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전, 서울 헤리티지(Seoul Heritage)에 참여한 9명의 작가들은 서울을 통해 관객들과 다양한 시각을 공유했다. 또한, 서울 헤리티지 후기 인터뷰 필름인 ‘서울, 각자의 시선’에서는 작가의 의도, 사진에 담긴 이야기, 각자의 서울을 엿볼 수 있었다. 분량상 인터뷰 필름에 미처 다 담지 못한 대화를 공개한다.
이번 서울 헤리티지 사진전에서 가장 많은 사진을 전시했다. 왜 그렇게 욕심을 부렸나?
송대섭(이하 송): 많이 전시할 생각은 없었다. 좋은 사진이 몇 장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찍어온 사진들을 다시 쭉 훑어보니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는 괜찮은 사진인지 몰랐던 거지. 그렇게 숫자를 좀 늘리다 보니 계획보다 많아지더라.
예전 여자 친구 사진을 가장 큰 A1 크기로 인화했더라.
송: 만약 내가 그 사진을 여자 친구라고 생각했다면, 오히려 이번 전시에서 뺐을 것이다. 그건 내가 찍은 필름 사진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이었고, 분명히 좋은 사진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크게 인화한 거다.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의도가 아니니 오해하지 마라. 하하.
사진을 찍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송: 나는 좋은 샷(Shot)이라고 생각한 것들은 전부 사진을 찍을 때 그 순간이 기억난다. 이때 아니면 못 찍겠다고 판단해서 찍은 것들이니까. 쓸데없는 샷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현상해도 별로더라.
어떤 피사체를 봤을 때, 꼭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가.
송: 특별한 느낌이 나를 스쳐 갈 때가 있다. 그 감정이 언제 찾아올지는 나도 모른다. 마치 탐지기 센서가 울리듯, 그 순간이 오면 나는 카메라를 들고 찍을 뿐이다. 몸으로 그냥 감지하는 거지. 그래서 그 센서가 울릴 때, 카메라가 없으면 굉장히 아쉽다.
당신은 스케이터이자 예술가로서 조각, 페인팅 등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특별한 계기가 있나?
송: 자연스럽게 하는 거지. 사람은 표현하고 싶은 게 있을 때, 다양한 수단으로 그것을 표현하지 않나? 그게 말이나 글이든, 사진이 됐든, 그림이 됐든지 간에 말이다. 표현하고 싶은 감정, 하고 싶은 말을 내가 원하는 방식을 통해 전달하는 거다.
서울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장소는?
송: 동묘. 예전에 동묘에서 새벽일을 했는데, 그때 사진을 많이 찍었다. 아마 종로 쪽에서 일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기분을 모를 거다. 모두가 자는 새벽에 종로는 가장 분주하다. 사람들이 땀 흘리고 정신없이 돌아다니는데, 그게 나에게는 되게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생경한 경험이었을 텐데, 어떤 기분이 들었나?
송: 특별히 그 사람들에게 동정심이 일지는 않았다. 그들은 굉장히 자연스러웠고, 슬퍼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일상을 사는 보통 사람들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부모님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더라. 사지 멀쩡하게 태어나서 이런 데서 땀 흘리고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새삼 기뻤다. 마치 어렸을 때, 편지 쓰는 기분 같은 것?
앞으로 더 찍고 싶은 사진들이 있다면?
송: 건설업자들이나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찍고 싶다. 그 사람들의 포트레이트(Portrait)를 찍어주고 싶다. 아니면 자연스럽게 일하는 현장을 찍는다든지. ‘노가다’는 하찮은 직업이라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잖나. 그런데 그 일은 사실 엄청 위대한 거다. 노동자는 아버지다. 나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 그들이 일하는 그 순간이 아름다워 보인다.
세월호 사건 1주기 때 찍은 사진들을 중심으로 이번 전시를 구성했다. 그 사건 이후 당신의 삶은 어떻게 변화했는가.
정충진(이하 정): 인간적으로 변화한 부분은 없다. 오히려 더 망가졌을 수도 있다. 가족들과의 관계도 더욱 안 좋아졌다. 그 당시에는 저항하려는 의지도 강했고, 나름 노력도 했지만, 전혀 바뀌지 않는 세태를 보면서 오히려 다 내려놓게 되었다. 미온적으로 변한 것 같기도 하고. 그 뒤로는 어떤 작업을 하더라도 내 자신에게 더 많은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의미를 찾고 싶었다.
