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대의 진정한 레이브 정신, 굴다리 레이브

“소규모 장비, 날림 행사. 정통 레이브 음악 안 나올 수 있음, 후원 환영”

굴다리 레이브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확인할 수 있는 소개 글이다. 과연 ‘굴다리 레이브’라는 이벤트 시리즈의 핵심을 관통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굴다리’와 같은 야외 장소를 떠돌아다니며 게릴라성으로 파티를 진행한다. 어느 날, 어느 시간이 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어떤 음악이 나올지, 누가 음악을 틀지도 마찬가지다. 기록은 한시적이며 그다음이 언제가 될지도 알 수 없다. 이 부분에서 어쩌면 ‘정통 레이브 음악’이 흘러나오지 않을지언정 진정한 ‘레이브 정신’이 존재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도대체 이 파티를 굴러가게 하는 자들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더불어 어떠한 원동력으로 이런 에너지를 유지하는지 역시 호기심을 자아내는 부분이다. 지난 11월 22일, 오랜만에 굴다리 레이브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번 레이브가 특이한 점이라면 랜덤한 장소가 아닌 ACS라는 베뉴에서, 그것도 여러 팀의 라이브와 함께한다는 점이었다. 어떤 경위로 특별한 행사를 기획하게 되었는지, 우리는 베일에 싸여있던 운영자와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직접 감상한 ‘아수라장 레이브’, 그 뜨거운 열기에 대한 단상 또한 하단에서 만나보자.


굴다리 레이브는 어떤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파티 시리즈인가. 꽤나 비밀스럽기도 한데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22년도 초, 레이브를 접할 기회도 적고 야외에서 레이브를 하는 쾌감을 느끼기 위하여 시작한 행사다. 처음에는 주변인끼리 모여 놀기 위해 파티를 열었다. 그런 이 파티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주변의 범주를 넘어서까지 생겼다. 그래서 그때부터 비정기적으로 열고 있는 거다. 주로 운영자인 내가 일을 벌이고 매번 도와주는 사람은 여럿이 있다. 핵심적으로는 음악가 노이(NOI)가 행사 진행과 디제잉 등 여러 방면에서 조력한다.

왜 하필 ‘굴다리’ 레이브인가. 불량청소년의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한다. 

말한 대로, 굴다리라는 장소가 한국 특유의 불량스러움이나 음습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장소에서 레이브를 진행하고 싶어 정한 이름이다.

파티 이름처럼 매번 굴다리에서 진행되지는 않는다. 굴다리 팀이 추구하는 레이브 장소의 조건이 있다면 뭘까. 

어딘가 이동 중에 보이는 인적 드문 유휴공간이나 지저분한 공터에 재밌는 일을 벌이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그러한 ‘음습한’ 위용이 있는 장소에서 주로 행사를 진행하려고 한다. 안 되는 것을 억지로 저지르는 광적인 느낌을 내고 싶어서 시끄러운 음악이 나오면 안 될 것 같은 정갈한 장소나, 바다나 계곡같이 스피커가 가기 힘든 곳에 스피커를 끌고 가기도 한다. 또한 지방에서는 잘 열리지 않는 하드코어 계열의 음악 행사를 하고 싶어 지방 쪽에서도 그러한 장소를 많이 찾아보는 편이다.

매번 구체적인 장소는 어떻게 정하나. 평소에 찾아두는 편인가. 

주로 이동하면서 장소를 발견하고, 주변에서 제보해 주는 분들을 통해서 진행한 적도 많다. 지방에 갈 때는 로드뷰를 열심히 찾아본다.

장비 조달은 어떻게 하는 편인가. 아무래도 들고 이동하기 편한 게 중요하다면 ‘좋은’ 사운드시스템이 방점은 아니지 않나.

관객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행사의 준비나 진행을 가볍게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장비는 되도록 작고 가벼운 것을 사용한다. 주로 노트북 전력만으로 구동되는 디제잉 컨트롤러인 DDJ-400과 파티박스라는 출력 대비 비교적 가벼운 무게의 휴대용 앰프로 택시나 주변인들의 차를 통해 운반한다. 장소적 여건에 따라 출력이 부족한 곳도 있기 때문에 갖고 있는 다른 스피커를 사용하기도 한다.

사실 음향은 여건만 받쳐 준다면 늘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사운드시스템의 스펙터클을 무척 좋아하고 일본에서 본 레게 사운드 시스템 음향에 큰 감명을 받았는데, 돈이 생긴다면 소형화된 사운드 시스템을 직접 만들어서 야외 레이브에 사용하고 싶기도 하다.

여태껏 게릴라성으로 진행하면서 마주한 가장 큰 난관이 있다면. 

스피커가 방전되거나 망가져서 사람들을 방치하는 일이 가끔 일어난다. 애써 찾아온 사람들을 기다리게 한다는 심적 부담감이 크다.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 있었다면. 

스피커가 나갔을 때 음악가들과 관객들이 모여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나 신발 던지기 같은 놀이를 벌인다. 여러 사람이 모이도록 만들어진 자리에 음악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다른 놀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작은 축제 같아서 좋다고 생각했다.

