 못하는지 어느 정도 감이 잡힌 것 같다.

‘내가 원하는 스케이트보딩’이라는 답변에서 많은 발전을 이룬 것 같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뭐 그냥 매일 보드 타고 촬영하고 깨져 보니 알게 된 거지. 어릴 적엔 계단을 뛰어내리던 렛지를 타던 월라이드를 타던 그냥 닥치는 대로 시도했다. 많은 부상도 있었고.

무엇을 하며 지냈나?

여전히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스팟에서 보드를 타거나 촬영하고 친구들과 당구도 치고 여자친구와 데이트도 하며 살고 있다. 24살이 되어 조금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스케이트보딩 이외에도 삶의 다른 부분들이 필요하다고 느끼는데, 그래서 요즘은 책을 읽기 시작했지. 최근엔 혜민 스님의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이란 책을 읽고 있다. 이것 외에도 여러 권의 책을 이동하거나 보드를 타지 않을 때 틈틈이 읽고 있는데 많은 것들에 고마움을 느끼고 뭔가를 미워하는 마음도 많이 줄었다. 독서가 주는 가르침이 좋다.

신에 얼굴이 알린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스스로도 많은 스케이트보드 비디오에 참여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동안 무슨 활동을 해왔는지 이야기해줄 수 있나?

그렇다. 꽤 많은 스케이트 비디오에 참여했다. 그중 기억나는 몇 개를 순서대로 꼽아보자면, 2018년과 2019년 사이 성인이 되면서 양성준이 만든 “DADDY”비디오에서 첫 파트를 만들었는데 지금 봐도 재밌다. ‘내가 저런 모습이 있었다고?’ 하는 생각도 들고. 그 시절엔 안경을 꼈는데 지금 보면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스케이트보드에 진심인 모습이 보여서 지금 나는 너무 겉멋이 들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 초심을 돌아보게 된달까.

2020년에 공개된 이한민의 “Why called “ssap ssap”이라는 비디오에 참여했는데 지금 보드를 타는 스타일과는 다르게 많은 부분에서 시도한 모습이 보인다. 그때는 한민이 형과 매일매일 필르밍을 했다. 촬영을 위해 당일치기로 지방도 내려갔다 오는 등 정말 스케이트보딩 이외에는 어떤 목적도 없었다. 힘들지만 뜻깊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해, 다시 양성준과 개인 파트 “Welcome home Hojin”을 촬영하고 공개했는데 이즈음부터 내가 추구하는 스케이트보딩과 색깔을 찾았다고 할까. 제목처럼 집에 돌아온 거지. 스트릿에서 렛지를 타고 뱅크를 타거나 빡센 드랍인을 시도한다거나 이런 스타일로만 파트를 완성했다. 또 이 비디오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스팟에서의 모습만 담겨있는데 꽤 맘에 들었던 작업이다.

2021년에는 지금은 사라진 LMC 스케이트보드팀의  “HISS” 비디오에 참여했는데, 패션 브랜드가 스케이트보드에 관심을 가지고 서포트해주는 부분에 매우 고마운 마음으로 참여했다. 같은 팀이었던 박관주, 오재성, 요시, 임태현, 최민규와도 좋은 추억이 있는데 더는 함께하지 못해 아쉽지만 뭐 별수 있나.

그 후 2022년에 팀버샵의 10주년 비디오 “MONOLOGUE”에 참여해서 몇 개의 클립을 남겼는데, 개인적인 문제가 있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당시 공황장애가 심하게 왔는데, 덩달아 슬럼프도 함께 왔다. 그 여파인지 자신감도 많이 떨어지고 필르머와 촬영할 때면 그들에게 부담을 준다는 느낌이 고통스러웠다. 어찌어찌 잘 마무리되었지만 정말 그때를 생각하면 다시는 보드를 타지 않을 수도 있었던 위기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2022년 이한민과 다시 “Rush hour”를 만들었는데 이 비디오는 2년 전부터 이런저런 스케줄 상의 이유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작업을 정리하는 느낌이었다. 촬영하면서 2년이란 시간 동안 내가 추구한 스케이트보딩 안에서 좀 더 다채로움을 느꼈다. 한층 성장한 기분이었다.

올해는 어떤 활동을 했나?

