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문화가 태동하던 00년대는 분명 혼돈(CHAOS) 그 자체였다.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등으로 대표되는 SNS의 태동과 함께 현실이 아닌 가상공간에 커뮤니티가 꾸려졌고, 점차 대용량의 이미지와 동영상 가공이 용이해지며 그 작업물은 쉬이 바다와 하늘을 가로질러 모두에게 도달했다.
그리고 당시 일본에서는 동영상 업로드 사이트 니코니코(NicoNico)와 일러스트 업로드 사이트 픽시브(pixiv)가 큰 인기를 끌며, 새로운 크리에이터, 개중에도 ‘모에’의 문화를 중심으로 한 ‘오타쿠’들의 요람으로 자리했다. 어쩌면 이 새로운 시대의 ‘장인들’ 그러니까 열성적 오타쿠들을 이끌고 앞으로의 10년의 비전을 제시할 아트 콜렉티브 카오스 라운지(CHAOS*LOUNGE)의 등장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 모르겠다.
카오스 라운지는 아티스트 후지시로 우소(Fujihsiro Uso)가 2007년 결성한 그룹으로, 인터넷 서브컬처를 바탕에 둔 일본의 오타쿠 문화를 SNS를 통해 발전시킨 하나의 아트 커뮤니티라고도 할 수 있다. 이름도, 나이도, 성별도 알지 못하는 50여 명의 아티스트들의 디지털 작품을 현실로 옮겨 전시하며 주목받기 시작한 카오스 라운지는 이후 당시 미술 비평가로 활동하던 쿠로세 요헤이(Yohei Kurose)와 우메자와 카즈키(Kazuki Umezawa)가 합류하며 더욱 영향력을 넓혀갔다. 2010년, 새로운 선언문과 함께 전시 ‘카오스라운지 2010’을 선보인 이들은 이후, 오타쿠의 방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파멸*라운지(Hametsu*Lounge)’를 시작으로, 특정 캐릭터를 가져와 새로운 이미지로 탄생시킨다던가, 누군가의 앨범 재킷에 물을 뿌려 전시하며 언어화할 수 없는 이미지를 현실에 연달아 재현했다. 그들의 파격적 작품만큼이나 저작권을 비롯한 각종 논란도 끊임없이 그들을 따랐는데, 카오스 라운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가히 혼란스러운 행보가 아닐 수 없다.
2020년까지 간간히 전시 소식을 전해오던 카오스 라운지는 어느샌가 돌연 소식을 감췄다. 그리고 얼마 전 을지로에 위치한 파이(pie) 갤러리에서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카오스 라운지의 창립자 후지시로 우소의 개인전 ‘RE:POST POP’이 펼쳐진다는 것. 곧바로 그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와 디지털 세계를 재조립하는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 물었다. 혼란스럽고 비밀스러운 그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얼마 남지 않은 전시장으로 직접 향해보자.
한국 독자들에게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페인터 후지시로 우소라고 한다. 홍콩 출신 아버지와 골동품 판매를 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도쿄에서 나고 자랐고 지금도 도쿄를 기반으로 활동 중이다. 2007년 경, 그러니까 유튜브, 트위터, 니코니코, 픽시브 등의 SNS가 탄생할 무렵부터 인터넷 기반의 서브컬처에 영향을 받아 그림을 그려왔다. 그리고 인터넷을 계기로 형성된 인연의 사람들과 현실 공간에서 전시를 기획하는 활동도 이어오고 있지. 지금도 서브컬처든, 예술이든 상관없이 항상 재미있는 이미지를 발굴하려 하고 있다. 장르 불문하고 여러 음악을 듣는 것도 좋아한다.
한국에서의 개인전은 처음인 것 같은데 파이 갤러리의 운영자 아케미와의 인연은 어떻게 닿게 됐는지. 전시 장소로 파이 갤러리를 택한 이유도 듣고 싶다.
2019년에 유키 콘노(Yuki Konno)가 일본에서 한국의 아트 신(scene)의 ‘신생공간’을 소개하면서 ‘GOODS’와 ‘PACK’이라는 무브먼트를 알게 됐다. 그 후 시간이 흘러 내 친구 히로미(宏美)가 신주쿠에서 열리는 전시에 아케미를 초대했다. 그때 내가 전시를 돕고 있었지.
