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몇 년 새 서울 어디를 가더라도 부쩍 늘어난 외국인들의 모습에 종종 놀랄 때가 있다. 이 무채색 도시에 어떤 매력이 있어 이리들 찾는지 호기심이 이는 와중, 특히나 한국 그리고 서울 로컬 문화에 깊숙이 파고든 몇몇을 보고 있자면 괜스레 뿌듯하기도 하다. 게다가 이들이 한국어를 구수하게 구사하는 반전 매력까지 보인다면 과연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어느 날 문득 알고리즘에 등장해 제육볶음과 막창을 예찬하고, 비올 때는 파전을 찾으며, 이모가 서비스 줄 때가 좋다고 노래하는 검은 피부의 아티스트, 돈나 골든(Donna Goldn)에게 마음을 빼앗긴 이유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벨기에서 한국까지 머나먼 길을 훌쩍 떠나온 돈나 골든은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한류 패러디 영상을 꽤 오랜 기간 제작해 온 동영상 크리에이터이자 때로는 차가운 매력을 발산하는 모델로 변신하기도 하는 다재다능한 존재다. 이미 틱톡(a.k.a. 공두나)에서는 15만이 넘는 팔로워를 거느린 스타이기도 하다.
“맛있겠다”를 발매할 때까지만 해도 유쾌한 영상 크리에이터의 1회성 이벤트겠거니 했지만, 더욱 도발적이고 감미로운 “청포도 와이프”로 돌아온 그녀는 제법 음악에 진지해 보였다. 최근 도전한 테크노 사운드만 들어보더라도 이제는 어엿한 뮤지션으로 거듭난 모습.
서울이 세계의 관심을 최고조로 받기 훨씬 전부터 한국이라는 나라에 발을 들여 신에 녹아든 돈나 골든과 그녀가 가장 자주 찾는다는 신용산역 부근의 골목을 거닐었다. 아, 물론 돈나 골든의 ‘최애’ 코스인 동전 노래방도 빼놓지 않고 들렀다.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벨기에에서 온 돈나 골든이라고 한다. 싱어송라이터이자 모델로 활동하고 있고, 현재는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 스스로를 ‘아티스틱 노마드(artistic nomad)’라 여기고 있다.
최근 “청포도 마누라”라는 곡을 발표했고, 유쾌한 뮤직비디오와 가사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소감이 어떤가?
많은 노력이 들어간 이 프로젝트의 면면을 모두 좋아해 주셔서 기쁘다. 이렇게 규모가 있는 프로젝트는 처음이었는데, 나와 함께 작업한 재능 넘치는 사람들 덕분이다. 나와 내 노래를 믿어줘서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서 감사함 그리고 사랑 외에는 어떤 것도 느낄 수 없다. 어떻게 느껴야 할지도 모르겠고. 사람들이 내 노래를 듣고, 뮤직비디오를 보고 좋은 감정을 느끼는 건 정말 미친 일이지.
“청포도 마누라”의 탄생 배경이 궁금하다. 한국인이라면 오히려 가능하지 않았을 두 단어를 조합한 제목이 특히 매력적인데, 제목은 누가 지어줬나.
우선, ‘청포도’는 청포도에 대한 나의 애정 그리고 2017년 즈음에 즐겨 마셨던 청포도 소주를 상징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곡의 일부를 친구와 포차에 앉아 청포도 소주를 마시던 중에 만들었다. ‘마누라’ 부분은 이 곡의 배경이 된 과거의 연애에서 따온 거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과 사귀고 있었거든.
“맛있겠다”, “청포도 와이프” 두 곡과는 반대로, 최근 프라그먼트 서비스(fragment service)의 컴필레이션 앨범에 참여해 마지(Maze)와 함께 테크노 스타일의 곡을 공개하기도 했는데, 돈나 골든이 추구하는 음악적 방향은 뭔가?
