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으로 밝히기가 다소 민망하지만)VISLA 시리즈 ‘디거의 노래’, 그 시작점은 필자 본인이 디제잉이라는 행위를 우연한 계기로 시작하면서 동시에 전개된 시리즈임을 이번 스페셜을 통해 밝힌다. 디제잉의 시작은 2019년 여름, 친구의 갑작스러운 제안에서부터였다. 제안을 승락하고 얼렁뚱땅 음악을 한 번 틀고 난 후 내 라이브러리의 빈약함을 느꼈고, 그래서 좋아하던 레이블 ‘기글링(Giegling)’을 중심으로 내 수납장을 넓혀 왔다. ‘디거의 노래’ 시리즈 초반, ‘Efficient Space’, ‘Late Night Tales’, ‘Slow Life’, ‘Stones Throw’ 등 레이블 위주의 테마는 필자가 기글링에 애정을 느끼는 만큼 다른 디제이, 디거들 또한 각각의 최애 레이블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결과였다.
그렇게 시작된 ‘디거의 노래’ 시리즈. 더는 레이블에 한정하여 진행하지는 않지만, 2019년 11월 11일 첫 발행으로부터 지금까지 5년 동안 꾸준히 레코드 디거들의 이야기를 전하여 왔다. 총 20명의 디거를 다루었고, 그들의 수집 철학은 필자 본인과 더불어 레코드를 수집하는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아주 유익했으리라 확신한다.
그리고 성큼 다가온 2024년의 크리스마스와 연말. 이를 맞이하여 지금껏 ‘디거의 노래’에 참여한 디거들에게 크리스마스 레코드 추천을 목적으로 다시금 연락을 돌렸고 주제에 걸맞은 바이닐 한 장을 수납장에서 셀렉해 주기를 요청했다. 그리하여 준비된 이번 기획 기사 ‘디거들의 노래’. 간만에, 뜬금없이 닿은 연락에도 여전히 친절했던 디거들의 답변과 저마다의 기준으로 선정한 크리스마스 레코드를 한곳에 모았다. 이번 크리스마스 스페셜을 통해 각 디거들의 디깅 여정을 다시 돌이키고 또한 연말의 따뜻한 분위기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메리 크리스마스.
*참여자들의 인터뷰는 수정 없이 원문 그대로 실었습니다.
Jesse You
윤상 – 새벽
성탄절 교회당 종소리처럼 시작하는 도입부, 쌓인 눈을 주먹으로 치는 듯한 퍽퍽한 드럼, 꾹꾹 내딛는 발자국 소리같이 뽀득거리는 베이스. 윤상의 ‘새벽’은 계절을 이야기하지 않지만 어쩐지 한겨울이다. 그러다 찬바람이 소용돌이치는 듯한 신스가 등장하고, 윤상이 겨울날 볕처럼 짧게 노래한다. “잿빛 거리 위엔 아직 남은 어둠은 아쉬운 한숨을 여기 남겨둔 채.” 크리스마스는 대개 환희와 축복의 날이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음이 언제나 꼭 그렇게 개운하지만은 않다. “지루했던 침묵은 깨어지고 눈을 뜬 하루.” 새해엔 모두 더 밝은 새벽을 맞을 수 있기를.
RAREBIRTH
The Whispers – Happy Holidays To You
크리스마스 홀리데이 시즌을 그다지 즐기지 못하는 아저씨가 되어버린 나에게 과연 캐롤앨범이 있을까 싶은 마음으로 바이닐 장을 뒤적이다 찾게 된 유일한 캐롤앨범. 커버를 본 순간에도 이게 왜있는지 의문스러웠지만 앨범의 타이틀을 듣곤 그 이유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The whispers의 팀이름 처럼 조심히 다가와 크리스마스가 왔다고, 다른이들 처럼 크리스마스라고 유난떨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주듯 속삭여준다. 끝까지 들었을 때에는 온갖 마음의 병까지 치료되는듯 하다.
Jongho
Leon revol – Embers
생각보다 많이 춥고 힘든 겨울입니다. 아주 혹독한 어둠이 우리를 침범하려 했지만, 작은 불씨들의 힘으로 다시금 따뜻해져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올해의 크리스마스는 작은 불씨들이 모여 따뜻함을 나누며 춤추고 즐기길 바랍니다. 따뜻하고 좋은 에너지를 불어넣어주는 건반의 코드와 질감, 그루비한 베이스라인이 매력적인 딥하우스 곡입니다. 부드러운 드럼들의 사운드가 너무 자극적이지 않아 조금씩 몸을 흔들며 춤을 추게 만들어 줍니다. 가볍게 와인이나 맥주한잔 하면서 듣기 좋은 딥하우스 입니다. 크리스마스에는 부드럽고 그루비한 딥하우스 음악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몸이 들썩이는 따뜻함을 느껴보는건 어떨까요.
