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팬들의 애간장을 녹이던 밴드 혁오가 4년 만의 깜짝 복귀를 알렸다. 대만 밴드 선셋 롤러코스터(Sunset Rollercoaster)와의 프로젝트 팀 AAA로 돌아온 이들은 협업 앨범 [AAA]의 정식 발매에 앞서 7월 한 달간 8개의 수록곡을 차례로 공개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두 팀의 나른한 사운드를 조화롭게 녹여낸 “Antenna”를 발표했는데, 홍콩의 싱어송라이터 리아 도우(Liah Dou)와 대만 배우 허광한(Kuanghan Hsu)이 참여, 청춘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뮤직비디오 또한 함께 공개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리아도우는 영화 “중경삼림”으로 홍콩영화의 아이콘이 된 왕페이(Faye Wong)의 딸로, 두 배우가 함께한 영상은 다분히 아련한 느낌을 풍긴다.
현실과 디지털 그리고 미니 세트를 넘나드는 Rafhoo의 감각적인 연출과 더불어 이들의 의상 역시 주목해 볼만 한데, 특히 허광한과 카메오로 출연한 오혁과 쿠오(Kuo) 삼인조의 빈티지한 탁구 유니폼에 주목해 보자. 탁구공의 스톱 모션과 함께 시간이 멈춘 듯 정지해 있는 세 사람의 유니폼이 청량하면서도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가운데, 오혁이 착용하고 있는 모자가 유니폼의 출처를 유추해 볼 수 있게 한다. 바로 미국 LA를 기반으로 탁구를 테마로 한 스포츠웨어를 선보이는 브랜드이자 탁구 커뮤니티 리틑 도쿄 테이블 테니스(Little Tokyo Table Tennis), 일명 LTTT.
LTTT는 도쿄의 한 작은 탁구장에서 탁구 동호인들이 실제 입을 법한 유니폼을 그들만의 유쾌한 방식으로 전개해 왔다. 일본계 미국인 디자이너 지로 마에스투(Jiro Maestu)가 2021년 설립한 LTTT는 올가을 3주년을 맞는 신생 브랜드이지만 탁구를 기반으로 이들이 풀어내는 다채로운 이야기는 짧은 시간 동안 LA를 넘어 세계의 많은 이들을 사로잡으며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볼드한 브랜드 로고와 “小東京卓球”가 자수로 박힌 캡으로 이름을 알린 LTTT지만, 이들의 진짜 힘은 단순 패션브랜드로 남기보다 하나의 커뮤니티로 기능하려는 데 있다. 브랜드 시작 초기부터 현재까지, 매주 화요일 LA에 위치한 테라사키 부도칸 체육관(Terasaki Budokan)에서 LTTT가 주최하는 탁구 동호회 이벤트에는 10대부터 50대까지, 200여 명이 넘는 탁구 애호가는 물론, 패션을 비롯한 문화계 사람들이 찾아 함께 어우러진다. 이들과 함께 호흡하는 LTTT는 프로그램을 찾은 고등학생들의 관심에 힘입어 실제 이들이 자신만의 탁구 클럽을 시작하도록 돕기도 했다.
브랜드의 시작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 박물관의 추첨 행사 상품으로 탁구대가 나왔는데, 바로 지로가 행운의 주인공이 된 것. 한동안 어머니의 집에 방치되어 있던 탁구대, 시간이 흘러 우울한 팬데믹의 시대가 도래하고 어머니의 집에 살고 있던 지로는 그때부터 친구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탁구를 즐기기 시작하는데, 이들은 이내 미국에서는 다소 ‘귀여운’ 놀이 정도로 치부되던 탁구가 아시아를 기반으로 얼마나 큰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일본에 뿌리를 둔 지로였기에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일본의 탁구팀과 그 유니폼에 유독 이끌렸을 터. 그러나 LTTT 로고 탄생의 일등 공신은 당시 일본 대표팀이 유니폼에 지니고 있던 일본의 대표 농기업 젠노(Zen-Noh, 全農)의 스폰서 패치다. 후에 지로가 LA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강렬한 빨간색 타원 안에 적힌 ‘全農’가 LTTT의 로고 역시 “강하고 불변해야 한다”는 철학을 심어주었으며, 스폰서 패치처럼 어디에 붙어도 어색하지 않은 로고를 만들고 싶었다고. LTTT를 감싸는 둥그스름한 폰트 역시 젠노의 타원과 탁구채에서 영감을 얻은 것은 아닐지. 아니나 다를까, 텍스트 로고 외에도 랠리를 이어가는 두 탁구채를 연상시키는 ‘Butterfly’ 로고 역시 이들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지로가 고심 끝에 완성한 단순하면서도 중독성 강한 로고는 캡을 통해 그 매력을 폭발시켰을 뿐만 아니라 마치 젠노의 스폰서 로고 같이 기능하며 탁구 저지에 붙었을 때 역시 그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는 단순 특정 스포츠의 테마만을 활용해 로고 플레이를 펼치는 여타 ‘스포츠 스타일 브랜드’와 명확한 차이를 둔다. 미즈노(Mizuno), 아식스(asics) 등의 스포츠 브랜드는 물론 일본의 탁구 전문 브랜드 닛타쿠(Nittaku), TSP의 빈티지 탁구 저지를 직접 선별해 LTTT만의 키치한 스타일로 탈바꿈한 저지 제품은 탁구대 앞에서건 일상생활에서건 그 화려한 매력을 뽐낸다. 이는 분명 장비, 복장에 큰 진입 장벽 없이 누구나 접근하기 쉬운 탁구라는 스포츠의 특성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올해 2월에는 굵직한 로고에 어울리는 커스텀 신발끈 ‘CATERPY LACES’를 출시하며 새로운 영역으로의 확장을 이어갔으며 작년에는 장난스러운 마우스패드를 출시해 품절을 기록하기도 했다.
길이 274cm, 폭 154cm. 작다면 작은 테이블 위에서 펼쳐지는 놀이를 넘어 “탁구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을 목표로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LTTT. 이들이 현재 탁구 애호가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패션, 문화인들을 끌어당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겠다. 행여 LA에 들를 일이 생기거든 농구, 야구, 서핑과 함께 테라사키 부도칸 체육관으로 향하는 옵션을 추가해 봐도 분명 좋은 경험이 될 것. 그 현장이 궁금하다면 하단의 유튜브 영상을 참고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