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왔습니다 – #1 도리무란도

‘오타쿠’란 본디 특정 대상에 무한한 관심을 가지고 파고드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데, 좁은 의미에서는 ‘재패니메이션’과 만화 팬들을 지칭한다. 오타쿠라는 단어는 그간 다소 경멸적인 뉘앙스로 사용돼 왔지만, 최근 들어 그런 경향이 다소 수그러들고 있다. 꼭 재패니메이션이나 미소년이 아니어도 모두 자신만의 관심 분야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위안이 되는 대상이 아이돌이든, 프로야구든, 애니메이션이든 큰 상관이 없다.

오타쿠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점차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한 가지에 몰두하는 오타쿠의 습성이 장인정신과 흡사한 측면이 있다고 여겨지고 있기 때문. 또 최근 몇 년간 대중문화가 이를 받아들여 재패니메이션 스타일의 굿즈를 케이팝 아이돌이 착용하는 등 진입장벽이 낮아진 이유도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오타쿠들이 가는 장소들이 용산 전자상가와 국제전자센터 정도였다면 이제는 꽤 다양한 장소에서 이를 즐길 수 있다. 최근 홍대 경의선숲길로 이사한 오타쿠 칵테일바 ‘도리무란도’를 찾아 이곳의 운영진 김종성, 임세리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화려한 칵테일과 인테리어, 그리고 그들의 생각을 하단에서 함께 확인해 보자.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종성: 반갑다. 오타쿠 칵테일바인 도리무란도를 운영하는 김종성이라고 한다.

세리: 함께 도리무란도를 운영하는 임세리라고 한다.

도리무란도는 어떤 곳이고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종성: 애니메이션, 만화를 주제로 한 칵테일을 만들고 관련 굿즈도 판매하고 있다. 또 종종 코스프레 파티 같은 행사도 하는 곳이다.

세리: 종성과 나는 대학교 조교 일을 하다 인연이 되어 10년 정도 사귀고 있다. 둘 다 오타쿠인지라 하츠네 미쿠 콘서트 영상도 같이 보고, 애니메이션 얘기를 안주로 술도 많이 마셨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해보자 해서 상수동에 작게 애니메이션 관련 칵테일 바를 만들게 되었지. 최근 홍대로 이사 왔다.

도리무란도를 시작하기 전에도 술을 만들고 요리를 했었나.

종성: 술은 아니지만 나는 일본에서 라멘집, 횟집 등에서 일을 했었지.

세리: 나는 카페, 레스토랑들에서 일을 했다. 술은 우리가 좋아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마셨는데, 이런 재미를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오타쿠 문화에는 어떻게 빠지게 되었나.

종성: 어렸을 때 TV로 많이 접했다. 초등학교 시절 재패니메이션 열풍이 불어 형과 함께 “마법 소녀 리나(슬레이어즈)”, “세일러문” 등을 보고 자랐다. 고등학생 때는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이라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 일주일에 한 번, 밤 10시에 방영했는데 그 시간에 가족들이 다른 프로그램을 보았기 때문에 점점 보고 싶다는 갈망이 커졌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게 됐지.

세리: 초등학교 때 언니 오빠들과 함께 “이누야샤”, “나나”, “피치걸” 등을 봤다. 스마트폰도 없고, 인터넷도 자유롭게 할 수 없었으니 자연스럽게 TV나 만화방 정도에 있던 콘텐츠들을 즐기게 되었다. 아무래도 그때 영향이 큰 것 같다.

그 당시 혹은 지금까지 즐기는 만화, 애니메이션의 매력은 뭘까.

세리: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다루는 주제와 내용들이 다양하고 표현에 제약이 적은데 그런 점이 좋다. 내가 힘들 때 위안이 되어주기도 했고.

종성: 만화적 상상력을 사람의 손으로 표현한다는 점이 좋다. 예를 들어 “천원 돌파 그렌라간”을 보면 은하계를 던지는 등의 설정이 있는데 이를 실사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는 기술이 좋아져 CG나 AI 등으로도 표현할 수 있겠지만, 만화는 조금 더 사람의 손길이 직접적으로 묻어있어 작화가들의 감정을 바로 느낄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점이 회화를 전공한 나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몇 개를 말해달라.

세리: 나는 “은혼”, “나츠메 우인장”을 꼽고 싶다. 인생을 담은 작품이지.

