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왔습니다 #2 오타쿠만물상

홍대는 예전부터 오타쿠 문화의 중심지였다. 코로나 위기로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던 북새통 문고가 폐업하며 오프라인 문화의 낭만이 잠시 주춤하는 듯 보였지만, 애니메이트 홍대 지점의 등장과 주변 마니아틱한 숍들의 공격적인 개업으로 그 흐름이 다시 뚜렷해지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홍대 상권 속에서, 몇 걸음만 옮겨도 새로운 굿즈 숍이 나타날 정도로 다양한 상점들이 생겨나고 있는 상황. 이것이 일시적인 유행일지, 아니면 리부트된 문화의 정착일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제 홍대를 찾는 사람들은 단순히 최신 애니메이션 굿즈를 구매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이곳의 독특한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모여들고 있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곳은 오타쿠만물상이다. 운영자는 우연히 자신의 애장품을 팔기 시작하며 가게를 열게 되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오타쿠만물상은 정형화된 것과는 거리가 먼, 진정성과 애정이 느껴지는 공간으로, 자신만의 특별한 애장품을 찾는 이들을 맞이하고 있다. 가게가 비교적 한산한 오후 5시쯤, 주인장을 만나 가게 운영 방식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보았다.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오타쿠만물상 주인장이다.

여느 매장과 다르게 음악을 틀지 않고 운영 중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귀가 다소 어둡다. 음악이 깔리면 누군가 말을 건넬 때 듣기 어렵다. 그 때문에.

가게를 운영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하던 걸 말아먹어서 급전이 필요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가진 걸 처분해 돈을 마련하고자 개인 SNS상에 판매글을 작성했는데, 별 걸 다 판다면서 꽤 인기를 끌었다. 하다 보니 좀 시스템화되면 편하겠다 싶어서 인터넷 쇼핑몰로 이어지고, 건수가 늘어나니 사업자 신고도 하게 되고… 그렇게 집이 가게가 되기에 이르렀다.

지금 이곳에서 생활도 겸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밤이 되면 라꾸라꾸를 편다. 원래는 벽 뒤켠에 있는 창고가 내 방이었으나 지금은 본연의 용도로 쓰이고 있기에.

그래서 처음부터 주거하기 편한 상가 건물을 구한 건가?

이사오기 전에는 삼각지의 지하실에 살았다. 따지자면 물류창고의 형태에 근접한 곳이었는데, 거기서도 잘만 지냈으니 여기라면 훨씬 살만하겠다 싶어 따로 집으로 쓸 공간을 구하지는 않았다. 이 동네 임대료가 워낙 비싸서 집세까지 낼 돈이 없는 것도 있고, 그럴 돈이 있다면 갖고 싶은 걸 사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점점 주거공간에의 욕심이 든다. 며칠 전은 가까운 고시원에 방을 보러 갔는데, 공용 주방이 옥상에 있어서 재밌더라.

‘소장품’을 팔았다면, 그것도 수가 많아야 가능하지 않나. 무언가를 수집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나.

여러분도 그렇듯이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드는 게 있을 때 종종 사오거나 주워오고는 하지 않는가? 거창하게 수집이라 부를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말이다. 나도 그런 사소한 일들이 쌓여서 언제부터 수집이라 부를 수 있게 됐는지는 경계를 정하기 어렵다.

팔고 싶지 않은 물건도 있었을 텐데.

돈 주면 다 판다. 비싸서 그렇지.

가격 때문에 못 사고 돌아가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떼돈’ 벌어오셔야 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도 있다. 그때그때 심부름이나 청소 같은 걸 하고 시간당 돈을 쳐서, 물건값에서 깎아주는 거다. 한 번은 30만 원인가 40만 원짜리 화집을 갖고 싶어 했던 손님이 있었다. 그렇게 그 친구는 일주일에 한 번 주말마다 나와 꼬박꼬박 일하고는 마침내 화집을 얻어갔는데, 일하는 게 습관이 되기라도 한 건지, 그 다음 주에도 또 일하러 와서는 ‘이 다음은 뭐 받지’ 고민하더라.

인터넷에 올라온 몇몇 후기를 보면 방문객의 취향을 잘 간파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우리 집은 방문 시에 예약하도록 되어있는데, 그때 방문객 스스로가 어떤 작품 관련한 상품을 원하는 건지 적도록 되어 있다. 뭘 고르는지를 보아도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이걸 좋아하면 저것도 좋아하던데 하는 데이터가 쌓여있는지라…

후기를 보니 주인장이 하이텐션이라는 평이 많더라. 손님을 응대하기 어려운 적은 없었나?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는 편이다. 내 집에서 응대하기도 하는 거니 편하다. 오히려 방문객들께서 예약 요청사항을 통해 자신이 내향적이니 유념해 달라고 전해오는 경우가 있고는 하다.

방문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은 뭐라고 생각하나?