Chae
The Modern Jazz Quartet – Fontessa
작년 겨울 퍼멘츠 데이드림 크리스마스 특집 때 틀기 위한 판을 디깅하러 일본에 갔고, 그때 Disk Union Shibuya Jazz Rare Groove Record Store 에서 구매한 중고 LP. 피아노와 비브라폰이 주도하는 차분하면서도 명랑한 멜로디가 겨울과 썩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특히 비브라폰 특유의 맑고 부드러운 소리는 겨울철의 서늘한 공기를 닮았다. 서정적이면서도 우아한 멜로디가 크리스마스와 제격!
espionne
조방 – 70년대의 캐롤경음악집
한국 사이키델릭 록 역사에서 가장 수수께끼의 명장인 기타리스트 조방의 몇 안되는 레코딩. 개러지록과 사이키델릭 잼 사이에서 가장 깊고 단단한 연주를 들려주는 크리스마스 사이키델릭 사운드이다.
Beautiful Disco
Mndsgn & Ahwlee – A Rap Vacation X-Mas
LA 비트 씬이나 로파이 힙합을 좋아한다면 반드시 들어봤을 법한 필수 앨범이다. 크리스마스하면 빼놓을 수 없는 Vince Guaraldi의 음악을 비롯해 다양한 크리스마스 곡들을 샘플링한 비트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크리스마스 로파이 비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질감과 드럼 사운드를 자랑하는 앨범이라 생각한다. 디지털로 먼저 발매된 후 시간이 좀 지나 바이닐로도 발매되었는데, 지금은 문을 닫은 룸360에서 이 앨범을 구매했다. 나에게는 룸360의 추억까지 함께 소중히 간직하게 해주는 앨범이다.
이상직
Hank Crawford – We Got A Good Thing Going
너무나 많은 훌륭한 크리스마스 테마의 음반들이 많습니다.그중 나에게 지난 세월 작은 추억이 있는 Hank Crawford의 1972년 발매된 We Got A Good Thing Going을 소개합니다.
곡들은 작정하고 크리스마스 음악으로 채워졌다기 보다 추운겨울날 그리고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아우룰 수 있는 곡들과 바이브로 채워져 있습니다.
Airbear
Various –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이 앨범은 1983년 YMO(옐로 매직 오케스트라)의 멤버였던 호소노 하루오미(Haruomi Hosono)와 다카하시 유키히로(Yukihiro Takahashi)가 설립한 Yen Records에서 발매한 크리스마스 컴필레이션입니다. 이 앨범은 1983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몇 달간 작업되어 완성되었으며, 레이블과 친분이 있는 아티스트들이 만든 오리지널 곡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준 토가와(Jun Togawa), 이토 긴지(Ginji Ito), 그리고 문라이더스(Moonriders) 같은 대단한 뮤지션들이 참여했습니다.
앨범 전체가 특별하지만, 개인적으로 두 곡이 특히 눈에 띕니다. 하나는 코시 미하루(Miharu Koshi)의 “Belle Tristesse 妙なる悲しみ”이고, 이 곡은 제가 Visla 크리스마스 믹스에서도 소개한 바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호소노 하루오미의 “25 Dec. 1983″입니다. 전형적인 크리스마스 앨범은 아니지만, 앨범 전체가 독특하고 귀여운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몇 곡은 클럽 댄스 플로어에서도 잘 어울립니다. 작년 크리스마스 무렵 Nyapi에서 디제잉할 때, “Belle Tristesse 妙なる悲しみ”을 틀었어요. 제가 그날 밤 클로징 DJ였는데, 세트 초반에는 하우스 음악으로 시작하다가 점점 끝으로 갈수록 좋은 크리스마스 음악을 틀었죠. 그날 밖에는 눈이 꽤 많이 내렸고, 몇 명 안 되는 사람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는데, “Belle Tristesse 妙なる悲しみ”을 틀자 사람들이 트랙 ID를 물어보며 찾아왔던 기억이 납니다.
Sunaoira
The Sonics – Here Are The Sonics!!!
머라이어 캐리의 크리스마스 기운이 스멀스멀 기어오는 12월 초,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기 위하여 많은 장르들의 곡을 틀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장르도 있다. 그 중에 하나가 펑크로, 원래 기성세대 메인스트림에 반대하는 정신을 가져서인지 크리스마스 앨범을 찾기가 많이 어렵다.
하지만 그 펑크의 시초인 프로토 펑크 장르 밴드중에 유명한 개러지 밴드인 더 소닉스 (The Sonics)가 1965년에 발매한 첫 앨범인 히어 아 더 소닉스 (Here Are The Sonics!!!)에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곡 하나가 아닌 세곡식이나 찾아 볼수가 있다. 물론 펑크 스피릿이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정신을 즐긴다기 보다는 그를 조롱하는듯한 느낌인데, 원하는 선물을 못받았다는 내용의 Don’t Believe In Christmas, Santa Claus, 두곡과, 제목 그대로 마을 바보와 진탕 술을 퍼마시고 부르는듯한 느낌의 The Village Idiot 이렇게 세곡이 있다. 사실 이 곡들은 원래 1집 초반에 수록되지 않고 싱글로 발매되었다가 1998년도에 노튼 레코드 (Norton Records)에서 발매된 재발매에 원곡과 같이 수록되어서 발매가 되었다. 재발매 당시 왜 크리스마스 곡을 넣었는지는 당사자만 알겠지만 곡의 완성도나 초기 펑크 정신과 장르를 잘 보여준다는 면에서는 헛된 결정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초반에 비해서 가격도 아주 저렴해서 좋다. 그리고 나머지 일반 곡들도 그 당시 유행하던 노래들을 개러지 밴드 스타일로 커버하거나 오리지널 곡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스타일을 아주 잘 나타내고 있다.
