숀 스투시(Shawn Stussy)의 패션 마켓 복귀가 연일 화제다. 1980년 자신의 본명을 딴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스투시(Stüssy)를 런칭, 이후 장장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스트리트웨어 신(Scene) 속 가장 상징적인 이름이 된 그는 패션을 넘어 하위문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브랜드의 토대가 된 서핑은 물론, 음악과 예술, 스케이트보드 등 다양한 문화를 의류에 녹여냈으며, 초창기부터 이어온 브랜드 캠페인은 스트리트웨어 비주얼의 새 장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신선하다.
스투시는 아주 우연한 계기로 시작됐다. 1981년 숀 스투시는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열린 액션 스포츠 무역박람회에서 자신의 이름을 새긴 서프보드를 전시했고, 구매자에게 헤인즈(Hanes) 베이스의 프로모션용 티셔츠를 한 장씩 증정했다. 어느 날 티셔츠만을 구매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난 뒤 즉석에서 장당 8달러에 판매를 시작, 3일간 무려 1,000장의 티셔츠를 팔아치웠다. 이러한 가능성을 알아본 공인회계사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 Jr)가 사업 파트너를 제안(시나트라는 파트너십을 맺는 대가로 5,000달러를 지불했다고 한다), 1986년 ‘Stussy Inc.’라는 이름의 의류 회사를 설립했다. 단 3일 만에 천 장의 티셔츠를 판매한 스투시였지만, 초창기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던 중, 80년대 후반, 샤넬의 로고와 No.5 향수를 패러디한 S 링크, ‘Stüssy No. 4’ 그래픽이 큰 반향을 이끌며, 1990년에는 연 매출 1,700만 달러를 창출, 본격적인 의류 브랜드로서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다. 이와 가까운 시기에 유럽, 일본으로까지 진출해 스트리트웨어의 세계화를 이끈다.
스투시의 연패가 이어지는 와중, 숀 스투시는 외려 브랜드에서의 하차를 결심한다. 주된 이유는 도시를 떠나 하와이에서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것이었지만, 나중에는 수백만 달러 규모의 회사를 운영하는 것에 대한 부담과 과도한 업무에 지쳐있었다고 고백한다. 몇 년 뒤 숀 스투시는 호주의 미디어 애클레임 매거진(Acclaim Magazine)과의 인터뷰를 통해 아래와 같이 답했다.
“매일 20시간의 업무와 막중한 책임, 세상의 모든 돈이 내게 들어온다고 해도, 밖으로 나가 그 돈을 쓸 시간이 없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브랜드 방향성에 관한 스투시와 파트너 간의 견해 차이도 있었다. 숀은 점진적으로 스투시를 꼼데가르송(COMME des GARÇONS)이나 아페쎄(A.P.C)와 같은 디자이너 브랜드로 전환하고자 했으나 스투시의 또 다른 이들은 문화적인 뿌리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결국, 1996년 숀 스투시는 보유했던 모든 주식을 프랭크에게 매각한 뒤 본인이 원했던 제2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스투시를 떠난 이후 숀의 행적은 그리 알려진 게 없다. 몇 인터뷰에서의 답변에 따르면, 하와이에 집을 짓고, 아내와 함께 아들 셋을 키우며, 서핑도 하고, 취미로 조경 정도를 하는, 완벽한 은퇴자의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실제로 그는 스투시를 떠난 지난 13년간은 그저 세 아이의 아버지로 지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2008년 숀 스투시는 새 브랜드 S/Double과 함께 필드에 복귀한다. S/Double이라는 브랜드명은 아내가 지어준 숀의 별명이라고 하니 스투시에 이어 그의 두 번째 이름을 세상에 알린 셈이다(숀의 아내가 EPMD 노래를 듣던 중 에릭 서먼이 자신을 ‘E Double’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착안했다). 육아에 집중한 10년, 이제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고, 그는 다시 모험을 떠났다.
“서프보드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보고 싶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만 했던 1980년대로 다시 돌아가는 거다.”
여전히 전 세계에서 그의 이름을 딴 브랜드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었지만, 스투시와 숀은 별개로 존재했다. 숀은 S/Double을 온전한 본인의 브랜드로 키우고자 했다. 당장의 관심사, 그가 주변으로부터 얻는 아이디어를 적극 반영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가 어떤 것에서 영감을 얻었는지는 지금까지도 존재하는 S/Double 블로그 속 게시물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S/Double은 첫 컬렉션으로 몇 장의 티셔츠와 후디, 옥스퍼드 셔츠, 그리고 더비 슈즈 등을 발매했는데, 이러한 구성에서 앞서 이야기한 디자이너 브랜드에 대한 숀의 갈증이 엿보인다. S/Double 런칭 초창기 인터뷰에서 앞으로 20년간은 티셔츠에 로고를 얹고 싶지 않다고 언급한 걸 보면, 과거 자신의 태그 그래픽으로 대표되는 스투시의 디자인에 어떤 염증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
곧이어 숀은 2011년 S/Double의 첫 쇼룸을 오픈했다. 해변을 접한 캘리포니아의 도시 몬테시토에 작게 자리 잡은 쇼룸은 오로지 서핑에 집중, S/Double의 서프보드만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숍으로 운영됐다. 대신, 그는 서핑 외 S/Double의 또 다른 카테고리인 ‘패션’을 다루는 창구로 일본을 택했다.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일본의 파트너(빔즈로 추측된다)와 의류 생산, 유통 라이선스를 체결, 숀은 S/Double의 전반적인 디자인 업무만을 맡았다.
