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수민(SUMIN)이 EP [시치미]로 돌아왔다. 여러 싱글과 피쳐링 활동을 통해 왕성한 활동을 보여왔지만, 의외로 이번 [시치미]는 지난 2021년 슬롬(Slom)과 함께한 [MINISERIES] 이후 약 2년 만의 신작. 전작들에 비해 부드럽고 안정적인 사운드가 외려 낯설게 다가온다. 모 매체 인터뷰에서의 말을 빌리자면, ‘가독성’이 좋은 작품이라고. 자극과 파격의 빈자리를 정교한 표현과 텍스쳐의 보컬로 채운 수민. 어느덧 데뷔 8년 차에 접어든 그녀가 의외의 사운드로 채운 6개의 트랙들로 들려주고픈 새로운 이야기는 무엇일까. EP [시치미]와 함께 하단의 인터뷰를 살펴보자.
싱글이 아닌 앨범으로 돌아온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작업 기간 동안의 소회를 밝히자면.
빨리 발매하고 싶었다. EP [시치미]의 음악 프로젝트가 모두 들어있는 저장장치에 큰 문제가 생겨 발매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으나, 덕분에 음악적인 디테일들을 만들 수 있었다.
피쳐링과 싱글 발매를 통해 꾸준히 활동해 왔음에도, 앨범 단위의 작업물은 이번에 특히 텀이 길었다. [시치미]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슬롬과 함께 발표했던 우리의 첫 번째 정규앨범을 작업하는 동안 새로운 EP에 대해서는 계속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시치미]라는 타이틀로 귀결될 줄은 몰랐지. 5-6곡짜리 무게감있는 구성으로 개인 곡 작업을 다시 하고 싶어 작업 말미부터 이번에 발매작 중 수록곡인 “인간극장 feat.선우정아”를 작업했고 그 곡을 시작으로 그때그때 느낀 감정과 쏟아내고 싶었던 메시지를 음악으로 백업해 왔고 그게 [시치미]로 귀결됐다.
앨범 사이 공백기만큼, 기사나 인터뷰 등으로 들을 수 있던 수민의 이야기도 꽤 오랫동안 갱신되지 못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최근엔 어떤 생각을 하면서 지내는지 궁금하다.
전반적으로 내 개인의 삶에 집중했다. 집에 대한 애착이 생겨 집 꾸미는 것에 집중했고, 현재 나를 구성하는 친구들에 대한 마음도 진지해지고 애틋해졌다. 일로도, 개인적으로도 도쿄에 자주 다녀오기도 했고, 최근엔 사격이라는 취미를 만들어 꽤 진지하게 임했고 최근에는 첫 데뷔 시합인 서울시에서 주최한 공기권총 사격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언뜻 모두 다른 얘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여섯 개의 트랙은 어떻게 하나로 모이게 되었고, 그 조합을 통해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는지.
나는 내 감정과 그때그때 나에게 벌어지는 상황에 반응하는 나. 그러니까 내가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다루고 작업한다. 이번 EP에 들어갈 음악들을 염두에 두고 생각한 곡들은 “옷장 feat.엄정화”, “인간극장 feat.선우정아”, “비행기 feat.pH-1, Otis Lim”이었고, 나머지 “늦은 아침”, “눈치”, “기분 좋아지는 노래”는 랜덤하게 작업한 곡이었다. 선제적으로 수록시킬 음악들이 상기의 내용처럼 분명 있었지만 앨범 발매를 염두에 둔 기간이 다가올 때쯤 ‘실시간의 나의 모습까지 적절하게 섞이면 참 좋겠다’ 라는 생각에 과감하게 조합했다. EP 준비를 시작했던 때의 나와 발매에 임박했던 최근까지의 나를 생각해 보면 공통적으로 ‘절제’와 ‘음악의 확장성’에 대해 많이 고민했던 것 같고 더 나아가 나와 내 주변인들에게 조금 더 솔직해지고자 하는 마음을 유난히 담고 싶었다.
제목 [시치미]에 담긴 의미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모순됨을 감춰왔구나. 내가 생각보다 솔직한 사람은 아니구나’라는 고민을 하던 와중 때마침 내 앨범타이틀에 대해서 고민하던 시기에 soyo가 ‘시치미’가 어떠냐고 제안해 주었고 나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뭔가 의미라기보다는 어떻게 [시치미]라는 제목이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데뷔 초 변칙적이고 자극적인 사운드를 거쳐, 최근엔 좀 더 부드럽고 간결한 사운드를 보여주고 있다. 의식한 변화인지, 취향이 자연스럽게 변하게 된 것인지?
지극히 자연스러운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변칙적임과 폭력적인 소리를 만들며 취해있는 도파민 중독 시절의 나도 재밌고, 지금의 간결함과 기존 작품보다 다소 부드러움을 보여주는 내 모습들 전부 내가 듣고 보고 어떠한 모든 상황을 겪는 나로부터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이번 앨범에서 사운드적으로 가장 신경 쓴 요소는 무엇인가?
