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의 순환이 과거 90년대 스포츠웨어의 부흥기에 접어들며, 여러 브랜드가 이를 복각하고 재해석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 이런 동향의 모티브가 되는 스포츠 캐주얼은 과연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촌스럽게만 느껴지던 형형색색의 나일론 재킷과 트랙슈트, 거대한 브랜드 로고를 삽입한 스웨트셔츠는 그 어떤 패션보다 ‘힙’해보인다.
90년대 스포츠 캐주얼이라는 단어에서 연상할 수 있는 브랜드라면, 일반적인 스포츠 브랜드를 생각하겠지만, 사실 스포츠 캐주얼, 캐주얼 스포츠웨어의 초석은 이미 여러 부티크 브랜드에서 시작되었다. 1960년부터 매년 개최되는 기성복 박람회 쁘레따뽀르떼(Pret-a-porter)를 기점으로 스포츠 룩은 성숙기를 맞이하며 그 저변을 더욱 넓혔다.
이런 부티크 브랜드가 전개하는 스포츠 캐주얼에서 한발 더 나아간 브랜드가 있으니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휠라(FILA), 엘레쎄(Ellesse), 엄브로(Umbro), 카파(Kappa), 디아도라(Diadora), 로또(Lotto) 등이 바로 그것. 이 경우에는 활동성을 목적으로 한 액티브 스포츠웨어로 시작해 스트리트, 타운 스포츠웨어를 함께 전개하며 80, 90년대 큰 인기를 구가했다. 타운 스포츠웨어는 직접적인 스포츠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의복에 액티브 스포츠웨어의 디자인적 요소를 첨가한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실제 우리가 멋진 나일론 트레이닝 슈트를 구입했다고 해서 곧장 트랙으로 달려나가지는 않으니까. 최근 우리가 인식하는 스포츠 캐주얼 브랜드의 레트로 디자인 의류는 타운 스포츠웨어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초기 이탈리아 스포츠웨어 브랜드는 그 입지를 굉장히 잘 다졌다고 할 수 있다.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휠라는 1975년, 세계 최고 권위의 테니스 대회 윔블던(Wimbledon)에서 스웨덴 출신 테니스 선수 비외른 보리(Bjorn Borg)에게 당시로는 상당히 파격적인 디자인의 운동복을 입혀 패러다임의 변화를 꾀했다. 이전까지 오로지 흰색의 운동복만을 입어야 했던 윔블던에서 원색의 핀 스트라이프 피케티를 입은 비외른 보리의 등장은 그야말로 파격적이었고, 휠라라는 브랜드는 대중에게 강력한 임팩트를 주었다. 이후 화이트, 레드, 네이비 등 로고 컬러의 원색을 중심으로 한 깔끔한 컬러링의 스포츠웨어는 세계 전역을 휩쓸기 시작한다.
어쩌면 지금의 유행은 언급한 위 브랜드뿐 아닌 여러 스포츠웨어 브랜드에게 새로운 기회와도 같다. 해외 각국에서는 이미 여러 브랜드가 휠라와의 협업을 통해 80, 90년대의 무브를 옮겨낸 컬렉션을 꾸준히 발매하고 있는데, 일례로 몽키타임(Monkey Time), 뷰티 & 유스(Beauty & Youth)와 같은 브랜드의 휠라 컬렉션은 그 옛날 휠라의 감성을 굉장히 잘 표현해냈다. 동시에 패커 슈즈(Packer Shoes)가 진행한 테니스웨어 콘셉트, 이전 휠라의 헤리티지 스니커를 새롭게 복각한 여러 스니커 편집숍의 움직임은 최근의 유행을 재빠르게 보여주고 있다.
점점 더 빠르게 회전하는 유행의 고리에서 지금의 80, 90년대 열풍은 오리지널 스포츠 브랜드 외에서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뉴욕발 스케이트보드 브랜드 패터슨(Paterson)은 테니스 웨어를 바탕으로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으며, 스웨덴 스케이트보드 브랜드 포스트 디테일스(Post Details) 또한 테니스를 콘셉트로 컬렉션을 꾸린 이력이 있다. 이런 확고한 콘셉트가 아니더라도 여러 브랜드에서 시즌 컬렉션에 스포츠 캐주얼 풍의 의류를 내놓는 일은 이미 비일비재하다.
쉴 틈없이 전개되는 나이키(Nike), 아디다스(adidas)의 스니커 게임, 혁신적인 디자인 의류와는 조금 다른 영역이지만, 이제 와 생소해진 스포츠 캐주얼 브랜드의 재조명은 외려 신선한 모습으로 대중을 맞이한다. 오랜 고집을 가진 휠라의 로고, 운동복으로만 착용할 것 같았던 엄브로의 로고가 다시금 대두하고 있는 지금의 거리는 완전히 새로운 양상에 접어들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면티와 이해하기 힘든 조악한 그래픽보다는 과거의 흐름을 단단하게 간직한 여러 스포츠웨어가 그 당시의 분위기를 향유하지 않았던 층에게 좋은 포인트로 작용하고 있다.
스포츠 캐주얼은 언제나 우리 곁에서 함께했다. 긴 시간을 돌아 새로운 영광의 시대를 맞은 지금, 여러 스포츠 캐주얼 브랜드는 과거의 흔적을 좇으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80, 90년대의 감각과 신선함의 균형이라는 과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변 스포츠 캐주얼 브랜드의 약진을 관심과 함께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