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의 떠오르는 3D 아티스트 ENTITETA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미래적이면서도 소위 ‘쇠맛’을 필두로한 3D 작업물이 범람하는 요즘,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2000년대 초의 어설픈, 그래서 더욱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3D 영상 작업물이 대두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AI로 생성한 PS2 필터가 SNS를 뒤덮은 일도 놀랍지 않다.

그리고 최근 또 한 명의 신예 3D 아티스트가 이에 기름을 부으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코와 입은 온데간데없고 얼굴의 절반을 차지하는 눈망울(심지어는 눈코입이 없는 캐릭터도 존재한다)과 형광색의 머리, 뭉툭한 손끝과 짧둥한 비율 그리고 다소 불량한 차림새까지. 마치 게임 “소닉 더 헤지혹” 속 동그란 구에 갇힌 듯한 캐릭터는 브레이크 댄스를 추며 본인의 춤선을 자랑한다. 지난 몇 년간 이 앙증맞은 캐릭터의 조물주 역할을 해온 주인공은 슬로베니아 출신의 아티스트 엔티테타(Entiteta)로, 3D 작업 프로그램 블렌더(Blender)를 사용해 독보적인 세계관을 완성해 가고 있다. 22살의 젊은 나이라는 걸 감안하면 그가 게임, 만화를 즐길 나이에는 이미 레트로한 그래픽이 멸종한 시절을 보내지 않았나 싶기도 하지만, 그가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는 슬로베니아의 도심 외곽(그의 말을 빌리자면)에서 자란 걸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이 가기도 한다.

본인의 작업물과 짧은 설명만을 업로드하는 그이기에 그 정체가 그간 베일에 쌓여왔지만, 그의 작업 세계를 디테일하게 파헤친 오버스탠다드(OVERSTANDARD)와의 인터뷰 덕에 많은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작업의 모든 과정을 독학으로 습득한 그가 그래픽 디자인을 시작한 건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으로, 포토샵을 이용할 당시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에 자유로운 움직임을 가하는 것에 한계를 느껴 블렌더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독학으로 기술을 습득한 여느 반골 기질의 작업자처럼 엔티테타에게 역시 3D 모델링 이론은 관심 밖이었고, 오로지 그가 구현하는 짧은 영상 안에서 관객의 호기심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에만 초점을 두고 작업을 진행했다. 그렇기에 그의 캐릭터는 조금 둔하게 움직일지라도 더욱 감정적이다.

엔티테타의 작업물에서 가능성을 본 이들은 일찌감치 그의 세계관에 빠져들었다. 드레드 헤어와 총, 선글라스, 금목걸이 등 다소 힙합스러운 냄새를 풍기던 엔티테타의 작업물은 신(scene)의 가장 중심에 있는 이들까지도 순식간에 끌어당겼는데, 래퍼 릴 우지 버트(Lil Uzi Vert)가 피처링으로 참여한 스카이워터(Skaiwater)의 “miles” 오피셜 비주얼라이저를 그가 맡게 된 것. 누가 봐도 ‘갱’스러운 두 캐릭터가 밤하늘의 별을 천체망원경으로 관측하는 감수성 넘치는 모습은 릴 우지 버트의 후렴과 완벽히 어우러지며 팬들의 환호를 이끌어 냈다. 이외에도 루이 비통(Luis Vuitton) 쇼에 선 퍼렐의 모습이나 래퍼 Ufo361을 위한 작업만 봐도 힙합에 대한 그의 애정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엔티테타의 작업물 속 캐릭터는 얼핏 단순한 듯한 구조를 하고 있지만, 이들의 차림새를 낱낱이 뜯어보면 패션에 관한 엔티테타의 관심을 다분히 엿볼 수 있다. 형형 색색의 염색과 스파이크 헤어 등의 펑크 스타일은 물론, 루이 비통, 디젤(Diesel) 등의 전통적 패션하우스 그리고 오피움(OPIUM), WOJO를 비롯한 스트리트 브랜드까지도 폭넓게 섭렵하고 있는 그다. 엔티테타는 브랜드의 스타일을 단순히 본인의 세계관에 녹여내는 걸 넘어 3D 작업물을 선보인 지 불과 3년이 채 되지 않은 지금 다양한 협업을 이뤄내고 있다. 일례로 힙합 문화를 뿌리로 둔 뉴욕의 신진 브랜드 Leollii를 위해 게임 캐릭터 선택창을 테마로 한 애니메이션 제작했으며, 낫노운(NOTKNOWN)의 런웨이를 숏 필름으로 펼쳐내기도 했다. 애초에 엔티테타가 그래픽 작업을 시작한 이유가 옷을 좋아해서였다고 하니 이 같은 작업물을 펼쳐내는 것이 당연한 것일지 모르겠다.

엔티테타는 10초 남짓 분량의 영상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개하고 있지만, 그의 창의적인 상상력과 작업 세계를 온전히 느껴보길 원한다면 그가 제작한 짧은 단편 영상을 시청해 봐도 좋겠다. 애니메이션 “주술회전 2″의 오프닝을 그만의 스타일로 탈바꿈한 영상과 더불어 단편 영상 시리즈 “VISIONS”는 엔티테타의 작업을 심도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렌즈가 될 것. 본인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현재까지 두 편의 “VISIONS”를 공개한 엔티테타지만 안타깝게도 현재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짧은 클립만을 확인할 수 있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분량에서 느껴지는 강렬함이 단숨에 두 눈을 사로잡는다.

음악, 패션, 아트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새로운 세상을 구축해 가는 슬로베니아의 떠오르는 아티스트 엔티테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뽐내며 벌써부터 여러 아티스트의 러브콜을 연이어 받고 있는 그의 가능성을 지켜보는 것도 퍽 흥미로울 것.

ENTITETA 인스타그램 계정


이미지 출처 | ENTIT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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