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한 얼터너티브 싱어송라이터 와일드베리(Wildberry). 그녀가 절대적 사랑에 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첫 번째 정규 앨범 [AGAPE]로 재귀를 예고했다. 앨범은 사랑이란 추상의 감정을 다층적으로 인식하며 그 안에 숨겨진 불안, 분노, 행복, 환희 등 다양한 감정들을 마주하고 극복해내며 절대적 사랑에 도달하는 여정을 담아내고 있다.
7년 만의 첫 정규 앨범의 발매를 앞둔 그녀와 조건 없는 숭고한 사랑, 그리고 그로 인한 치유에 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 이번 앨범이 제작된 곳에서 진행된 이 대화는 순탄치만은 않았을 그녀의 긴 여정과 그 과정에 있었던 여러 인상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하단에서 확인해보자.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예술로 평화를 그리는 오브하우스(ORB HAUS)에서 음악 감독이자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와일드베리(Wildberry)다. 자연과 우주, 생명과 사랑에 대해 영감을 받아 음악을 제작하고 있다.
첫 번째 정규 앨범인 만큼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발매를 앞둔 소감이 있다면?
오랫동안 음악을 활동을 해오면서 정규 앨범이라는 걸 만들 수 있을지도 몰랐는데, 최근 오브하우스에 합류하게 되면서 개인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많아졌다. 그리고 계속 가까이서 만남을 이어온 연인이자 프로듀서, 칠린보이지(Chillin Boi G)가 전 트랙을 선물해준 덕분에 멜로디와 가사를 얹어 간편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데뷔 앨범을 발매한지 7년 가까이 싱글과 EP 앨범 위주로 발매했다. 돌연 정규 단위의 앨범 제작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
EP와 싱글 작업을 진행하면서 스스로 음악적인 색깔을 찾기 위한 실험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이번에는 그런 색깔들이 자연스럽게 한데 모이게 되면서 단기간에 여러 트랙을 완성할 수 있었고, 그 때문에 정규 앨범으로 묶어 한 번에 모두 들려 드리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앨범 제목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면 좋을 것 같다. 앨범 제목인 [AGAPE]가 의미하는 것은?
앨범 제목인 [AGAPE]는 그리스어로 ‘가장 순수한, 신이 주신 사랑’이라는 뜻이다. 이번 앨범을 만들고 또 연인과 만나는 과정에서도 사랑이 불러일으키는 희로애락의 감정들을 다양하게 느끼게 되었다. 마냥 행복하고 기쁜 감정들뿐만 아니라 서로 이해하는 과정에서 나누게 되는 슬픔 등과 같은 무거운 감정들도 모두 받아들이고 공감하면서 커다란 사랑의 힘을 느낄 수 있었고, 이어서 절대적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그리고 ‘AGAPE’라는 단어 자체의 인상이 굉장히 세게 와 닿아서 앨범에 담고 싶었던 여러 감정들을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느꼈다.
당신의 커리어를 돌이켜 보면 R&B를 토대로 다양한 사운드의 장르들을 시도한 흔적들이 보인다. 이번 앨범에는 어떤 느낌의 음악들이 담겨있는지 이야기해달라.
보컬리스트로서 R&B 기반의 음악을 하고 있지만, 트랙 분야에서는 얼터네이티브 하우스라든지 힙합이라든지 장르적인 실험을 많이 해보고 싶었다. 이번 앨범은 직접 트랙을 쓰지 않았지만 칠린보이지가 만들어준 트랙들 역시 팝스럽고 힙합적인 요소들을 많이 담고 있었다. 덕분에 R&B스러운 나의 장점과 새로운 힙합적 요소들을 잘 섞은 앨범을 완성할 수 있었다.
앨범이 이전과 달리 단위가 커진 만큼 트랙간의 유기적인 흐름을 간과할 수 없었을 텐데.
그래서 모든 곡의 사운드가 잘 버무려질 수 있도록 트랙 순서에 신경쓰는 등 여러모로 고민이 많았다. 선공개한 앨범 [Timescape]와 [Lose me or Love me], 그리고 이번 앨범까지 사운드적인 결의 차이가 있어 흐름을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중간마다 감상의 연결을 도울 수 있는 다른 곡들을 잘 배치해 두었다.
