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니커(Sneaker)는 머리에서 시작해 발끝으로 이어지는 패션의 종착지였다. 1980년대, 글로벌 스포츠웨어 브랜드 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숱한 래퍼, 스포츠 스타가 스타일 아이콘으로 가세했고, 에어 조던의 등장으로 촉발된 슈 게임(Shoe Game)은 현재 패션을 논할 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스니커가 각종 범죄로 이어져 큰 논란을 낳기도 했다.
VISLA는 이번 기회를 빌어 동전의 어두운 면 즉, 신발과 관련된 범죄를 일컫는 ‘스니커 크라임(Sneaker Crime)’에 관련된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무수히 많은 스니커 관련 범죄가 발생했다. 일부 사건은 끔찍한 결말을 낳았고 어떤 사건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지금부터 아래 내용을 통해 자세히 확인해보자.
늦가을부터 연말까지는 빅이슈 스니커의 출시가 두드러지는 기간이다. 홀리데이 시즌이라 하여 추수감사절(Thanks Giving Day)을 기점으로 그 뒤를 잇는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와 크리스마스 등 이 기간 내 미국 소비자들의 소비 활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2013년 12월은 21일은 에어 조던 11 감마 블루(Nike Jordan 11 ‘Gamma Blue’)의 출시로 슈 게임이 떠들썩했던 날. 이날 매장들은 신발을 구매하기 위해 몰린 소비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탓에 크고 작은 충돌이 발생하며 골치를 썩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톡턴에 위치한 웨버스타운 몰(Weberstown Mall) 내 한 매장은 감마블루 발매 당일 손님들 사이에서 난투극이 벌어졌다. 인스타그램에 기록된 약 30초간의 짧은 영상에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매장 안에서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이러한 난투극은 캘리포니아 반대편 뉴욕에서도 일어났다. 역시 인스타그램으로 기록된 사진 한 장이 그날 상황을 잘 보여준다.
블랙 프라이데이 당일, 시애틀 프리미엄 아웃렛에 위치한 나이키 아웃렛 매장. 이 난장판은 올해도 별반 다를 것 없었다.
The #Adidas #Vancouver event tonight on @GranvilleStreet really needed some crowd management tonight. #chaos #BlackFriday #Idiots pic.twitter.com/zH704cmuUu
— Aaron Chapman (@TheAaronChapman) November 26, 2016
베이프(A Bathing Ape)와 아디다스(adidas Originals)의 협업 컬렉션이 발매된 지난 11월 26일, 캐나다 밴쿠버 그랜빌 거리의 한 매장에서는 상반신을 탈의한 의문의 남성이 괴성과 함께 자신이 차고 있던 벨트를 휘두르며 가게 앞에 모여있던 군중들 사이로 난입해 난동을 부렸다. 몇몇 군중이 그를 제압하기 위해 나섰지만 쉽게 제압되지 않았고, 결국 경찰이 출동하고 나서야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아디다스는 당일 매장 출시를 취소하고, 다음날 추첨으로 제품을 판매했다.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에서는 매장의 한 쪽 벽을 부수고 수십 족의 신발을 도둑질한 무리도 있다.
슈 게임의 가장 유명한 범죄라면 역시 1989년 미국에서 발생한 제임스 데이비드 마틴(James David Martin)의 살인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열다섯 살이었던 마이클 유진 토마스(Michael Eugene Thomas)는 제임스 마틴에 의해 숲속으로 끌려가 잔인하게 교살당한다. 해당 사건은 1990년, 미국의 스포츠 전문 잡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ports Illustrated)의 표지를 장식하며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청소년 사이에서 ‘신발’로 야기된 살인 사건이라는 사실은 큰 충격이었다. 조던을 들고 등 뒤에서 총을 겨누는 자극적인 이미지가 이를 더욱 거들었다. 어린 시절 부모의 학대로 여동생을 잃고 어두운 유년기를 보낸 제임스 마틴은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7년 만에 출소했지만, 2년 뒤 다시 살해를 저질렀고, 2005년에는 재출소 3개월 만에 자신의 여자친구를 살해하는 등 온갖 악행을 일삼았다.
가장 최근 언론에 공개된 제임스 마틴의 모습
올해 초, 미국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필립 피에르(Philip Pierre)는 온라인 벼룩시장 크레이그리스트(Craigslist)에서 몇 족의 에어 조던을 판매했다. 여기에 재커리 샘(Zachary Sam, 17)이 접근, 필립 피에르에게 직거래를 유도했고, 현장에서 판매자를 향해 총을 겨눈 뒤 그가 가져온 조던 8을 훔쳐 달아났다.
샘이 절도에 성공하고 사건 현장에서 수십 미터쯤 벗어날 때였을까, 분노한 피에르가 자리를 피하는 듯싶더니 이내 도로를 유턴해 빠른 속도로 차를 몰아 샘을 덮쳤다. 이 사고로 샘은 오른팔이 완전히 잘려나가는 큰 상해를 입었고, 이후 피에르는 살인 미수 혐의가 적용돼 10만 달러의 보석금이 선고되는 파국을 맞았다.
재커리 샘
고가의 신발을 차지하기 위해 범죄를 벌이기도 하지만, 신발 자체가 범죄에 이용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남아메리카 동북단에 있는 공화국 가이아나(Guyana)에서 미국으로 향하던 덴가 애덤스(Thenga Adams)가 JFK 공항 검색대에서 긴급 체포되었다. 가이아나에서 공수한 코카인 2kg, 미화 약 3만 달러 상당의 마약을 밀수입하려다 적발된 것. 그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자신이 미리 준비한 신발들의 중창과 갑피를 분리한 뒤, 그 틈으로 밀매한 마약을 나누어 담았다.