작년 5월에는 파이 갤러리와 함께 三Q에서 열린 그룹전에 참가해 한국에 처음 오게 됐다. 그때 일본의 인터넷 문화를 사랑하는 젊은이들과 많은 만남을 가졌다. 마치 2010년대 일본 젊은 친구들을 보는 것 같더라. 파이 갤러리를 선택했다기보다 운명적인 만남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하. 일본과 한국의 서브컬처 아트 신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서도 점점 더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신이 오랜 시간 작업하고 쌓아온 작품 150점이 걸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드러내고 싶은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면서 대량의 드로잉을 전시하고, 거기서 드러나는 네트워크를 직접 느껴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게 있어 드로잉은 내가 그리는 선과 어떤 색을 쓰는지 등의 습관을 포함한다. 내가 그려낸 기형적인 ‘캐릭터’들과 기호들을 통해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거라 할 수 있지.
서브컬처뿐만 아니라 기상현상이나 식물 등의 자연과학, 원시미술이나 골동품의 형태, 서예나 타이포그래피, 거리문화와 도시문화를 아우르는 인공적인 환경 등 15년 가까이 활동하며 다양한 관심사가 생겨났다. 그것들과 캐릭터를 만나게 함으로써,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키메라 같은 것이 탄생하는 거다. 캐릭터의 이미지를 보다 자유롭게 확장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림 속에 캐릭터가 등장하는 변주곡은 아직 많이 준비되어 있다. 내 상상력은 아직 풍부하다.
아트 콜렉티브 카오스 라운지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활동 초기에는 다른 사람의 그림을 밟는다던가, 누군가의 앨범 재킷을 프린트해 물을 뿌린다던가, 상당히 강렬하고 자극적인 비주얼의 전시를 진행해 왔다. 애시당초 카오스 라운지를 통해 전파하고자 했던 무언가가 있었을 텐데, 그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인터넷에 큰 오해와 나쁜 소문이 떠돌고 있다. 당시 나는 동경하던 미소녀 그래픽이 실린 인쇄물을 드로잉이나 종이조각 같은 쓰레기와 섞어 전시 장식으로 벽에 잔뜩 붙여 뒀다. 오타쿠의 방을 미친 듯이 표현한 거지. 이걸 보고 자신의 헌 책도 사용해 달라며 많은 만화가들이 전시장으로 책을 보내오기도 했다. 그렇게 전시장 벽이 가득 채워지니 소재들이 바닥까지 퍼져나갔다. 나는 그걸 헌 신문지처럼 다뤘고. 그 위에서 장난 삼아 포즈를 취한 사진이 ‘의도적으로 남의 그림을 밟고 있다’고 알려지며 오해가 생겼다. ‘밟아주세요’라는 문구는 관람객이 장난으로 쓴 거다.
지금도 ‘파괴하고 훼손하는 것이 콘셉트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캐릭터의 그래픽이 오류, 충돌, 버그로 인해 깨지거나 녹아내려도 캐릭터라고 인식할 수 있는, 즉 캐릭터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점이 재미있다고 여길 뿐이다. 그것은 지금도 우메자와 카즈키의 그림이 이를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지. 캐릭터 그래픽 프린트에 물을 뿌린 내 작품은 ‘잉크로 구성된 캐릭터(또는 모든 이미지)가 녹아내렸을 때, 그것은 원래의 이미지인가? 아니면 그냥 잉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전시나 작품을 위해 아마추어의 저작물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일은 하지 않을 거다. 그 점은 반성하고 있습니다.
카오스 라운지의 많은 전시가 디지털적 요소를 현실로 옮겨오는 데 초점을 맞춘 것 같다. 이때 가장 중점을 두는 요소가 있다면?
우리는 아직 육체를 버릴 수 없는 인간이다. 따라서 디지털적인 요소를 디지털로 완성된 상태로 즐기기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 현실 공간에서 빛과 물질이 가져다주는 디지털화되지 않은 경험에도 여전히 관심이 많고. 사실적인 소재를 보는 게 좋다. 오히려 디지털적인 요소가 현실 세계의 물질로 변환될 때, 그 변환 과정에서 생기는 위화감이나 어긋남, 왜곡에 비판적인 감정이 들기도 한다.
