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의 밤은 여전히 시끄럽다. 지난 세월 새로이 생겨나고 사라진, 혹은 여태껏 그 명맥을 이어 온 클럽의 스피커는 매 주말 쉬지 않는다. 그리고 최근 지층 밑에서 가장 순수하면서도 날카로운 소리를 내뿜는 비밀스러운 팀이 바로 하드퓨어(HARDPURE)다.
로컬 DJ Xing Xing(이하, X)과 Kollin(이하, K), 두 사람이 이끌어 가는 파티 레이블 하드퓨어는 이태원의 상징적 클럽 케이크샵(Cakeshop)을 본거지 삼아 서울 언더그라운드 댄스 음악 신(scene)의 진화를 함께 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하드퓨어의 진정한 매력은 세심한 프로모션과 탄탄한 라인업, 관객을 압도하는 사운드 등이 어우러진 감각적인 큐레이션에 있다. 지난 9일, DJ 와이 비(Why Be)와 모바일걸(Mobilegirl)을 케이크샵으로 초대한 이들의 파티 ‘HARDPURE : Why Be & Mobilegirl’에서도 그 에너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을 터. 파티 준비에 여념이 없는 두 사람을 잠시 불러내 대화를 나눴다. 서울 댄스 음악 신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함께해 보자.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X: ‘Xing Xing’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에서 DJ/모델로 활동 중인 김별이라고 한다. 케이크샵의 레지던시 DJ이자 하드퓨어라는 파티를 만들어 비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그리고 슈프림(Supreme) 스토어에서 근무하고 있기도 하다.
K: 140 덥(Dub)과 헤비 베이스(Heavy Bass)를 주로 다루는 DJ KOLLIN이다.
‘HARDPURE’가 의미하는 바가 정확히 무엇인가. 파티 기조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다.
X: “술처럼 강하고 물처럼 단단하게(Strong like liquor, hard like water)”. 이게 바로 하드퓨어가 의미하는 바다. 폴 슈레이더(Paul Schrader) 감독의 영화 “미시마-그의 인생(Mishima : Life in Four chapters)”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리의 가장 강한 무기는 순결함이다(Our best weapon is purity)” 이 말이 우리가 음악을 통해 전달하려고 하는 생각, 신념과 같다고 느껴 거기서 이름을 따왔다.
K: 처음 파티 이름을 정할 때 서로 동시에 ‘HARDPURE’라는 단어를 생각해 놀랐다. 우리들이 추구하는 문화나 음악은 그 어떤 것으로 정의를 내릴 수 없다. 그저 많은 것들의 교집합을 좋아하고, 섞일 수 없을 것 같던 존재들의 만남을 아름답게 생각한다. ‘HARD’와 ‘PURE’가 거기에 딱 맞는 이름이지 않나. 그게 우리들의 인생과 음악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 탄생한 이름이다.
두 사람이 하드퓨어라는 파티를 열게 된 계기가 있다면? 서울의 나이트 라이프 신에서 이루려고 하는 목표도 있을까.
X: 파티 이름처럼 사람들이 순수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려 한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진정한 모습을 편안하게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는 거다. 그리고 세계 각지의 재능 있는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신선한 사운드를 큐레이션하는 플랫폼으로 자리하려 한다.
K: 별과 같은 시기에 런던에서 살았던 적이 있는데, 그때 지향하는 음악 스타일뿐만 아니라 여러 부분에서 비슷한 사람인 걸 알게 됐다. 그리고 모든 시간을 함께하다 보니 한국에 돌아와 자연스럽게 꾸리게 된 것 같다.
다른 파티와 구별되는 하드퓨어만의 특징이 있다면 이야기해 달라.
K: 다른 파티는 대게 특정 장르를 중심으로 뭉치는 경우가 많다. 테크노, 힙합, 레게 등등. 하지만 하드퓨어는 장르를 불문하고 우리가 주는 분위기로 사람들을 모은다. 어떤 것들에 대해 이분법적으로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언제든지 우리들이 좋아하는 것들은 바뀌어가고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섞여가며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우리 파티에는 정말 다양한 장르의 노래가 나오지만, 또 말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그 공통된 분위기가 분명히 있다.
X: 우리 자신에게 진실된, 그리고 독특한 소리를 가지고 있다. 하드퓨어 파티는 장르 제한이 없고, 그저 다양한 감정으로 흘러갈 뿐이다. 무엇보다 춤에 대한 열정이 넘친다.
하드퓨어에게 케이크샵은 어떤 곳인가. 케이크샵이 하드퓨어의 파티 베뉴가 된 이유가 뭘까.
