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Rider #1 우종문

속도에 대한 끝없는 인간의 욕망, 이는 사물의 발전으로 치환되어, 무수한 ‘탈 것’을 탄생케 했다. 떠올려 보면, 태어나 걸음마를 떼기 전의 유모차부터 속도의 재미를 처음으로 느끼는 유년기의 자전거, 그리고 스쿠터와 오토바이, 자동차와 같은 고속의 교통수단까지, 우리는 언제나 속도를 동경하고 있다. 꼭 포뮬러1과 같은 극한의 레이스가 아니어도 무엇인가를 타고 달리는 행위는 그 자체로 즐겁다. 라이딩의 즐거움은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시티 라이더(City Rider)’는 이러한 의문에서 출발했다. 다양한 탈 것만큼 다양한 라이더가 있고, 그들이 느끼는 재미 또한 각양각색일 것. 시티 라이더 첫 화의 주인공은 ‘자전거’로 서울 곳곳을 누비는 사이클 라이더 우종문이다. 그는 자전거를 통해 어떤 즐거움을 얻고 있을지, 아래의 인터뷰에서 확인해 보자.


이전 볼트(Bolt) 인터뷰 이후 두 번째 만남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여전히 볼트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최근에는 볼트 스토어 이전으로 뜻하지 않은 휴가를 보내는 중이다.

자전거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지니게 된 때는 언제인가.

2008년쯤 스트리트 웹진을 보다가 ‘픽스드 기어 바이크(Fixed Gear Bike)라는 자전거를 알게 됐다. 기어변속기와 프리휠이 없는, 내가 알던 자전거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장르였지. 당시에는 힙스터만 타는 신기한 자전거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학창 시절을 일산에서 보냈는데, 호수공원 건너편에 미광 광장이라는 곳이 있다. 픽시나 BMX 라이더, 스케이터가 모이는 일종의 스팟으로 자전거도 없으면서 괜히 거기 나가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과 말도 섞고, 같이 놀고 그랬다. 하하. 그러다가 자전거를 한 대 샀고, 그 이후로는 주말마다 공부 안 하고 온종일 자전거만 타러 다녔다.

당시 픽시의 인기가 엄청났던 걸로 기억한다. 하위문화를 좋아한다면, 뭔가 자전거 한 대쯤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이지 않았나.

내가 자전거에 더 빠져든 계기도 하위문화에서 비롯했다. 당시 내 또래 남자애들은 축구나 농구를 하거나, 피시방에 가서 게임을 하는 게 주된 관심사고 놀이 문화였는데, 난 그런 것에 별 흥미도, 소질도 없었다. 자연스레 그런 커뮤니티에서 소외되는 느낌을 받았지. 집에서 건담 같은 애니메이션 보고, 레고 조립하는 오타쿠 같은 학생이었다. 픽시를 타면서부터 내 삶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직접 정비하고, 또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는 이들이 모여서 크루를 이루는 문화가 너무 재밌었거든. 유년기에 느꼈던 순수한 즐거움을 다시 찾은 느낌이랄까.

이후 픽스드 기어 바이크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그런 문화, 시장 또한 조금의 침체기를 겪은 것 같은데.

맞다. 어느 순간 픽스드 기어 열기가 식고, 그 향유층이 십 대로 넘어가며, 이전과는 다른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픽시의 인기가 하향세로 접어들 때는 나도 자전거를 가지고만 있었지, 자주 타지 않았다. 그래도 자전거에 관한 관심은 계속 지니고 있었는데, 2019년 중반쯤 미국이나 일본의 바이크 숍과 유저가 과거의 픽스드 기어나 사이클로크로스(Cyclo-Cross)를 도시에서 탈 수 있는 커뮤터 스타일 바이크로 개조하고 커스텀하는 걸 보게 됐다. 그런 움직임을 보고 불씨가 지펴져 이베이(eBay)로 부품 사고, 커스텀하며 다시 자전거에 대한 애정을 키워나갔다.

자전거가 정말 많은데, 특별히 아끼는 모델이 있나?

