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선필의 작업실

작가의 다양한 작업 환경을 들여다보는 VISLA의 새 기획, ‘ㅇㅇㅇ의 작업실’. 첫 번째 작가는 돈선필이다. 과거 작가가 미술에 대한 막연한 꿈을 품었던 시절, 그럴듯한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사방을 화이트로 칠한 주거공간을 비슷한 처지의 작가들에게 작업실이자 미술공간으로 대가 없이 대관해 준 B½F(반지하)의 익명의 운영자였기에, 그가 시리즈의 첫 주자인 것은 다소 운명적(?)으로 느껴졌다.

작가가 실제로 작업하는 짧은 동선 안에는 시야가 닿는 곳곳에 장식품과 재료의 경계가 모호한 피규어들이 테트리스처럼 쌓여있었다. 그래서인지, 처음 방문한 낯선 공간에서 작가를 알아가는 일련의 과정을 생략하고 공간부터 파헤치는 것은 생각보다 조심스러운 일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렇게 낯설기도, 친숙하기도 한 피규어 더미에 둘러싸여 작가의 생각과 작업실 그리고 그 주변의 것들을 물었다.


간단한 소개부터 부탁한다.

서울에서 미술을 하며 살고 있는 돈선필이다.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니 대학에서 판화를 전공했더라. 입체 작업을 주로 선보이는 걸로 알고 있어서 다소 의아했는데, 수상한 이력이 있는 걸 보면 판화도 꽤 적성에 맞았나 보다.

판화에 대한 진지한 열정이 있어 판화과에 입학했다기보다는, 당시 판화과가 입시 경쟁률이 낮다는 소문이 있었다. 일단 입학한 이후에는 전과를 하든 복수전공을 할 수 있으니까. 판화과 수업에서 배운 기술적인 부분이 재미있긴 했다. 실크 스크린이나 동판에 그리는 경험을 처음 했을 때는 마냥 신기하지 않나. 회화과를 졸업한 아내 박현정 작가의 말을 들어보니 회화과는 사실 기술적으로 가르쳐주는 게 거의 없다더라. 그냥 “그려라”가 주된 수업 방식이라고. 사실 2학년 때까지 기술적인 면을 다 배운 이후로는 매체를 다루는 방식이 고리타분해서 판화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창 그런 생각을 할 때 즈음 우연한 계기로 판화 비엔날레가 개최돼서 큰 기대 없이 지원했는데 의외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원 중 휘트니 미술관 큐레이터로 계시던 분이 내 작품을 보고 작업이 너무 강렬하다며 오해(?)했다. 별생각 없었는데 너무 좋게 봐주셨고, 꿈보다 해석이 더 좋았던 거 같다. 지금 보면 좀 부끄러운 것도 있다.

입체 작업으로 전향한 계기가 있었나?

고등학교 때 피규어를 처음 접한 뒤로는 꾸준히 입체 작업에 관심이 있었다.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에 학교에서 프라모델을 조립하고 있었는데, 당시 담당 교수님이었던 홍승혜 작가님께서 그게 작품이 될 수는 없는지 질문하셨다. 돌이켜보면 그때 교수님의 질문이 작업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계기가 된 거 같다. 시간이 지나 보니 단지 취미생활로만 여기던 피규어가 작품으로 이어지고 있다. 어떤 것은 작품으로 간주되고, 다른 것은 그렇지 않다고 분리해서 생각했던 그때를 돌이켜보면 당시 내 사고가 연배가 높으신 교수님 보다도 딱딱하게 굳어있던 거 같다.

다시 평면 작업으로 돌아갈 일은 없을까?

딱히 매체를 정해놓고 있지는 않다. 피규어의 선주문 시스템처럼 화면을 통해 접하는 비디오와 이미지의 관계에도 관심이 많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근데 평면 작업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지 않나. 그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조건이 있는 편을 더 선호한다.