카오스 라운지에 관해 조사하며 여러 전시 이미지를 확인했는데, 대부분이 극도로 혼란스럽더라.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다면?
돌이켜보면 현대미술가 신로 오타케 신로(Shinro Ohtake)나 토마스 허쉬혼(Thomas Hirschhorn) 등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00년대에는 전시장을 ‘어지럽히는’ 게 유행이었다. 2010년 쿠로세 요헤이의 주도로 열린 ‘파멸*라운지’에서는 컴퓨터 엔지니어가 전시장에 직접 거주하도록 했다. 거기서 진짜 생활하게 한 거다. 그랬더니 인터넷을 보고 모인 ‘긱(GEEK)’들이 마음대로 DJ를 하고, 그 자리에서 프로그램을 짜고, 밥을 짓고, 그림을 그리며 가장 혼돈스러운 공간을 만들어 냈다. 웹 상에서는 깨끗해 보이는 인터넷 서비스도 그 뒤까지 영역을 확대해서 보면 이런 와일드한 긱들과 크리에이터들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는 걸 보여준 아이러니한 전시였다. 또한 작품과 그 외의 것, 작가와 관람객을 적극적으로 교반하고 관계를 다시 쓰는 실험을 한 것 같기도 하다. 이는 일본의 아방가르드 예술가인 하이-레드 센터(Hi-Red Center)와 슈지 테라야마(Shuji Terayama)의 영향이기도 하다. 지금은 미술작품을 마치 공산품처럼 깔끔하게 진열하는 것이 주류인 듯한데, 모든 것이 그렇다면 재미없잖아?
카오스 라운지가 처음 등장했던 ‘Zero Generation(00년대)’는 인터넷이 크게 보급되고 SNS가 등장하는 등 새로운 인터넷 문화가 만들어지던 시기였다. 그때와 지금 당신이 느끼는 인터넷 문화는 어떤 것들이 달라졌나.
2007~2010년 무렵의 SNS는 놀이터 같은 곳이었다. 트위터에 100개, 200개의 별표가 붙으면 일본 일간 랭킹에서 TOP을 차지하던 시절이었기에 경쟁하듯 유머러스한 포스팅을 올렸지. 그런데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큰 변화가 생겼다. SNS가 정보 인프라로 주목받기 시작하며 진지한 정보를 찾는 사람들이 대거 몰려든 거다. 지금처럼 사람들이 SNS를 이용하는 게 당연해질 줄은 몰랐다. 요새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금세 노출수로 평가되는데, 이게 SNS 문화를 재미없게 만드는 것 같다. 물론, SNS 내에 자동 번역 기능도 추가되고 국가 간의 경계도 허물어지면서 여러 교류가 가능해진 건 맞다. 또한 인터넷 문화와 관련해서는 젊은 크리에이터들의 역량이 한 단계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영상 제작이든, 그래픽 제작이든, 전문가 수준의 툴과 AI를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됐지 않나. 소비 속도는 빨라졌지만, 인터넷을 통해 국제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가능성은 예전보다 더 높아졌다.
돌연 당신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진다.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컴퓨터 앞에 붙어 보냈나?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 컴퓨터실이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직장에서 사용하던 컴퓨터로 인터넷에 접속하기도 했고, 14,15살 무렵에는 CGI GAME이나 CGI CHAT을 통해 밤늦게까지 인터넷을 즐겼다. 사양이 높은 컴퓨터가 아니었기 때문에 컴퓨터 게임 중독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게임센터에 가서 ‘pop’n music’, ‘beatmania IIDX’를 하며 놀았는데, 게임 음악을 즐기는 열혈 플레이어였지. 당시 유행하던 J-POP을 전혀 모를 정도로 게임 음악만 들었다. 일본에서는 발매되지 않았던 PSP판 ‘DJMAX portable’을 경매에서 낙찰받아 가지고 놀기도 했고. 게임 음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전시 소개 그리고 당신이 이끌던 집단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chaos’라는 개념이 당신의 삶에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기존의 것을 부수고 재조립하는 데 가장 큰 희열을 느끼는지.
오타케 신로의 영향으로 현대미술을 알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국내외에서 수집한 대량의 쓰레기와 재료들이 압도적인 크기의 콜라주 페인팅이 세계를 종합한 듯한 메시지로 보였다.
