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HOP #FUCKTHATNERDSHOP

언젠가부터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그리고 이제는 대중매체에서도 ‘너드미’라는 합성어가 쓰이는 걸 종종 목격한다. 양립하기 어려운 두 단어의 조합에 그 용례가 궁금해지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대개 ‘한 가지에 몰두하여, 다른 곳에서 신경을 전혀 쓰지 않는 사람에게 느껴지는 아름다움’, ‘지적이면서도 순수하고, 수수한 매력’을 지닌 이에게 쓰이는 것 같더라.

그간 너드를 뭔가에 전문적인 찐따 정도로 정의했던 스스로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너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브랜드이자 공간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두꺼운 뿔테 안경에 체크 남방을 입고 있는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예측하기 힘들다.

그래서 직접 방문했다. 다분히 도발적이면서도 흥미로운 네이밍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퍽댓너드샵(Fuckthatnerdshop). 본인의 관심사에 빠져 그 외의 것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외골수들이 모인 너드의 소굴에 슬쩍 발을 들여보았다.


본인, 그리고 퍽댓너드샵에 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본명은 유성규지만, 보통 인스타그램 아이디인 ‘너드맨’으로 활동 중이다. 이전부터 가죽 공예를 해왔고, 지금은 펏댓너드샵을 운영하고 있다. 나와 내 주변 친구들 모두가 너드인데, 펏댓너드샵 역시 너드스러운 걸 만들고 파는 공간이다.

너드 앞에 ‘Fuck That’을 붙인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가죽 공예를 할 때는 너드 버드(Nerd Bird)라는 이름을 써왔다. 그때 가죽 제품과 함께 티셔츠 두어 장을 만들었는데, 제품이 그 이름을 계속 따라가더라. 뭔가 새만 계속 그려야 할 것 같고. 하하. 그런 이유로 브랜드 운영이 점차 지루해지던 차에 친구와 얘기하다가 작정하고 만들어도 쪽팔리지 않으면서, 뒤가 없는 이름을 짓고 싶다고 해서 나온 게 펏댓너드샵이다. 어감도 좋고, 번역기를 돌렸을 때 ‘젠장 그 얼간이 가게’로 나오는 직관적인 멋도 마음에 든다.

하긴, 너드 버드라고 하면 그냥 맹해 보이는 새의 이미지만 떠오른다.

맞다. 내가 오히려 그런 느낌을 계속 따라가는 것 같아서 바꿨지. ‘난 찐따 같고, 바보 같은 것도 좋아하지만, 한편으로는 세고 멋진 것도 좋아하는데, 왜 한쪽으로만 가고 있을까’하는 생각에 그 두 가지를 아우를 수 있는 이름을 찾은 거다.

오랜 시간 가죽 공예를 해왔는데, 돌연 이런 편집숍을 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가죽 공예를 10년 정도 한 것 같은데, 그때도 다른 가죽 공예 브랜드와는 조금 다른 걸 추구했다. 제품에 귀여운 그림을 넣는다거나, 특이한 도안을 짠다거나 하는 방식이었지. 그런데도 가죽의 한계점이 보이더라. 하나의 소재에 갇혀서 다양한 시도를 하기 어렵더라고. 난 옷도 해보고 싶고, 영상도 찍고 싶고,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은 욕심이 많은데, 이것만 하다가 내 청춘이 다 가버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의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고민하다가 12월 31일에 마지막으로 자문했다. 이것만 평생 할 수 있냐고. 근데, 못 하겠는 거지. 그래서 1월 1일부터 하고 싶은 거 다 하기로 결심한 뒤 펏댓너드샵을 시작했다.

정말 방문하고 싶은 사람만 찾아올 수 있는 곳에 문을 열었다. 지나가다 들를 만한 위치는 아닌 것 같은데.

지금까지 서울 이곳저곳을 작업실로 써봤다. 그중 가장 좋았던 곳이 이대 부근이었고, 거기와 지금 이곳의 느낌이 가장 흡사했다. 직전에는 연남동에서 4년가량 있었는데, 사람들이 계속 찾아오니까 기가 빨리더라고. 여기는 정말 좋아하는 이들만 찾아오니까 좋은 얘기도 많이 나누고, 무엇보다 내가 만든 제품을 오랫동안 구경하는 모습을 보는 게 기분 좋다.

