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역에서 신설동역으로 이어지는 성북천을 따라 걷다 보면 주택가 사이에서 조금 특별한 기운을 내뿜는 숍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한적한 보문동의 공기처럼 유순한 맛을 내면서도 어딘가 뾰족한 매력을 감추고 있는 키야기(chiyagi) 셀렉트 숍이 바로 그곳. 지난여름 한남동 대로변에 문을 연 조그만 바 키스(KISS) 역시 이와 비슷한 듯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데, MUGSHOT 시리즈의 아홉 번째 주인공이 바로 이 두 공간을 운영하는 uma다. 그녀와 나눈 이야기를 함께 즐겨 보자.
당신은 누구인가.
원래는 순수 미술을 전공했고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사업을 해보고 싶어 현재 이것저것 하고 있는 uma라고 한다.
현재 운영하고 있는 키야기 셀렉트 숍에 관해 소개해 달라.
원래 패션은 제일 사업으로 하고 싶지 않던 카테고리였다. 하지만 뭔가 당장 시작해야 한다면 결국에 가장 빨리 준비할 수 있는 게 패션을 기반으로 한 셀렉트 숍이었다. 그리고 작업을 계속해오던 입장에서 작업적인 소스들을 어떻게 상업적인 필드로 끌고 나올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계속 있었는데, 이를 패션과 연관시켜 숍을 운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 물건이 채워진 공간을 가지고 싶었고. 다만, 계속해서 여러 기획들을 염두에 두고 운영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단순한 작업 혹은 상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것들이 교차하는 공간이 기본 모태가 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키야기 셀렉트 숍을 소개하는 문장이 바로 “All The Memorable Pieces On The Land”다. 쉽게 말하면 옷이나 액세서리가 아닌, 어떤 ‘피스’로 정의 내려지는 것들을 모아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숍 이름이 조금 독특한데, ‘키야기’는 무얼 뜻하나.
원래 이름은 ‘키메라’였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존 바스(John Barth)의 작품 중에 동명의 소설이 있다. 그 소설 자체를 원체 좋아하기도 했고, 키메라라는 존재 자체가 머리는 사자, 몸통은 염소, 꼬리는 뱀으로 이루어진 응집된 생명체이지 않나. 그런데 사람들이 ‘키메라’에 대해 알고는 있어도 정작 생각하는 이미지는 모두 다르더라. 내가 만들고 싶은 공간의 이미지가 그랬다. 어떤 것을 가져다 두어도 말이 될 수 있고, 그것 자체가 하나의 완성된 무언가를 뜻하는 공간. 내가 옷을 생각하는 방식도 비슷한 것 같다. 장르가 서로 다른 옷들을 한 명의 사람에게 입혔을 때 느껴지는 기분 좋은 이상함이라든지, 궁금함을 유발하는 요소를 늘 만들려고 한다. 그래서 ‘키메라’라는 단어 자체가 공간의 정체성이나 특정 룩을 지칭하는 무언가가 될 수 있겠다 싶었지. 다만, 상표권 문제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좀 있었다. 그래서 이럴 거면 빨리 이름을 바꾸자 고 생각해서 바꾸게 된 게 지금의 ‘키야기’다. 키메라에서 어두 ‘키’는 그대로 가져오되 한국말 같지도, 외국말 같지도 않은 오묘하고 현대적인 단어를 만든 거지.
갑자기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이유가 있을까?
갑자기는 아니었다. 원래 어머니, 아버지가 사업을 하셔서 나도 언젠가 하겠구나 하는 생각은 늘 있었다. 그래도 원래 미술을 했었기 때문에 일단 작가를 해보자 하는 마음이었는데, 졸업 전시를 준비할 때 흰색 캔버스를 보고 있자니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주변 친구들이 작가에 대한 꿈이 확고한 친구들이어서 오히려 내 능력치를 사업에 쓰면 더 효과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일링이 예사롭지 않다. 패션 관련 공부를 한 적이 있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어머니 아버지가 옷을 너무 좋아하셔서 어릴 때부터 백화점을 다섯, 여섯 시간씩 도는 게 하나의 주말 루틴이었다. 그렇게 해서 어머니가 좋아하던 브랜드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경우도 많고. 그리고 중학생 때 텀블러를 정말 많이 했다. 그때 접했던 이미지들이 지금의 키야기에 반영되지 않았나 싶은데, 기본적으로는 부모님 영향이 가장 큰 것 같다.
숍에 셀렉된 피스들을 보면 최근 흔히 ‘발레코어’라고 부르는 여성스러운 스타일의 의류, 액세서리가 많은데 어린 시절 혹은 현재도 그런 스타일을 즐기는지.