종성: 최근 본 작품 중 감명 깊었던 것은 “86 -에이티식스-“. 신념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데 나를 포함한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아사노 이니오의 “잘 자, 푼푼” 역시 아주 좋아한다. 굉장히 뒤틀려 있고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가 많은 만화지만 이게 꽤 현실적이다. 만화가 아니라 문학작품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도리무란도는 애니메이션 팬들을 위한 시그니처 메뉴들을 계속 개발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특히 마음이 가는 메뉴를 말해달라.

종성: 나는 ‘무라사키’를 꼽고 싶다. “퀸 오브 하트”라는 미소녀 전투 게임이 있는데 이를 오마주했지. 여기에 나온 보라색 캐릭터들을 생각하며 만들었다. 신비하며 강하고 상큼한 맛을 내기 위해 많이 고민했다. 포도, 블루베리, 위스키 등을 배합해 만들었다.

세리: 나의 경우는 ‘토미에’. 어렸을 때부터 이토 준지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내는 술을 만들고 싶었다. 어떻게 구현하면 좋을지 약 2년간 고민했다. 어항 같은 잔을 만들고 싶었기에 잔도 주문 제작하였다. ‘소용돌이’ 역시 많은 생각을 했기 때문에 정이 많이 간다.

홍대 AK플라자를 중심으로 그 근방이 일종의 오타쿠 지역, 피규어 거리처럼 되어가고 있다고 여겨지는데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세리: 오타쿠 문화가 음지에 있었지만 이제는 양지로 나온 느낌이 든다.

종성: 예전에는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피규어 등 오타쿠 문화를 즐길만한 곳이 용산과 서초 국제전자센터 정도였다면 지금은 신도림과 홍대까지 확장되었다고 본다.

가게 인테리어 소품들이 엄청나다. 전부 개인 소장품인가.

세리: 그렇다. 버는 돈을 다 소품에 쓴다.

종성: 손님들이 기증하는 경우도 꽤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잊지 않기 위해 소품에 사인을 받는다.

그간 누군가 소품을 훔쳐 간 적이 있는가?

세리: 한 번도 없다. 어떤 소품이 안 보이면 그 뒤에 떨어져 있는 정도.

종성: 주로 예약제로 운영을 하기에 손님들과 친구 같은 사이라고 보면 된다.

앞으로 또 신메뉴 개발 생각이 있는가.

세리: 신메뉴 출시 없이 계속 멈춰있지 않으려고 꾸준히 노력한다.

종성: 손님들이 먼저 신메뉴 요청을 하고 얘기도 많이 하는 편이다. 우리는 이런 손님들과 애니메이션, 피규어, 술 얘기를 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도리무란도에서 했던 특히 기억에 남는 이벤트를 말해달라.

세리: 상수동에 있었을 때는 바가 꽤 작았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께서 재미있고 예쁜 코스프레를 하고 오셔서 꿈만 같았다.

종성: 나는 핼러윈 파티.

가게에서 자주 트는 음악이 있다면 어떤 음악들인가? 또 개인적으로 요즘 즐겨 듣는 음악을 소개해 달라.

종성: 도리무란도에서는 애니음악 이외에도 동인음악, 전자음악, 시티팝 등 여러 가지 음악들을 튼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우타이테 음악부터 게임음악, 보컬로이드까지 다양한 장르를 들려주려 한다.

세리: 요즘 자주 듣는 음악은 ‘유노미의 게임오버(Yunomi – ゲームオーバー)’, ‘구미의 캐치 유 캐치 미(Gumi – Catch You Catch Me)’이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말해달라.

종성: 플리마켓 같은 오프라인 이벤트들을 해보고 싶다.

세리: 상수동에 있을 때는 가게가 몇 평 안 되는 작은 공간이었기에 그런 이벤트를 편하게 하기 힘들었다. 오픈 초기에 방석도 없이 우유 박스에 앉으셨던 손님들께 죄송하다. 손님들과 함께 코스프레 파티 같은 재미있는 기획을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종성: 언더그라운드, 서브컬처 등에 관심을 둬줘서 항상 감사하다. 비즐라 독자분들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세리: 도리무란도는 그런 분들을 위해 만들었다. 자신의 취향이나 생각에 대해 웃고 떠들 수 있는 공간이라 생각한다.

DORIMURANDO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 Photographer | 장지원

RECOMMENDED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