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스트리트 아티스트 #2 Jilly ballis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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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Jilly Ballistic

뉴욕의 지하철을 유심히 살펴보면, 조금은 달라진 광고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작품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 같다. 길거리를 지나다가 뭔가 이상하다 싶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알아차린다. Jilly Ballistic은 자신을 뉴욕에서 가장 유명하면서도 알려지지 않은 지하철 아티스트라고 소개한다. 지하철 내 광고판은 그녀에게 가장 좋은 캔버스다. 그녀는 도시의 광고 이미지를 새로운 작품으로 변형한다. 콜라주 기법을 활용하여 기존 이미지를 반문화적인 형태로 다시 만들어낸다.

그녀가 주로 사용하는 재료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흑백 이미지다. 과거 이미지를 현재에 위치시키는 이 작업은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더욱 진한 여운을 남긴다. 그녀의 작품은 우리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개인의 삶, 광고, 그리고 경제, 정치적 상황이 얼마나 아이러니한지 느끼게 한다. 그녀가 자주 사용하는 마스크 이미지는 전쟁을 둘러싼 불편한 현실을 상기시키는 소재다.

 

그녀의 작품은 사회적,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물음을 던질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재미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 비록 내용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는 있을 터. Jilly에게 지하철은 뉴욕이고, 따라서 뉴욕 시민은 곧 지하철의 주인인 것이다. 피로한 상태로 지하철에 오르는 뉴요커들을 놀라게 하고, 그들의 얼굴에 미소를 띠게 해주는 것은 그녀가 이 일을 사랑하는 또 다른 이유다. 뉴욕에서 살아온 그녀에게 지하철과 그라피티는 삶 그 자체였다. 그녀는 2009년부터 스프레이 페인트를 가지고 전통적인 방식의 그라피티 라이팅를 시작했다. 그라피티라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도구에 매력을 느끼고, 작업을 이어가면서 단순히 스프레이 페인트를 사용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방식을 찾았다.

살다 보면 특별한 무언가가 없더라도, 어느 순간 ‘이 일을 해야 겠다’, 혹은 ‘지금이 그 순간이다’라고 느끼는 때가 있다. 그녀 앞에는 엄청난 크기의 작업 가능 공간이 있었고, 단지 그 곳에서 어떻게 놀아야 할지 떠올랐을 뿐이다. 그 날 이후부터 그녀의 작업 스타일은 바뀌었다. Jilly가 처음 시작한 작업은 역사적인 이미지를 철학적인 구절과 합치는 방법이었다. 여기에 사용된 이미지, 텍스트는 엄청나게 작았다. 그래서 키가 작은 사람들이 지하철이나 플랫폼에 작업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무엇을 조심하고 어떤 사람을 조심해야 하는지 지하에서 작업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 시스템을 알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차츰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의 작업을 가지고 놀 수 있는 단계가 된 것. 이제는 승객이 가장 붐비는 시간대인 러시아워에도 1미터에 달하는 크기의 작품을 만들어낸다고.

그녀가 사용하는 스프레이 접착제는 들고 다니기 쉽고 또 빨리 마른다. 그녀는 무작정 그림을 붙이지 않고, 모든 작품에 맞는 장소를 미리 정해둔다. 평소처럼 지하철을 타고 지나다니다가 눈에 띄는 장소나 광고판을 발견하면, 그 때 어떤 것을 붙일지 영감을 받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것을 보고, 계획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게 그라피티, 스트리트 아트의 묘미라고 이야기한다. 무엇보다도 스트리트 아트가 즐거운 이유는 일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

 

그녀가 영화 이미지에 작업하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이다. 그녀는 현재 디지털 라이프스타일을 직접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옮기고 싶었다고 한다. 요즘 우리가 사회에 반응하는 방식은 버튼을 누르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좋아요’, ‘삭제’, ‘취소’ 버튼으로 일상적인 소통을 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작업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광고판의 버튼을 누르는 행위를 통해 그녀의 작품에 반응한다. 단순히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이 바보 같은 광고물’을 생산해내는 창작자와 소통을 하는 것이다. 이 도시는 자본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고, 우리는 광고에 노출되어 있다. 지하철 칸 바로 옆부터 내가 사는 집까지. 그녀는 광고물에 부착하는 작업을 통해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하려 한다.

작업 중 가끔 Anti-Graffiti 경찰 집단인 Vandal Squad를 만날 때도 있지만,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협조적으로 대응한다고.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녀는 지하철을 캔버스 삼아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낸다. 뉴욕에서 태어난 그녀에게 지하철은 곧 오롯한 삶을 의미한다. Jilly는 뉴욕의 더러운 지하철을 갤러리로 바꾸어 놓았다. 지하철에서 태어난 그라피티의 근본을 그녀가 다시 일깨워주고 있는 셈. 언제 작품이 뜯어질지는 모르지만, 뉴욕 시민들은 지하철에 올라탈 때마다 그녀의 작품이 설치된 갤러리 티켓을 사는 것과 다름없다.

Jilly ballistic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여성 스트리트 아티스트 #3 Lady Pink

정혜인
VISLA Art Feature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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