지금 있는 자전거만 해도 거의 30대에 육박하지만, 그래도 딱 한 대의 자전거로 즐겁게 타던 추억이 각별하다. 2017년에 처음 샀던 설리(Surly) 바이크가 그 자전거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전거 중 가장 오래되기도 했고, 장거리 라이딩도 다니고, 찌는 듯한 한여름에 메신저도 해봤다. 설리와 함께 이것저것 많이 경험하면서 여기저기 많이 다녔다. 가진 것 중 가장 비싸거나, 성능이 좋은 자전거는 아니지만, 애정이 깊다.

장거리 투어의 목적지는 어디였나?

자전거 메신저 업체 긱쿠리어(Gig Courier)를 운영하던 시절, 동업하던 친구와 충남 홍성까지 장거리 라이딩을 했다. 옛날 서울에도 자전거 메신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환경운동가가 운영하던 자전거 메신저 회사가 있었는데, 그분이 홍성으로 귀농했다. 그때 당시의 자전거 메신저는 어땠을까 궁금해 직접 만나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었다. 고속버스를 타고 평택역에서 내려 70~80km의 거리를 달렸다. 그때 기온이 영하 12도였는데, 하루를 꼬박 달려 도착했다. 하하.

자전거 조립에도 일가견이 있는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품은 무엇인가?

첫 번째로는 자전거의 얼굴인 핸들바. 핸들만으로도 자전거를 타는 포지션, 그리고 분위기가 굉장히 많이 달라진다. 일반적인 로드, 픽스드 기어 바이크는 드롭바가 달려있는데, 그런 자전거는 상체를 굽히고 타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빠르게 달릴 수는 있지만, 포지션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이럴 때 핸들을 플랫바 계열로만 교체해도 편하게 탈 수 있지. 두 번째는 역시 프레임이다. 크로몰리부터, 하이텐 스틸 등등 그 소재도 용도에 따라 각기 다르다. 특히, 나는 커스텀을 즐기기 때문에 다양한 사이즈의 휠과 타이어를 장착할 수 있는지, 다단기어에서 싱글기어로 변환이 가능한지 등 범용성까지 고려하는 편이다.

자전거 정비는 어떻게 익혔나?

자전거 커스텀에 관심 있던 시절, 여러 숍에서 정비를 받아도 해결되지 않는 소음 문제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해외 사이트를 디깅한 결과, 그게 특정 부품 자체의 고질적인 결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해당 부품은 국내에서는 많이 쓰이지 않는 시마노(Shimano)의 싱글 프리휠이었는데, 보통 프리휠은 픽시에 서비스로 장착한 부품 정도의 취급을 받아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정비를 받거나 정보를 얻기 힘들었던 거지.

이런 경험을 몇 차례 겪은 후 직접 부딪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전거 정비 학원에 등록해 수강도 하고, 무작정 자전거 숍에 찾아가 견습생으로 일하면서 기본적인 정비 지식을 얻었다. 또 수십 대에 이르는 중고 자전거를 구매해 분해하고 조립해 보기도 했다. 사실, 전문 미케닉에는 한참 못 미치는 실력이다. 다만,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인 싱글 스피드나 빈티지, 클래식 바이크는 기술적인 부분 외에도 오래된 부품의 호환성이나 잊혀진 매뉴얼 등을 체크해야 하기 때문에 보통 남들은 알려고 하지 않는 정보를 조금 더 알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빈티지 MTB가 세계 각지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19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을 MTB의 황금기라고 생각한다. 당시 미국이나 유럽, 일본과 같은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에서 MTB 붐이 일어났거든. 처음에는 마운틴 바이크라는 명칭을 주로 썼는데, 그러면 산에서만 타야 할 것 같으니 전지형이라는 뜻의 ‘올터레인(All Terrain)’이라는 용어를 앞세워 ATB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렇게 레저용 자전거의 열풍이 시작됐다.

