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품이 된 COMME des GARÇONS의 매거진

실험적인 디자인과 전위적인 표현의 대명사인 꼼데가르송(COMME des GARÇONS). 다수의 서브 레이블과 함께 쿠튀르와 레디 투 웨어를 넘나들며 수많은 역사적 순간을 남겨온 그들이지만 이는 분명 20세기부터 꼼데가르송이 간직해 온 단단한 근간 덕분일 테다. 다행스럽게도 이는 그들이 옷이 아닌 종이 위로 펼쳐놓은 몇몇 출판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 쇼핑과 소셜 미디어가 없었기에 더욱이 무게가 실렸을 그것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초판이란 희귀성과 물성 있는 종이 잡지라는 고유성으로 패션, 예술 아카이브 콜렉터의 선망의 대상이 되어 버린 꼼데가르송의 비주얼 매거진을 열어보았다.


COMME des GARÇONS SIX Magazine Volumes 1-8

꼼데가르송을 설립한 지 15년 후인 1988년, 레이 가와쿠보는 육감(Sixth Sense)이라는 주제를 탐구하는 비주얼 매거진 ‘SIX’를 발행했다. 반연간지인 이 매거진은 간결한 텍스트와 시각적 요소를 주된 특징으로 삼았다. 최신 정보나 단기적인 이슈를 담은 기성 매거진과 달리, 연간지(혹은 계간지)는 비평이나 심층적인 내용, 짧은 논문 등을 다룸에 있어 특별함을 갖는다.

일본을 대표하는 아트 디렉터 이노우에 츠구야(Inoue Tsuguya)와 편집장 코자스 아츠코(Kozasu Atsuko)가 호흡을 맞췄고, 대형 A3 크기의 제본되지 않은 신문 형태로 루이비통과 협업한 브루스 웨버(Bruce Weber), 기신 시노야마(Kishin Shinoyama), 아티스트 듀오 길버트 앤 조지(Gilbert & George), 패션 디자이너 아제딘 알라이아(Azzedine Alaïa), 사진작가 피터 린드버그(Peter Lindbergh)와 도미나가 민세이(Tominaga Minsei), 사울 레이터(Saul Leiter), 하비에르 발혼라트(Javier Vallhonrat) 등 저명한 기고자들의 작품을 돋보이게 했다.

식스 매거진은 단순한 아카이빙이 아니라 가와쿠보와 꼼데가르송이 패션 세계에 미친 영향력을 보여주는 증거로 작용한다. 가와쿠보는 잡지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다음과 같이 드러냈다. “하이패션에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함과 ‘불확실성(Mystery)’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다음 단계는 순수히 심상만을 위한 컬렉션의 시각적 표현일 것”

식스 매거진이 다시금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킨포크(KINFOLK) 매거진과 안드레아스 머쿠디스(Andreas Murkudis) 등의 재조명 덕이며, SIX 전집은 약 3백만 원이 넘는 가격으로 아트 앤 스모크(Art and Smoke)에서 판매되고 있다.


SIX 1/4 – VISIONAIRE No. 20 X COMME DES GARÇONS

가와쿠보는 패션 아트 출판 에이전시인 ‘비져네어(VISIONAIRE)’ 20호에서 첫 객원 에디터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카이브를 열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선택했다. 그러고는 당시 스물여섯 살의 마리오 소렌티(Mario Sorrenti)와 같은 젊은 사진작가가 1982년(당시 그는 열한 살에 불과했다)까지 거슬러 올라간 컬렉션을 어떻게 재해석할지 기대에 부풀었다.

필립 로르카 디코르시아(Philip-Lorca diCorcia)는 홍콩의 번화한 거리에서 꼼데가르송 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찍었고, 닉 나이트(Nick Knight)는 꼼데가르송과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을 적절히 버무려 역대 가장 많이 재현된 비져네어의 이미지 중 하나를 만들어냈다. 더불어 매거진 부록으로 완전히 남다른 선택을 보여준 꼼데가르송. 모슬린 원단에 프린트된 실제 드레스 패턴을 제공했다.

‘SIX 1/4’는, ‘SIX’ 매거진의 4분의 1 크기라는 점에서 착안한 이름이다. 이는 비져네어의 부록의 자리였고, 예술과 광고를 결합한 형태라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일반적인 백화점 의류 브랜드에서 볼 수 있는 기존의 광고를 단순히 받아들이지 않는 고상한 타깃에게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셈이었다.