올해는 필르머 김동희와 “Heads up!”이라는 비디오를 만들고 시사회도 열었다. 친동생인 최유진과 처음으로 함께 더블 파트를 만들게 되었는데, 이 비디오를 만들기 위해 초반에 말레이시아 투어도 갔다. 그런데 촬영 중 발목 양쪽을 다 접질린 거지. 뭐 별수 있나, 데드라인은 다가오고 동희와 유진이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사실은 타면 안 되는 몸 상태로 보드를 계속 탔는데 만족스러울 만큼 좋은 클립이 나오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지만 더욱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Haeds up!” 더블 파트 시사회에서 영상이 공개된 후 자신의 이름이 걸린 데크까지 발매되었다. 이때를 어떻게 회상하는가?

시사회가 끝나고 럭키드로우 시간이었다. 우리 형제 둘의 눈을 가리고 당첨 번호를 고르고 나니 나와 유진의 이름이 적힌 데크가 눈앞에 있는 게 아닌가,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정말 예상하지 못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1년 동안 준비했다고 하더라. 그 이후로 스케이트보딩에 대한 동기부여도 강해지고 보드를 계속 타게 되는 하나의 원동력이 되었다. 놀라운 일을 기획해 준 팀버샵에 감사한다. 반면에 내 이름이 적힌 데크가 팔리는 것만으로도 많은 책임감이 들더라.

누군가는 자신의 이름이 걸린 데크가 공개되면 프로 스케이터라고 이야기한다. 민감할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를 프로라고 생각하는가?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프로페셔널 스케이트보더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 그렇지만 내 이름이 적힌 데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 중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생각하는 프로의 조건은 무엇인가?

모르겠다. 기준이 확실하진 않지만 스케이트보딩으로 본인의 생계를 유지하고 스스로 삶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면 프로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난 여전히 갈 일이 멀다. 더 빡세게 타야만 하지.

다시 촬영 이야기로 돌아와서 묻자면 스트릿에서 많은 촬영을 해왔다. 길거리에서 다른 사람들과 트러블이 발생하지는 않았나?

이것도 트러블이라면 트러블인데 촬영하던 중에 시큐리티 가드가 나와서 수많은 킥 아웃을 겪었다. 그럴 때면 항상 조용히 자리를 뜬다. 개인적으로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보드 타는 것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문제도 거의 없었다. 오히려 촬영하고 있을 때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다 주시는 분들도 있고, 아쉽게 랜딩에 실패했을 때 함께 아쉬워해 주는 분들도 있고, 미디어에서 보이는 것 이상으로 스케이트보딩을 긍정적으로 봐주시는 이들이 많다.

꾸준한 다작 속에서도 중심에 둔 철칙이 있나? 새로운 스팟을 항상 찾아야 한다든지, 시그니처 트릭이라든지.

그런 건 없다. 가고 싶은 스팟이 있으면 가고, 클립을 만들어 내든지, 실패하든지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한다. 그게 전부다. 그런데 실패하면 진짜 속이 쓰리다.

본인에게 영감을 준 프로 스케이터나 파트가 있으면 이 또한 소개 부탁한다.

많은 스케이트 비디오와 스케이터를 좋아하지만, 하나를 고른다면 런던을 베이스로 활동하고 있는 제이콥 해리스(Jacob Harris)의 “Atlantic Drift” 시리즈를 좋아한다. 특히 캐스퍼 브루커(Casper Brooker)의 스케이팅 스타일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있다.

10대부터 20대 중반의 나이까지, 본인의 젊음을 오롯이 스케이트보딩에 매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케이트보드가 이토록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매번 생각하는 부분인데, 보드를 탈 때마다 이걸 타는 이유를 생각하면 기분이 엿같다. 시간 대비 노력을 따져도 그 성과는 정말 형편없지 않나. 굉장히 비효율적인 활동이다. 하지만 촬영하러 가서 클립을 건지거나 오랫동안 생각해 왔던 것을 실제로 이루어 냈을 때 얻는 성취감이 말도 안 되게 좋다. 거의 미칠 정도라서 그게 스케이트보딩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인가 싶기도 하고.

만일 보드에 오르지 않았다면 무엇을 했을 거 같은가?

상상하기 어렵지만 만에 하나 스케이트보드를 타지 않았다면 내가 좋아하는 다른 분야인 격투기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사실 잘 모르겠다. 예전부터 복싱을 배우긴 했지만 사실 스케이트보드만큼 성실하게 하진 않았다.

보드 외의 취미는 따로 없는 것 같은데, 평상시 보드를 타지 않을 때는 무엇을 하는가?

최근 들어서 보드 이외에 삶도 중요하게 느껴져서 다른 취미를 찾아보는 중이다. 그러려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겠더라. 앞서 말했듯 요즘은 독서를 하면서 나를 좀 더 알아보는 시간을 챙기는 중이다.

