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카겔(Silica Gel)의 정규 2집, [POWER ANDRE 99]가 발매됐다. 정규 1집 [실리카겔]의 발매 이후 약 7년 만이다. 그동안 실리카겔은 군 복무를 마쳤고, 소속사를 옮겼으며, 각종 싱글 발매와 단독공연, 코로나 이후의 페스티벌로 무르익어갔다.
올해만 싱글 [Mercurial]과 [Tik Tak Tok], EP [Machine Boy]를 발매하고, 두 번의 단독 공연을 성황리에 마치며 누구보다 바쁜 한 해를 보냈을 그들. 이에 만족하지 않고, 실리카겔은 한 해의 마무리를 정규 2집 [POWER ANDRE 99]로 끝맺음하는 듯하다. 하지만 명백히 그들의 정규 앨범은 마무리가 아닌 시작이며, 동시에 어떤 경지를 넘어 아이콘의 위치로 자리매김하는 시발점으로 보인다.
그들의 소리에 대한 고집스러운 집념은 물론이고 발매 이전에 전곡을 최초 공개한 단독 공연, 발매 당일 공개된 뮤직비디오까지. 실리카겔 멤버들과 스태프의 손길이 곳곳에 닿은 이번 정규 2집의 발매를 축하하며 머신 보이를 찾는 그들의 여정에 발을 함께 내디뎌 보고자 한다.
지난 정규 1집 발매 이후 약 7년 만에 세상에 선보인 정규 앨범이다. 각자의 소감이 어떤가?
건재: 정말 오랜만에 부피감 있는 작품으로 돌아왔다. 무수한 현재를 쌓아 만든 만큼, 여러 가지 감상이 오가지만, 일단은 한 꺼풀 후련하다는 소감이다. 이제 3집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춘추: 마지막까지 직접 작업을 이어오다 음악이 우리의 손을 떠나 대중들에게 맡겨지는 벅찬 기분. 그 기분이 트랙 수만큼 배가 됐다!
한주: 후련하기도, 복잡하기도 하다. 모든 작업이 그렇지만 특히 앨범 단위의 작업은 대형 프로젝트인 만큼 오랜 시간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다음 작품이나 활동에 대한 부분부터 내가 반성해야 할 부분들까지 말이다.
웅희: 저번 정규도 정말 힘들었는데, 이번 정규도 역시나 힘들었다. 하하하.
올해 단독 공연과 각종 페스티벌, EP와 싱글 발매 등 꽉 찬 한 해를 보냈다. 숨 쉴 틈 없이 바쁜 와중, 쉬고 싶을 만도 하지 않나? 그럼에도 2집 작업에 몰두하게 된 각자의 계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건재: 공연 등을 포함한 실연 무대들은 일면 ‘휘발하는 움직임’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아무튼, 그에 대비해 음원 작업은 ‘고정한다’라는 범주에 좀 더 연관된 느낌을 받는다. 수많은 휘발의 과정 중에서, 꼭 고정하는 결과물을 완성하고 싶다고 염원했다. 쉬고 싶긴 하지만, 음원을 만드는 창작 활동 또한 나에겐 휴식의 의미이기도 하므로 행복하게 보냈다.
춘추: 올해 초에 설정한 계획이 연말의 단독 공연이었다. 그리고 그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2집 작업을 하게 됐다. 실은 몇 년 전부터 ‘정규 앨범을 발매해야 하는데’하는 생각이 이어져 오기도 했다.
한주: 멤버들 각자 팀 내에서 작업하는 영역이 다르다. 나는 주로 작/편곡과 작사를 담당하다 보니, 음반 프로덕션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이전에 개인적으로 기간을 정해두고 최대한 작업에만 집중하도록 노력했다. 언제나 스프린터에 발을 올려두는 타입이라 특별한 계기가 있기보다는, 그 시점부터 스퍼트를 올려두고 계속 달리고 있었다.
