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reme과 남부 힙합
스케이트보드 브랜드 슈프림(Supreme)이 소개하는 힙합, 그중에서도 미국 남부 힙합 신(Scene)을 향한 슈프림의 애정은 각별해 보인다. 이미 지난 시즌에서 애틀랜타의 구찌메인(Gucci Mane)과 멤피스의 666 마피아(666 Mafia) 등 남부 각 지역과 스타일을 아우르며 컬렉션을 선보였고, 그 이유가 어찌 됐건 이러한 프로덕트는 슈프림의 추종자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남부 힙합은 2000년대 이후 트랩을 주축으로 한 부흥기를 맞기 전까지 동, 서부의 거대한 힙합 세력에 밀려 한 발짝 뒤로 물러난 변두리 진영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번 협업의 시작은 동부와 서부의 랩 게임이 뜨거워지기 직전인 1991년으로 돌아간다. 당시 플로리다에서는 ‘2 Live Crew’의 마이애미 베이스가 언니들의 엉덩이를 쉴 새 없이 흔들어 놓았고, 타이트하게 쪼개지는 비트가 그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텍사스에서는 그 흐름에 대척한 여유 있게 늘어진 비트, 끈적하게 이어지는 블루지한 기타 샘플로 대표되는 스타일이 있었으니 그 멋진 형들이 바로 이번 협업의 주인공 게토 보이즈(Geto Boys)다.
텍사스의 거장 DJ Screw
슈프림이 느릿한 비트의 텍사스 힙합에 관심을 보인 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작년 S/S 컬렉션에서 공개한 ‘Screw’ 티셔츠를 기억하는지. 커다란 나사 두 개가 교차하는 단순한 디자인에 많은 이가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그 의미는 생각보다 깊다. 이 티셔츠는 2000년에 사망한 텍사스 출신의 디제이, ‘DJ SCREW’ 추모 티셔츠를 패러디한 디자인으로 그 트레이드마크인 ‘Chopped and Screwed’ 스타일과 그 크루를 의미한다. ‘Screwed’는 피치 – 턴테이블이 돌아가는 속도 – 를 낮춰 느려진 템포를 뜻하며, ‘Chopped’은 턴테이블 양쪽에 동일한 레코드판을 한 박 느리게 재생시켜 크로스 페이딩으로 재미를 더 하는 DJ의 믹스 스타일을 의미한다.
더불어, 티셔츠 뒷면에 ‘NOT FOR RESALE’이라는 문구를 새겨 넣으며 이 추모에 ‘동참하지 않는’ 리셀러를 대놓고 조롱한다. ‘DJ SCREW’는 이미 발매한 힙합 앨범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믹스하는 작업으로도 유명한데, 닥터 드레(Dr. Dre)를 비롯해 이번 17 S/S 컬렉션의 주역, 비기(Notorious B.I.G)도 포함되어 있다.
Rap-A-Lot Records, 그리고 Geto boys
이번 협업 티셔츠에 프린팅된 앨범 [We Can’t Be Stopped]의 커버는 게토 보이즈의 대표작이자 악명 높은 커버로 유명한 앨범이다. 앨범의 커버 사진은 연출이 아닌 실제 상황 그대로를 촬영한 것으로 병상에 있는 게토 보이즈의 멤버 부쉬윅 빌(Bushwick Bill)이 자신의 보험금으로 어머니의 병원비를 충당하기 위해 여자 친구에게 총으로 자신의 눈을 쏘게 했다고 한다. 부쉬윅 빌이나 총탄이 뇌에 박힌 상황에 사진가를 불러 촬영을 한 사람 모두 정상적인 사고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지만, 이 앨범의 수록곡 “Mind Playing Tricks on Me”가 당시 빌보드 랩 차트에 3주 연속 1위에 오르며, 게토 보이즈 최고의 히트곡이 되었다. 당시 차트에 ATCQ, 너티 바이 네이처(Naughty By Nature),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 등의 히트곡이 포진된 것을 본다면 당시 이 곡의 인기가 얼마나 폭발적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슈프림이 시작된 1994년은 힙합의 황금기였을 뿐만 아니라 스케이트보드, 그라피티 등 다양한 서브컬처 신이 동시 다발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문화적 융성을 이뤄낸 시기였다. 슈프림은 그 중심에서 당시의 분위기, 사건을 고스란히 흡수하며 2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컬렉션에 그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슈프림은 20대 초반의 젊은이부터 그 시대를 그대로 겪어온 30, 40대에 이르기까지 넓은 소비층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슈프림이 원하는 그림은 마니아만의 공감대가 아닌 모든 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의류를 만들어내고 그들에게 새로운 문화를 소개하는 것처럼 보인다. 필자 역시 슈프림이 소개하는 모든 음악과 아티스트를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슈프림이 내놓는 그 어떤 것이라면 분명 믿을만한 것이고 관심을 둘만 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확신한다.
이번 협업으로 인해 랩-어-랏 레코즈(Rap-A-Lot Records)를 처음 접한 이가 분명 적지 않을 것이다. 최근의 남부 힙합은 모든 차트를 점령할 만큼 그 위상을 뽐내고 있지만, 슈프림은 그 뿌리를 알아주길 원하며, 이번 협업을 통해 남부 힙합의 전설 랩-어-랏 레코즈에 경의를 표하고, 1991년에 발매한 역사적인 앨범을 젊은 고객에게 소개한다. 매 시즌 내놓는 프로덕트만으로 간지의 정점을 찍고 있는 슈프림 디자인이지만, 그 바탕에 깔린 이야기를 알면 옷을 입는 재미가 배가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