1969년, 그녀의 디자인이 처음 시장에 출시된 이래 꼼데가르송은 패션계를 끊임없이 발전시켜 왔으며, 97 SS 컬렉션 ‘Body Meets Dress, Dress Meets Body’도 예외는 아니었다. 운율이나 리듬 없이 울퉁불퉁하고 비대칭적인 덩어리는 지금 봐도 당혹스럽긴 하다. 그러나 이 시즌이 집행된 방식을 보면 가와쿠보의 의도와 영감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비슷한 색상의 해산물과 다양한 갑각류 사진이 화보와 뒤엉켜 등장했다. 이러한 무정형 디자인에서 가와쿠보는 인류의 유전적 기원 또는 수천 년 동안 진화가 진행됨에 따라 형태가 변화하는 방식을 암시했을지도 모른다.


Guerrilla Zine No.6 COMME des GARÇONS

‘게릴라 진(Guerrilla Zine)’의 마지막 호 No. 6의 타이틀은 ‘기업 구원을 위한 아이디어’로,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꼼데가르송 게릴라 스토어를 담은 유일한 비주얼 아카이브다. 게릴라는 곧 ‘신념을 위해 싸우는 소수의 독립적인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신념을 담은 다섯 가지의 규칙을 명시했는데, 이는 아래와 같다.

1. 게릴라 스토어는 특정 위치에서 1년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2. 인테리어 디자인 콘셉트는 기존 공간과 흡사하게 유지한다.
3. 위치는 기존 상업 지역으로부터 떨어져 있으며, 분위기, 역사적 연관성, 지리적 상황 또는 기타 흥미로운 특징에 따라 선정된다.
4. 제품은 모든 계절, 신상품과 구상품, 의류와 액세서리, 레디-투-웨어 또는 쿠튀르 제품, COMME des GARÇONS 외 다른 브랜드도 혼재되어 구성된다.
5. 파트너는 임대에 대한 책임을 지며, COMME des GARÇONS은 판매 또는 반품을 통해 해당 매장을 지원한다.

2004년에 시작되어 2009년에 종료된 게릴라 스토어는 모두 패션과는 거리가 먼, 일상적이고 실용적인 (때로는 원시적으로 느껴지는) 공간을 활용하여 꾸며졌다. 팝업 스토어가 오늘날처럼 흔하지 않았던 20년 전이다. 게릴라 스토어는 헬싱키, 베를린, 레이캬비크와 같은 스탈린주의 시대의 도시에 있는 식료품점, 창고, 과일 가게를 아주 최소한의 개조만 거친 뒤, 일반 쇼룸과 아카이브 전시 공간으로 활용했다. 목표는 인테리어 디자인에 최대한 적은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었고, 그 결과 매출 기대치를 뛰어넘는 매우 성공적인 리테일 공간이 다수 탄생하여 꼼데가르송의 아방가르드한 유산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 싱가포르, 아테네, 레바논, 그리고 마침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이르기까지 더 많은 도시에 매장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어떤 곳은 정돈되고 체계적인 반면, 어떤 곳은 전후의 혼란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구조화된 혼돈은 2000년대 꼼데가르송의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토대를 정의할 수 있었다.

잡지 편집은 싱가포르의 악명 높은 디자이너 테세우스 찬(Theseus Chan)이 맡았는데, 그는 직접 각 카피를 커스터마이징하는 잡지 ‘베르크(WERK)’를 창간한 인물이다. 그는 이번 6호에도 동일한 방법론으로 접근했다. 사본을 손으로 찢고, 물에 적시고, 손으로 힘을 주어 유물처럼 보이도록 만들었으며, 못을 박아 녹이 슬게 만들고 앞표지와 뒤표지 전체를 불에 태웠다. 이렇게 해서 모든 카피에 고유성을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꼼데가르송 게릴라 스토어에 대한 내용을 완벽하게 보완했다. 게릴라 스토어와 마찬가지로 이 잡지는 독자들 개개인에게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는 구조적 혼돈을 품었다. 이는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도시에 있는 꼼데가르송 게릴라 스토어에 들어섰을 때, 그 안의 콘텐츠의 맥락과 진정으로 하나 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전 연인 요지 야마모토(Yohji Yammaoto), 준야 와타나베(Junya Watanabe), 꼼데가르송 플레이의 필립 퐁고브스키(Filip Pągowski), 도버 스트릿 마켓(Dover Street Market)의 아드리안 조페(Adrian Joffe)까지. 레이 가와쿠보를 주축으로 오랫동안 변모해 온 꼼데가르송의 미래를 초창기 날것의 비주얼 매거진 아카이브에서 찾아보자.

Archive PDF COMME des GARÇONS


이미지 출처 | COMME des GARÇONS

박채린
E il naufragar m'è dolce in questo m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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