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이탈리아 북서부 비엘라의 두 형제가 설립한 세계적인 스포츠웨어 브랜드 휠라(FILA). 지금은 스포츠웨어를 만들고 있지만, 1973년까지 회사의 주요 제품은 ‘이너웨어’였다. 이후 높은 기술력과 품질, 혁신적인 디자인을 바탕으로 스포츠웨어를 전개하며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 앞의 기사에서 언급했듯, 1975년 스웨덴 출신 테니스 선수 비외른 보리(Bjorn Borg)를 기용한 마케팅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휠라는 순풍을 탄 범선처럼 세계 곳곳을 누비기 시작한다.
당시 휠라가 제작했던 스포츠웨어의 인기는 영국 태생의 영화감독 닉 러브(Nick Love)가 2005년 제작한 영화 비즈니스(The Business)에서 고스란히 나타난다. 영국과 스페인을 오가는 갱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이 휴양지에서 즐기는 리조트룩의 메인 브랜드로 휠라를 설정해 당시의 유행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비외른 보리가 휠라의 큰 도약에 굉장한 도움을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휠라와 함께 한 스포츠 스타는 비단 테니스 종목에만 그치지 않았다. 휠라는 ‘Change The Game’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1995년, NBA 코트를 누비던 그랜트 힐(Grant Hill)의 시그니처 슈즈를 발매하며 농구화 시장에 뛰어든다. 당시 나이키(Nike)의 에어 조던(Air Jordan) 시리즈, 아디다스(adidas)의 엑신(Exin), 리복의 샤크(Shaq Attacked) 등 유수의 농구화가 쏟아져 나왔던 시기였음에도 큰 선전을 하며 테니스 외 스포츠웨어의 가능성을 엿보았다. 이후 제리 스택하우스(Jerry Stackhouse)의 시그니처 슈즈인 스파게티(Spaghetti)를 발매하며 농구화 시장의 새로운 막을 연다. 휠라는 농구화를 선전하기 위한 다양한 광고를 제작했는데, 당시의 창의성 넘치는 광고는 지금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제리 스택하우스가 등장한 광고 이미지
‘Change the Game’ 슬로건을 기반으로 그랜드 힐을 내세운 당시 휠라 광고
사마귀와 접목시킨 휠라 슈즈 광고
휠라는 길거리 문화에도 관심을 보이며 다양한 협업을 펼쳤다. 휠라의 클래식 스니커를 바탕으로 우탱 클랜(Wu-Tang Clan)의 정체성을 담은 협업 스니커를 발매하기도 했으며, 2009년 웨더 테크라는 이름의 부츠까지 제작하며 큰 이슈를 낳았다. 실제 우탱 클랜의 멤버가 등장하는 공식 광고 영상은 수많은 힙합 팬의 눈도장을 찍기에 충분했다. 또한 나스(Nas)와의 협업은 지금까지도 ‘휠라 = 힙합’이라는 공식을 각인시킨 대표적인 케이스로, 트레이닝 슈트와 스니커를 선보이며 그 구성을 더욱 확장했다. 그리고 2007년 굴지의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Supreme)과 스포츠 져지, 피케티, 헤어, 리스트 밴드까지 구성한 협업 컬렉션을 발매해 이색적인 조합을 보여줬다.
이전부터 휠라와 힙합 문화는 묘한 인연을 맺어왔는데, 그것은 아마도 이탈리아 마피아에 환상을 품은 흑인 래퍼들이 은근한 사랑을 내비쳤던 건 아닐까. 1987년 등장, 5년간 활동하며 전설이 된 에릭 비 & 라킴(Eric B. & Rakim)은 뮤직비디오에서 평소 즐겨 입던 휠라 제품을 착용했으며, 투팍(2Pac)은 휠라의 다양한 농구화를 번갈아가며 신었다. 힙합 듀오 아웃캐스트(Outcast)의 멤버, 안드레 3000(Andre 3000) 역시 휠라 오리지널 재킷으로 휠라 사랑을 드러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휠라와 힙합은 그 문화적 연결고리를 끈끈하게 이어오고 있다.
휠라의 오랜 아카이브는 해외 유명 브랜드, 스니커 편집숍과의 협업으로 증명된다. 최근 DGK, 핑크 돌핀(Pink Dolphin), 리말 & 다우리(Lemal & Dauley) 등 스케이트보드, 스트리트 기반의 브랜드와 함께 젊은 감각을 한껏 살린 스니커를 만들어냈으며, 유수의 편집 스토어 어반 아웃피터스(Urban Outfitters), 패커 슈즈(Packer Shoes), 라이즈(Rise) 외 여러 숍의 색깔을 입힌 스니커를 출시했다. 이에 휠라 코리아에서는 ‘WE KICKS TOWN’이라는 이름의 행사를 개최, 근래 진행한 협업 스니커를 전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단순한 전시를 넘어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어우러진 ‘WE KICKS TOWN’은 작년 겨울과 올해 초, 총 2회에 걸쳐 진행했으며, 많은 인파와 그 뜨거운 반응으로 건재한 휠라의 저력을 보여줬다.
휠라를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국내 아티스트가 있으니, 바로 국내 뉴 잭 스윙을 대표하는 뮤지션 ‘기린’이다. 휠라 로고만 보면 설레는 뮤지션 기린은 2014년, 과거 휠라의 농구화를 복각한 헤리티지 비비(Heritage BB) 컬렉션 발매를 기념해 “MY FILA”라는 트랙을 공개했다. 휠라 마니아를 자처하는 기린과 휠라의 협력은 꾸준히 이어지며 그 시너지를 한껏 뽐내고 있다.
휠라는 다가오는 지금의 패션 동향을 예견했다는 듯 휠라 오리지날레(FILA ORIGINALE)라는 이름과 함께 새로운 흐름을 제시한다. 오랜 역사에서 얻어낸 훌륭한 만듦새와 오리지날 로고를 모티브 삼아 새로운 라인을 런칭한 것이다. 여기에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는 스트리트웨어, 놈코어의 감성을 더해 젊은 층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깔끔하고 세련된 휠라의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와 재킷, 볼캡 등은 물론, 청바지와 스니커 또한 만나볼 수 있다. 이와 함께 남성과 여성 라인을 따로 전개, 더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오리지날레 라인에 대한 포부를 드러낸다.
휠라의 움직임은 이미 급물살과 함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매년 쏟아져 나오는 협업 스니커와 90년대 레트로 패션에 발맞춘 헤리티지, 어디에나 쉽게 매치할 수 있는 휠라의 오리지날레 라인은 그 당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낸다. 이전 해외의 멋진 협업 제품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면, 이제 휠라 코리아의 행보에 시선을 옮겨보자. 세계를 들썩였던 휠라의 역사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