중산층 가정에서는 집마다 하나씩은 있어야 하는 그런 물건이 돼 미국과 유럽, 일본에 ATB가 엄청 보급됐다. 의류든, 뭐든 보통 20년 정도가 지나면 ‘빈티지’라는 칭호를 얻게 되지 않나. 80~90년대 등장한 무겁고, 촌스러운 ATB가 이제 빈티지 바이크의 반열에 오른 거다. 10년 전만 해도 이베이나 동네 개러지 마켓에서 적게는 몇십 달러에 판매되던 자전거였는데, 그 가치를 일찍이 알아챈 자전거 애호가, 그리고 힙스터가 프레임을 사들이고, 리스토어하면서 유행의 시작을 알렸다. 2010년 이후에는 80~90년대 ATB를 위시한 스몰 개러지에서 커스텀 바이크를 제작하며 패션과 결합한 또 다른 장르로 안착했다.

최근 자전거 관련해 일본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그곳 역시 빈티지 아카이브가 무수한데, 어떤 걸 좀 느꼈나.

일본은 정말 모든 분야의 아카이브가 넘쳐나는 곳이다. 일단, 자전거를 타는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더라. 통계를 보면 일본인 2명 중 1명이 자전거를 소유하고 있다는데, 아침에 숙소 문을 나서면 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자전거로 출근하는 행렬이 쭉 이어진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타니 그 안에서 또 자신만의 개성과 취향이 드러날 수밖에. 자전거 업체 또한 그들의 요구를 잘 반영해 새로운 문화를 선도해 나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한국도 자전거를 많이 타지만, 아직 라이프스타일보다는 레저의 일환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 같다.

그게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도시의 역사를 떠올려보면, 도시라는 개념이 서구권에서 시작되었는데, 도시 속 탈 것이 처음에는 마차였다가, 자전거가 발명되었고, 그다음은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게 되었지. 그래서 그런지 서구권 도시는 자전거가 도로의 불청객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함께 존재한 탈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 근데, 한국은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면, 뭔가 민폐를 끼치는 행동처럼 느껴지지. 차량의 배려도 부족하고, 자전거를 타는 이도 두려움을 느껴 도시에서의 라이딩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

공공자전거 따릉이의 등장으로 자전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조금은 개선되고 있지 않나.

출퇴근 시간에 청계천 자전거 도로 근방에 가보면, 따릉이의 출퇴근 행렬을 볼 수 있다. 소유나 도난에 대한 부담이 없다는 점이 좋다. 나도 미처 자전거를 끌고 나오지 않았을 때는 따릉이를 애용한다. 어떤 식으로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아지면 운전자와 자전거 사이의 인식 격차를 줄이는 데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운영 중인 블로그에서 2008년부터 2011년까지를 한국 자전거 시장의 황금기라고 언급했는데, 아까 이야기한 픽스드 기어 바이크와 이어지는 맥락일까?

정확한 시기를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그즈음인 것 같다. 당시 픽스드 기어 바이크 외에도 여러 장르의 자전거가 국내에 많이 수입됐다. 또, 그때 정부가 한강에 자전거도로도 개설하고, 자전거 편의 관련 정책도 여럿 추진했다. 클래식 바이크와 비치 크루저 등 일본, 유럽 스타일의 자전거 문화를 표방한 숍도 많았다. 홍대만 해도 열 곳의 픽스드 기어 숍이 있었으니까. 수입사, 숍에서 대중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정말 다양한 자전거를 소개했다. 이후 거품이 조금씩 빠지면서, 취사선택을 받은 특정 장르만 남게 된 거지.

도시에서 자전거를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본인만의 팁이랄 게 있다면?

라이딩이 목적이 아닌 목적을 위해 라이딩하는 것. 동네 마트에 장을 보러 가거나 식당을 찾아다니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익숙해졌다면 출퇴근이나 교외까지 짧은 모험을 떠나는 것도 추천한다. 자전거가 지닌 이동 수단으로서의 가능성을 마음껏 펼쳐 봤으면 좋겠다. 다소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요즘 포켓몬고를 플레이하는 데 자전거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자전거를 탈 때 주로 어떤 스타일의 옷을 입나, 본인만의 라이딩 플레이리스트 같은 게 있는지도 궁금하다.