프로덕션을 전면적으로 내세웠던 기 작품들 대비 이번 EP [시치미]에서는 프로덕션도 물론 강조시켰지만 ‘보컬 파트의 친절함을 좀 더 강조시키자’라는 생각을 했다.가사 전달력에 있어서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들릴지, 보컬이 어떤 위치에, 어떤 대역에서 소리를 내면 더 편안하게 들릴지, 어떻게 더 친절할 수 있을지를 유난히 고민했다. 그 외 프로덕션 부문에서는 ‘확실한 네 마디를 정말 잘 뽑자’ ‘과감하게 넣자’, ‘과감하게 들어내자’ 등이 있다.
확고한 컨셉이나 스토리가 있었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늦은 아침”이나 “인간극장” 등에선 좀 더 현실과 가까운 듯한 가사들이 눈에 띈다. 작사 과정에서 고민했던 부분이 있다면?
“늦은 아침”같은 경우에는 누구나 겪을법한 이별의 감정을 다루는 데에 있어 절절함을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수민 특유의 언어로 표현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그저 내 구질구질함과 모순된 수민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보여주고 싶었다. 또 여담이지만, 어느 연말 우리 집에서 있었던 술자리에 친구들이 어질러놓고 간 거실 테이블을 치우려 늦은 아침 일어난 내 모습이 절망스러웠고 괜찮은 줄 알았다가 실은 괜찮지 않던 나 자신에 짜증이 솟구침에 이상할 만큼 그 순간을 너무 잘 간직하고 싶어 청소를 마친 직후 바로 작업실로 이동하여 곡을 만들었다. 다음 날 soyo에게 전화를 걸어 이 순간들을 공유했다. ‘내보내고 싶은 이 감정을 담은 수민표 발라드곡을 만들어봤는데, 제목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나의 말에 soyo는 전화 너머로 ‘늦은 아침’으로 하면 되겠네. 라고 했고 그렇게 “늦은 아침”이 되었다.
모 라디오에서 일화로 밝혔던 엄정화와의 협업 약속이 2년 만에 성사되었다. “옷장”에 대한 설명과 그 작업 과정이 어땠는가.
사실 그때 이미 정화 언니와 작업에 대한 개요를 논의하고 있었다. 무조건 잘 성사시키고 싶다는 의미를 나 스스로 부여하고자 라디오에서 일부러 운을 띄어놓기도 했다. 사실 정화 언니와 나의 만남에 있어서 다들 잘 알고 있는 벨기에 출신의 줄리안(Julian Quintart) 이야기를 빼먹을 수 없을 것 같다. 어느 날 줄리안으로부터 ‘정화 누나에게 널 소개해 주고 싶어’라는 연락이 왔고, 머지않아 우리는 한남동 어느 카페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나에겐 너무 ‘엄정화’였다. 긴장을 아니 할 수 없었지만 언니가 먼저 ‘안녕, 수민아 난 엄정화야! 그냥 언니라고 불러’라는 말을 꺼냈을 때 그녀의 근사한 목소리와 표정에 반할 수밖에 없었고, 그날 바로 곡 작업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줄리안에게 너무 감사하다. 줄리안이 이 인터뷰를 꼭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또 사실 그때는 “옷장” 프로덕션 구성과 더불어 나의 보컬 파트를 어느 정도 만들어 놓고 피처링 아티스트를 공석으로 둔 시기였다. 때마침 ’사랑찬미’의 주제를 다루는 해당 곡에서 내가 그녀를 평소 생각할 때 느껴졌던 ‘벅차오름’, ‘사랑스러움’ 같은 것들이 합쳐지면 정말 이상적일 것 같았고 나아가 배우로서 ‘엄정화’의 표현력 또한 강조되면 정말 멋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을 전달했고 그녀는 바로 흔쾌히 수락하였으며 그렇게 우리는 재밌게 작업했고 꽤 순탄했다.
돌이켜보면 나의 가사, 나의 멜로디를 ‘엄정화’라는 사람이 소화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지금도 우리 집에서 그녀의 녹음을 받던 나,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을 잠시 떠올려 보면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MINISERIES]에 이어, 이번에도 음감회로 처음 작품을 선보였다. 현장 분위기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오랜만에 팬분들과 스킨쉽 할 수 있음에 그저 기뻤다. 그간 나의 감정과 나의 소리를 말로써 설명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고 역시나 어려움이 있었지만 내 어설픈 모습들을 팬분들께서 너그러이 예쁘게 봐주신 것 같다.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과거 한 인터뷰에서 정규 1집 [Your Home]이 이정표 같은 앨범이라고 밝혔다. 수민의 커리어에서 이번 [시치미]는 어떤 앨범으로 남길 바라는지?
기존 수민의 모습에서 탈피가 아닌 거시적 관점에서의 아티스트 SUMIN의 ‘확장’을 의미하는 앨범으로 남기 바란다.
앞으로의 계획은?
콘서트를 할 것 같다.
Editor | 정임용, 황선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