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요 전포동에’는 부산 전포동 인근의 상권에 개성 있는 숍과 문화 공간을 소개한다. 그 첫 번째 시리즈는 최근 개업한 딜라이트 뮤직 바(Delight Music Bar). 이는 서울에서 오랫동안 디제이로 활약하다 최근 귀향한 마이다스 비츠(Midas Beats)가 차린 공간이다. 두꺼운 철문 너머로 아늑한 조명과 꽉 들어찬 레코드 수납장에서 등장하는 비범한 음악들은 레코드 문화가 여전히 익숙지 않은 부산 행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부산에서 만나니 더욱 반갑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부산으로 내려와 딜라이트를 운영하면서 개인 작업실처럼 사용 중이다. 곧 후쿠오카를 다녀올 예정이다.
후쿠오카에는 왜 가나?
일본 딜러들에게 구매한 레코드를 후쿠오카 친구집에 몰아받고 있다. 이제 어느 정도 쌓여서 레코드 수령을 위해 떠난다.
서울에서 디제이로 활동하며 믹스CD를 활발히 발매해오다가 불현듯 부산으로 내려가 딜라이트를 차렸는데 계기가 있었나?
서울에서도 경상도 사투리를 쓰니까 부산 사람인 티가 팍팍 났다. 그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이 부산 가면 어디 놀러 가야 하는지를 물었는데, 추천할 곳이 마땅히 없었다. 이게 너무 안타까워서 내가 직접 공간을 만들려고 내려왔다. 농담이고, 사실 내가 부산 대표도 아니고 애향심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부산에 음악적 공간보다 상업적인 공간이 더 많은 게 내심 안타까웠다. 나름 한국 제2의 도시인데 지역적으로 아무 색깔이 없는 게 아쉬웠고, 직접 좋은 공간을 마련하고 고향 후배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는 취지에서 부산에 딜라이트를 차리게 됐다.
또 부산에는 내가 플레이할 만한 베뉴나 공간이 없다 보니까 오히려 믹스 작업에 집중할 수 있다. DJ라면 믹스 작업이 주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서울에서도 믹스 CD와 테이프 작업에 몰두하고 싶었지만, 매주 열리는 행사 때문에 개인 작업에 몰입이 어려웠다. 그런데 이제는 점심 먹고 계속 여기에 나와 믹스 작업을 한다. 어찌 보면 작업실을 겸해서 쓰고 있는 것이지.
부산에서 디제이를 내세운 업장은 주로 어떤 음악을 트는가?
우선 파티 튠이 많은 것 같다. 잔잔하게 트는 공간은 정말 없지. 딜라이트는 바이기 때문에 내가 평소에 트는 대로 잔잔한 걸 믹스하거든. 근데 부산 사람들은 이런 음악을 믹스하는 걸 아직 신기하게 보는 것 같다.
부산으로 내려오기에 앞서 두려움은 없었나? 요즘 부산의 젊은 인구가 빠져나가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젊은 층 타깃으로 가게를 개업한 입장에서 무시할 소식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도 떠났던 사람 중 한 명이었지. 서울에서 플레이하며 생활하다 보니 부산에서의 생활과 점점 같아지고 있었다. 따라서 내가 하는 일이 딱히 지역과는 큰 상관이 없다고 느꼈다. 당연히 서울에는 부산보다 음악을 플레이할 수 있는 공간이 많고, 나를 불러주는 베뉴의 사장님들께도 감사하지만, 파티 음악과 서울 나이트 신에서 매주 플레이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기는 힘들었다.
뮤직바를 개업하기에 앞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장소가 있다면?
도쿄 시모키타자와에 ‘리틀 소울’. 도쿄를 방문할 때 항상 가던 곳인데 아저씨 혼자서 운영하는 조그마한 바다. 혼자 음악을 걸고 술을 만들거든. 그 모습이 되게 멋있어 보였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서 큰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QR 메뉴판은 작년 뉴욕에 갔을 때 모든 공간이 그렇게 운영되길래 이를 벤치마킹 했지. 인테리어 업자에게 서울의 레코드숍 모자이크(Mosaic)와 정션(Junction), 클리크(Clique) 그리고 해외의 여러 장소에서 플레이하며 얻은 나의 영향에 관해 의견을 제시했고 그에게 도안을 받아 딜라이트를 만들었다.
부산에도 여러 상권이 있는 걸로 안다. 그럼에도 전포동 카페거리에 자리한 이유가 있나?