웅희: 올해 발매한 EP와 싱글에 이어 정규 앨범을 마무리하고 쉬고 싶었다. 완벽한 마무리를 하고 싶었달까.
2집 작업에 돌입하며 김춘추가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에서 이번 앨범은 “실망하실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POWER ANDRE 99]를 작업하는 과정에서 대중의 시선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걸까?
춘추: 실망할 수도 있다는 말은 기대했던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사람들은 실리카겔에게 어떤 음악을 기대할까?’하는 의문이 있었고, 많은 사람이 실리카겔의 존재를 알게 되는 요즈음의 상황을 보면 어쩌면 그게 두 번째 “NO PAIN”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앨범을 통해 우리는 원래 우리가 좋아하던 것을 했고, 그게 누군가에겐 아쉬움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독공연을 이후로는 생각이 바뀌었다. 보신 대로 더 좋은 게 나왔다.
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기타 톤의 극한에 있는 듯한 소리를 최대한 사용하는 것을 의식해 보았다. (…) 그런 접근법을 기타뿐 아니라 베이스나 드럼을 포함해서 모든 악기에서 해봤다”라는 이야기를 했더라. 이런 접근법은 어떻게 시작된 것이고, 어떤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인가.
건재: 드럼에 관해서 짧게 이야기해 보자면, 말 그대로 이번 2집 녹음의 경우 극한의 소리에 집중하고 또 집중해 봤다. 소리라는 매체에서 생성된 청각적 정보가 매질을 통해 발현되는 마법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타악기는 그중에서도 의외로 엄청나게 직관적이고 또 직접적이다. 간단히 말해 악기를 구성하는 고유한 재질과 그 쉘(통 모양의 나무)을 울려주는 가죽, 이 모든 것을 받치는 스탠드와 뮤트하는 방진재의 재질, 연주하는 스틱의 재질 등등. 각 부분의 물성에 따라서 데피니션(처음 연주되는 울림, 즉 어택)에 대단히 크게 관여한다. 간단히 이야기하려 했는데 너무 복잡해지는 것 같다. 아무튼, 가능한 한 최대한의 정보를 발생 및 방출해, 귀로 판단하기에 ‘좋은 소리’를 걸러내고, 머리로 판단해 ‘알맞게 사용할 수 있는’ 소리를 담으려고 애썼다. 나는 소리로 하모니를 이루는 데에만 집중했고, 그 소리를 판단하고, 수음하고, 가공하는 데는 우리의 엔지니어 ‘신재민’ 감독님과 우리 멤버인 춘추, 한주, 웅희가 정말 고생했다. 아, 특히 이번에는 각각의 곡마다 조표에 맞춰서 울리도록 튜닝도 했다. 여러모로 즐거운 감상을 할 수 있도록 눈물의 쇼를 했으니 잘 부탁한다.
춘추: “Kyo181″을 시작으로 발매된 싱글과 EP는 기타 연주에 있어 록(Rock)의 요소를 적극 활용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무대를 통해 기타는 라이브에 걸맞다고 느끼기도 했고. 이에 따라 근래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온 ‘라이브’라는 부분을 구체적으로 기타라는 악기로 대치해서 생각해 왔던 것 같다. 바꿔 말하자면, 음반에 라이브를 담기 위한 강한 목적성을 갖고 작업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주: 우리는 기본적인 포지션이 정해진 그룹 형태의 음악을 하고 있다 보니,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소리를 사용하기보다 연주할 수 있는 악기에서 극한의 연출까지 시도하는 편이다. 가령 기타 한 대로 여러 대의 소리를 나게 하는 이펙터를 사용한다거나, 드럼머신 소스와 어쿠스틱 드럼의 앙상블을 조직하거나 말이다. 베이직한 사운드의 음악을 하는 팀은 아니다 보니 각자 위치에서 출력할 수 있는 새로운 소리를 찾는 습관이 자연스레 들었다. 멤버 모두 소리에 대한 탐구심과 향상심이 대단하다 보니 이번 앨범 이후에도 시도해 볼 영역이 많을 것 같아 기대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꼭 시도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러지 못한 부분이 있는가.