얼마 전 작업실을 옮겼다고 들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코로나 시즌 이전에는 그냥 집에서 작업하다가 2019년 말에 레지던시에 지원했다. 2020년부터 난지 레지던시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막 코로나가 시작된 시기라 아쉽게도 프로그램이나 교류가 없어 작업실만 쓰고, 아무런 활동이 없었다. 2021년에는 금천 레지던시에서 지원을 받아 활동했는데, 그때도 코로나 시즌이어서 활동이 미미했고, 끝나갈 때쯤 이제는 레지던시가 아닌 개인 작업실을 빌려 장착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월세가 좀 비싸더라도 집에서 가깝고, 페인트칠부터 하지 않고도 쾌적한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는 곳으로 정했다.

작업실로 출근하기 전과 후, 보통 어떤 하루를 보내나.

사실 전시가 있을 때만 작업하는 편이라, 매일의 루틴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보통은 8~9시쯤 일어나서 운동하고 아내와 간단히 아침을 먹은 뒤 작업실에 온다. 전시가 예정되어 있으면 두세 달, 또는 세네 달 사이에 몰아서 작업을 하고. 전시가 없는 시기에는 쉬는 편이다. 쉴 때는 작업실에 잘 오지도 않는다. 마침 7월 중순에 전시가 오픈해서, 지난달까지는 거의 내내 출근하다시피 했는데 이번 달은 3일 정도만 나온 거 같다.

전시가 없을 땐 작업 외에 다른 걸 하기도 하는지.

지금은 정기적으로 하는 대학교 강의 말고는 거의 쉬는 것에 가깝다. 종종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하고.

보통 작업의 프로세스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하다.

뭐든 텍스트가 선행되는 것 같다. 대부분의 작업을 시작할 때 메모나 글쓰기부터 시작하는데, 이유가 있어야 작품으로 풀어냈을 때 납득이 가서 그런지, 먼저 위키백과처럼 쭉 한번 써보는 편이다. 요즘은 기억력 감퇴가 와서 생각난 것을 그림 메모로 남기기도 한다.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과 방법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 형태에 집중하기 전에 글을 쓰고, 수집하고, 비교, 관찰하면서 체감한 걸 다시 작업으로 구성하는 것 같다. 피규어를 관찰하다 보면 제작자가 만들 때 ‘이런 생각을 갖고 만들었겠구나’라던가, ‘어느 부분에서는 조금 귀찮았구나, 여기는 진짜 신경을 많이 썼구나’ 하는 게 보인다. 그림 그리는 사람은 붓자국만 봐도 알더라고.

가장 마음에 드는 본인 작품 한 가지를 꼽는다면. 

의외로 영상 작업을 좋아한다. 21년에 전시했던 “screen SADER”라는 작업인데, 오리지널 피규어를 짝퉁으로 다시 만드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게 피규어 쪽에서 ‘전설의 짝퉁’으로 통하는데, 마치 스페인 성당에서 복원하려다 훼손시킨 예수 성상화가 더 유명한 것처럼 원본보다 더 유명한 가짜다. 전반적으로 흑백 화면에 잔잔한 내레이션이 나오고 옛날 DVD플레이어 대기화면에 로고가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빌려와서 자막 부분을 연출했다. 

소장하고 있는 피규어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거을 자랑해 달라.

‘맥스케’라 불리는 해피밀 장난감. 미술관에서 전시 후에 작품을 소장한다고 해서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다. 진열장 안에 피규어를 진열한 ‘끽태점’이라는 전시였는데, 전시를 계기로 소유에 대한 관점이 많이 달라졌다. 평생 지니고 다닐 수도 없고, 사실 내가 갖고 있는 것보다 미술관에 있는 편이 관리도 더 잘해주더라. 내가 갖고 있으면 먼지 쌓이는 물건인데, 피규어 입장에서도 먼지 한 톨 없이 관리받게 되니 좋을 거다.