보통 연말이나 특히 크리스마스가 되면 잔잔한 음악들을 찾기 마련인데, 가끔은 피를 끓게 만드는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듣는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Noimnot
The Whispers – Happy Holidays To You
7-80년대의 소울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익숙하다 못해 친숙할 정도로 유명한 LA출신의 소울 그룹 The Whispers의 크리스마스 앨범. 78년부터 87년까지 그룹이 적을 두었던 SOLAR (Sound Of Los Angeles Records) 에서 발매된 앨범이다 보니 캐럴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레이블의 특색이 묻어나는 재미가 있다.
특히 ‘This Time Of Year’ , ‘White Christmas’ 이 두 곡은 쫀득한 리듬과 부드럽게 정제된 Whispers의 하모니가 어우러져 연말 파티튠으로도 손색이 없는 댄서블한 그루브를 들려준다.
또한 ‘울면 안 돼‘로 번안되어 더 잘 알려진‘Santa Claus Is Coming To Town’의 보사노바 버젼도 수록되어 있으며 79년, 85년, 87년 발매 연도마다 앨범의 커버가 다르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커버를 체크하고 구매에 나설 것!
Jaezae
Seven Windows – Seven Windows 1986
1986년에 네달란드에서 발매된 Fusion Jazz, Downtempo 장르의 Seven Windows의 앨범이다.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음반은 아니지만, 겨울, 특히 연말에 늘 이 앨범이 생각난다. 재즈풍의 차분하면서 따스한 멜로디, 감성적인 보컬과 색소폰이 어우러져 연말 느낌이 물씬 들게 한다. 모든 수록곡이 다 좋지만, 특히 A4의 Easy Way, B2의 Shakey’s Got The Blues는 크리스마스에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들으면 아주 좋을 듯.
Sina Hill
山下達郎* – Christmas Eve (2023) (40th Anniversary Edition)
야마시타 타츠로의 명곡 Christmas Eve가 들어있는 40주년 기념 한정판. 바이닐을 모으기 시작할 때부터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늘 갖고 싶었지만 왜인지 쉽게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웬걸. 무려 작년 크리스마스에 도쿄의 디스크유니온 시모키타자와점에서 발견했다! 이 앨범이 나온 지 40년 만에 심지어 본토인 일본에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나에게 온것이다. 그래서 의미가 더 깊다. 크리스마스 노래 하면 성탄절의 바이브로 축복과 행복, 사랑만이 가득한 노래가 많다. 하지만 이 앨범은 오지 않을 사랑을 덤덤히 받아들이며 혼자만의 고요한 크리스마스이브를 노래한다.
DJ Mospiran
Waltinho E Seu Conjunto – Magi Ritmo
포르투갈어로 ‘그네’란 뜻을 지닌 balanço 는 그 뜻처럼 흔들거릴만한 업템포의 삼바, 보사노바를 지칭하는 장르를 지칭하기도 한다. 1966년 발매작 Waltinho E Seu Conjunto의 Magi ritmo는 Mas Que Nada, Garota de Ipanema처럼 익숙한 곡부터 A4의 Samba Internacional 같은 생소한 넘버도 수록되어 있다. Andy Williams나 Nat King Cole을 택하는 확실한 방법도 있겠으나, 브라스와 실로폰, 피아노에서 느껴지는 익숙하지만 색다른 크리스마스 느낌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balanço의 매력을 즐겨보자.
MIMI
Azmil – Pilihan Ku
크리스마스 시즌 땐 언제나 말레이시아가 그립다. 매일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여름과 인도양과 태평양이 만나는 푸른 바다를 갖은 나라. 그래서 추운 겨울을 잠시나마 따뜻하게 녹여줄 말레이시아의 퓨전 재즈 음악을 소개한다.아즈밀(Azmil)의 Pilihan Ku는 1982년에 발매된 곡으로 연인에게 바치는 사랑의 세레나데다.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대부분 퓨전 재즈로 말레이시아의 내로라하는 아티스트들이 세션으로 참여해 수준급의 연주를 들려준다. 양수경의 “내 생일이 멀지 않았어요”의 원곡인 쉐일라 마지드(Sheila Majid)의 “Sinaran”란 곡에서 베이스로 참여했던 데이비드 이(David Yee), 사랑과 평화라 할 수 있는 Discovery의 기타리스트 파우지 마루즈키(Fauzi Marzuki), 드러머이자 프로듀서로 Asiabeat의 리더인 루이스 프라가삼(Lewis Pragasam)이 참여해 앨범의 완성도를 높였다. 말레이시아의 썸머 크리스마스처럼 행복하고 따뜻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Editor│황선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