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방가르드의 선구자 테라야마 슈지(Shūji Terayama). 실험영화, 사진을 필두로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일본 전위예술을 넘어 예술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 테라야마 슈지의 혁명적이고 사회비판적인 작품 스타일은 50년이 지난 현재에도 전 세계에 많은 팬을 양성하고 있다.
테라야마 슈지의 업적은 각종 SNS 아카이빙 계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공유되곤 하는데, 인스타그램 계정 @shuji_terayama_office는 테라야마 슈지를 알리는 데 크게 일조하고 있다. 계정을 운영하고 있는 라파엘(Rafael)과 대화를 나누며 테라야마 슈지의 매력과 계정 운영 그리고 마치 테라야마 슈지처럼 다양한 영역을 오가는 그의 작품 세계도 들여다보았다.
자기소개 부탁한다.
@shuji_terayama_office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는 라파엘(Rafael)이라고 한다. 내 진짜 이름은 라팔(Rafal)이지만, 나의 조부모님은 나를 라파엘이라 부르곤 하셨다. 그래서 그걸 필명으로 쓰고 있다. 현재 폴란드 바르샤바에 살고 있으며, 그래픽을 공부했고 오랜 시간 시각 예술 작업을 했다. 2017년부터 사운드, 오디오 콜라주에 대한 실험도 진행해 왔는데, 최근에는 음악에 집중하고 있다. 작년 7월 나의 첫 정규 앨범 [Paranoid Candy]를 발매했다.
테라야마 슈지의 아카이빙 계정 @shuji_terayama_office를 운영하고 있다. 그를 어떻게 처음 알게 됐고 어떤 계기로 계정을 운영하게 됐나.
지난 2022년 여름, 나는 새로 만들 음악에 대한 아이디어를 찾고 있었다. 영화는 항상 나의 거대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특히 실험 영화, 강렬한 비주얼을 지닌 영화, 터무니없고 거친 비주얼과 사운드를 지닌 영화에서 주로 영감을 받았지. 그러던 중 인스타그램에서 테라야마 슈지의 한 영화의 몇몇 프레임을 보게 됐다. 내 기억상 한 여자가 거대한 못에 못을 망치질하고 있었는데, 나는 어렸을 적부터 못을 좋아했다. 이 장면을 계기로 그의 영화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마음속에서 이 프레임들이 불타올랐다. 나는 테라야마 슈지의 몇몇 영화를 더 찾아보았다. 그의 매력적이고 다채롭지만 동시에 잔인하면서도 산업적인 시각적 언어가 나와 너무 잘 맞았다. 나는 공감되는 무언가를 찾으면 그것에 집착하게 된다. 그것의 모든 것을 보고 알고 싶다. 나는 테라야마 슈지라는 사람을 더 알고 싶었다. 그리고 테라야마 슈지라는 거대한 세계 앞에 선 나는 그 세계로 뛰어들었다.
테라야마 슈지에 대해 알아가며, 나는 우리 대부분이 알지 못하는, 테라야마 슈지에 관한 훨씬 더 많은 것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비공식’ 테라야마 슈지 인스타그램 페이지를 운영하며 대중들에게 이 모든 것을 알리겠다고 결심했다. 이미 테라야마 슈지에 관한 에세이, 기사, 블로그, 영상 등이 많이 있지만, 인스타그램이 그의 작품을 더 많은 대중에게 소개하기에 완벽한 매체라고 생각했다.
계정에는 엄청난 양의 아카이브 자료가 업로드되어 있다. 어디서 테라야마 슈지에 관한 자료들을 구하고 있나.
계정을 시작할 때 올린 거의 모든 게시물의 사진과 자료들은 일본 트위터, 텀블러나 우부웹(ubuweb) 등 거의 인터넷으로 구했다. 또한 작품의 맥락을 제공하기 위해 에세이나 서적에서 발췌한 정보들을 함께 포스팅했다. 최근 포스팅된 테라야마 슈지의 사진, 책, 기타 인쇄물에 대한 자료는 주로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것들에서 가져왔다.
테라야마 슈지의 많은 작품을 봐왔을 것 같은데,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1969년에 발행된 “American Hell Tour”. 에세이와 일기의 형태로 작성된 미국 언더그라운드 문화에 대한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다. “American Hell Tour”의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영어로 직접 번역까지 했다. 테라야마가 1968년 미국 투어 이후에 이 시를 적었다. 특히 시의 마지막 몇 줄에서 오는 파멸적인 분위기는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강렬하다.
한편 계정을 운영하는 와중에도 많은 개인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테라야마 슈지의 작품이 당신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하다.
계정을 운영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예술가로서 다른 예술가의 작품을 연구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적어도 의식적으로는 나의 예술적 실천(음악)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테라야마의 작품에서 나의 아이디어랑 비슷한 측면들을 찾을 수 있지만, 그건 두 작가의 작품을 비교하면 생기는 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테라야마에 빠지게 된 계기를 말하며, 어렸을 적부터 못을 좋아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당신의 다양한 작품에서 못의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당신에게 못은 상징적인 메타포로 활용되고 있는 것 같다. 못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가?
어릴 적 조부모님이 도시의 한 집으로 이사했고, 할아버지는 그곳에서 목공소을 시작했다. 후에 우리 가족도 그 집으로 이사했다. 할아버지의 목공소는 나의 놀이터였고, 그곳은 나무와 장비들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할아버지의 도구들이 나의 작품 속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나는 못의 이미지에 집착하게 됐고, 못에 대한 많은 생각을 했다. 못은 독특함, 개인주의에 대한 욕망과 환상을 완벽하게 구현해 냈다.
당신의 작품에서 할아버지와의 관계 또한 중요한 무언가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할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땠나.
할아버지 많은 영감이 되는 사람이다. 두 가지 측면에서 매력을 느꼈다. 할아버지는 실용적인 물건을 만드는 목수이자 음악과 사진을 독학해 뮤지션과 사진가로도 활동한 진정한 예술가다. 몇 년 전 할아버지의 사진 수백 장을 발견했다. 그중 28장을 추리고 내가 촬영한 할아버지의 공구 사진 16장을 담은 사진집 ‘JUNG’을 만들었다. 16장의 공구 사진은 투명한 종이에 인쇄했다. 겹쳐진 두 페이지는, 그의 목수와 예술가라는 두 가지 면모를 합쳐 보여준다. 오사카와 도쿄 공연에선 그의 공구를 이용한 노이즈 퍼포먼스도 했고, 그의 공구를 이용해 다양한 조형 작업을 했다.
최근에는 음악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앨범을 준비 중인가?
그렇다. 이미 몇몇 곡들의 베이스 라인을 동생과 함께 녹음했고. 아마 올해 봄에 발매할 [Paranoid Candy]의 에필로그 앨범을 작업 중이다.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살짝 귀띔해 준다면, 무척 거칠 것이다.
작년 첫 정규앨범 [Paranoid Candy]를 발매하고, 유럽과 일본을 투어했다. 올해도 투어 계획이 있는가?
물론이다. 작년 유럽과 일본에서 진행한 투어는 정말 엄청났다. 올해는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 공연하고 싶다. 서울과 상하이는 확실히 포함될 거다.
Rafael 인스타그램 계정
Shuji Terayama Office 인스타그램 계정
이미지 출처ㅣRafael 제공,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