숍 내부 인테리어에 특별한 콘셉트가 있나.

누구나 편히 와서 놀 수 있는 스케이트 숍? 사실, 콘셉트랄 게 없어 그때그때 생각나는 걸 채워 넣는 정도다. 최근 일본에 놀러 갔다가 어떤 빈티지 숍에 들렀는데, 좁은 가게에 온갖 잡동사니가 빼곡하게 차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띈 게 인형을 산처럼 쌓아둔 게 눈에 띄기에 주인에게 물어보니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거라서 저렇게 놔둔 거라고 하더라. 너무 솔직해 버리니까 오히려 멋있더라.

해외에서도 숍을 찾아오는 모양새다.

일본과 태국, 호주, 캐나다 손님이 왔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찾아보고 오거나 주변의 추천을 통해 찾아오는 것 같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전에는 전혀 없던 일이라 신기하고 재밌는 경험이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둘러보니 영상에도 조예가 있는 것 같은데.

원래 비주얼을 좋아한다. 일단, 눈으로 봤을 때 멋있어야 끌리는 법이니까. 스토리가 엉망이어도 비주얼이 끝내준다면, 그것 자체로 멋있다. 대학교 때부터 조금씩 영상을 찍었고, 꾸준히 비디오를 만들다 보니 뮤직비디오도 찍게 됐다.

월드 인더스트리스나 비치 스케이트보드, 토이머신 등의 스케이트보드 브랜드를 패러디한 디자인이 눈에 띈다.

내 영감의 8~9할은 90년대 스케이트보드 문화에서 시작된다. 옛날의 스케이트보드 브랜드를 너무 좋아해서 옛날 옷도 자주 찾아본다. 요즘 시대에 더 이상 새로운 창조는 없는 것 같다. 과거의 브랜드가 다시 부흥했으면 좋겠고, 특히 그게 한국에서 유행하면 더 재밌지 않을까.

웹사이트 내 퍽댓너드샵과 함께 후카스(The Hookahs), 지미삭스(Jimmysox) 등의 카테고리를 나누어 놓았는데, 각 레이블의 정체성에 대해 설명하자면?

퍽댓너드샵은 온전히 내가 기획하고 제작하는 내 브랜드다. 지미삭스는 동명의 인물 지미삭스가 운영하는 브랜드로 그 친구가 뭔가 만들었을 때 하나둘씩 올려보고 있다. 후카스는 퍽댓너드샵에서 결성된 가상의 밴드다. 우리가 힙합이나 스케이트보드를 좋아하지만, 사실 록 음악에도 관심이 많거든. 록 티셔츠를 하나 만들고 싶은데, 갑자기 퍽댓너드샵에서 록 관련 아이템이 나오면 뜬금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 소프넷(Sophnet.)에서 전개하는 F.C.R.B.(F.C Real Bristol)처럼 가상의 록 밴드를 만든 거지. 가짜로 앨범 커버도 만들고, 센 분위기의 록 티셔츠도 만들고. 재미있게 즐기고 있다.

앞서 언급한 지미삭스라는 인물이 궁금해진다, 어떤 사람인가?

본명은 창지원으로, 보통 ‘창지’라고 부른다. 내가 애니메이션과를 나왔는데, 거기서 처음 만났다. 원래는 평범 그 자체인 친구였는데, 만나다 보니까 속에 엄청 단단한 뭔가가 있던 거지. 알고 보니 어릴 때부터 미국 문화에 푹 빠져 지낸 녀석이었다. 그렇게 공통분모를 찾은 뒤 오랜 시간 친구로 지냈고, 이리저리 꼬드겨 함께 엉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학도로서 추천하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있나.

“도로헤도로”를 좋아한다. 요즘에는 “체인소맨”도 꽤 재밌게 봤고. “천국대마경”도 추천한다. 전체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즐겨 본다.

미국 만화를 좋아할 것 같았는데, 의외다.

어릴 때 일본 만화를 너무 많이 봐서. 하하. 미국 문화도 좋지만, 아무래도 동양과는 또 다른 결이니까. 그걸 또 내 스타일대로 바꿔야 하지 않나. 가만 보면 일본이 그런 걸 참 잘하는 것 같다. 서양권의 문화를 보고 자기네 스타일로 바꾸는 거. 우리도 기존 걸 새롭게 만드는 일을 해야 하니까. 종종 참고하고 있다.