서면이 홍대라면 전포는 예전 연남동 초창기쯤의 느낌이 많이 나는 동네다. 내가 부산을 떠날 때만 해도 전포동 이 자리는 할머니들이 사는 동네였다. 또 부산 친구들에게 광안리에 자리를 알아볼 것을 추천받았는데 나는 글쎄였다. 광안리는 과거에 여름 장사만 하는 상권이었지만 요즘 뜨고 있다더라고. 안 그래도 관광객에게서 부산이라고 하면 바다, 광안대교 이런 게 먼저 떠오르는 것 같은데, 나는 오히려 다른 곳에서 재미를 주고 싶었다. 사실 집이 전포동과 더 가깝다.
‘딜라이트’라는 가게 이름은 어떻게 탄생한 것인지?
정말 생각 없이 지었다. 서울 합정역 근처에 오래 살았는데, 마포한강푸르지오 지하상가 이름이 ‘딜라이트 스퀘어’다. 매번 지나다니며 무슨 뜻이지 하고 검색했는데 ‘기쁨’이란 의미더라고.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던 단어였고 어감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부산에 가게를 차리는 데 ‘딜라이트’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내가 부산을 다시 찾은 취지와 뜻이 얼추 맞는 것 같았다.
딜라이트에서 당신의 일과는?
처음부터 이 장소를 작업실 겸해서 만들었다. 그냥 점심쯤 일어나서 밥 먹고 바로 여기로 온다. 부산에서 딱히 플레이하는 활동은 마땅한 곳이 없기에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활동은 믹스앨범 작업뿐이라 생각하였고 그 덕에 다른데 정신 팔리지 않고 더욱 믹스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어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작업하다가 안 풀리면 캠핑 체어를 챙겨 15분 거리 광안리 구석에 앉아서 파도 소리를 듣고. 그 덕인가? 서울에 있을 때와 다른 남국 느낌의 섬머필 음원이 재료로 많이 떠오른다.
당신의 개인 작업인 믹스 CD와 믹스테이프는 한국에서 다소 생소한 문화다. 오히려 일본과 더욱 근접한 문화인 것 같다.
그래서 발매도 일본에서 계속할 것 같다. 여름 믹스 CD를 일본에서 500장 제작해 발매했는데, 일본에서의 판매 분량은 전부 팔았다. 한국에도 소량 가져와서 레코드숍에 입점시켰는데, 거의 못 팔았다. 또 일본에는 믹스CD와 테이프가 익숙한 문화기 때문에 제작 프로세스가 잘 갖춰져 있다. 디자인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고 속지 등의 옵션도 다양하다.
한쪽 벽면을 판매 중인 레코드를 진열해 두었다. 레코드 판매와 업데이트 주기는 따로 있나?
업데이트 주기는 없다. 이번에 후쿠오카에 가는 것처럼 구매해둔 것을 대량으로 가져오면 업데이트하는 거지. 파는 것도 평소 낮이나 영업시간 동안 등 문이 열려 있으면 파는 거다. 스트레스받지 않고 편하게 판매하려고 한다. 이거 팔아서 떼돈 벌 것도 아니고 단지 부산 사람들이 레코드를 뒤적이면서 디깅의 재미를 느껴봤으면 좋겠다. 아직까진 한국 레코드가 가장 많이 팔리긴 하는데, 재밌는 점은 한국 음반은 모두 부산에서 내가 최근에 구했던 거다. 서울에서는 바로바로 팔려서 찾기가 힘든데 부산 및 경상도권에서는 구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꽤 레어한 한국 음반들을 모두 부산에서 구했다.
부산의 바이닐 인구는 어떠한지, 귀향하여 직접 체감하는 것이 있나?
작년에 부산문화재단과 관광청 주관으로 남포동에서 광복레코드페어라는 행사를 개최했었다. 부산 역사박물관 오픈을 기념한 행사였는데, 나와 노아임낫(Noimnot)이 초대받아 레코드 강연도 하고 셀러로 레코드도 판매했지만, 서울만큼 화제가 되진 못했다. 당연히 서울레코드페어와는 규모 면에서도 비교가 안 되고. 레코드가 놓여 있어도 사람들이 관심을 받기는 힘들었다.