그때 종로, 광화문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정: 돌아다니면서 뭐라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휴대가 용이한 소형 카메라가 필요했는데, 자연스럽게 자동 필름 카메라를 접한 것 같다. 특별히 필름을 고집한 것은 아니고. 필름 사진이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여러 가지 배운 것들이 있다.
배운 것들이라면?
정: 내 또래 친구들은 아날로그의 끝자락에서 성장했다. 그래서 디지털이 더 익숙하기 마련인데,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면서 손쉽게 아날로그 프로세스를 체험할 수 있었다. 앞서 한 대답과도 일맥상통한 부분인데, 작업의 본질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아날로그’는 나에게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줬다.
촛불 시위 때 사진이 인상적이다. 굉장히 흔들린 사진들이었는데, 의도한 것인가?
정: 찍을 때는 별생각 없었는데, 성능이 좋지 않은 소형 카메라여서 이런 사진이 나온 것 같다. 어쨌든 꽤 재밌는 사진이다. 촛불 시위가 한창일 때였다. 나도 그 현장에 있었고, 흥분된 상태에서 마구 셔터를 눌렀는데, 인화하고 나서 사진들을 늘어놓으니 어떤 군중의 흐름 같이 보이더라. 당시 과열된 분위기가 전달된 것 같아서 좋았다.
현재 다양한 영상을 만들고 있다. 취미로 사진을 찍는 것과 영상 작업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
정: 영상을 만드는 일과는 달리 사진은 마음 편하게 대할 수 있다. 어차피 사진을 찍는 것은 나에게 있어 소비 행위이기에 카메라는 부담 없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같은 거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사진이 더 솔직할 수도 있다. 내가 보고 느끼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반면에 영상 작업은 그렇지 못하다.
앞으로 서울의 어떤 모습을 담고 싶은지.
정: 재개발 지역, 다가구 주택 지역을 찍고 싶다. 이제 이런 것들은 오래 지나지 않아 전부 철거될 수밖에 없다. 내가 사는 이곳 염리동도 철망을 사이에 두고 마포 래미안이 들어서 있다. 심지어 같은 동인데 새로운 아파트나 건물이 들어서면서 얼마나 많은 입주자가 쫓겨났을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이 과정에서 나는 한쪽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 서민 입장에서 이러한 정부의 작태를 반길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고, 사진을 통해 기억하려고 한다.
웹상에서도 훌륭한 화질의 사진을 감상할 수 있다. 왜 사람들이 굳이 사진전을 찾는다고 생각하는가?
정: 영화 공부하는 친구들에게 왜 영화를 만들고 싶으냐고 물으면 우스갯소리로 “영화관에 걸고 싶어서”라고 답한다. 이제 각종 웹사이트, 토렌트, 유튜브를 통해서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영화관엘 간다. 영화관에서 집단적인 체험을 하는 것과 유튜브로 영화를 보는 행위는 천지 차이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전시회를 간다는 것은 작가의 프로필과 작품을 찾아보고, 전시장에 가기 위해 옷을 입고, 버스를 타고, 입장료를 내서 사진을 감상하는 일련의 체험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본 사진이 감흥 없으면 비판할 수도 있고, 맘에 든다면 책자나 포스터를 구매할 수도 있고 그런 거겠지.
제주도에서 상경한 지 10년이 됐다. 자신이 서울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백윤범(이하 백): 제주에서 겪은 20년보다 서울에서 지낸 10년이 몇 배 더 강렬했다. 지금 내가 있기까지는 서울에서의 경험이 더 크게 좌우한 것 같다.
서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이라면?
백: 영등포 근처에 문래동 쪽방촌이 있다. 지나가다가 호기심에 들렸는데, 옛날 드라마에서 볼 법한 시골 광장 비슷한 곳이 보이더라. 그곳에 정신지체환자, 도박하는 사람들, 그리고 어린아이들까지 한데 모여 있는 걸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카메라를 들 엄두도 나지 않았다.
10년 동안 서울에서 살면서 무엇을 느꼈나.
백: 극과 극을 달리는 곳. 여기 한남동도 굉장히 부촌으로 알려졌지만, 저기 보광동만 넘어가도 완전히 이야기가 달라진다. 약은 도시다.
이번 전시에 설치한 사진 중 대부분은 노숙자 사진이다.