또 몇 가지 이야기하자면, 피규어라고 말하기 애매하지만 “드래곤 퀘스트(Dragon Quest)” 슬라임 플레이스테이션 컨트롤러. 모양은 귀여운데 실제로 쓰기에는 영 불편하고 쓸모없어서 매력적이다. 근래에 구입한 것 중에는 이제는 끝이 난 “에반게리온(Evangelion)”의 아스카가 있다. ‘라디오 에바 RADIOEVA’라고 해서 에바 콘텐츠로 여러 제품을 생산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콘셉트 화보 일러스트에 나온 아스카로 만든 피규어라 컬러가 조금 다르다. 

좋아하는 제작사가 따로 있나?

제작사보다는 개인적으로 원형을 만드는 원형사를 좋아한다. 그중 미도로(MIDORO)라는 분과 타케야(Takayuki Takeya)라는 원형사를 좋아하는데, 특히 타케야는 모든 원형사들이 선호하는 분이라서 검색하면 자료가 꽤 많이 나올 거다. 보통은 원형사가 홍보 수단이 된 적은 거의 없다. 피규어의 경우 상품이 먼저지, 원형사의 네임 밸류가 더 주목받는 경우는 드물다. 타케야는 원형사로서 처음 네임벨류를 가진 분이다. 형태를 결정하는 태도가 좋다. 재밌는 건 출시된 신제품 중에 ‘마음에 든다’ 하는 생각에 제작자를 찾아보면 좋아하는 원형사가 제작한 것일 때도 많다. 구분법이 있긴 하다. 미소녀 피규어의 경우 약간 하관이나, 제스처, 텍스처 같은 게 좀 다르다. 턱이 좀 얄상하다던가. 많이 보다 보면 알게 된다.

작업의 주제로 삼는 피규어라는 영역이 아무래도 수집과 굉장히 밀접하기 때문에, 작업실이 아닌 주거공간은 어떻게 꾸려져 있는지 궁금하다. 취미이자 일이기도 해서 소장하고 있는 피규어들을 주거공간과 철저히 분리해 놓았을 것도 같고.

딱히 그런 생각을 안 해봤는데, 질문받고 생각해 보니 집에는 피규어가 하나도 없다. 고양이만 있고. 왜 안 뒀을까? 아마 어느 시점부터 작업으로 피규어를 다루다 보니 재료인지, 취미인지 잘 모르겠어서 분리해 둔 거 같다. 장식처럼 쌓아둔 것 같아 보이지만 나중에는 사지를 분해해서 쓰는… 하하. 예전에는 작업실이랑 주거공간도 분리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출퇴근이 있는 편이 좋더라. 집에 가면 메일조차 안 읽는다.

그렇다면 작업실에 작업상 참고하기 위해, 또는 영감을 받기 위한 기능으로서의 피규어 말고, 오로지 장식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있다면?

그래도 비교적 컴퓨터 뒤의 선반에 둔 피규어들을 좀 더 장식적인 목적의 피규어에 가깝다고 느끼는 거 같다. 재료와 도구 선반을 둔 반대 편 책상을 실제 작업대로 사용하고 있기도 하고. 근데 결국에는 어떤 피규어들이 선반에서 작업대로 가게 되더라.

지금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인더스트리얼 미소녀”는 완성품이 아닌 고심의 흔적을 ‘피규어 제작자’의 입장에서 작품으로 해석한 점이 흥미로웠다. 작가는 작품을 전시한 이후의 작품들, 또는 과거의 습작은 어떻게 보관하고 있나.

운이 좋게도 전속 갤러리의 수장고가 큰 편이라 그곳에 보관 중이다. 단점은 꺼내올 수는 있지만 왕복 운송비가 많이 나와서 직접 가지 않으면 좀처럼 볼 수가 없다는 점이다. 

조각은 공간의 컨디션이나 도구가 갖추어지지 않은 환경에서는 작업하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한데.

사실 작업실을 구할 때 서울 외곽의 창고 같은 공간을 구할까 고민도 했었다. 그러다가 창고를 구하면 창고 규모의 작업을 구상하게 되니까, 작은 공간에서 작업을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작업실을 정했다.

