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홍색 연구ㅣ제1화 슈프림과 비기, 과연 우연일까?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슈프림(Supreme)은 매 시즌 컬렉션을 통해 각양각색의 제품을 발표했다. 창립자 제임스 제비아(James Jebbia)는 마니아 사이에서 슈프림의 행보가 끊임없이 입방아에 오르길 바라고 있으며, 우리는 그 바람대로 슈프림의 A부터 Z를 읊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도대체 슈프림의 무엇이 이렇게까지 광적인 추종자를 만들어냈을까. 왜 우리는 매주 금요일 새벽,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가상사설망(VPN)까지 동원하며 닿지 않는 아우성을 치고 있는 걸까. 촌각을 다투는 온라인 전쟁과 리셀에 관련된 논쟁은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 대신에 차마 잊고 있던 중요한 그것, 슈프림이 왜 여전히 ‘SUPREME’인가에 주목하자.

무례한 브랜드 슈프림은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은 그저 때에 맞춰 시즌 컬렉션을 발표할 뿐, 의류에 내포된 의미를 밝히는 일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필자는 이번 17 S/S 컬렉션의 큰 흐름 중 하나가 힙합 문화의 한 획을 그은 한 인물을 향한 오마주가 아닐까 가정한 뒤 다양한 경로의 자료와 근거 그리고 약간의 억지를 조합해 이번 이야기를 구성했다. 발매된 제품의 디자인을 중심으로 노토리어스 비아이지(Notorious B.I.G, 이하 비기)와 슈프림이 어떤 연관성을 보이는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1. 666 로고와 Notorious B.I.G

17 S/S 시즌 재킷, 셔츠, 팬츠 등 다양한 프로덕트에 프린팅되며 강한 인상을 남긴 666 로고. 슈프림이 어떤 이유로 이번 시즌 많은 제품에 666 로고를 사용하게 되었을까.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지만, 666은 성경 요한계시록 13장에 등장하는 악마의 숫자로 기독교 국가에서 특히 금기시하는 숫자다. 슈프림이 단순히 악마를 숭배한다거나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이런 숫자를 쓰지는 않았을 것 같다. 과거 발매한 제품을 살펴보면 12 F/W 에 발표한 ‘Triple 6 Mafia’ 포토 티의 666 이후 처음 등장했는데, 이번에는 ‘Triple 6 Mafia’가 아닌 주니어 마피아(Junior M.A.F.I.A.)를 의미한다.

주니어 마피아는 1995년 비기가 결성한 팀으로, 20세 이하의 동네 친구가 주 멤버를 이뤘다. 이 그룹은 다시 3개의 팀으로 나뉘고 2명의 솔로 멤버로 재구성되기에 이른다. 그중 한 팀의 이름이 바로 ‘666’이다. 이후 비기는 1996년, 자신의 브랜드 브루클린 민트(Brooklyn Mint)를 시작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다음 해 사망한다. 비기가 사망 직전 준비하던 의류 라인이 있었으니 그 라인의 이름이 바로 ‘666’. 그렇게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사장된 의류 라인은 그가 죽고 20년 뒤 슈프림에 의해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오른쪽 아래 사진은 666 라인을 시작하기 전 비기가 666 패치 베스트를 착용한 모습이다. 슈프림은 666과 미국 유명 오일회사인 STP 로고를 패러디한 트러커 재킷을 발매해 비기의 못 다이룬 꿈을 조금이나마 이뤄냈다. 비기는 1997년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20년 후 슈프림은 이번 컬렉션을 통해 뉴욕 힙합의 왕인 비기의 20주기를 기념한 것으로 보인다. 허나, 앨범 커버와 문구를 프린팅한다거나 생전 즐겨 착용하던 쿠기(COOGI) 니트와 팀버랜드(Timberland) 부츠를 선보이는 직접적인 방식이 아닌 비기를 둘러싼 이야기를 바탕으로 아주 은밀히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2. Swiss Camouflage

“The overweight kid from Brooklyn was the Swiss Army knife of MCs” – Vibe Magazine

비기는 힙합 역사상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꼽힌다. 날고 기는 MC 가운데서도 특유의 가사와 플로우로 ‘Swiss Army knife of MC‘s’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는데, 이는 슈프림이 1, 2차 드롭에 발매한 필드 재킷과 BDU 셔츠가 왜 스위스 군대의 카모플라쥬 패턴인지 유추해볼 만한 지점이다.

