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그 나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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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서울 시민의 여가에 대한 문화활동 통계를 본 적이 있다. 별다른 기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 역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영화 관람’. 영화는 우리가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화 영역이다.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는 멀티 플렉스와 새로운 상영작이 나올 때마다 ‘후기’로 도배되는 인터넷 게시판을 보고 있노라면 현대사회 속 영화는 문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다양한 장르에 대한 각자의 취향이 있지만, 나아가 개인의 감상 포인트 또한 존재할 것이다. 어떤 배우가 등장하는지부터 어디서 찍었는지, 개인적으로는 여행을 가기 전, 그 장소에 관련한 영화를 한두 편 쯤 보고 가는 편인데, 실제 그 배경 속에 도착했을 때의 생경함과 익숙함이 뒤섞인 야릇한 기분을 좋아한다.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스니커 컬렉터, 즉 ‘신덕후’가 영화를 보는 관점에 대한 글이다. 최근의 레트로 열풍과 함께 리이슈되는 신발이 다수 등장하니, 반가운 마음이 더욱 크리라.

 

 

1.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 1994) – Nike Cortez White/Varsity Red-Varsity Roy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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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나이키의 독주는 끊이지 않는다.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 등장한 코르테즈는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의 영원한 사랑, 제니(Jenny)의 선물이다. 이후 영화의 주요한 줄거리 ‘마라톤’에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하나의 시그니쳐 슈즈가 되었다. 실제 코르테즈는 나이키의 첫 러닝화로, 70년대 육상 트랙에 혁신을 가져온 모델. 지금은 정식 모델명보다 포레스트 검프 코르테즈라는 이름으로 더욱 알려졌으니 나이키 역시 그 득을 크게 봤다. 흰색과 빨간, 파란색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코르테즈는 올해 레트로되었으며, 제품을 사기 위한 행렬이 이어지기도 했다. 포레스트 검프가 끊임없이 달리기하는 순간, 입고 있는 옷은 바뀌어도 신고 있는 코르테즈는 검프가 지나온 세월을 증명한다. 영화 개봉 이후 코르테즈의 판매량 급증, 특히 영화 속 검프가 착용한 컬러의 경매 가격이 크게 오르며 영화 마케팅의 힘을 실감케 했다. 포레스트 검프의 어벙한 표정과 어울리는 뭉툭한 실루엣의 코르테즈는 그 어느 영화보다 좋은 궁합을 보여줬으니 지금의 포레스트 검프 코르테즈라는 별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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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똑바로 살아라(Do the Right Thing, 1989) – Nike Jordan4 White/Black-Cment G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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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Nike)의 대표적인 농구화 조던(Jordan)의 팬이라면, 스파이크 리(Spike Lee)라는 이름이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다. ‘똑바로 살아라’는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의 세 번째 작품으로, 뉴욕 브루클린이 배경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동명의 시트콤 덕에 왠지 코미디 영화 같은 뉘앙스를 풍기지만, 이 영화는 당시 미국의 인종차별에 대한 일갈을 던진 영화다. 영화의 OST-Fight The Power-를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가 불렀다는 것만으로도 대략적인 줄거리를 예측할 수 있다. 흑인을 중점적으로 다룬 덕에 영화 내 많은 스니커가 등장하는데, 그 대부분은 역시 나이키의 제품이다. 1986년 스파이크 리가 촬영한 조던 CF가 대단한 반응을 일으켰고, 이후 서로 좋은 파트너가 된 배경을 알고 있다면 맥락이 더욱 쉽게 읽힐 것이다. 하여튼, 그 수많은 조던 속에 유난히 빛나는 스니커가 있으니 바로 조던4 화이트 시멘트. 주인공 무키(Mookie)의 친구 버긴 아웃(Buggin’ Out)이 가장 아끼는 스니커로, 이 신발로 인해 백인과 갈등을 일으키는 신(Scene)이 등장할 정도. 당연히 영화 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실제 1989년 발매된 스니커로 당시 멋 좀 부리는 흑인의 최신 유행을 그대로 반영한 셈이다. 조던 4에 관련해 나오는 “세금까지 108달러야”라는 대사는 내가 생각하는 영화의 명대사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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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터미네이터(Terminator, 1984) – Nike Vandal Hi Canvas Black/Metallic Sil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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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개봉한 SF영화의 대부, 터미네이터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나이키다. 두꺼운 근육질의 몸매를 가진 아널드 슈왈제네거(Arnold Schwarzenegger)가 악당으로 나왔던 시리즈 첫 번째 에피소드로, 지금으로부터 무려 30년이 지났다. 지금은 너무 유명해져 버린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을 있게 한 영화로 당시 640만 달러의 저예산과 조악한 CG 기술로 완성된 터미네이터는 세계인을 충격에 빠뜨리기 충분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반달 하이는 사라 코너(Sarah Connor)를 지키기 위해 파견된 카일 리스(Kyle Reese)가 착용하는 스니커, 언제나처럼 알몸으로 등장하는 터미네이터가 처음 갖게 되는 스니커다. 검은색 갑피를 시원하게 내지르는 은색의 스우시는 로봇이 등장하는 SF영화에 더할 나위 없는 컬러링. 나이키는 올해 터미네이터 제니시스(Terminator Genisys)의 개봉과 함께 나이키랩(Nike Lab)을 통해 다시 한 번 반달 하이를 발매한다. 여전히 ‘멋진 클래식’으로 평가받는 반달 하이와 터미네이터. 주인공과 같은 스니커를 신고 영화관에 간다면 더욱 즐거운 관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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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 2003) – Nike HTM Air Woven Rainbow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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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머레이((Bill Murray) 주연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서는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성격의 스니커를 만날 수 있다. 이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 잘빠진 모습의 구두가 아닌 에어 우븐(Air Woven)이 나오는 것은 색다른 재미를 제공한다. 말쑥한 정장 아래 우븐을 착용한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부터 영화가 끝나는 내내 ‘구하기 힘든 HTM(Hiroshi Fujiwara, Tinker Hatfield, Mark Parker)의 에어 우븐을 어떻게 구했을까’라는 쓸데없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가느다란 밴드를 정교하게 엮은 갑피와 파일론 중창의 조합은 당대 스니커 시장 최고의 혁신이었으니. 2002년 첫 발매, 영화의 개봉은 2003년이니 대략적인 시기도 그리 멀지 않다. 강한 이미지를 가진 주인공은 아니지만, 그랬기에 영화 속의 에어 우븐이 더욱 두드러지지 않았을까. 영화의 배경이 되는 도쿄와 HTM 에어 우븐은 스스로 괜한 개연성을 부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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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스니커의 등장은 스타일은 물론 스토리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버긴 아웃이 조던을 밟힘으로 유색인종의 갈등을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고, 포레스트 검프의 코르테즈는 제니의 분신으로 그 역할을 다한다. 또한, 영화의 별칭을 그대로 가져가는 스니커를 생각한다면 서로의 상호작용을 무시하기란 쉽지 않다. 앞서 말했듯 한 편의 영화라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영화를 감상한다면 더욱 즐겁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위 소개된 영화는 흥행 성적 이상의 재미를 보장하니 미처 못 본 영화가 있다면 시간을 내 감상하는 일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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