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의 새로운 힙합, Jerk

Opp was talkin’ down, yeah, we caught him in the alley
Niggas talkin’ down, I don’t think they understand me
Rocked out the show, yeah, the 1c rally
Uh, me and Rennessy, we out in Cali
From the rap game, I think they tryna ban me
Yeah, these niggas, they can’t stand me

적이 깔보고 있어, 우린 거리에서 그를 잡았지
놈들이 깔보는데, 내가 이해가 안 되나 봐
공연장을 뒤집어놨어, 그래, 팀 1c
나랑 레네시, 우린 캘리포니아에 있어
랩 게임에서 날 쫓아내려는 것 같아
그래, 이놈들은 날 못 견디는군

– Xaviersobased의 곡 Special 中

뉴욕 드릴(Drill) 신(Scene)에서 시작된 ‘온 더 레이더(On the Radar)’ 라디오는 현재 구독자 100만 명이 넘는 대형 힙합 채널이다. 드레이크(Drake)와 센트럴 씨(Central Cee)가 함께한 동명의 싱글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채널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이 채널에 출연한 한 소년을 언급해 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네모난 뿔테 안경과 우스꽝스러운 광대 모자, 영 린(Yung Lean)의 S.B.E(Sad Boys Entertainment)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가 눈에 띈다. 기운이 다 빠진 듯한 프리스타일 랩과 마른 팔로 표현하는 총 모양 제스처는 위협적이긴커녕 어설퍼 보이기만 하다. 영상 댓글 창에는 ‘언젠가 역사 수업에서 가르칠 것’이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이 래퍼’와 같은 미묘한 반응이 넘쳐난다. 이 괴짜 같은 모습의 주인공이 바로 미국 Z세대의 인터넷 랩 스타, 자비에소베이스드(Xaviersobased, 이하 자비에)다.​

영상 속 흘러나오는 음악은 올해 초 발매된 자비에의 새 믹스테이프 수록곡 “Special”이다. 한때 자비에의 음악은 디스코드(Discord)나 사운드클라우드(SoundCloud)에서만 들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모든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그의 음악을 접할 수 있으며, 더불어 평단의 호평까지 받아낸 상황이다. 그런데도 일부 힙합 팬은 여전히 자비에의 음악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과도하게 압축된 808 베이스, 의도적으로 깨뜨린 음질, 불규칙하게 튀는 피치(Pitch)의 보컬은 다소 장난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 이유는 자비에의 음악이 철저히 인터넷에 기반하기 때문일 것이다. 온라인 포르노 게임의 사운드트랙과 같은 요소를 샘플링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가사의 반복은 마치 밈(meme)처럼 인터넷 리스너들 사이에 공유돼 컬트적(Cult) 인기를 끈다. 이를 Z세대만의 일시적 유행으로 치부하기엔, 그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는 모양새다. 자비에의 음악은 어쩌면 현대 힙합이 겪은 또 다른 디아스포라(Diaspora)의 결과이자, 이미 우리 곁에 다가온 미래일지도 모른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힙합이 거리를 벗어나 디지털 공간으로 이동하던 순간을 살펴보자.


1. 힙합의 변곡점, 사운드클라우드

2010년대 중반 힙합이 대중음악의 지배적 장르로 자리 잡았을 때, 그 중심은 거리가 아닌 인터넷에 있었다. 당시 사운드클라우드 신을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이 시기의 아티스트들은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았고, 작업은 주로 DM이나 이메일을 통해 이뤄졌다. 브롱크스에서 시작된 힙합이 마침내 물리적 영토를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2017년 릴 우지 버트(Lil Uzi Vert)의 “XO Tour Llif3″가 빌보드(Billboard) 차트 7위에 오른 것은, 이러한 변화가 주류로 들어섰음을 상징한다.​

사운드클라우드 래퍼의 성공은 음악 산업의 근간을 바꿔놨다. 기존 스튜디오와 레이블은 필수가 아니게 됐고, 집에서 제작한 음악은 곧바로 발표돼 청자와 직접 소통했다. 과감한 오토튠(Auto-Tune)과 로파이(Lo-Fi) 사운드는 기술적 한계가 아닌 미학적 선택으로 널리 받아들여졌으며, 이는 디지털 공간에 맞는 새로운 표현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힙합의 공동체성 역시 큰 변화를 겪었다. 과거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정체성을 토대로 했던 힙합은 이제 ‘디지털 디아스포라’로서 새로운 영역을 구축했다. 더는 특정 지역이나 인종이 전제조건이 되지 않고, 대신 인터넷 문화에 대한 이해와 적응력이 중요해졌다. 이는 단순한 도피가 아닌,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가 만들어낸 새로운 문화적 흐름이다.​