웃긴 건 서울에서 플레이할 때는 부산 사람을 꽤 많이 봤다. 내가 사투리를 쓰니까 같은 동네 사람 같다면서 부산에도 바이닐 디제이 행사나 레코드 관련한 행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꽤 많이 들었는데, 막상 부산에 오니까 아직도 “이거 LP 아니에요?”라고 묻는 느낌이다. 서울에서 바이닐 문화를 접해본 사람들만 아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오프닝 파티의 라인업에 일본 후쿠오카 기반의 디제이가 참석하기도 했고 공간에 오카와라 켄타로(Kentaro Okawara), 위트니스(witness) 등 일본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작품이 걸려있기도 하다. 일본과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나?
부산과 후쿠오카는 서울보다도 물리적으로 거리가 가깝다. 한 15년 전쯤인가? 부산에서 부산-후쿠오카 수교 50주년을 기념하여 부산 DJ와 페인터, 후쿠오카의 DJ와 페인터가 서로 교류하는 문화 행사가 있었는데, 그때 딜라이트 오프닝 디제이로 참여해준 코헤이(Coheigh)를 비롯해 여러 디제이와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 후로 내가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일본인 친구를 소개받고 거기서 또 다른 친구들을 만나면서 지금은 일본 전국에 절친이 있다. 일본에서 숙소를 예약해 본 적이 없다. 자동으로 일어도 늘었고 일본 레코드 숍을 운영하거나 직원으로 일하는 친구들도 많아서 일본에서의 레코드나 아티스트 관련 정보는 제일 많이 얻고 있지 않을까.
또한 켄타로가 일러스트로 참여한 티셔츠를 판매 중인데, 서울의 사운즈굿, 콤팍트 레코드바처럼 레코드 문화와 공존하는 공간이자, 브랜드로 성장을 도모하는 것인가?
글쎄. 아직은 장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개업한 지 이제 겨우 한 달이 조금 넘어서 작업실에 놀러 온 사람들한테 술 한 잔씩 내준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티셔츠는 켄이 오픈파티 포스터 만들다가 뭔가 떠올랐다면서 갑자기 보내준 일러스트로 계획된 아이템이 아니었다.
딜라이트 부산이 추구하는 음악적인 결은?
여기 매장에 있는 레코드와 내가 플레이하는 음악 모두 지금까지 디제이로 활동하면서 십여 년간 찾아낸 판들이다. 그게 결국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인 거고. 그러니까 음악적인 결은 그냥 나 자체다.
장르적 키워드로 간단히 풀어질 답변으로 예상했는데, 마이다스비츠 당신 그 자체인 공간이라는 소개가 오히려 내면에 큰 울림을 주는 것 같다.
조금 오글거린다만, 사실이니까. 모두 내가 좋아서 구매한 레코드들인 거고 이게 딜라이트의 결이라기보다 그냥 모두 내 음악인 거지.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라라랜드, 콜미바이유어네임 OST 등을 휴지에 적어서 내는 감성의 손님이 많은 것 같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런 음악이 없다. 클럽 뮤직이나 댄스튠의 12인치 싱글 레코드는 이 공간과 방향성이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웬만하면 집에 있고. 내 입맛대로 틀지만, 벌써부터 단골처럼 자주 방문해주는 손님이 생기고 있어 뿌듯하다.
딜라이트 부산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것이 있다면 뭐든 소개해달라.
부산 레코드 바에서 독특한 이벤트를 개최하는 걸 잘 못 본 것 같은데, 나에게는 서울과 부산, 일본 등의 다양한 연결고리가 있어서 그게 가능할 것 같다. 그래서 서울의 디제이 친구들이 부산을 방문한다면 베뉴를 제공해 주고 싶다. 또 해외 디제이가 항상 서울에서만 플레이하고 다른 지방은 마땅한 베뉴나 콘텐츠가 없으니까 한국을 떠나고 하는데, 이제 부산에 딜라이트가 생겼으니 딜라이트에서 플레이와 부산이라는 도시도 경험시켜주고 싶다. 모두가 예전 경대 앞 올모스트페이머스를 떠올린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향후 딜라이트, 혹은 당신의 계획은?
아무래도 여기서 믹스 작업을 주로 할 것 같다. 내년쯤에 올해 작업한 믹스가 CD와 테이프 등으로 쏟아지지 않을까. 앞서 말했듯 수요가 주로 일본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아무래도 일본에서도 활발히 활동해 보려고 계획 중. 또 시코미타자와에 도쿄 레코드 마켓에도 셀러로 참가하여 부산에도 나 같이 레코드 바를 운영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볼 생각이다.
Editor | 황선웅
Photographer | 강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