무조건 편하게 입는다. 넉넉한 사이즈의 리바이스나 디키즈 팬츠 위에 티셔츠 정도. 스니커는 아디다스 삼바나 반스 스니커처럼 페달에 아웃솔을 최대한 밀착할 수 있는 모델을 신는다. 플레이리스트가 딱히 정해져 있지는 않다. 출근길에는 뉴오더(New Order)나 토킹 헤즈(Talking Heads) 같은 경쾌한 신스팝이나 포스트 펑크 장르를 듣고, 교외의 느긋한 라이딩에서는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의 앰비언트나 스테레오랩(Stereolab)을 듣는 식이다. 최근에는 일본에 다녀온 뒤 스피츠(Spitz)의 “Robinson”이라는 곡을 많이 들었다.

빈티지 바이크, ATB가 유행이지만, 또 그런 자전거를 타려면, 정비나 부품에 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런 고민 없이 편하게 탈 수 있는 자전거를 추천한다면.

해당 장르에 대한 관심도가 높지 않거나 예산이 부족하다면, 무작정 빈티지 바이크를 사는 것보다는 최근 메이저 자전거 브랜드에서 선보이는 하이브리드 자전거로 입문하는 걸 추천한다. 인스타그램이나 각종 패션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멋진 빈티지 ATB도 좋지만, 핸들바나 휠, 타이어만 교체해도 빈티지 바이크와 비슷한 무드의 자전거를 완성할 수 있다. 요즘 나오는 하이브리드 자전거도 나름 과거 ATB의 DNA를 물려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우선 하이브리드 바이크로 자전거의 재미를 좀 느낀 후 더 깊게 자전거를 타보고 싶을 때 다시 투자해도 되는 거니까. 나도 가끔 캐니언(Canyon)의 커뮤터나 캐논데일(Canondale)의 배드보이(Badboy) 같은 현대적인 하이브리드 모델을 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최근에 새롭게 빠진 자전거 장르가 있는지.

요즘 스코처(Scorchers)라는 장르에 빠져있다. 간단히 말해서 픽스드 기어 바이크에 두꺼운 타이어를 끼우고 안쪽으로 휘어진 크루저 핸들바를 장착한 자전거다. 이게 빅토리아 시대, 그러니까 1900년대 초반 브레이크도, 프리휠도 없는 자전거만 존재하던 시절 얘기다. 그때 자전거를 타고 난폭하게 도로를 누비는 폭주족, 갱 같은 집단을 스코처라고 불렀다.

이 이야기에 감명받은 미국의 웨스 윌리엄스(Wes Williams)라는 사람이 80년대부터 로드 자전거를 스코처 스타일로 개조하기 시작했고, 아이비스(IBIS)라는 MTB 제조 회사에서 일하면서 90년대에 한정으로 기존 제품 라인업과는 동떨어진 ‘아이비스 스코처’라는 모델을 만들었다. 그 전후로 해서 하나의 컬트적인 장르로 남게 된 것 같다. 사실 스코처라고 거창한 게 아니다. 그냥 가지고 있는 픽스드 기어 바이크에 두꺼운 타이어 끼우고, 클래식한 핸들바만 장착해도 된다. 나도 이미 가지고 있는 프레임으로 하나 만들어 볼 요량이다.

본인의 자전거 라이프스타일에 큰 영향을 끼친 이가 있나.

내 자전거 멘토라고 하면 세 명이 있다. 한 명은 어떤 자전거 커뮤니티에 가든 항상 언급되는 쉘던 브라운(Sheldon Brown). 클래식, 빈티지 바이크 미케닉의 구루처럼 일컬어지는 분으로 2008년 돌아가셨다.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자신의 이름을 걸고 ‘https://www.sheldonbrown.com’이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는데, 마치 자전거 위키디피아처럼 부품부터 규격 등 다양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기술해 놓은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나도 뭔가 모르는 게 있으면 거기서 검색부터 해보곤 했지.

또 한 명은 그랜트 피터슨(Grant Peterson)이라는 인물이다. 리븐델 바이시클 웍스(Rivendell Bicycle Works)라는 바이크 브랜드의 설립자이자 자전거 개발자로 잘 알려져 있다. 1980~90년대에는 브리지스톤(Bridgestone) 미국 자전거 지부에서 자전거 디자인과 기획을 맡았던 사람인데, 당시 빈티지, 클래식 바이크를 바탕으로 한 자전거를 선보이며, 퍼포먼스 중심의 스포츠, 레저 카테고리에 속해있던 자전거를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의 영역으로 많이 끌어왔다.