백: 처음에는 호기심에 찍기 시작했다. 흔하지 않은 광경이니까. 솔직히 보통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지 않나. 그런데 이런 분들도 자주 찍다 보니 이제는 친해져서 같이 대화도 몇 마디 나눈다. 처음에는 그들이 먼저 말을 걸어서 얼떨결에 대답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자연스러워졌다. 그냥 노숙자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더라.
어떤 피사체에 끌리는가?
백: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장면들.
보편적이지 않은, 관객에게 불편함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사진에 집착하는 이유라면?
백: 누군가의 기준에는 아름답지 않은 피사체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이 좋다. 꼭 예쁘고 아기자기한 것들만 찍을 필요는 없지 않나. 나에게 감정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전업 포토그래퍼가 아닌데, 전시에 부담은 없었나.
백: 엄청나게 부담됐다. 전시를 찾은 관객들이 좋게 봐주신 것 같아 다행이다. 사실 내세울 게 없는데…. 고맙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일단은 더 열심히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필름 카메라를 고집하는 이유는?
백: 필름 카메라를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필름은 무한대로 찍을 수 없어서 한 장이라도 더 정성을 쏟아서 찍게 된다. 게다가 수동 카메라라 시간이 걸리고 불편하지만, 조금 더 순간을 제대로 포착하기 위해 순발력을 키우고 있다.
당신이 파고드는 Street Photography는 현대에 와서, 특히 한국에서 초상권 침해가 우려되는 분야다.
백: 솔직히 신경 쓰고 싶지 않다. 내가 변명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필름 카메라를 즐겨 사용하는 이유는?
김재룡(이하 김): 하나를 찍어도 신중하게 촬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카메라로 연사하다가도 필름 카메라를 쥐게 되면 긴장감이 든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비슷한 이유에서 필름 카메라를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름 특유의 색감도 매력 있지만, 그건 디지털로도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니까.
색맹이라서 주로 흑백 사진을 찍는다고 들었다.
김: 완전 색맹은 아니고 색약, 색각에서 더 심한 정도다. 나는 스무 살 때까지 신호등이 빨강, 하늘색으로 나뉜 줄 알았다. 고등학교 때 디자인을 전공해서 대학도 디자인 과를 지망했는데, 색맹검사에서 전부 틀렸다. 처음에는 내가 장난치는 줄 알더라. 숍에서 스태프로 일할 때도 손님이 특정 색상의 의류를 가져다 달라고 하면 자주 틀리곤 했다.
개인 웹사이트에 가보니 한국 댄서들을 찍은 사진이 많더라. 예전에 춤을 췄던 거로 알고 있는데, 왜 그만뒀는지?
김: 강직성 척추염이 발병하고 나서부터는 더는 춤을 추지 못할 거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자연스레 댄서들을 찍게 됐다. 춤을 그만둘 때는 굉장히 마음 아팠지만, 그렇기에 새로운 삶을 얻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매일 먹는 약도 이제는 친구처럼 느껴진다. 예전에는 공연도 많이 찾아다니면서 촬영했지만, 이제는 마음 맞는 댄서 분들과 소규모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댄서 신(Scene)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줄었다. 그런데도 꾸준히 쫓아다니면서 촬영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 나는 뛰어난 댄서는 아니었다. 나름대로 굉장히 열심히 했는데…. 건강 문제로 춤을 그만두고 나서부터 무작정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댄서에 대한 인식도 안 좋았다. 그래서 댄서는 단순히 딴따라가 아니라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가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화려한 공연 장면까지 많은 것들을 담았다. 올해 뉴욕 포토그래퍼, 자멜 샤바즈가 방문했을 때, 잠깐 대화를 나눌 시간이 주어졌는데 그때 굉장히 좋은 조언을 많이 들었다. 아무도 안 하는 일을 당신이 했을 때, 그 가치는 시간이 보답해 줄 것이라고. 그러나 그것을 기대하고 사진을 찍지 말라고 말이다.
본인이 생각할 때, 좋은 사진의 기준이라면?
김: 섣불리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떤 이야기가 느껴지는 사진이 좋다고 생각한다. 사진의 구도가 훌륭하다거나 촬영자의 내면이 느껴지는 사진 역시 좋은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이니까. 제목이나 말로 설명해서 이해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 자체로 생각할 수 있게끔 하는 사진이 좋다.
텍스트/사진 ㅣ 권혁인
사진(김재룡)ㅣ 본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