춘추: 곡을 많이 못 썼다. 그리고 수많은 곡을 나란히 작업하면 싱글 작업을 할 때와 다르게 어떠한 패턴이 보인다. 그게 우리의 진짜 장점이자 특기, 혹은 단점인데 모두에게 그것이 보였다. 아쉬움이라기보다는, 다 같이 동시에 레벨업 할 수 있는 경험치가 찼다고 해야 할까. 그저 다음 음원을 기대해 주었으면 한다.
[POWER ANDRE 99]의 전곡을 단독 공연에서 선공개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현장 반응은 어땠나? 정식으로 발매되지 않은 곡을 미리 선보인다는 것에 부담감이나 걱정은 없었는지도 궁금하다.
건재: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부담감이 없다거나 걱정이 없다는 것은 아닌데. 이 모든 생각들이 서로 상쇄된다. 하하. 의외로 나의 경우에는 ‘그냥 잘해야지 뭐’라는 생각으로 항상 임하곤 한다.
한주: 콘서트 첫날에 가장 염려한 부분이 바로 그 점이었다. 미공개 곡들로 점철된 공연이라 다소 진입장벽이 높아지거나, 필요 이상의 긴장감을 조성할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무색하게, 객석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특히 타이틀곡이라 소개한 “APEX” 연주 직후 관객들이 ‘김건재’ 이름을 연이어 외치더라. 내가 당사자도 아닌데 울컥했다.
올해 발매된 싱글 [Mercurial], EP [Machine Boy], 싱글 [Tik Tak Tok]의 앨범 커버를 나란히 놓고 보면 하나의 시리즈물로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연관성을 갖고 작업한 것일까? 그렇다면, 발매될 2집과도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인가?
웅희: 그렇다. 우리는 EP [Machine Boy]부터 ‘Machine Boy란 누구인가?’에 대해 질문하고 탐험하는 이야기를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앨범 커버를 보면 손(Mercurial), 눈(Machine Boy), 귓속(Tik Tak Tok)으로 점점 Machine Boy의 정체를 구성해 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이번 [POWER ANDRE 99]는 ‘Machine Boy’의 정체가 드러나는 앨범이다. 어떤 존재인지는 다 함께 확인해 보자.
오랜만의 정규 앨범인 만큼, 앨범의 전반적인 완성도에 심혈을 기울였을 것으로 예상된다. 음악 외적으로도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건재: 음악 외적으로는 ‘건강하게 존재해 주기’를 가장 신경 써서 노력했고, 노력 중이다. 사실 이 주제에 굉장히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결국 사람이 살아서 서 있어야 뭐든 하지 않을까? 이 외에도, 우리의 작업물이 어떻게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과정에서는 저희와 함께하고는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의 수많은 팀원이 밤낮으로 함께 고민해 주었다. 이 자리를 빌려 참 고맙다고 또 한 번 이야기 전하고자 한다!
춘추: 역시 비디오가 아닐까. 매번 실리카겔의 음악을 시각적으로 가장 잘 표현해 온 멜트미러의 “APEX” 뮤직비디오, 그리고 비디오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멤버 웅희의 “Ryudejakeiru” 뮤직비디오를 기대해 주셨으면 한다.
한주: EP [Machine Boy]부터 표현해 온 맥락과 그 맥락의 확장에 가장 큰 신경을 썼다. 지금이라고 구체적인 설정이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사람들에게 전달해 온 시청각적인 질감이 이번 앨범을 통해 자연스레 갈무리되길 바랐다. 그래야 우리도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고, 동시에 사람들도 목표에 도달한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웅희: 개인적으로는 [POWER ANDRE 99]의 서사적 엔딩을 만들 계획이 있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방식으로 엔딩을 만들고 싶었다.