작가로서 부러운 작업 환경이 있다면?

독일에 간 지인에게 전해 듣기로, 4층짜리 건물이라 층고도 높고 홀도 넓은 공간을 작업실로 쉐어해주기도 한다더라. 대형 설치하는 분들은 건물 외벽이나 미술관에 장기간 설치를 해야 하니까, 같은 컨디션으로 설치해 두고 5~6개월 정도 지켜볼 수 있는 거지. 물리적으로 오래 지켜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부럽긴 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금천 레지던시에 있을 때 작업실이 지금의 작업실 공간보다 꽤 넓은 편이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어차피 내가 작업하기 위해 사용하는 공간은 딱 방 한 칸 정도의 넓이다. 나는 인간이 제약 속에 있을 때, 조금 더 특별한 기질이 발휘된다고도 믿는다.

B½F(반지하)의 운영자로 활동했다. 본인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밝힌 기록이 많지 않아 익명의 운영자로 느껴졌다. 작품의 퀄리티를 잘 보여주기 위한 포트폴리오용 공간이 필요해 생활공간을 화이트로 칠하는 데서 시작해 무료 전시 공간으로 대관까지 해주었다고. 

당시 신입 작가를 위한 공간이나 지원 분야는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경력이 있어야 어디에 지원이라도 하는데, 보통은 경력 신입을 찾기 때문에 포트폴리오를 위해 깨끗해 보이는 장소을 필요로 한다. ‘나 같은 사람 되게 많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모두가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전시 공간으로 B½F를 오픈했더니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와줬다. 그러면서 또래 작가들을 많이 만난 것 같다. 포트폴리오를 쌓기 위한 프로젝트나 전시가 아니라,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기획한 프로젝트도 있었다. 작가랑 나, 둘이서만 본 프로젝트도 있었다. 서로에게 관객이 되어주면서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다. 종종 유명한 기성 작가 분들도 보러 와주셨다. 지나고 보니 미술을 공부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요즘은 그런 걸 하기 좀 더 어려워진 시대 같기도 하다.

지금 젊은 세대가 그런 일을 벌이기 힘들어진 건 아무래도 경쟁 때문일까?

레드오션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이해관계도 복잡해진 거 같다. 강의를 나가면서도, 옛날처럼 바보 같은 실수가 용인되지 않는 분위기 때문인지, 밀레니언 세대의 친구들이 20대 초반임에도 말을 잘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며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들을 대할 때의 나도 마찬가지고. 반지하가 2017년에 문을 닫았으니까 이제 6~7년 전 얘기고, 나도 이제 39살이다. 그때는 몰랐는데 ‘나는 낭비할 젊음이 있었구나. 청춘을 낭비하듯 아무 생각 없이 이런저런 짓하고, 재밌다고 느끼는 것만 찾아서 살 수 있던 여유가 있었구나’라는 걸 깨닫게 된다.

B½F에서 작가 이름을 밝히지 않고 전시를 진행하는 점도 인상 깊었다. 작가의 네임 밸류를 제외하고 단순히 작품으로서만 작품을 감상하길 바라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다면 다른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본인만의 관점이 있나?

사실 평면보다는 입체 작업을 좀 더 선호하고, 미술을 학문적으로 탐구한 사람은 아니어서 보는 관점이 단순한 것 같다. 피규어 같은 경우는 공산품이고, 생산 과정이 복잡해 형태를 만들기 위한 로직이나 과정이 되게 체계적인 데다, 여러 사람이 개입하다 보니 엇나간 형태를 만들기가 쉽지가 않다. 그렇기에 기술적으로 어디까지 구현이 가능한지 디테일을 보고 있다. 그런데 미술은 사실 물질 자체의 완성도보다는 어떤 개념이나 태도에 대한 즐거움을 감상하는 것이지 않나. 당장 떠오르는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는 예전에 김범 작가님이 광주 비엔날레에서 전시하신 “12가지의 조각적 조리법”이다. 작품 판매 수익금을 치킨 쿠폰으로 교환해 결식아동들에게 치킨을 사주는 프로젝트였다. 전시 디스플레이도 좋았고 단순히 형태적으로 봐도 되게 귀여웠던 기억이 있다. 원래 김범 작가님이 갖고 있는 특유의 유머 코드 같은 게 있다. 개인적으로 조각을 잘 몰라서.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작업을 감상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전시공간 파이(Pie)에서도 전시에 참여했다. 파이는 젊은 작가들이 서브컬처 위주의 전시를 활발하게 여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