‘발레코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유순하고, 아름답고, 여성적인 이미지들인데, 사실 전혀 그런 이미지들을 쫓지 않았다. 오히려 좀 더 잔인하고, 공격적인 스타일의 옷을 입고 좋아했지. 발레코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상품으로 무언가를 완성시키고 판매한다면 가장 좋은 건 뭐니 뭐니 해도 키치하고, 귀엽고, 아름다운 것들이다. 그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숍을 준비하다 보니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한편, 최근에는 태국 네일 아티스트 쟌의 진 팝업도 진행했다. 다채로우면서도 일관된 스타일이 눈에 띈다. 키야기만의 셀렉트 기준이 있는지.
옷에 대한 셀렉트 기준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시각적인 감각을 따른다. 반면, 기획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키야기가 기존에 추구했던 방향성과 숍이라는 공간을 완성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은지 등을 따져본다.
최근에 한남동에 ‘키스’라는 바를 오픈했다. 바에 대해서도 소개해 달라.
‘KISS’는 키야키를 지켜보고 있던 분이 바를 기획해 보면 어떻겠냐고 우연히 제안을 주셔서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정말 기획만 하고 나는 빠지는 줄 알았는데, 하다 보니 점점 내가 운영까지 하고 있더라. 그런데 키야기 하나만으로도 에너지 소모가 크기도 했고, 다른 사람과 함께 했을 때 시너지가 있을 것 같아, 평소 자주 가던 스네일 레코드 앤 바 사장님에게 요청해 함께 으쌰으쌰 운영하게 됐다. 원래 F&B 사업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잘 됐지. 키야기와는 비슷한 듯, 다른 분위기의 바다.
디제잉이나 피팅룸 파티 등 좁은 공간이지만 이를 활용하는 방법이 다양하다.
절대 의도된 건 아니다. 친구들이 계속 파티를 열고 싶어 했고, 나도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해보자라는 마음에 기획을 시작했더니 갑자기 DJ 라인업이 생기면서 판이 커졌다.
숍하나로도 벅찰 만도 한데 바까지 열었다. 하고 싶은 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지, 도전하는 데에 있어 두려움은 없는 편인가.
실행력은 정말 좋은데 충동적인 편이다. 키야기도, 키스도 모두 하기로 결정한 지 3, 4개월 만에 완성된 공간이다. 마음속으로 계속 생각은 했었지만 어느 순간 ‘해야겠다’라는 마음이 들면 무서운 속도로 일을 끝내는 편이다. 여전히 허덕이고 있긴 하지만 일단 오픈까지는 끝냈다. 그래도 두려움은 아주 많은 편이다. 가끔 불안장애가 도질 것도 같지만 그래도 뭐, 용기를 내야지 않겠나. 용기의 크기는 커진다고 했으니까.
학창 시절은 주로 뭐에 빠져 보냈나.
아까 말했다시피 텀블러를 정말 많이 했다. 그리고 옷과 음악을 많이 찾아보며 시간을 보냈다. 중학교 시절 언니를 통해 처음 뷔욕(Bjork), 마운트 킴비(Moun Kimbie),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를 알게 됐는데, 그게 약간의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전까지는 라틴재즈에 굉장히 빠졌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혀 다른 두 장르를 그렇게 좋아했다는 사실이 너무 웃기기도 한데, 어떻게 보면 그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의 기본이 된 것 같다. 서로 다른 존재를 계속해서 충돌시키면서 결과적으로 어울리는 장면으로 만들어내는 일.
반대로 최근 꽂혀 있는 것이 있다면?
요즘 클래식 수업을 듣고 있다. 수강료를 내고 네이버 카페에서 줌 수업으로 듣는 형식인데, 지금하고 있는 일과 접목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 시작했다. 하다 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옷이나 음식도 내 주변에서 멋있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면 나에게도 영향을 끼치지 않나. 클래식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클래식을 잘 아는 분들이 있는 그룹에 들어간 거다.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겁나.
키야기 자체 PB 피스를 만드는 일이 가장 즐겁다. 처음에는 당장 내가 필요한데 사려고 하니 시중에 없는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막상 제작하다 보니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더라. 이전 순수 미술을 했을 때처럼 작업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 없는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
쉴 때는 주로 뭘 하는 편인지.
잘 쉬지 못하는 편이다. 다행히 어제는 잠깐 짬이 났는데, 친구 작업실에서 노래도 같이 듣고, 맛있는 것도 먹고, 누워 있다가 왔다.
우마가 믿고 사는 한 가지, 우마의 믿음이 궁금하다.
너무 많지만 한 가지를 꼽자면, ‘친절에는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 어떤 행동을 하고자 마음먹게 되는 것들이 있는데, 막상 그걸 할 때면 부끄럽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사실상 부끄러울 게 없지 않나. 특히 친절은 좋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기도 하고.
다음 스텝으로 정해 둔 일이 있는지.
어렸을 때 또 좋아했던 것 중 하나가 사진이다. 그래서 지금 키야기에 관련된 모든 사진도 직접 찍고 있다. 나중에는 내 시선으로 보는 것들을 좀 더 작업적으로 풀어보고 싶다.
Editor | 장재혁
Photograpy | 김엑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