 

3. Brooklyn Mint / Elephant Tee

앞서 언급한 비기의 의류 브랜드 브루클린 민트의 로고를 자세히 살펴보자. 로고에서 당찬 위용의 코끼리 한 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번 시즌 여러 티셔츠 중 특히 많은 사랑을 받은 분홍색 코끼리와 브루클린 민트 로고, 이제 슬슬 감이 잡히지 않나.

 

4. Van Gogh

이번 시즌, 필드 후드라는 이름으로 발매해 속칭 ‘고흐 후디’로 불리는 제품의 프린팅은 모두가 아는 위대한 화가, 반 고흐의 그림이다. 제목은 ‘까마귀가 나는 밀밭(Wheat Field with Crows, 1890)’으로 1890년 7월 마지막 주에 그려졌으며, 이 그림을 그린 후 자살했다고 알려졌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까마귀는 자유와 죽음의 상징이다. 과연 이 까마귀는 단순히 죽음을 의미하는가? 다양한 예술 작품에서 까마귀는 죽음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힌다. 까마귀는 불길하고 위협적이고 공격적인 죽음의 상징이다. -Schapiro, 1952-

이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걸 암시하는 그림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은 비기와 또 어떤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을까. 이는 1994년 발매한 비기의 데뷔 앨범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다.

너무나도 유명한 명반 [Ready to Die], 동명의 곡에서 비기는 “Biggie Smalls passing any test, I’m ready to die!- 비기 스몰즈는 어떤 시험도 준비됐어, 난 죽을 준비됐어! – “라는 자신감 가득 찬 텍스트를 던진다. 그렇다, 고흐 후디는 비기의 데뷔 앨범인 [Ready to Die]와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으며, 죽음을 앞둔 고흐의 그림인 ‘까마귀가 나는 밀밭’과 자연스레 이어진다. 슈프림은 11 F/W 컬렉션 당시 [Ready to Die] 앨범 커버를 고스란히 찍어낸 방식에서 한 단계 발전해 반 고흐 그림으로 은유한다. 동시에 [Ready to Die] 그리고 비기를 추모한다. 뭐, 이러한 추측을 억지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하는 또 한 가지 증거로 고흐와 비기를 더 단단히 연결해보자.

우선 고흐 그림에 나타난 ‘까마귀’를 확인한 뒤 상단에 첨부한 사진을 살펴보자. 왼쪽은 스릴러 영화 장르를 확립한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감독의 사진이다. 그리고 오른쪽은 비기가 히치콕 감독의 사진을 오마쥬한 사진인데, 두 사진 모두 담배 위에 까마귀가 앉아있다. 비기는 생전 히치콕 감독에게 큰 영향을 받았으며, 히치콕 영화의 제목 “노토리어스”를 본따 자신의 랩 네임으로 삼을 정도였다. 히치콕 감독 영화 중 “새”라는 대표작이 있는데, 대략적인 줄거리는 수많은 까마귀 떼의 습격으로 마을 전체가 패닉 상태에 빠지고 사람들이 미쳐버리는 내용이다. 까마귀 떼와 광기, 슈프림이 어째서 고흐의 작품 중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Ready to Die] 앨범을 발표한 해 또한 1994년으로, 슈프림의 창립연도와 일치한다.

 

5. Abstract / Sade

왼쪽은 피카소의 ‘꿈(Le Rêve)’이라는 작품, 오른쪽은 이번 컬렉션에서 모습을 보인 추상화(Abstract) 티셔츠다. 티셔츠에서 작품 속 여인의 얼굴을 돌려놓고 확대한 점을 제외한다면 두 사진은 상당히 많은 공통점을 공유한다. 슈프림은 왜 작품 속 얼굴을 확대했을까. 피카소는 여인의 코를 경계로 왼쪽 얼굴과 오른쪽 얼굴을 다르게 그려놓았다. 이 그림은 얼굴이 기울어진 여인의 기다란 연보랏빛 콧대를 발기한 남자 성기의 형태로 표현했다는 재미있는 해석이 곁들여진다. 그렇다면,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이 그림과 뉴욕 래퍼 비기는 또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피카소의 ‘Le Rêve’는 ‘Dream’, 즉 ‘꿈’이란 뜻이다. 비기의 곡 “Just Playin”을 들어본 적 있는가. 이 곡의 부제가 바로 ‘Dreams’다.