오프닝 파티에 갔다가 10초 만에 나왔다. 협소한 공간에서 굿즈 판매와 라이브 드로잉을 진행하고 있고, 디제잉부스 앞에 백인 남성이 혼자 춤추고 있는 와중에 전시가 이뤄지고 있었다. 교복 코스프레도 있고. 나 같은 늙은 오타쿠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느꼈다. 하하

지금 애니메이션은 전 세계 뿐만 아니라 국내 작가들에게 2차 창작을 위한 소재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는지?

서브컬처가 대중문화가 돼서 그렇다. 서브컬처라고 부르지만 서브가 아니다. 일본발 망가 소녀 스타일을 서브컬처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게 젊은이들의 어떤 대안적 문화로 여겨지는 것도 아니고, 주류에서 빗나간 저항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난이 베이스가 된 것도 아니다. 상업적으로 돌아가고 규모도 큰데, 조금 다른 결로 보이는 것들을 서브컬처라고 정의하곤 한다. 과거에 메탈, 펑크 음악의 배후에 서브컬처가 존재했지, 젊은이들이 케이팝 아이돌 문화를 소비하는 건 사실 어른들이 주관해서 기획한 상업 베이스를 상품으로 소비하는 것이지 않나. 요즘은 실질적으로 따지고 보면 서브컬처가 없는 시대인 것 같다.

작가가 피규어에 관해 쓴 글을 흥미롭게 읽었다. 한국은 아무래도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피규어 문화에서 독립적이지 못한 것 같고, 독립적으로 성장할 가능성 또한 닫혀 있는 것 같다고 언급한 부분이 있었는데, 한국 외에 일본과 가까운 동아시아 국가들은 어떻게 피규어 문화를 소비하는지 알고 있나.

아직 21세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지금은 문화가 크게 번성하는 단계가 아니라고 본다. 20세기 세계 문화에 두각을 보인 두 나라가 미국과 일본이지 않나. 그중 일본은 ‘서브컬처’라고 부르는 형태의 문화가 발전했다. 그걸 소비하거나 생산하는 방식은 중국, 동남아시아, 중동까지 대체로 다 비슷하다. 일례로 사우디에서는 과거의 일본 콘텐츠를 보고 자란 석유 부자가 어릴 때 본 애니메이션에 너무 감동해서, 자기 돈으로 30m짜리 동상을 도시에 한가운데 세우기도 했다. 아랍에미리트 쪽도 돈 많은 팬이 사비로 특촬물을 다시 만들게 제작비를 대기도 한다. 태국은 예전부터 일본 콘텐츠를 밀접하게 소비하고 있다. 이에 반해 전 세계로 뻗어나갈 만큼의 영향력 있는 콘텐츠를 새롭게 만드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과거의 콘텐츠를 계속 소비하기만 하는 내리막길만 있다고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이 많다.

피규어에서 느끼던 낯선 감각을 지금 작가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작품을 뒷받침할 지식의 양을 축적하기까지 어떻게 공부했나.