퍽댓너드샵을 편집 스토어로 오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애초에 퍽댓너드샵이라는 것 자체를 하나의 브랜드로 설정하고 숍을 열었다. 해외 멋진 숍 중에서도 그 숍이 하나의 브랜드가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 나도 지금 당장 어떤 브랜드를 온전히 꾸리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고, 숍을 운영하는 데에도 미숙하기에 이 두 가지를 합쳐 하나로 퉁치기로 했다. 몇 브랜드가 우리 숍에 입점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는데, 멋진 브랜드가 있었음에도 입점시키지 않은 이유는 과연 내가 그 브랜드들을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숍에 들어온 이상 끝내주게 보여줘야 하는데, 지금 나에게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 뭐 언젠가 퍽댓너드샵이 온전히 자리를 잡는다면, 그땐 다른 브랜드를 통해 뭔가 새로운 걸 보여줄 수도 있겠지.

아까 언급한 숍 네임 자체로 브랜딩이 된 멋진 숍은 뭐가 있을까?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초창기의 베러기프트샵(Better Gift Shop). 그리고 태국의 덴 수베니어(Den Souvenir). 두 숍 모두 여러 브랜드와 아이템을 취급하지만, 결국 그들의 브랜드를 가장 멋있게 보여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숍 운영 초창기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 같다.

내가 원래 옷을 만들던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걸 처음 도전해 보는 거라 모든 게 힘들었다. 막상 해보니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음에도 마음먹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비정기적으로 진(Zine) 또한 선보이고 있는데, 주로 어떤 내용으로 채워져 있나.

어렸을 때부터 이런 걸 보긴 했지만, 이걸 진이라고 하는 줄은 몰랐다. 포스디스(POHS-THIS)의 옥근남 님을 엄청 존경하는데, 그분이 모든 걸 알려줬다. 마침 P.P.P(People & Print & Papers)라는 로컬 진 페어가 열려 좋은 기회로 참여하게 되면서 처음 진을 발간했다.

진 제목도 그냥 ‘Zine’이다.

그전까지는 진이라는 걸 몰랐으니 그냥 진이라고 했다. 하하. 내용도 정해진 것 없이 우리가 좋아하는 만화나 그림을 그린다. 진 제작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다 주변 친구다. 각 호마다 대략적인 테마를 정하고 거기에 맞게 각자 내용을 채우는 형식으로 만들고 있다.

브러시 티셔츠의 드로잉은 누가 맡고 있는지.

내가 직접 한다. 주변에 자기 스타일을 가지고 잘 그리는 사람이 워낙 많지 않나. 난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귀엽거나 웃긴 패러디가 생각날 때면 종종 그려보는 식이다. 브러시를 시작한 지도 얼마 안 됐다.

요즘 가장 심취해 있는 건 무엇인가?

갑자기 야구에 빠졌다. 원래 야구에 하나도 관심이 없었고, 룰도 잘 모르는데, “최강야구”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갑작스럽게 빠져들었다. 혼자 숙대입구에 있는 배팅장에 가서 배트도 휘두르고 그런다. 하하. 좀 뜬금없지만, 이번 가을이나 겨울에 야구와 관련한 뭔가를 만들지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널찍한 공간까지 갖추고 있으니 오프라인 이벤트에 대한 욕심 또한 생길 텐데.

하고 싶은 이벤트는 많은데, 나랑 여기 같이 작업실 쓰는 친구들 모두 찐따여서 사람들을 한 곳에 모은다는 생각만 해도 쫄린다. 누가 와줘야 구색이라도 갖출 텐데, 여기까지 뭘 보려고 오겠나. 해외의 한 스케이트보드 숍 인스타그램 계정을 보면서 허구한 날 동네 보더들이 모여 스케이트보드 비디오 보고, 게임하고, 그냥 앉아서 멍 때리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이벤트가 그런 거다. 특별한 거 없이 여기에 모여 그냥 다 자빠져 있었으면 좋겠다.

요즘 또 협업의 시대아닌가, 제안하거나 받은 적은 없나?

