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일본 거리 패션의 교과서와도 같았던 잡지 아사얀(Asayan). 일본의 대형출판사 중 하나인 문화사(Bunkasha)에서 1994년 1월 발행을 시작한 아사얀은 패션을 중심으로 음악, 인테리어 등 다양한 문화를 다루는, 10대, 20대를 타깃으로 한 잡지였다.

본래 1992년부터 1996년까지 방영했던 테레비 도쿄(TV TOKYO)의 패션 정보 프로그램 아사쿠사바시 영양품점(あさくさばしヤングようひんてん)과의 제휴로써 시작했던 잡지로 추후 프로그램이 패션 정보가 아닌 버라이어티 형태의 쇼로 전환되었음에도 아사얀은 패션/문화 잡지의 성향을 그대로 이어 나갔다.

그 시절 일본의 스트리트 패션, 스니커 신(Scene)이 끝을 모르고 확장하고 있었기에 매 월호 볼거리가 넘쳐났고, 새로운 브랜드와 의류가 끊임없이 소개되었다. 지금 유행하는 스니커부터 패션 스냅, 편집숍, 빈티지 스토어의 셀렉션과 같은 알찬 기획이 페이지를 채웠고, 일본의 젊은이가 선망하는 서브컬처 신의 중심인물이 어떤 옷을 사는지, 어느 곳을 찾는지 등의 라이프스타일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생활밀착형 콘텐츠 또한 찾아볼 수 있었다.

그중 특히 재미있는 코너가 ‘바이어스 캐논볼(BUYER’S CANNONBALL)’인데, 말 그대로 몇 명의 인물을 선정해 그들에게 바이어(Buyer)라는 미션을 주고, 각자의 흥미에 맞는 물건을 사오는 콘텐츠다. 아사얀 1997년 12월호, 바이어스 캐논볼 2회에 등장하는 인물은 당시 굿이너프(GOODENOUGH)를 전개 중이었던 후지와라 히로시(Hiroshi Fujiwara)와 토루 아이(Toru Eye)를 필두로 일본의 모델이자 배우 무라카미 준(Jun Murakami), 에비스의 유명 인테리어 숍 갤러리1950(Gallery1950)의 오너 키타 슈죠(Shuzo Kita), 아사얀 매거진 에디터 데츠 마츠다(Matsuda Detz), 헥틱(Hectic)의 디렉터 나오타케 마가라(Magara Naotake) 등 총 13명으로 이루어진 정예 그룹이 미국으로 향했다.

플로리다에서부터 시작해 뉴욕을 종착지로 하는 길고 긴 쇼핑 투어 바이어스 캐논볼은 마이애미와 테네시, 버지니아, 워싱턴 DC, 뉴저지를 거치며 일본에서 쉽게 구매할 수 없는 갖가지 만물을 사 모았다. 각양각색의 인물이 모였기에 쇼핑 카테고리 역시 천차만별이었다. 폴로 스포츠(Polo Sports)의 푸퍼 재킷부터 나이키(Nike) 운동화, 윌슨 스포츠(Wilson Sporting Goods)의 카세트 플레이어, 빈티지 기타까지 자신의 취향을 적극 반영한 각종 컬렉션이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중간중간 삽입된 바이어 군단의 여행 중 스냅도 소소한 재미를 선사한다.

이와 함께 스투시(Stüssy) 모자와 백팩, 키스 해링(Keith Haring)의 오리지널 티셔츠, 뉴욕대학교의 굿즈, 허먼 밀러(Herman Miller) 넥타이 등 그 시절 미국 문화에 대한 일본인의 동경을 살펴볼 수 있는 아이템 또한 즐비하다. 페이지 말미에는 개인의 쇼핑 리스트를 소개하는 코너 속 코너도 수록해놓았는데, 비디오테이프와 워키토키, LOVE 스태츄, 크롬하츠(Chrome Hearts) 열쇠고리, 전기면도기와 같은 전리품을 자랑하고 있다.

바이어로서의 사명을 지니고 갔지만, 이들이 마냥 쇼핑만을 한 것은 아니다. 뉴욕의 인기 있는 브랜드와 편집 스토어를 취재하기도 하고, 힙합 인디펜던트 레이블을 리서치해 그들의 앨범을 추천하는 코너를 만들기도 하면서 미국의 하위문화를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콘텐츠도 진행했다. 더불어, 클럽 파티에 방문해 스냅샷을 찍는 나름의 참신한 기획을 선보이기도.

잡지 한 권의 총 페이지 수 210페이지 중 57페이지를 할애한, 나름의 대형 기획이었던 바이어스 캐논볼. 그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만만치 않은 비용과 인력이 투입되었을 터다. 하지만, 1997년 이러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25년여가 넘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흥미로운 자료를 남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 인터넷을 통해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포진한 상품을 한눈에 구경하고, 손쉽게 살 수 있는 편리한 시대지만, 먼 곳을 여행하며 보물을 찾으며 느꼈을 즐거움과 설렘은 지금에 와 쉬이 느낄 수 없는 낭만이 아니었을까.

이미지 출처 | Damp Magazin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