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스트리얼과 펑크의 만남, 휘몰아치는 음악을 선사하는 세 밴드

시종일관 몰아치는 기타 리프와 강렬한 단순한 멜로디로 대표되는 펑크,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한 멜로디와 딱딱하면서도 귀에 박히는 인더스트리얼 음악. 상당 부분 공통적 분위기를 공유하는 두 장르는 하나로 결합할 때 더욱 극단적인 사운드를 낳고, 이는 듣는 이에게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전율을 불어넣기도 한다.

펑크와 인더스트리얼의 결합은 2010년대에도 도터즈(Daughters), 길라 밴드(Gilla Band) 등 많은 밴드로부터 시도됐다. [You Won’t Get What You Want], [The Talkies]와 같은 작품은 거친 질감과 디스토션을 통해 평단으로부터 참신한 앨범으로 호평을 받아왔으며, 다양한 밴드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번에 소개할 밴드들 역시 모두 2020년대 데뷔 정규 앨범을 발매한, 역사 깊은 밴드는 아니지만, 개성 있는 음악성과 매력을 지닌 인더스트리얼 펑크 밴드들이다. 거침없는 스타일로 자신들만의 색채를 보여주는 세 밴드를 한번 알아보자.

DITZ – [The Great Regression] (2022)

원피스와 긴 생머리로 치장한 여장 남자 보컬의 처절한 샤우팅. 디츠(DITZ)는 다른 밴드를 압도하는 강렬한 이미지와 공격적인 스타일로 보는 이들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인상을 심어주는 밴드다. 아이들스(Idles) 등 다양한 밴드와 합동 투어를 진행하기도 했던 그들은 1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다시 부흥하고 있는 포스트 펑크 신에서 2020년대를 책임질 신인으로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19년 펑크 음악 시장에서 어떻게 LGBT가 자리 잡을 수 있을지 보여준 싱글 “Gayboy” 등을 필두로 팬들 사이에서 빠른 속도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디츠는 2022년 첫 정규 앨범 [The Great Regression]을 발매한다. 격렬한 전반부와 시곗바늘이 흘러가는 듯한 잔잔한 후반부가 눈에 띄는 오프닝 트랙 “Clocks”를 시작으로, 단순한 리프가 특징인 하드코어 펑크 색채가 묻어나는 “Ded Würst”와 “Summer of the Shark”등 과격하면서도 차가운 인더스트리얼 펑크의 향연은 프론트 맨 칼럼 프랜시스(Callum Francis)의 고뇌와 혼란을 더욱 적나라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한다. 이외에도 “Teeth”에서 악기를 쌓아가는 듯한 진행과 “No Thanks, I’m Full”에서 보여주는 광기 섞인 노이즈는 앨범을 더욱 다채롭게 해주는 요소다.

또한, 이제 막 1집을 발매한 밴드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라이브 분위기를 자유자재로 주도하는 밴드라는 것 역시 이 밴드의 매력적인 부분 중 하나다. 마구잡이로 쏘아붙이다가도 어느새 놀랍도록 침착해지는 보컬의 완급 조절, 그리고 끊임없는 싸움 속에서 규칙적인 리프를 찾아 나가며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기타 및 드럼은 보는 사람들에게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잊게 해주는 흥미진진함을 전달한다. 디츠의 화려한 라이브가 궁금하다면, 2023년 발매한 라이브 앨범 [On the Bau’ou] 역시 들어보는 걸 추천한다.

Model Actriz – [Dogsbody] (2023)

2016년 결성한 4인조 밴드 모델/액트리즈(Model/Actriz)는 생각보다 오랜 경력의 밴드다. 결성 직후 세 개의 EP [100€], [Ava], [No]를 연달아 발매했지만 2017년 잠정 휴식기를 가지며 오랫동안 활동하지 않았고, 2020년 싱글 “Suntan”과 함께 복귀했다.

몇 번의 싱글을 발매한 후 모델/액트리즈는 작년 첫 정규 앨범 [Dogsbody]를 공개, 충격적인 스타일로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었다. 오프닝 트랙 “Donkey Show”부터 밴드가 추구하는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고음의 신스와 프론트 맨 콜 헤이든(Cole Haden)의 불안한 목소리로 이루어진 도입부는 중간 부분부터 온갖 노이즈와 함께 갑작스럽게 변화하면서 듣는 이를 놀라게 한다. 이후 이어지는 “Mosquito”와 “Crossing Guard” 역시 퍼커션과 노이즈의 리듬감 있는 배치로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듯한 매력을 발산하고, “Amaranth”와 같이 춤을 추듯이 휘갈기는 트랙도 눈에 띈다. 또한 후반부의 두 트랙 “Sleepless”와 “Sun In”에서는 애잔한 조용한 트랙으로 풀어가며 앨범의 다양성을 더욱 부각한 모습.