S/Double의 전략은 이러했다. 당시 부흥하던 일본 패션 마켓에서 브랜드를 키운 뒤 그 컬렉션을 미국에 가져와 파는 것. 숀은 당시 미국 시장 내에서 반향을 일으키던 비즈빔(Visvim)과 네이버후드(Neighborhood), 더블탭스(Wtaps)의 디자인과 품질에 큰 감명을 받았고, 컬렉션의 모든 아이템을 일본에서 생산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이어 2012년에는 도쿄 나카메구로에 첫 일본 스토어의 문을 열었으며, 의류 컬렉션 또한 본격적으로 전개한다.
“일본에서 제작한 옷을 다시 미국에 가져와 파는 것, 내게는 이게 이상적이다. 제작과 유통에 따르는 비용이 말도 안 되게 많이 들겠지만, 두고 봐야지. 난 모든 제품을 일본에서 만들고 싶다.”
그래픽 티셔츠를 비롯해 바시티 재킷과 스웨터, 슈트 등 다채로운 의류로 컬렉션을 구성했고, 의류 대부분에 ‘Made In Japan’이라고 적힌 태그가 부착됐다. 숀 스투시의 명성 때문인지 S/Double에 대한 반응 역시 썩 괜찮았다. 이러한 기세를 몰아 2013년에는 후쿠오카에 세 번째 스토어를 오픈, 더욱 집중적으로 일본을 공략하기 시작한다. 스토어 운영과 더불어, 로컬 브랜드와의 협업 또한 활발히 진행했는데, 빔즈(Beams)와 포터(Porter)를 비롯해 루프휠러(Loopwheeler), 네이버후드 등의 브랜드와 협력했으며, 지금은 사라진 반스(Vans)의 프리미엄 퍼포먼스 라인인 신디케이트(Syndicate)와 함께 협업 스니커를 발매하기도 했다.
이후 S/Double은 캐주얼웨어의 성격을 띤 컬렉션을 계속 이어 나갔다. 버튼업 셔츠나 블레이저, 오카야마산 셀비지 데님, 마운틴 재킷과 같은 아이템이 컬렉션을 채웠고, 숀의 서체와 그래픽이 담긴 티셔츠나 스냅백, 코치 재킷 정도의 아이템에서 스트리트웨어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브랜드 종반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성향이 더 강해져 브랜드 초기의 주요 테마였던 서핑의 요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과거 스투시가 복식에 집중한 패션 브랜드가 되길 원했던 숀, 그 자아실현 욕구가 너무 비대해진 건 아니었을까? 이런 브랜드의 방향성 때문인지 초기 ‘숀의 S/Double’을 기대했던 팬이 이탈하기 시작했고, 2016년 8월 말 소셜미디어를 통해 브랜드의 공식 종료를 선언했다. 이렇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8년간의 여정은 다소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S/Double 종료 이후 숀 스투시의 삶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파도가 가까운 집에서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종종 인스타그램 계정에 자신의 과거 작업물과 풍경 사진 등을 게시하는 것으로 근황을 알렸다. 다른 점이라면, 패션과의 연을 아주 놓지 않았다는 것. 2019년에는 디올(Dior)과 함께 2020 FW 남성복 컬렉션을 디자인했고, 2020년에는 자신의 이름 ‘Shawn’을 로고로 상표를 출원했다.
“젊은 말은 빠르지만, 늙은 말은 주변을 살필 줄 안다. 젊은 말은 승리하지만, 늙은 말은 경기장에 오래 머무른다. 은퇴 생활을 즐거웠지만, 이제 조용히 미래를 향해 달려갈 때가 됐다.”
그리고 16년이 지난 지금, 숀은 다시금 S/Double의 부활을 알리며, 그 세 번째 여행을 시작할 준비를 마친 듯하다. 새롭게 시작하는 S/Double은 호주의 프로 스케이터 스테판 힐(Stephen Hill)과 그 형제 피터 힐(Peter Hill)이 운영하는 스케이트보드 브랜드 글로브(Globe)의 협력으로 이루어졌다. 이에 현재 글로브 본사 외벽에 그 출발을 알리는 메시지를 게시했다. 2회차를 맞이한 S/Double이 어떤 걸 보여줄지는 숀 스투시 본인만이 알고 있을 테다. 그의 말처럼 혜안을 지닌 늙은 말이 무엇을 준비했을지, 그 용기 있는 시작을 응원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