국내에도 비슷한 사례가 존재한다. 올해 초, 중국에서 필로폰 200g을 들여오려다 적발된 한 남성은 검찰 조사에서 중국 검색대에서 보통 신발까지 벗어보라고는 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깔창 밑에 마약을 숨겼다고 진술했다. 중국 동포 17살 박모 군 역시 덴가 애덤스의 사례처럼 신발 밑창을 파낸 뒤 필로폰 뭉치를 숨겨 밀수입을 시도했는데, 성인보다 미성년자에 대한 감시가 소홀하다는 부분을 노렸다. 박모 군은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는 데 성공했지만, 결국 국내 총책과 접선하는 과정에서 덜미가 잡혔다.
마약과 관련된 또 다른 일화도 있다. 친구들과의 점심 약속으로 뱅크 호텔(Bank Hotel)을 향한 세브 에일머(Seb Aylmer)는 가게 앞을 지키던 직원에게 그가 에어 맥스(Nike Air Max 90)를 신고 있다는 이유로 출입을 거부당하는 다소 황당한 일을 겪었다. 에일머는 처음에 농담 삼아 하는 장난인 줄 알았다고. 하지만 재차 출입을 거부당했고, 집에 돌아온 그가 호텔 소셜 미디어 페이지에 하소연을 남기고서야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뱅크 호텔은 일종의 내부 규정으로써 에어 맥스를 착용한 사람을 갱 멤버나 마약 딜러, 혹은 문제의 소지가 많은 사람으로 판단해 출입 금지했다고 해명했다. 실소가 나오는 답변임에도 불구하고, 이 방침이 실제로 효과가 있다는 게 호텔 측 설명이다. 답변을 들은 에일머는 앞으로 에어 맥스를 신기 전에 반드시 심사숙고해야겠다며 호텔 측 답에 불만을 드러냈다.
국내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살펴보자. 이 사건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2년 5월, 신모 씨와 박모 씨는 구로구에 위치한 한 백화점의 나이키 매장 물품창고를 털었다. 2007년경 이 백화점에서 파트 타임으로 근무하면서 내부 사정에 밝았던 박씨가 신 씨에게 범행을 제안했고, 이에 신 씨는 범행 도구 등을 준비했다. 백화점 영업시간이 끝난 뒤 창고로 접근, 준비한 절단기로 잠금장치를 부수고, 나이키 신발 35켤레와 의류 등 2,000만 원 상당의 제품을 훔쳐 달아났다. 하지만 이 둘은 얼마 지나지 않아 CCTV에 덜미가 잡혔다.
다소 황당한 범행을 벌이는 이들도 적지 않다. 크리스토퍼 밀러(Christopher Miller)는 1999년, 뉴저지의 한 스니커 스토어에서 신발을 훔치다 적발돼 15년 형을 선고받았다. 형량을 모두 채운 뒤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으면 좋으련만, 출소 후 그는 다시 절도를 시도해 더욱 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게 될 신세에 처했다. 심지어 범행 장소가 15년 전 바로 그 스니커 스토어였던 것. 왜 그런 멍청한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더욱 불행하게도 과거 밀러가 첫 번째 범행을 저질렀을 당시 매장에서 근무하던 매니저는 15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똑같이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매니저는 단숨에 그를 알아봤고, 밀러가 계산대에서 389달러를 훔쳐 달아났지만, 곧장 현장에서 붙잡혔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사건을 소개한다. 작년 초, 57세의 한 남성은 수개월 동안 호주 멜버른과 그 일대를 돌면서 문간에 놓인 신발만을 훔쳤다. 경찰은 CCTV에 담긴 범인의 행적을 추적해 그를 붙잡았는데, 증거물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신발이 무려 천 켤레 이상이나 발견되어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이는 브랜드, 남성용, 여성용, 어린이용 신발 모두 가리지 않았다. 남자는 돈을 위해 절도 행각을 벌인 것이 아닌, 그야말로 신발이라면 닥치는 데로 훔친 스니커 페티쉬(Sneaker Fetish)로 세간에 기록되었다.
마지막으로 스니커 크라임과 직접적인 관계는 불분명하나 보다 섬뜩한 이야기다.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 컬럼비아주(British Columbia)에서는 미스터리한 사건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태평양 연안에 자리한 이곳에 절단된 사람 발이 들어있는 신발이 지속해서 밀려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해안가 근처를 배회하던 시민들의 신고로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2007년부터 최근까지 발견된 건수만 13건에 달한다. 사람 발이 들어간 이 신발들은 신발 내부에 주입된 가스(에어) 덕분에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었고, 그렇게 바다를 떠돌다 조류의 흐름을 타고 해안가에 당도했다. 사람들은 이 현상을 두고 나이키의 이름을 따 ‘나이키 현상(Nike Phenomeno)’이라 불렀다. 어떠한 연유로 사람의 발이 절단되어 바다를 떠돌게 된 것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경찰은 바닷속 시체가 분해돼 신발 부분만 떠다니게 된 것으로 파악했다.
약 십여개의 사례를 통해 과거부터 현재까지 기록된 가지각색의 ‘스니커 크라임’을 살펴보았다. 앞으로 더욱 신발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스니커 문화가 확장될수록 어두운 면을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 역시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엄연히 스니커 문화에 한 부분임을 인정하고, 반성과 함께 개선해나간다면 더 나은 스니커 문화를 전해줄 날이 오지 않을까. 언제나 즐거운 스니커 라이프가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