X: 케이크샵은 내게 홈그라운드 같은 공간이다. 서울에서 처음 발을 디딘 클럽이 케이크샵이었고,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 대부분이 이곳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DJ로서 내 커리어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항상 나를 응원해 주기도 했다. 케이크샵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겠지. 안전한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고 새로운 기회로 넘쳐나는 곳이 케이크샵이다.
K: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케익샵에 모였다. 다른 클럽이 주는 분위기도 좋지만 뭔가 케이크샵만의 분위기가 있다… 자유롭고 모든 것에 열려 있는. 돈을 좇기보다 문화를 소개하려 하는 클럽이 너무나 희소하기에 우리의 파티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케익샵에서 열려야 했다. 우리들에겐 집 같은 존재다.
하드퓨어라는 파티를 이끌고 감에 있어 추구하고자 하는 특정 이미지, 요소가 있을까?
X: 다른 파티처럼 구체적인 콘셉트나 모토가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의 목표는 항상 우리가 누구인지에 충실히 답하는 거다.
K: 하드퓨어라는 이름처럼 이중적인 느낌을 내고 싶다. 강렬할 것 같지만 우리들 안에는 아름다움과 부드러움이 존재하고, 모든 것에 열려 있지만 동시에 각자 만의 선이 분명 있다. ‘강인하다’와 ‘세다’라는 단어가 확실한 차이를 지닌 것처럼, 미묘한 에스테틱이 우리에게 있다.
매 파티 라인업을 구성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은 뭔가.
K: 대부분 우리들이 DJ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좋아하던 아티스트들과 해외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아티스트들이다. 그들이 아시아에 올 때면 연락을 주고받는데, 그렇게 파티가 이루어진다.
X: 댄스 음악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는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 로컬 아티스트들이 얼마만큼 어우러질 수 있는지를 최우선에 두고 라인업을 짠다.
이번 라인업에 포함된 와이 비와 모바일걸이 하드퓨어가 추구하는 이미지, 음악과 어떤 부분에서 통하는지 이야기해 달라.
X: 와이 비는 한국에서 태어나 덴마크에서 자란 프로듀서이자 DJ다. 실험적인 레이블 ‘Yegorka’의 공동 창립자 이기도 하다. 한편 모바일걸은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DJ인데 스타일을 정확히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R&B 사운드를 클럽에 맞게 튜닝하는 데 아주 능하다. 꽤 전부터 우리는 친구로 지내왔다. 두 사람이 지향하는 사운드가 하드퓨어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랩을 마치 악기를 연주하듯 사용하지만, 이 모든 걸 하나로 묶어내는 독특한 접근 방식이 흥미진진하달까. 재료는 익숙할지라도 최종 결과물은 결코 익숙하지 않다. 두 사람의 분주하고 카타르시스적이며 타협하지 않는 스타일은 분명 독자적인 영역에 있다.
K: 내가 처음 음악에 입문했을 때부터 그들의 노래를 들었다. 좋은 충격을 준 사람들이지. 와이 비 같은 경우 트랙에 스트링을 많이 사용하는데 , 그런 클래식한 분위기와 드럼 그리고 베이스가 만나 오묘한 감정을 준다. 모바일걸 같은 경우도 물소리를 굉장히 많이 사용하는데 이런 식으로 자연의 소리와 기계음, 즉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그것들을 자신의 스타일로 섞을 수 있다는 점이 하드퓨어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번 파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클럽을 찾은 이들과 DJ들이 밤새 어우러지는 모습이 어땠나.
X: 모든 순간이 재밌었지만 역시 헤드라이너였던 모바일걸과 와이 비의 셋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둘 모두 평소에 자주 볼 수 없던 가족, 친구들을 불러 모았는데, 열정적으로 땀을 흘리고, 춤을 추고, 음악을 통해 감정을 공유하는 아주 건전한 재회였다.
K: 생각보다 성공적이었다. 개인적으로 파티를 통해 모르는 분들을 많이 만나고 싶었는데 정말 모르는 얼굴들이 무척 많았고, 그들의 반응이 나와 내 친구들과 다를 바 없이 모두 잘 즐기고 있는 것 같더라. “아! 우리 음악이 강하지만은 않구나, 대중들이랑 소통할 수 있는 교집합이 확실히 있구나”라고 느껴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 보여줄 하드퓨어의 새로운 이벤트, 프로젝트가 있다면?
K: 일단 가까운 계획은 5월에 파이널 타이베이(final taipei)에서 공연이 있다. 케이크샵과 비슷한 느낌(장르적으로 다양함이 열려있는)을 가진 세계 각지의 클럽들 중 개인적으로 매우 틀어보고 싶던 곳이라 기대된다.
X: 양보단 질.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