협업은 정말 너무 하고 싶다. 근데 일단 어느 한 곳에서도 제안이 오지 않았다. 하하. 한다면야 멋지게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본인이 정의하는 너드란?

‘찐따’라는 말이 가장 적합한 것 같다. 되게 웃긴 게 우리가 자꾸 너드라는 단어를 쓰니까, 어딘가의 진짜 너드들이 나타나 너희는 가짜라고 댓글을 단다. 하하. 각자 기준이 전부 다르니까. 나도 친구들이랑 장난스레 서로 찐따네 좆밥이네 하면서 논다. 너드는 ‘뭘 입어야 돼’, ‘말을 잘 못해야 돼’ 이런 게 아니고 그냥 찐따 그 자체인 거지. 요즘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너드미’다. 뭐, 자기들의 생각이니까 틀린 건 아닌데, 너드는 단지 느낌일 뿐이니까. 여기에 구태여 ‘미’를 붙일 필요가 있나.

웹사이트 내의 ‘LOOK’ 코너가 재미있다. 이곳은 어떤 게시물을 올리는 곳인가?

우리 얼굴이 대외적으로 알려진다거나, 옷을 입고 잘난 척 사진을 찍는 게 부끄럽다. 고쳐보려고도 하는데, 노력해도 어렵더라. 다른 브랜드나 숍처럼 멋지게 해보고 싶으면서도 그게 잘 안되거든. 그래서 ‘LOOK’이라는 카테고리에 우리의 마음을 숨겨 놓은 거다. 우리가 생각했을 때 좋은 이미지, 그리고 아카이브가 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그냥 한데 모은 곳이다. 나름 여기에 신경을 꽤 쓰고 있다. 이렇게 저렇게 꾸며보는 게 재밌기도 하고.

숍을 열지 않을 때는 보통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나.

일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쉬고 있는데, 문을 열지 않을 때도 보통 숍에 나와서 작업을 한다. 작업 없는 날에는 아내와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영화 보고, 구경하고 싶은 곳 있으면 슬쩍 가보고. 뭐 남들도 다 똑같지 않나?

몇 년 사이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도 작은 규모의 편집 스토어가 속속 문을 열고 있는데, 여타 숍과도 교류가 있는 편인가, 보통 무슨 이야길 나누는지.

일단, 나와 지미삭스는 우리끼리 얘기할 때 옥근남 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하하. 물론, 옥근남 님은 이 사실을 모르지. 퍽댓너드샵의 발판을 너무 완벽하게 열어준 사람이다. 처음 숍을 오픈했을 때 이런 쪽에 있는 사람을 아무도 몰랐고, 당연히 그 어떤 샤웃아웃(Shout-Out)도 받지 못했는데, 우리 제품을 인스타그램에 처음 올려주고, 본인 숍에 입점시켜 준 사람이 옥근남 님이다. 덕분에 근처의 차일드후드홈(The Childhood Home)도 알게 되고, 많은 도움을 받았지. 이런 사람들이 없었다면, 아직도 헤매고 있지 않았을까. 다만, 아직 깊게 친해지지는 않아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펏댁너드샵의 효자 상품은?

비치 스케이트보드를 패러디한 스니치 캡이다. 내가 만든 것 중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고, 해외 고객도 좋아해 줘서 애착이 간다.

여행 또한 자주 즐기는 것 같은데, 특별히 좋아하는 국내 여행지가 있나?

생각보다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은 아니다. 하하. 솔직히 말하자면, 여행을 좋아하는 타입이 전혀 아니다. 근데, 아내와 함께 가면 뭐든 좋다. 아내가 엄청 재밌고 웃기거든. 친구랑 가는 것도 즐겁고. 만약, 나 혼자 여행 가라고 하면 해외든 어디든 공짜로 보내준다고 해도 싫다.

앞으로의 계획은?

퍽댓너드샵 제품을 많이 만들어 규모를 더 키우는 거. 커지면 더 이상한 거 많이 할 수 있으니까. 올해 예상보다 우리 제품을 멋지게 봐주는 사람이 많이 늘어서 그들에게 더 재밌는 걸 던져주고 싶다.

Fuckthatnerdshop 공식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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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오욱석
Photograpy | 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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