As I sit back relax puff a blunt/sip a Becks
난 편히 앉아 쉬면서, 마리화나를 피우고 Bekcs-맥주-를 마시면서


think about the sexy singers that I wanna sex
섹스하고 싶은 섹시한 가수들을 떠올려


I’d probably go to jail for f*ckin Patti Labelle
Patti Labelle이랑 하다가는 감옥에 가겠지


oooh Regina Belle, she’d probably do me swell
oooh
Regina Belle, 날 아주 잘 다룰걸


Jasmine Guy was fly Mariah Carey’s kinda scary
Jasmine Guy도 멋졌고, Mariah Carey는 좀 무서웠어 

이 곡은 대마초를 피우고 난 몽롱한 상태에서 마치 꿈을 꾸듯 야한 상상이 이어진다. 비기는 이 곡에서 무려 20명이 넘는 여자 R&B 가수와 잠자리를 해치운다. 바로 이 지점이 피카소와 비기가 만나는 지점이다. 피카소의 작품 ‘Le Rêve’는 비기의 곡, “Dreams”를 암시하며,
 그 꿈은 바로 슈프림 티셔츠에 강조된 여인의 왼쪽 얼굴, 즉 성기의 이미지와 교차하며 ‘야한 꿈’을 상징한다. 이때, 비기가 떠올린 많은 R&B 여자가수 이름 중 한 명의 이름이 눈에 띄지 않는가.
”Sade…ooh I know that pu**y tight”. 
슈프림이 짜놓은 복잡한 퍼즐을 맞추다 보니 결국 샤데이(Sade)까지 나오게 됐다.
이 가사만으로 샤데이가 정해지지는 않았을 테지만, 이번 시즌 모델을 정하기 전 “Dreams”에서 언급한 가수 중 한 명을 선택했을 거라는 추측 또한 가능하다. 이 곡에는 패티 라벨(Patti Labelle), 샹떼 무어(Chante Moore), 엑스케이프(Xscape), TLC 등 많은 여성가수가 등장한다. 그중 샤데이가 꼽힌 배경엔 맙 딥(Mobb Deep), 릴 킴(Lil’ Kim) 등 힙합 아티스트가 사랑해 마지 않는 샘플링 아티스트라는 점, 동시에 비기를 기념하는 컬렉션과의 연관성도 있지 않을까.

 

6. Automatic Tee


슈프림은 이번 컬렉션에서 슈프림 이니셜을 총 모양으로 변형한 그래픽의 티셔츠를 발매했다. 그렇다. 이쯤 되면 지겨울 만도 하겠지만, 이 총마저 비기를 추모하고 있다. 이 티셔츠는 비기의 [Ready to Die] 수록곡, “‪Machine Gun Funk”를 의미한다. 티셔츠에 그려진 총이 바로 그 머신건이다. 오른쪽 사진은 힙합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일본발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애플범(Applebum)에서 비기 20주기를 기념한 나온 후디다. 머신건 그래픽과 ‘Funk’라는 글자를 새김으로써 슈프림보다는 더욱 친절하게 비기를 기린다.

브랜드에 담긴 이야기는 흥미롭다. 패션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슈프림은 매해 거리 문화와 예술을 아우르며 다양한 의류와 액세서리를 매개로 숱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컴퓨터 앞에 앉아 ‘슈강신청’을 하는 이유가 단지 이 브랜드가 잘 나가기 때문이라면, 그 하나하나에 걸친 흥미로운 이야기, 슈프림만의 매력을 놓치고 있는 걸지도. 이번 기사로 그간 무심코 지나쳤던 슈프림 디자인의 유래를 탐구하고 발견하는 재미를 느꼈다면, 슈프림의 불친절한 컬처 큐레이션에 흠뻑 빠져보는 건 어떨까. 그 안에는 당신이 생각하는 ‘리셀가’보다 훨씬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미지 출처 ㅣ 위키피디아, 슈프림 공식 웹사이트, 디스콕스 등 다수
커버 이미지 ㅣ 이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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