모르겠다. 그냥 나답게 느껴지는 음악을 만들고 싶을 뿐이다. 어떤 장르든 상관없다.
가장 최근 발매한 테크노 음악과 이전 곡들 간의 스타일적 간극이 크다. 이에 대해 우려하는 점은 없나?
그래서 처음 테크노 음악을 공개하기 전에는 꽤 긴장되기도 했다. 근데 요즘은 걱정이 줄었다. 다른 아티스트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장르가 다르더라도 우리는 아티스트로서 여러 노래 사이의 다리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위안이 됐거든. 그 말이 정말 기억에 남는다.
“맛있겠다” “청포도 와이프” 두 곡을 발매한 뮤지션이기 이전에, 패러디 등의 다양한 영상 컨텐츠를 만드는 유튜브 영상 크리에이터이자 틱톡커다. 최근에는 영상 제작보다는 음악 활동에 집중하는 것도 같은데. 전문 음악인의 길로 빠지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었던 것이 내가 음악을 하게 된 이유다. 어떤 하나가 다른 하나로 이어지는 과정의 연속이었고, 결국 지금 음악을 메인으로 하는 길에 서게 됐다. 워낙 충동적인 사람인지라 의도적으로 그런 결정을 내린 건 아니다. 단지 어느 날 깨어나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음악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깨달았다.
제육볶음, 막창, 편의점 메로나, 봉봉이 등이 등장하는 “맛있겠다”의 가사가 인상적이다. 지금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뭔가. 또 한국의 맛하면 떠오르는 가장 대표적인 음식이 있다면?
한국의 맛하면 당연히 김치찌개 아닐까. 근데 최근에는 냉면과 소고기 콤보에 빠져 있다.
90년대 K-팝, K-드라마 콘텐츠를 넘어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음악 신이나 다양한 문화에 상당히 근접해 있는 것 같은데, 한국 문화 최전선에 오랜 시간 근접해 있으며 느낀 점이 있다면?
무엇을 느끼고 배웠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언더그라운드 신에서 놀라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고 세상에는 아직 재능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 그리고 또한 언더그라운드 신이 굉장히 다양하고 우호적이고 커뮤니티 의식이 강하다는 점.
이처럼 한국에 빠지게 된 이유가 뭔가. 무엇이 돈나 골든을 한국으로 이끌었나.
음식 하하. 언어도 그렇지만, 사실 그냥 음식이다. 한국행 항공편을 다시 예약하게 되는 결정적 요인이 한국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니까.
처음 한국에 도착했을 당시 한국의 인상과 지난 10년간 한국을 오가며 목격한 변화가 있다면?
고등학교 졸업 여행으로 2015년에 처음 한국에 왔다. 그때 정말 즐거웠지. 지금의 한국은 분명내가 처음 방문했을 때보다 훨씬 더 다양해졌다. 그리고 그때보다 테크노에 더 빠져 있다. 그 당시에는 힙합이 전부였거든. 물론 내가 적절한 장소를 몰랐을 수도 있고.
서울이 아닌 김포에 살게 된 이유도 궁금한데. 곧 이사를 한다고도 들었는데 서울의 어떤 동네를 좋아하나.
김포에 사는 친구 집에 잠깐 묵었는데 그때 김포의 매력에 반했다. 서울로 이사할 생각이긴 했는데 지금은 또 잘 모르겠다. 인천으로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보통 신용산, 이태원, 한남동 근방에 있는 편이다.
당신의 유쾌함, 그 원천이 뭔가.
어려운 질문이다. 모르겠다. 하하. 아마 타고난 걸 수도? 내성적인 성격이라 집에서 인터넷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낸 점도 일부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나를 궁금해 해줘서 감사하다. 이 인터뷰를 통해 많은 독자와 더 가까워지기를 바란다. 돈나 골든은 이제 시작일 뿐이고 아직 많은 프로젝트가 기다리고 있으니 계속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
Editor | 장재혁
Photographer | 전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