요즘 가장 열심히 작업하고 있는 작업물 하나만 이야기해 달라.

필르머 김동희와 보다 나은 모습을 위한 비디오를 준비하고 있다. 파이팅 넘치게 촬영 중이다. 파이팅!

향후 목표를 듣고 싶다.

스케이트보드 안에서 좀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 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치지 않고 건강하고 재밌게 타는 거지. 지금처럼 꾸준히 성실하게 스케이트보드를 탄다면 더 좋은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박관주

많은 스케이터가 원하는 것처럼 보드 위에 있는 시간 만으로 생활이 유지되면 좋겠지만, 아직 국내 스케이트보딩 신에서 보드를 타는 것만으로 삶을 유지해 나가는 건 여전히 꽤 어려운 일이다. 당신이 보드를 타고 있다면 당신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가에 관계없이 언젠가는 선택해야만 한다. 계속 스케이트보드에 집중할지 아니면 다른 삶을 선택할지. 03년생인 박관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삶을 결정하고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여전히 스케이트보딩을 놓지 않으면서도 본인의 일에 대한 굳은 의지를 보이며 삶의 균형을 맞추려는 그가 스케이트보드와 일 사이 어떤 의미를 찾고 있는지 되돌아보았다.

당신은 누구인가?

서울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미용 일을 하는 봄처럼 따뜻한 남자 박관주다. 여름이 와서 슬프다.

요새 보기 어려운데, 보드는 잘 타고 있나?

20살 때까지는 스케이트보드를 원 없이 탔다. 그러다 대학을 못 갔다. 그리고 미용 일을 시작하면서 인턴으로 지내고 있는데 일이 바쁘다 보니 좀처럼 보드 타는 시간 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두 번 이상 타려고 한다.

지금 하는 일에 관해서 이야기할 수 있나?

헤어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서 미용실에서 근무하는 중이다. 영업 시간에 헤어 디자이너들을 도우며 헤어살롱의 전반적인 업무를 하고 있다. 영업시간 이후나 업무가 한가할 때는 헤어 디자인과 미용 기술을 연습하고 있다.

스케이트보드와 미용이라, 흥미롭다. 어떤 계기로 미용을 접하게 되었나?

예전에 LMC에서 스케이트보드 팀으로 활동하며 프로필 사진을 촬영한 적이 있다. 그때 촬영 현장을 직접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포토그래퍼나 헤어 디자이너, 메이크업 아티스트처럼 다른 사람들을 멋지게 보이기 위해 서포트하는 직업에 매력을 크게 느꼈다. 스케이트보드를 더 타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스케이트보드만 타며 생활을 이어 나가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다. 미용 일을 배우는 게 재밌기도 하고.

본인에게 둘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나?

사실 연관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스케이트보드나 미용이나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 다르고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배움의 끝이 없다는 점이 똑같더라. 또한 내가 무언가를 할 줄 안다고 그게 끝이 아니고 스타일을 연마하고 익숙해져야 한다는 점, 끊임없이 창의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부분에서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다.

스케이터의 관점에서 예를 들자면, 스케이터마다 스타일이 다르고 스팟에 따라 보여줄 수 있는 트릭의 구성이 다른데, 이와 마찬가지로 헤어디자인에도 고객마다 두상이나 모질이 달라 상황에 따른 유연성도 필요하고 어울리는 스타일도 제각각이다. 정답 없이 정해진 업무만 가지고 매일매일을 보내는 일이 아니라 상황마다 센스를 발휘하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매력을 느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일을 시작한 입장에서 주변 또래들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느낀 점이 있나?

대학교에 간 친구들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학교 생활에 집중해야 하니 부모님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반면 나는 좀 더 일찍 일을 시작하면서 사회생활을 하는 입장에서 업무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스스로 책임져야 할 부분이 생겼고, 이제는 나 자신은 나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부모님의 그늘에서 보호받던 좋은 시절은 이제 가버린 거지. 물론 힘든 부분도 있지만 보다 독립적이고 더 자유롭다고 느낀다.

다시 스케이트보드로 넘어와서 묻자면 보드는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

중학교 때 가족과 미국에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때 길거리에서 처음으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접하던 것을 실제로 보니 그들에게서 자유로움? 자유분방함?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멋진 기운이 느껴져서 한번 타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시작했다.

실제로 타보니 생각만큼 자유롭던가? 