초기 클라우드 랩(Cloud Rap)을 잇는 스웨덴의 영 린과 드레인 갱(Drain Gang)은 북유럽의 우울한 정서로 힙합의 지평을 넓혔다. 뉴욕의 서프 갱(Surf Gang)은 이를 플러그(Plugg)와 샘플 드릴(Sample Drill)로 재해석했고, 하이퍼팝(Hyperpop)의 영향력이 두드러진 디지코어(Digicore) 신에는 노바갱(NOVAGANG), 블러드하운즈(Bloodhounds), 슬로우실버03(slowsilver03) 등의 콜렉티브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존재한다.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건, 디지털 공간에서 형성된 정체성뿐이다.​

​이 새로운 디아스포라는 디지털 시대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끝없는 정보 과잉과 소셜 미디어가 야기하는 고립감, 불안정한 경제 현실은 이들 음악에 우울과 불안으로 표출됐다. 여기에 2010년대 이모 랩(Emo rap)의 영향은 자기 파괴적이면서 강렬한 감정 표현을 더했고, 온라인 커뮤니티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팬덤을 형성해 냈다.


2. 그 이후의 힙합

대중음악은 오랜 시간 ‘미래 상실’에 관한 담론에 시달려 왔다. 끊임없이 발매되는 음악과 아카이빙이 혁신의 여지를 줄이고, 과거를 재현하는 데 그친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힙합은 아직 다른 양상을 보이는 듯하다. 힙합의 핵심 요소인 샘플링(sampling)이 과거를 창조적 파괴의 재료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힙합의 아카이브는 제약이 아닌 가능성의 원천이며, 그 태생에 담긴 기술적 혁신은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된다.

현재 언더그라운드 힙합 신은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크게 ‘과거’와 ‘미래’ 두 축으로 움직인다고 할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웨스트사이드 건(Westside Gunn)이 이끄는 그리젤다 레코즈(Griselda Records)의 드럼리스(Drumless) 신이다. 2012년 뉴욕 버펄로에서 시작된 그리젤다는 사운드클라우드 세대와 같은 시기를 거쳤지만, 전혀 다른 방향을 택했다. 이들은 90년대 붐 뱁(Boom Bap)이라는 과거를 재해석해 현재의 거리를 표현한다. 특히 드럼 패턴을 최소화하거나 제거하는 미니멀한 접근은, 과거로의 맹목적 회귀가 아닌 힙합의 근원적 에너지를 포착하려는 시도다.

반대편엔 플레이보이 카티(Playboi Carti)로 대표되는 레이지(Rage) 신이 있다. 이들은 음악에 XXX텐타시온(XXXTENTACION), 스키 마스크 더 슬럼프 갓(Ski Mask the Slump God)과 같은 사운드클라우드 래퍼의 격렬함을 담고, 여기에 퓨처 베이스(Future Bass) 신스를 더했다. 트랩의 변종인 플러그(Plugg)에서 파생된 이 사운드는 디지털 디아스포라의 탈경계성을 잘 나타낸다.​

이러한 미래지향적 융합은 여러 갈래로 발전했다. 멜로디컬한 요소를 강조한 플럭앤비(PluggnB)는 온라인 콜렉티브 슬레이월드(SlayWorld)를 통해 확산됐으며, 전 멤버였던 이트(Yeat)는 종소리 샘플과 컨셉추얼한 사운드로 레이지 신의 새 스타가 됐다. 작년 발매된 래퍼 런치박스(Lunchbox)의 앨범 [New Jazz]는 또 다른 전환점을 만들어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결국 이 상반된 두 축은 각자의 방식으로 힙합의 미래를 탐색한다. 드럼리스가 디지털화 이전의 힙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물리적 영토로의 복귀를 꿈꾼다면, 레이지는 디지털 공간의 탈경계성을 활용한 실험으로 그 지평을 넓힌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다음은 무엇인가?