공부를 한 게 아니라 꾸준히 좋아하다 보니까 알게 된 것들이 많다. 문화와 예술을 피규어를 통해 거꾸로 배운 게 많아서, 일례로 어떤 피규어가 너무 마음에 들어 더 깊게 관심을 가져보니 그게 유명한 B급 영화의 캐릭터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한국에 인터넷이 생겨난 23년 전쯤에는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니까 지금처럼 자료가 풍성하지 않아서 피규어숍에 가려면 약도를 다운로드해서 잉크젯 프린터로 출력한 다음 그걸 들고 숍으로 찾아가야 했다. 그렇게 어렵게 찾아가면 실제 상상했던 것과 장소가 되게 다르기도 하고 대부분 열악했던 것 같다. 열악하긴 해도 거기 있던 물건들은 그렇게 찾아가지 않고선 접하기 어려운 물건들이었다.

롤플레잉 게임에서 지도를 들고 보물을 찾는 기분으로 학생 신분으로 딱히 가볼 일 없는 홍대나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알음알음 찾아갔다. 또 지금은 없어진 ‘아이 피규어’라는 커뮤니티가 있었는데, 거기서 대부분의 비교 정보를 얻었다. 회원가입 등급이 군대 계급처럼 이병부터 시작하는 아저씨 감수성의 커뮤니티였다. 정보가 그렇게 많지도 않고 분야가 다양하지 않아서 피규어를 크게 한 장르로 보고 삼삼오오 12인치, 6인치 소프비 피규어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발품 팔면서 니즈를 해소했다. 지금은 중고 장터가 널렸지 않나. 옛날에는 국제전자센터에 있던 ‘월드 토이스’라는 가게에서 인터넷 사이트에 중고 장터 게시판을 만들어 놓은 게 피규어 중고 장터의 전부였다. 그래서 맨날 그곳 게시물을 확인해 보는 게 하루의 시작이었던 때가 있었지.

여전히 그 루틴은 지키고 있나.

지금은 워낙 플랫폼이 많아서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게 수집을 위한 서치인지, 작품 제작을 위한 서치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뭘 사기 위해서 막 찾는 게 아니라, 우연치 않은 만남을 원하는데 요즘은 제품을 접하는 과정이 너무 편해진 것 같다. 클릭 한 번 하면 집까지 오니까 재미가 많이 떨어진다. 그래서 매년 원더 페스티벌에는 방문하는데, 그것도 사실 뭘 구매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 시간 자체가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가는 것 같다. 

그냥 좀 쉬고 싶을 땐 무얼 하나. 창작물을 챙겨보기도 하는지.

창작물을 많이 보긴 하는데, 그것도 내가 쉬고 싶어 보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분기에 나온 애니메이션의 1화는 다 보는 편이다. 내 취향과 관계없이 재미없다고 생각이 드는 것도 다 보고, 넷플릭스에서 유명하다고 하면 일단 찍먹 해본다. 너무 못 보겠다 싶으면 유튜브로 요약본을 보기도 한다. 전시회 오픈하고 나서는 의무적으로 영화를 하루에 한 편씩 보고 있다. 사실 최근에는 빠른 정보 노출의 속도에 젖어들어서 20분 이상 집중하지 못하는 걸 자각했다. 요즘 같은 시기에 영화 보는 습관도 들이고 책도 다시 많이 읽고, 게임도 엔딩을 보려고 한다.

끝으로 다음 전시나 작품으로 기획하고 있는 게 있다면 힌트를 조금 줄 수 있나.

작년에 특촬 시리즈를 소재로 작업한 게 있었는데, 아쉬웠던 부분도 있고 때마침 내후년에 전시 제안도 들어와서 그때 다시 특촬을 무대미술처럼 꾸며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CG 기반이 아니라 실제 사물을 사용해 연출하고 가면을 쓰는 게 특촬 시리즈의 특징이자 매력이다. 그래픽이 아닌 실물만이 가진 힘이 있지 않나. 내가 그림보다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는 피규어를 좋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평소 좋아하던 부분을 재현해 보면 어떨까 싶은데 예산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서 아직 고민 중이다.

돈선필 웹사이트
돈선필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 | 한지은 한예림
Interviewer │한지은
Photographer | 한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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