한편으로는 00년대 이후 인터넷 통신 환경이 비약적 발전의 영향도 있다. 고화질의 이미지와 대용량의 동영상을 점점 더 다루기 쉬워졌으니까. 카오스 라운지는 그런 샘플링 표현을 좋아했고, 특히 우메자와와 나는 많은 캐릭터가 모여 있는 이미지를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에로틱’이나 ‘그로테스크’ 같이 겉모습만으로 큰 임팩트를 주는 표현은 좋아하지 않는다. ‘귀여운(Kawaii)’이미지를 과도하게 오버랩해서 예술적으로 표현할 수는 있는 것 같다. 내가 10대 때 좋아했던 플러스-테크 스퀴즈 박스(Plus-tech Squeeze Box)의 ‘CARTOOOM’이라는 앨범을 꼭 들어 보길 바란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에서 카오스 라운지에 관해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는 카오스 라운지가 겪어야 했던 일련의 ‘사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저작권 관련 얘기고. 기존의 것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탄생시킨다는 논리와 동의 없이 기존의 것들 사용했다는 입장 중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다.
저작권 관련 소동(우메자와의 디지털 콜라주 작품과 전시에 기존 인쇄물이 사용된 것에 대한 인터넷의 부정적인 반응)은 벌써 13년 전의 일다. 사실 지금까지 저작권에 관해서는 누구에게도 고소당한 적이 없고, 법적 절차로 이어진 적도 없다. 다만 ‘어디까지 규칙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하기도 전에 인터넷의 비방과 음모론(뒤에서 기업과 손을 잡았다는 등의 루머)에 휩싸여 아무 주장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과거에 ‘좀 더 정리된 논의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저작권이라고 해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말이 너무 길어질 것 같지만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카오스 라운지가 문화에 대한 풍자나 모욕을 위해, 혹은 영리를 위해 표현하고 있다는 오해가 너무나도 퍼져있다고 생각한다. MAD[1] 영상 제작자가 캐릭터의 목소리를 뽑아내어 웃음을 자아내듯, 기존 저작물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잘라내고, 편곡하고, 공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맥락 위에서 표현하는 문화라고 생각했다. 한편, 영리 목적의 해적판, 원작자의 의도하지 않은 성적 패러디, 최근에는 생성 AI 문제 등 인터넷 문화나 오타쿠 문화 속에는 더 심각한 저작권 문제도 존재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카오스 라운지’라는 이름만 들어도 모든 ‘저작권 위반’의 대명사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 걸 안다. ‘사건’이 있은 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카오스 라운지는 저작권 문제에 저촉되지 않는 전시 활동과 작품 발표를 방대하게 실천해 왔기 때문에, 이를 올바르게 알고 제대로 알리기 위한 아카이브 활동도 함께 진행하고 한다.
2020년 이후 카오스 라운지의 활동이 멈췄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그전과 후에 본인의 작품 스타일이 달라졌는지.
2020년 당시 코로나 사태로 인해 몸과 마음이 괴로웠고, 인간관계에도 불협화음이 생겼다. 앞으로의 카오스 라운지는 내 솔로 프로젝트 형태로 진행될 예정이다. 앞으로 누구와 어떤 활동을 할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방금 언급한 것처럼 과거 활동의 아카이빙을 진행하고자 한다. 또한 이번처럼 한국의 서브컬처 아트나 작년에 방문한 타이페이에서 본 ‘이두신’ 아트, 그 외 유럽과 미국에 퍼져있는 애니메이션 아트나 스트리트 아트, 그런 신과 교류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2020년까지의 내 작품에 대해서는 주제나 사상 등의 ‘언어’가 다소 앞서 나간 것 같은 느낌이다. 언어화나 비평적 사고도 중요하지만, 작가로서 좀 더 조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미술작품이 사물로 존재하고 감상자가 그것을 마음대로 읽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단 걸 깨닫게 됐다. 그래서 이번 전시도 새로운 전개로 이어지는 경험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이번 전시 이야기로 넘어와서, 참여 작가들은 어떻게 선정했나.