마지막으로 톰 리치(Tom Ritchey). 프레임 빌더로, 자신의 이름을 건 리치 바이크(Ritchey Bike) 또한 전개하고 있다. 내가 MTB 초창기 장면에 관심이 많은데, MTB 신(Scene)의 선구자 중 한 명이다. 로드바이크 프레임을 제작하던 노하우를 바탕으로 초기의 산악 자전거 개발에 크게 공헌했다. 클래식, 빈티지 자전거라고 하면 이탈리아 기반의 로드 바이크밖에 몰랐던 시절에 우연히 접한, 리치를 비롯한 미국발 MTB의 역사와 문화는 내게 큰 충격이자 전환점으로 다가왔다. 어쩌다 보니 리치 사이클로크로스 자전거, 심지어 그의 피규어까지 소유하고 있다.

건담의 컬러웨이에 맞춰 빌드한 자전거가 인상 깊은데, 평소 좋아하는 문화를 자전거에 많이 녹이는 편인가?

그 사진은 약간 끼워 맞추기식의 장난 같은 거지만, 만화 ‘겁쟁이페달’ 초반부 주인공인 오노다가 자전거를 타며 “마치 모빌 슈트에 타고 있는 것 같아”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건담과 자전거 모두 좋아하는 입장에서 너무 공감 가는 대사라 만화를 본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왜, 빨간색 자전거를 타면 세 배는 빨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나.

“구니스(Goonies)”나 “오버 디 에지(Over The Edge)” 같은 70~80년대 미국 소년들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 슈윈 스팅레이(SCHWINN STING-RAY) 자전거를 타고 활개 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 장면들에서 영향을 받아 스팅레이를 구매해 BMX 스타일로 커스텀하기도 하고, 비슷하게 BMX를 타는 악동이 나오는 하모니 코린(Harmony Korine)의 “구모(Gummo)”를 보며 뭔가 나도 자전거를 탈 때 저런 이미지로 비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고. 하하. 이런 식으로 좋아하는 것들 사이에서 접점을 찾고 영향받는 것도 재밌다.

현재 자전거 숍 매니저로 일하고 있지 않나, 취미와 일의 경계가 없어 좀 지루해질 때가 있지는 않나.

쉴 때나 일할 때나 하는 게 똑같다. 국내외 웹사이트에서 자전거랑 부품 들여다보고, 필요한 게 있으면 구매하고, 숍에서 팔 만한 게 있으면 판매, 수입을 제안하기도 한다. 딱히 일이라고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남는 시간이나 퇴근 후에는 숍에서 내 자전거를 정비하거나 작업할 수도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집도 내 편의보다는 자전거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아직은 더 알고 싶고 배울 점이 많다고 느껴서인지 이런 관심사를 계속 이어가며 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수십 대의 자전거를 가지고 있는데, 아직도 드림 바이크랄 게 있는지.

예전에는 갖고 싶은 자전거가 좀 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딱히 없다. 비싼 거, 귀한 거 이런 건 사실 좀 부담스럽다. 오히려, 드림 바이크라고 할 만한 자전거에서 영향을 받아 직접 부품을 구하고, 조립하면서 타는 게 더 재미있다. 아까 얘기한 스코처처럼 가지고 있는 자전거의 핸들바만 바꿔도 충분히 새롭게 즐길 수 있으니까. 그래도 굳이 가지고 싶은 자전거를 꼽자면, 옛날 리븐델의 싱글 스피드 프레임이나 리치의 초창기 MTB는 조금 탐이 난다.

앞으로 자전거를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나중에 독립해 작은 자전거 숍을 열고, 국내에서 생소한 마이너한 제품이나 문화를 소개하고 싶다. 지금도 ATB나 다양한 스타일의 자전거가 유행하면서 전에 없던 자전거 숍이 서서히 생겨나고 있고, 그들의 노력으로 국내 시장에서도 다양하고 재미있는 제품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곧 제2의 황금기가 찾아올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한때의 유행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지속 가능한 자전거 신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우종문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 | 오욱석
Photograpy | 장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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