3. Jerk의 등장

2023년, 자비에와 캘리포니아 프로듀서 카쉬페인트(kashpaint)의 곡 “patchmade”가 틱톡(TikTok)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오래된 CD의 버퍼링처럼 끊기는 불안정한 리듬, 변조된 피치의 보컬, 흘러내리는 듯 늘어진 신스가 특징인 이 짧은 곡은 ‘넌 열정 없이 어떻게 살아가?’라는 가사와 함께 Z세대의 인기를 끌었다.​

‘저크(Jerk)’라 불리는 이 장르는 2000년대 말 대두된 LA의 저크 랩(Jerk Rap)과 이름만 같을 뿐, 완전히 새로운 사운드를 보여준다. 1c 콜렉티브와 자주 작업하던 프로듀서 카쉬페인트가 “hoodtrap”(현재 원곡은 삭제된 상태다)이란 트랙으로 처음 선보였으며, 그는 플러그의 몽환적 신스 패드를 기반으로 하되, 미니멀한 스네어 중심 드럼과 더블타임 클랩이라는 로우엔드(Lowend) 요소를 결합해 독특한 사운드를 구축했다. 저크의 또 다른 특징은 베이스의 극단적 증폭과 클리핑(Clipping)인데, 이는 애틀랜타 프로듀서 피어도리안(feardorian)과 자비에의 합작 “Upper West”에서 잘 드러난다.​

이 새로운 사운드는 자연스레 Z세대의 문화 코드와 결합했다. 자비에의 에는 스폰지밥비디오게임 레퍼런스가 등장하고, “Pediatrician”에서는 소아과 진료실 TV로 너긴(Noggin, 니켈로디언의 어린이 채널)을 보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이런 일상적 소재는 강렬한 비트와 충돌해 아이러니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장르의 또 다른 스타로는 버지니아 출신의 17세 래퍼 넷스펜드(Nettspend)를 꼽을 수 있다. 그의 첫 히트곡 “drankdrankdrank”는 달리는 차 안에서 10분 만에 녹음됐고, 1분짜리 곡 “We Not Like You”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에서 2024년의 사운드로 소개됐다. 넷스펜드의 음악은 마치 치프 키프(Chief Keef)가 교외 중산층에 태어나 PS4를 하며 자랐다면 어땠을지 상상하게 한다.​

이렇듯 저크가 보여주는 것은 디지털 네이티브 본연의 모습이다. Z세대에게 디지털 공간은 더 이상 현실 도피의 가상이 아닌, 삶의 본질적 영역이 됐기 때문이다. 오히려 과거 힙합의 ‘거리’야말로 이들에겐 경험해 보지 못한 일종의 판타지에 가깝다. 그렇기에 넷스펜드가 침대에 와인을 흩뿌리는 모습이나, 자비에가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곡에 인용하는 행위는 역설적으로 가장 ‘진정성’ 있는 표현이 된다.


4. 디지털 네이티브의 힙합

작년 12월, 맨해튼 머큐리 라운지(Mercury Lounge)에서 열린 공연은 저크의 폭발적 인기를 증명했다. 16세 이상 무료라는 공지에 인파가 몰렸고, 초과 판매된 티켓으로 공연이 지연됐다. 관객들은 입장을 제한당하자 보안 검색대를 도로로 끌어내 소요를 일으켰으며, 결국 모든 이들이 공연장 밖으로 쫓겨나게 된다.​

쫓겨난 십 대들은 인근 스케이트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화물차 위에서 펼쳐진 즉흥 공연은 현대 힙합의 근본적 변화를 상징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청중의 구성이다. 이들에게선 기존 힙합의 공동체성을 찾을 수 없고, 오로지 힙합을 좋아하는 ‘십 대’와 ‘디지털 세대’라는 특징만이 어렴풋이 나타난다. 자비에의 곡 “classist”에서 “그 늙은이가 계급주의자라면 때려라”라는 가사가 시사하듯, 이제 힙합의 구분선은 Z세대의 새로운 가치관으로 재편됐다. 이는 지난 반세기 동안 힙합을 지탱해 온 근본적 전제들이 스마트폰과 인터넷이라는 디지털 인프라로 이동하는 과정과 맞닿는다.​

현대 힙합의 ‘진정성’은 특정한 배경이나 경험이 아닌, 현재의 감각을 얼마나 정직하게 드러내는가에 달렸다. 이들에게 디지털은 리얼리티 그 자체이기에, 열등한 음질과 불안정한 구조는 결함이 되지 않는다. Z세대가 평소 즐겨 쓰는 틱톡처럼 산만하고 단절적인 정보의 흐름, 압축되고 왜곡된 이미지로 가득 찬 감각을 표현하는 가장 솔직한 방식일 뿐이다.​

지금 디지털 시대의 힙합은 새로운 디아스포라의 한가운데 있다. 거기에 SNS 피드처럼 순간적으로 갱신되는 트렌드, 밈으로 재생산되는 문화적 코드,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플레이리스트는 Z세대를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게 한다. 어쩌면 이러한 비정주성(非定住性)이야말로 현대 힙합의 본질이며, 저크는 그 과정에 불과한 게 아닐까.

본 칼럼은 전성환 에디터의 블로그를 출처로 둡니다.


에디터 | 전성환
이미지 출처 |  youtube.com/@phingu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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