“신세기 에반게리온(The Neon Genesis Evangelion)”? 작품도 작품이지만 워낙 뭐가 다양하게 나와서 소비자 입장에서도 구매할 맛이 날 수밖에 없다. 이쪽 계열에서는 상품군의 숫자가 아마 제일 많은 작품이지 않으려나.

에반게리온 다음으로 2위는 어떤 작품인가.

정해져 있는 건 딱히 없다. ‘이걸 누가 사?’ 싶었던 게 어느새 팔려 있고는 한다. 정말 다양한 수요가 우리 집을 찾는다. 가게 이름 때문에 기대하고 오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그 덕분이다.

그렇다면 본인이 좋아하는 작품이라면.

“디지몬”이라는 IP를 가장 좋아한다. 그 안의 미디어 믹스는 웬만해선 모두 좋다. 디지몬을 제외하고 꼽자면, 만화 중에선 TONO의  “치키타☆GUGU”. 키토 모히로의 “나루타루”. 애니메이션 중에선 이쿠하라 쿠니히코가 감독한 “돌아가는 펭귄드럼”과 “유리쿠마 아라시”.

최신 작품은 챙겨 보지 않는 편인가? 

애니메이션의 경우에는, 그렇다. 사실 최신이고 아니고 여부를 떠나 애니메이션보다 만화를 선호한다. 내 페이스대로 읽는 것으로 연출을 완성시키는 기분이 드는 게 좋다. 요즘은 아마추어 만화를 보는 걸 좋아한다. SNS 같은 데에 일본 웹 만화가 자주 떠서 보게 된다. 애니메이션은 가장 마지막으로 본 건 “사이버펑크: 엣지러너즈(Cyberpunk: Edgerunners)”였다. 권유로 봤는데, 일단 좋아하는 제작사의 작품인지라.

최근 유행처럼 쓰이기도 하는오타쿠’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요즘엔 오타쿠라는 말이 모호하게 사용되는 것 같다. 나 스스로도 오타쿠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문화 향유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인터넷에 홍대 오타쿠 맵이라고 불리는 지도가 떠도는 등 홍대에 서브컬처 관련 숍들이 부쩍 많아진 것 같다. 숍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어떤 것 같나. 느끼는 바가 있다면.

홍대는 예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없어진 보크스의 텐시노스미카 한국 지점도 2000년대 중후반기에는 아주 성황이었고, 당시 홍대 놀이터에서 주말마다 열리던 플리 마켓에는 고스로리나 펑크 차림의 인파가 한가득이었다. 관짝 모양의 인형 가방에, 그 비싸고 커다란 구체관절인형을 꺼내서 품에 끼고 다니면서… 그때와 지금의 차이라면, 그때는 옷은 아무리 화려하게 입어도 얼굴이나 머리는 그닥 치장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거랑, 지금은 외국인이 엄청 많아졌다는 거? 장난감 가게도 맨날 생겼다가 사라졌다 하고.

가게에서 희귀한 물건을 몇 가지 소개해 달라.

글쎄. 막상 생각해 보니 모르겠다. 일단은 ‘나루타루”의 호시마루 가방. “나나(NANA)”의 피규어 스트랩.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에서 마도카의 변신복장을 본뜬 에이프런.

원하는 물건을 찾아내는 본인만의 비결이 있다면 알려 달라.

타임머신을 타고 훔쳐온다.

‘만물상’인 본인도 구하고 싶었지만 구하지 못한 게 있는지?

물론이다. 양도할 분은 부디 연락 달라. 보크스(Volks)사에서 돌피화된 “쵸비츠”의 ‘치이‘. TCG 매거진 ‘Beckett’의 디지몬 호 전권. 루이비통과 무라카미 타카시가 콜라보한 단편 애니메이션 “슈퍼플랫 모노그램(Superflat Monogram)”의 DVD… (후략)

여가시간엔 무엇을 하는지. 즐겨하는 게임이나 자주 보는 유튜브 채널이 있나?

게임할 시간이 없다. 예전에는 “마비노기” 유저였다. 가장 최근에 한 콘솔 게임은 “디지몬 스토리 사이버 슬루스 해커스 메모리”. 강력 추천한다. 유튜브는 거의 안 본다. 정보를 바로바로 확인할 수 없는 매체라 너무 불편하다. 음악 트는 용도로나 쓰는데 그마저도 잘 안 들으니.

이 주변에서 자주 노는 편인가? 방문할 만한 곳을 추천해 준다면.

외출은 거의 하지 않아서…

서브컬처 굿즈뿐만 아니라, 모형 휴대전화 등 다양한 카테고리의 제품도 취급하고 있다. 이유는?

처음에는 모형 휴대전화의 화면에 있는 마스코트 캐릭터가 목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앞으로 숍 운영에 대한 새로운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하다.

지금은 딱히 뭘 하자는 생각은 없다. 다만 수리중인 프리크라(프린팅 클럽: 일본의 스티커 사진기)가 있어서 이걸 마저 고쳐서 가게에 비치하고 싶은데, 도무지 시간이 나질 않네.

오타쿠만물상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 | 장재혁
Interviewer | 한지은
Photographer | 전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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