그런데 처음에는 스케이트보드에 아무것도 모르다 보니 자유로움은 고사하고 그냥 막막하더라고. 그래서 강습이 필요하다고 느껴 정보를 찾다가 신정혁을 알게 되었다. 정혁이 형은 현재 ‘Heaps’라는 스케이트보드 브랜드를 운영 중인데 당시에 어린 친구들에게 스케이트보드 강습도 함께하고 있었다. 그렇게 강습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6개월 정도 집중적인 트레이닝을 받았고 함께 기본적인 스케이트보드 트릭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스케이터가 지켜야 할 매너, 문화 등등 여러 면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덕분인지 정혁이 형과는 꽤 나이차가 있는데도 스승과 제자보다는 편한 형, 동생 같은 느낌으로 지내고 있다.

자유로움을 느끼려고 보드를 타기도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탄다는 건 꽤 스트레스이기도 하다. 어떻게 생각하나?

사람마다 여러 가지 생각과 이유가 있겠지만, 내겐 보드를 타는 시간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것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이다. 이런 모든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자유롭다고 느낀다.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낼 수 있는 것도 자유로움의 일부다.

그렇다면 자유로움이야말로 스케이트보드를 타면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인가?

얼마 전 당신과 촬영하기 직전에 얻은 발목 염좌 정도? 농담이다. 보드를 타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디제잉을 하거나 사진, 비디오를 촬영하거나 또 춤을 추는 분도 있고, 브랜드를 운영하는 분도 있다. 만약 내가 보드를 타지 않았다면 이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을지 잘 모르겠다. 국적, 나이, 문화에 상관없이 스케이트보드라는 문화 안에서 허물없이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다. 덕분에 인터뷰도 하고 말이지.

스케이트보드 아래에 내려오면 무엇을 하나?

일을 시작하기 전 스케이트보드만 탈 때는 친구들과 오롯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여전히 친한 친구들과는 일과가 끝나고 술 마시면서 이야기도 하고 당구도 치러 가고 가끔 보드게임도 즐긴다. 다들 같이 모여서 보드 타던 녀석들과 함께 타지 못하는 현실이 조금 슬프긴 하지만 일하고 배우면서 얻는 성취감도 꽤 크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다.

만약 스케이트보드를 타지 않았다면 무엇을 했을 거 같나?

워낙 운동을 좋아해서 중고등학교 때도 축구부와 농구부 생활을 했다. 키가 크지 않아 농구 선수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체대에 가거나 운동을 통한 진로를 택하지 않았을까.

일을 하면서 시간도 체력도 만만치 않을 텐데 스케이트보드도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두 생활에 대한 충돌은 없었는가?

가끔 스케이트보드 관련 광고 촬영이 생기거나, 스케이트 비디오를 위한 촬영에 시간을 내야 할 때가 있다. 이럴 땐 두 가지를 모두 해내기가 어려울 때가 있지. 그럴 때마다 모두 함께하지 못하는 부분이 아쉽다. 하지만 내 몸은 하나니까 우선순위를 두고 먼저 할 일을 해야겠지.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

또 보드를 타면서 다치기도 하는데 그 부분이 일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스스로 관리해야만 한다. 사실 이 부분 때문에 직장에서 좀 혼나기도 했고 일을 잘하려면 컨디션 관리도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느끼게 되었다.

성인이 되면서 자유를 얻었지만, 일을 하는 책임감도 느낄 텐데 이 과정에서 삶을 즐기는 본인의 방법이 있나?

내게는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것이 삶을 즐기는 방식이다. 여전히 보드 타는 걸 좋아하지만 그런 삶을 위해선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하는 거지. 일하면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보드를 타며 해소하는 편이다.

또한 함께 보드를 타는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도 소중한 부분이다. 얼마 전에 휴가를 내고 최호진, 이하빈과 함께 양양에 다녀왔다. 보드를 가져갔지만 스케이트보딩 자체보다는 보드에서 내려와 가까운 이들과 보내는 시간도 충분히 값지다고 느낀 여행이었다. 일을 하는 입장이다 보니 모든 시간이 더욱 소중히 여겨졌다. 그중 하조대 바위에서의 다이빙은 최고였고.

또래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

나도 일하고 있는 입장이지만, 돈을 목적으로 바라보면서 살기에는 삶에는 여러 좋은 요소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많은 경험과 추억을 만들길 바란다.

향후 목표가 있나?

바쁘겠지만 신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 스케이트보더로서는 필르머 이한민과 개인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올해 중으로 결실을 거두어 내는 게 목표다. 한편으로는 헤어 디자이너로서 역량을 갖추어 직접 가치를 생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다. 그 전에 군대에 다녀와야 하지만.

최호진 인스타그램 계정
박관주 인스타그램 계정


Credit

Editor │이훈 강진욱
Photographer │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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