스케줄 문제도 있었으니 친분 있는 작가 중에 추렸다. 거기서 아크릴과 궁합이 잘 맞고, 조금 다른 식의 캐릭터 이미지를 구현하는 작가에게 연락했지. 키즈키(Kizuki)는 일본 종이와 먹으로 현대적 느낌을 내는 화가이고, 쿠카무라(Kukamura)는 닌텐도 게임과 서양 만화,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많이 받은 화가다. 나카카제(Nakakaze)는 현대 추상화와 같은 선과 만화를 결합하는 것이 특기이고, 사가와(Sagawa)씨는 10대 아이처럼 섬세하고 예리한 화풍의 화가다. 한국 참여 작가(이지현, 박지혜, 전희수)는 아케미가 선정해 줬다. 훌륭한 라인업이 완성되어 기쁘다.
참여 작가와 협업도 작품도 다수 보이는데, 한 작품 안에서 다른 작가와 공존하는 본인만의 방식이 있다면 알려달라.
작품의 외형을 풍경화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만든다. 어떤 땅 혹은 공간이 있고, 다른 사람이 그 안을 경작하고, 거기에 내가 사물이나 인물을 소환하는 식이지. 창이라고 하면 고전적일 수도 있지만……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는 너무 단조롭지 않게, 위아래가 너무 뚜렷하지 않은 상태의 그림을 참가자들에게 전달해 보았다. 존중의 마음도 중요하다. 존중이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 그림을 맡길 수 있으니까.
이전 카오스 라운지 전시에서도 그렇고 이번 전시 역시 관객이 직접 그림을 그리는 벽이 설치돼 있다. 무엇을 의도한 것인가.
몇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인터넷으로 소식을 접하고 온 관람객이 자신의 이름을 적는 장소로 기능하고 있다. 이름이 아닌 낙서 혹은 드로잉만 보고도 어떤 아이디를 쓰는 사람인지 알아차릴 수도 있고. 거리에 태깅을 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더 많은 미술 아마추어들에게 개방된 형태다. 평소 인터넷으로만 그림을 공개하는 CG 크리에이터에게 아날로그 펜을 쥐어주는 의미도 생기는 것 같다.
두 번째로는 공동작업과 마찬가지로 타인과 협력하거나 그들의 작품을 침범하는 경험은 결코 일상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게 재미있는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큰 벽면에 하나의 그림을 의식하면서 무언가를 그리거나 적는다는 건 관광지에서 낙서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지 않나. 그림을 그리는 벽을 회색으로 하거나 일부러 검은색 펜을 준비하지 않는 등 단조롭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 전시를 꾸려나가는 데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 평소 다수의 사람들과의 교류를 즐기는 편인가?
소통을 잘하는 성격은 아니다. 다만, 재미있는 미술 작품을 보면 바로 어떻게 큐레이션을 하면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을지, 누구의 작품과 만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한다. 직접 기획에 참여할 때는 가급적 어떤 점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지 언어화해서 전달하려고 하고. 좀 전에도 얘기했지만, 존중의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현시대는 누가 뭐래도 ‘오타쿠’ 문화가 패션, 음악 장르 등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며 대중들에게도 많은 노출이 되고 있는 시기다.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내가 활동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오타쿠 문화와 예술, 패션은 거리가 멀었다. 지금에야 애니메이션, 만화 그래픽의 예술적 측면이 제대로 조명받으며 내가 처음 꿈꿔왔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할 수 있겠다. 퀄리티 높은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이나 공식 애니메이션 전시회 등이 더 이상 드문 일도 아니고. 필연적인 시대적 흐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미술 전시의 형식만 이용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멋지게 전시되어도 무엇이 훌륭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뒤로 밀려나고, 그저 패션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으니까. 내 이상향이라 하면, 예술 역사가 제대로 축적되는 동시에 발전된 형태의 예술로서 오타쿠 문화가 다시 가시화되는 것일지도.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 마지막으로 지금 당신의 삶을 가장 혼란(chaos)스럽게 하는 것이 있다면?
스트리밍의 시대가 도래하고, 가상 유튜버가 등장했다. 이 형태가 21세기의 새로운 인형극이라는 점에서 비평적 가치는 있지만,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잡담이나 게임 중계에 엄청난 시간을 빼앗기고 있으며, 우리의 생각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그나저나 미토 츠키노(Mito Tsukino)나 피너츠쿤(Peanutskun)은 훌륭한 크리에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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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장재혁
Photographer | 전솔지
이미지 출처 | Takumi Suidu(rhythmsi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