이번 이벤트는 어째서 ‘굴다리’가 아닌 ACS라는 베뉴가 됐나. 

23년도 초에 ACS에서 굴다리 레이브를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굴다리 모습을 따와서 비닐하우스를 설치하고 행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그 후, 그때의 ACS에서 모양새가 재밌어서 다시 해보자고 했다.

또한 굴다리 레이브를 시작하기 전에 진심으로 흥이 나는 레이브의 경험을 처음 해본 것이 ACS였다. 그때 큰 자극을 받고 이런 걸 해보고 싶다는 동기가 생겨났고, 야외 레이브를 시작할 때 ACS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에게 디제잉이나 라이브를 부탁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ACS가 없었으면 굴다리 레이브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야외에서의 게릴라성 이벤트가 엄청난 모객보다는 이벤트의 즐거움을 더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람들을 많이 모으는 것에는 초점을 두지 않는지.

모객에 있어 신경을 쓰고는 있고 어느 정도 사람이 많이 있어야 즐겁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의도와는 달리 사람이 적게 오는 날도 잦은데, 이상한 야외 공간에서 음악을 트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라 관객이 적어도 즐거운 모습이 영상에 많이 담긴 것 같다.

끝으로 굴다리 팀의 존속을 바라는 한 사람으로서, 굴다리 파티를 찾을 이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면.

일반적인 행사와는 달리 소규모의 장비와 인원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어설픈 모습이 많다. 그렇지만 그만큼 놀러 오기 쉽다는 점을 미덕으로 받아주셨으면 좋겠다.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 많은데 관심 가져주시고 안전하게 즐겼으면 좋겠다.

또한 야외 레이브를 기회로 해외 이주민을 포함해 지방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들과 관객들을 만나고 싶은데 연락할 방법이 쉽지 않다. 이 인터뷰가 계기가 되어 관심 있는 지방의 음악가분들이 연락을 주신다면 찾아가서 함께 일을 벌이고 싶다.


ACS로 들어가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비닐하우스 구조물이었다. 그 옆에 놓인 파이프로 제작된 철제 구조물은 라이브 장비가 올라가는 테이블이 되었다. 이러한 풍경은 마치 공사장의 일부를 방불케 하기도 했다. 이는 야외 레이브의 정수를 가져온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부분이었는데, 거대한 모듈러 신스부터 키보드와 마이크 등의 라이브 장비의 세팅은 이어질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우리는 이날 다섯 팀의 각기 다른 형식의 특별한 라이브와 네 명의 디제이 셋을 만나볼 수 있었다. 하드코어한 기조를 중심으로 앰비언트부터 노이즈, 글리치, 브레이크 코어를 포함한 다양한 장르가 흘러나왔다.

먼저 앰비언트 노이즈 라이브로 포문을 연 노이부터, 묵직한 드럼 사운드를 중심으로 뒤틀린 신스 소리가 들려오는 시보도(Shibodo)의 공연을 맛볼 수 있었다. 이는 사만다 갱(Samantha Gang)과 puttt의, 과격하고도 섬세한 보컬과 모듈러 신스의 조합으로 이어졌다. 이어 RB와 메이지(m3iji)가 하드코어한 디제이 셋으로 우리를 반겼다. 이어지는 피아노슈게이저와 제스터(Jester)의 상반된 매력의 라이브에서 공연의 열기는 고조되었다. 피아노슈게이저의 공연에서 직접 키보드를 연주하며 아름다운 선율과 브레이크비트의 조화가 돋보였다면, 제스터는 락스타와 같은 모습으로 등장했다. 특히 이 동안에는 관객들이 열광하며 모쉬핏을 형성하여 슬램을 하는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분위기는 비지타큐(VizitaQ)와 젤리(Jelly)의 디제이 셋으로 연결되며 비교적 차분하게 마무리되었다. 특히 마지막 셋에서는 비닐하우스를 철거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는데, 이것까지 공연의 일부였다고. 야외 현장에서 레이브를 즐길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철수하는 그 모든 과정까지를 ACS라는 베뉴 안으로 가져온 것 같았다.

ACS 특유의 다소 ‘째지는’ 음향은 오히려 이날의 공연 톤과 적절하게 어우러지는 듯했다. 정신없이 레이브에 임하다 보니 귀가 조금 먹먹해진 것은 덤. 요약하자면, 한 베뉴에서 영감을 받고 그곳에서 함께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한 음악가들이 다시 한데 모여 자신이 펼치고 싶은 무대를 마음껏 보여주는 자리였다.

음악가와 기획자 모두에게 클럽과 공연장,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곳에서 뜻한 바를 펼쳐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하고자 하는 것이 뚜렷하다면, 하물며 그것이 즐겁기까지 하다면 하나둘씩 그곳으로 따라오는 일도 생기는 듯하다.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나가는 음악 신의 내부자들, 즉 음악가와 기획자, 공간 운영자와 음악 애호가 모두에게 힘이 될 만한 사례가 더 탄생하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Images/Videos | 굴다리
Photographer | 변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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