보컬을 사용하는 방법이나 멜로디를 작곡하는 방식 등 장르별로 제작 과정의 차이가 분명할 것 같은데, 다양한 장르를 고루 소화할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평소 여러 장르의 음악들을 구분 없이 찾아 듣는 편이고, 그러한 분석을 거듭하다 보니 멜로디 적으로 “어떤 장르에 이렇게 쓰면 맞겠다”하는 기준이 스스로 정립되었다. 그 덕분에 트랙을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멜로디와 작업 방식들이 떠오르는 것 같다.
그렇다면 보통 편곡이 마무리된 트랙들을 가지고 작업하는 걸 선호하는지?
그렇다. 편곡이 어느 정도 스케치 되어 있는 상태에서 멜로디와 가사를 얹는 방식이 가장 편하고 많았던 것 같다.
이번 정규 앨범을 통해 장르적으로 정착했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새로 시도해보고 싶은 사운드나 음악 스타일이 남아있는지 궁금하다.
사실 정착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 장르와 상관없이 나의 목소리가 곧 음악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직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많이 소화해보고 싶고, 구애받지 않는 작업을 지속하고 싶다.
EP 앨범 [Desire]을 마지막으로 한글 가사의 비중이 많이 줄었다고 느꼈다. 특히 최근엔 “dive in your eyes”를 제외하곤 영어 가사로만 이루어진 곡들이 많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이전과 다르게 최근 작업한 음악들에선 영어로 표현했을 때 말하고 싶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잘 묻어나는 곡들이 많았다. 장르적인 영향도 분명 있는 것 같다. 그 때문에 영어를 자주 사용하게 됐지만, 그렇다고 이번 정규 앨범이 영어로만 이루어진 앨범은 아니다. 한국말로 쓴 노래도 있고 굳이 언어의 구분을 두고 있지 않은 편이다. 표현하는 데 있어서 가장 편리한 방법을 그때그때 선택하고 있다.
이전 앨범들이 대부분 개인 작업실에서 제작되었다고 들었다. 이번 앨범 또한 마찬가지인지,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제약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이전에는 월세 형식의 작업실을 대여하며 작업을 진행해왔다. 그때와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이번에는 ‘홈 스튜디오’로 온전히 세팅을 해두고 시작한 앨범이어서 멜로디 스케치나 작사와 같은 초기 단계부터 녹음 및 후작업까지 일상과 함께 한 곳에서 진행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작업할 때는 굉장히 편안하게 입고 일기 쓰듯이 몇 시간씩 가사를 썼던 것 같다.
다만 개인적으로 집과 작업실을 분리하는 걸 좋아하는데, 같은 공간에서 단기간 안에 앨범을 만들어야 하다 보니 쉬는 시간 없이 작업에만 몰두해야 했다. 그 때문에 끝까지 집중을 유지하기 어려웠지만,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매일매일 제작에 열중한 끝에 3개월 만에 9곡 정도를 완성할 수 있었다. 완성할 때까지 엄청나게 집착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곡을 쓰다가 잘 나오지 않을 때면 12시간 동안 노래를 부르며 멜로디 작업을 한 적도 있다. 오히려 이번 앨범 제작을 통해 공간에 상관없이 작업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 같다.
이 작업 공간의 인테리어나 색감 등이 되게 인상 깊다. 빨간색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가 있는지?
이 방에 원래 꾸며져 있던 그림들은 칠린보이지가 모아놓은 그림들이다. 내가 여기서 1년 동안 같이 생활하면서 소파나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더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빨간색을 보면 시각적으로 에너지를 얻기 쉽고 정열적인 느낌이 들어 마음에 든다. ‘와일드베리’라는 예명을 지은 것도 색깔 차트에서 가장 끌리는 붉은색을 골라 지은 이름이기도 하고 여러모로 빨간색을 좋아하는 것 같다.
뮤직비디오나 포토 작업과 같은 비주얼적인 부분도 기대를 안 할 수 없다. 앨범의 시각적인 면에서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이번 정규 앨범은 한 번에 모두 공개하지 않고, 2주 간격을 두고 수록곡들을 조금씩 풀어낼 예정이다. 최종적으로 앨범 전체가 발매되는 시점에 메인 타이틀의 뮤직비디오도 감상할 수 있다. 비주얼적으로 와일드베리라는 아티스트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오브하우스팀에서 여러 글로벌 크리에이터들과 협업할 기회들을 열어주었다. 정말로 엄청난 비주얼들이 나올 예정이고, 개인적으로 큰 기대가 된다.