Cole Haden

이처럼 모델/액트리즈의 음악은 굉장히 독특한 개성을 지닌다. 나란히 정렬된 듯한 노이즈로 이루어진 이들의 음악은 음이 지나가는 마디마다 점차 커지는 듯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또한 흐느끼는 듯한 연약한 파트와, 광기에 사로잡힌 듯 마구 내려치는 듯한 과격한 파트가 동시에 공존하는데, 이는 콜 헤이든이 지닌 양극성을 매우 잘 보여주는 부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성공적인 데뷔 앨범 이후에도 작년 9월 싱글 “Winnipesaukee”를 통해 더욱 실험적인 모습을 보여줬으며, 올해 역시 투어 등으로 활동을 가져가고 있는 만큼 모델/액트리즈가 앞으로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을지 봐야 할 것이다.

Talk Show – [Effigy] (2024)

런던에서 결성한 신인 밴드 토크 쇼(Talk Show)는 마구 쏘아붙이는 스타일보다는 어두운 도시의 거리와 클럽이 연상되는 밴드라 할 수 있다. 펑크와 인더스트리얼에 더불어, 트립 합, 테크노 등의 전자 음악 요소 역시 적극 활용하는 토크 쇼는 앞서 소개했던 두 밴드보다는 더욱 냉소적인 음악을 보여준다. 보이 하셔(Boy Harsher)와 같은 다크웨이브 밴드들과도 어느 정도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는 편. 보컬 해리슨 스완(Harrison Swann)의 적적하고 나른한 스포큰 워드 역시 밴드의 음악을 대표하는 부분이다.

2020년 신나는 밴드 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정통 포스트 펑크 곡들로 이루어진 EP [These People]을 통해 주목받기 시작한 그들은 이후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인더스트리얼의 색채를 점점 더해가며 그들만의 색깔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여러 크고 작은 런던의 클럽에서 라이브를 해나가며, 밴드의 음악은 더욱 무게감 있으면서 빠른 스타일로써 발전해 나갔다.

이들의 여정은 2024년 2월 발매한 첫 정규작 [Effigy]에서 더욱 힘을 발휘한다. 앨범의 첫 트랙 “Gold”부터 토크 쇼의 색채가 잘 드러난다. 차가운 신디사이저로 시작하는 인트로는 곧이어 드럼 루프와 어우러지며 매력을 발산한다. 뒤이어 나오는 트랙 “Oh! You’re! All! Mine!”은 그루브있는 기타 리프와 인더스트리얼이 만나면서 곡이 진행되는 동안 색다른 느낌을 자아내기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높은음의 신스가 눈에 띄는 “Oil at the Bottom of a Drum”, 변형된 드럼 루프 및 보컬과 함께하는 “Small Blue World”에 이르기까지 앨범에서 밴드는 일관되면서도 다채로운 느낌을 만들어낸다. 또한 마지막에는 테크노 트랙 “Catalonia”가 흘러나오는데, 독특한 클럽 풍의 곡은 앨범의 마무리를 더욱 특별하게 장식한다.

근 몇 년간 수많은 포스트 펑크 밴드가 큰 찬사를 받는 가운데, 포스트 펑크는 점차 노웨이브에서 영향받은 사운드와 노이즈 록, 인더스트리얼과 결합하여 더욱 거세게 흘러가고 있다. 위의 세 밴드 외에도 메탈 성향이 짙은 챗 파일(Chat Pile)의 [God’s Country], 전자 음악을 전면으로 내세운 PVA의 [BLUSH]와 섹스타일(Sextile)의 [Push] 역시 펑크와 인더스트리얼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록 음악은 오랜 시간의 걸쳐 수많은 음악가들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오고 있고, 이러한 시도가 이전부터 진행돼 왔던바, 이들이 완벽히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위 신인 밴드들이 이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해석해 지금껏 없던 고유의 매력으로 재창조해 내며 트렌드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보기 좋은 일일 것이다. 세 밴드 모두 앞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예고한 만큼, 어떤 행보를 보일 수 있을지 계속해 지켜보자.

DITZ 인스타그램 계정
Model/Actriz 인스타그램 계정
Talk Show 인스타그램 계정


이미지 출처 |  DITZ, Model/Actriz, Talk Show

RECOMMENDED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