정규 2집의 뮤직비디오에도 최웅희 감독님이 참여한 건가.
웅희: 놀랍게도 참여했다고 알려진다. 이번 앨범은 더블 타이틀로 이뤄졌다. 이번 비디오를 만들면서, 두 비디오의 스토리가 ‘POWER ANDRE 99’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잘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최웅희 감독님 파이팅!
2집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면 무엇일까?
건재: ‘진행하는 발걸음’ 정도? 100%를 초과한 개인적인 견해다.
춘추: 많은 키워드 중 굳이 하나만 꼽자면, ‘사운드적인 성숙’.
한주: 자아 식별.
웅희: 우리의 ‘POWER ANDRE 99’를 공개합니다.
그렇다면 조금 질문을 바꿔서, [POWER ANDRE 99]는 실리카겔의 여정에 어떤 의미로 기억되길 바라는지?
건재: ‘생동성’이라는 키워드에 의미를 많이 두고 싶다. 단순히 방출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움직이는 그런 것 말이다.
춘추: 모든 걸 담았지만, 아직 못해본 것도 아쉬운 것도 많다. 이제 겨우 우리의 두 번째 앨범이기도 하다. 어쩌면 실리카겔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도 든다. 다음 앨범에서 시도해야 할 우리의 장단점, 방식과 방법들이 떠오르고, 앞으로는 이를 조금씩 정리해 보려 한다. 더 좋은 3집을 만들 자신이 있다. 그러니 ‘3집이 나오기 전의 앨범’이었으면.
한주: 한 페이지의 마무리.
웅희: 우리가 들려드릴 여러 이야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정규 앨범은 누구에게나 특별한 의미를 가질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실리카겔은 오랫동안 합을 맞춰온 네 멤버가 닮은 듯 가끔은 다른 성향을 보이는 점에서 흥미로운 밴드라고 생각한다. SNS에서는 실리카겔 3:1 법칙이 있기도 하다. 외향인 셋에 내향인 한 명 등 많은 경우에 세 명과 한 명으로 갈라진다는 것인데. 공개되지 않은 실리카겔의 3:1은 무엇일까?
건재: 오우! 이런 주제는 굉장히 재밌지만 3:1은 한 명이 외롭지 않을까 싶어서, “앞으로 어떤 상황에 놓일 때 2:2 상황이 되도록 돌발행동을 하거나 분란을 조장해야지”라고 결심했다. 이 생각도 3:1의 일부일까? 다른 멤버들은 이런 재밌는 생각 안 하지 않을까?
춘추: ‘2형제 중 막내’ 3 : ‘외동’ 1
한주: 최근 실감한 건 내가 종종 터무니없는 아이디어를 제시할 때, 모두의 반대표에 의해 3:1로 몰리는 경우가 자주 있었던 것 같다. 기분이 상하거나 속상한 적은 없고 되레 상황이 웃기게 느껴지곤 했다.
웅희: 나만 고양이가 없다… 이것도 3:1.
드디어 마지막 질문이다. 연말, 연초를 위한 특별한 계획이 있나?
건재: 주어진 일정을 무사히 수행하고, 2024년에는 어떤 제작을 이어 나갈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특별하다기보단 무난한 계획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루하루가 특별한 것 아닐까. 계획이야 항상 차고 넘치지만, 곡이 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많이 만드는 겨울을 보내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춘추: 진짜 하드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 내년 초에는 2024년을 위해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준비하는 기간을 가지려고 한다.
한주: 최근 외부 일정이 많았다 보니 차분히 곡을 쓰는 시간이 평소보다 줄었다. 작곡을 적어도 하루 4시간 이상 하려 하는데, 그 루틴의 회복을 목표로 두고 있다. 길어지면 더욱 좋고.
웅희: 연말은 꼼짝없이 실리카겔과 보내게 되었지만, 연초엔 휴식도 취하면서 마음을 둥글게 만들고자 한다.
이미지 출처 |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