이번에는 3D 스캔을 활용해 와일드베리의 디지털 아바타를 만들어 CG로 완성하는 작업이 많았다. 앨범 아트 또한 그러한데, 나와 연인 그리고 세상을 3개의 링으로 표현했다. 처음 이 앨범의 가제는 “Promise me” 였는데, 나와 연인의 약속, 그리고 함께하는 팀과의 약속을 지켜내자는 의미가 있다. 이 이야기를 오브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함께 확장하여 약속을 뜻하는 반지의 형태로 표현하게 되었다.
그리고 저 먼 포르투갈에서 우리의 작업을 보고 한국으로 건너와 준 3D 아티스트는 나의 작업을 위해 돌아가는 비행편을 계속해서 연장했다. 우리의 메시지가 시각적으로 더 발전되어가며 나는 세상과 더 끈끈히 연결됨을 느꼈고, 나와 연인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한 감사함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형태들의 아가페 즉, 절대적 사랑을 믿게 되었다.
얼마 전 [Timescape] 앨범 발매에 맞춰 요가와 명상을 주제로 한 이벤트를 진행한 바 있는데, 이벤트를 기획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또 평상시에도 요가와 명상에 취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한 4년 전쯤 처음으로 ‘싱잉볼(Singing Bowl)’이라는 악기를 알게 됐는데,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굉장히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마침 친구들이 돈을 모아 크리스탈 싱잉볼을 선물해준 덕에 그 악기를 연주하면서 스스로 명상도 많이 하게 됐다. 또, 작년에 요가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한 적이 있다. 명상 음악을 많이 찾아 듣다 보니 ‘텅드럼(Tung Drum)’이라는 악기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알게 됐는데, 불현듯 요가와 텅드럼 연주를 합쳐서 수업을 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기획 취지와 [Timescape]앨범에서 이야기하려 했던 메시지가 합치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그 공간에서 특별한 이벤트를 열고자 진행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요가와 명상이 와일드베리의 음악에 끼치는 직접적인 영향이 있는지?
공연하기 전에도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호흡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곤 한다. 이러한 습관들이 특정 순간들에 분명한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요가와 명상에 시간을 쏟으며 얻은 좋은 에너지들을 내 음악에 담아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또, 개인적으로 즈네 아이코(Jhene Aiko)라는 뮤지션을 정말 좋아하는데, 한때 그녀가 싱잉볼 브랜드를 만들고 연주하며 자신의 음악에도 녹여내는 모습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 나의 다음 계획은 이번 앨범으로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대중적으로 다가가, 이후 나의 사운드로 아주 긴 치유의 음악을 선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 밖에 앨범 작업을 하면서 도움을 받은 아이디어나 레퍼런스가 있었는지?
내 목소리가 조금 아기 같은 톤을 갖고 있어서 좀 더 허스키하고 멋있는 톤으로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추후에 공개될 “Castaway”라는 곡을 작업하면서 ‘070 Shake’의 중성적인 톤 느낌을 참고하려 했다. 여담으로 작업 도중 감기에 한번 걸렸었는데, 그때 톤이 의도치 않게 굉장히 낮아지면서 중성적인 느낌의 소리가 났다. 덕분에 네 곡 정도는 원하는 목소리 톤으로 작업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다른 곡들과 어느 정도 톤적인 대비를 이루면서 앨범이 좀 더 입체적으로 완성되었다.
이번 정규 앨범을 넘어서 오브하우스와 함께 할 앞으로의 비전이 있다면?
ORB HAUS 의 음악감독으로, 또는 내 음악들로 함께 세계관을 만들어나가고 있고, 앞으로가 너무 기대된다. 음악과 비주얼, 우리만의 방식으로 평화를 전달해나갈 수 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느끼며 앞으로 다양한 메시지를 담은 여러 캠페인들을 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번 앨범을 듣게 될 많은 사람들에게 이번 앨범이 어떻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는지, 또 어떤 아티스트로 비춰지고 싶은지 이야기 부탁한다.
사랑에서 오는 다양한 감정들을 극복하고 절대적인 [AGAPE]로 향해가는 여정을 그린 앨범이다. 나의 고민에 대한 성찰이 담긴 앨범인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주는 음악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조금 더 영적인 성숙함과 맑은 에너지를 전파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원초적인 이야기가 저 멀리 있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닿길 바라며, 많은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는 그런 아티스트로 알려지고 싶다. 앞으로도 더욱 실험적이고 나다운 음악을 많이 만들 테니 계속 지켜봐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