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우사단로에 있는 레코드숍 음레코드(Mmm Records)는 누구나 편안하고 쉽게 레코드를 접하길 바라는 취지에서 문을 열었다. 그들은 방문객을 편안하게 하는 걸 넘어서 아예 방목한다. 손님은 그저 있고 싶은 대로 이곳을 즐기면 된다. 희귀한 음반을 가지고 노는 이들이 보인다. 가득 쌓인 바이닐 레코드와 사이키델릭한 조명 아래서 포즈를 취하며 화보 촬영에 열을 올리는 이들도 있다. 왠지 현대카드 바이닐 앤 플라스틱(Vinyl & Plastic)을 떠오르게 한다. 그런데 현대카드도 아닌 작은 잡지 회사가 왜 굳이 이런 무리수를 두는가? 그들이 추구하는 바이닐 문화와 그 가치는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단지 요새 ‘힙’하다는 이유 하나로 문을 연 건 아닐 테니 일단 직접 음레코드를 방문했다.
우선 엘로퀀스(ELOQUENCE) 편집장 전우치 그리고 바이닐 컬렉터이자 음레코드 매니저 박인선에게 각자 역할을 묻고 싶다.
전우치: 초기에 음레코드의 방향을 정하고 기획을 총괄했지만, 현재 실질적 운영은 박인선 실장이 도맡고 있다. 나는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엘로퀀스 컴퍼니를 운영하면서 비즈니스로 연결되는 여러 가지 프로젝트에 관여한다. 그중 음악 파트, 바이닐에 관련해서는 실장님과 논의하고 백업하는 정도다.
전우치의 이름은 잡지를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더라. 페이퍼 매거진 엘로퀀스에서 음레코드에 이르기까지 간략히 경력을 읊어보자면.
전우치: 엘로퀀스 이전에는 블링(Bling)과 맵스(Maps) 편집장으로 지냈다. 엘로퀀스 역시 초기에는 잡지만 운영했다. 그런데 이 일을 계속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인디 계열 매거진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광고 시장이 무너진 거지. 그나마 ‘크래커’, ‘룩티크’와 같은 인디레이블이 마지막으로 꽃을 피웠다고 느껴질 정도니까. 물론 아직 독립출판, 프린트 매거진을 운영하는 분들도 많은데, 사실 시장 규모가 커진 건 아니다. 제작자가 늘어난 것뿐이지. 엘로퀀스 같은 경우는 앞서 이야기한 잡지보다 시작이 늦었다. 우리 광고팀은 하물며 판매 카운팅조차 하지 않았다. 엘로퀀스는 처음부터 네트워크 플랫폼을 구축하고자 했다. 국내외 디자이너, 건축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교류하려는 욕구가 강했고, 거기에 심혈을 기울여 새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엘로퀀스가 벌려놓은 프로젝트가 워낙 많다. 회사를 설립한 지 약 3년쯤 됐는데, 프로젝트는 200개나 되니까. 엘로퀀스를 중심으로 푸드, 디자인, 비디오, 등 사업을 진행 중인데, 음레코드 역시 자체적으로 구상한 프로젝트로, 현재 박인선과 함께 만들어나가고 있다.
음레코드를 기획한 배경을 듣고 싶다.
박인선: 음 레코드 장소가 원래 엘로퀀스 프로젝트나 전시 용도로 사용하던 공간이다. 전우치 편집장이 공간을 내주면서 지하실에 있던 8만5천 장의 바이닐이 빛을 보게 됐지. 내심 수집한 바이닐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개인의 만족을 넘어서 손님과 공유하는 것. 바이닐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느낌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전우치: 박인선과 대화를 나누면서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그 마음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 이유가 가장 크다. 그래서 제안도 한 거고. 준비 기간이 꽤 길었다. 자금부터 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그 과정에서 바이닐이 굉장히 ‘힙’한 소재로 떠오른 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이닐은 대중에게 70~80세대의 전유물 정도로 인식되지 않았나. 음레코드를 오픈하는 시기와 바이닐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는 시점이 운 좋게 맞아 떨어졌다. 지리적인 위치도 요새 창작자들이 우사단로다 뭐다 해서 많이 찾는 것도 한몫했다.
8만5천 장의 레코드라면 대체 언제부터 모은 건가?
박인선: 한 10년 전부터 모았다. 2001년쯤 다음(Daum) 카페 ‘투 턴테이블’이라는 곳을 운영한 적 있다. 디제이 커뮤니티였는데, 당시에는 배틀판, 스크래치판 위주로 모았다. 본격적으로 모은 건 다큐멘터리 ‘바이닐 마니아’를 보고 나서부터다. 이 영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때가 한참 디제이 사이에서 약간의 신경전이 벌어질 때였다. “바이닐도 쓸 줄 모르는데 무슨 디제이야?”라고 하면서 CDJ를 사용하는 디제이를 인정하지 않았지. 디제이는 ‘Disk Jockey’를 말하는데, ‘Disk’를 사용할 줄 모르면서 자신을 디제이라고 말하는 게 꼴사나웠던 거지. 이에 관한 명쾌한 답이 다큐멘터리 안에 있었다. 기기가 발전하듯, 음악도 발전한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거다. 여기에는 “무엇을 사용하든지 다루는 사람의 마인드가 중요하다”라는 내용이 함축되어 있었다. 명료하지 않나? 이 영상에는 정말 주옥같은 말이 많이 나온다.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한 디제이가 왜 바이닐로 플레이하냐는 질문에 “나는 바이닐을 사랑하니까”라고 답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영향이 컸다.
이름을 음레코드로 지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 ‘Mmm’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우치: ‘Mmm’이나 ‘음’ 모두 의성어인 데다가 ‘M’이 ‘Music’을 의미하기도 하고 여러모로 잘 맞아떨어져서 음레코드로 정했다.
마구잡이로 생겨나는 ‘복합문화공간’ 따위를 지향한 건 아니지 않나. 바이닐 문화를 표방한 레코드숍을 비즈니스로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았나?
전우치: 브랜드 이미지가 폭발적으로 나와야 하는데, 바이닐은 오리지널리티와 진정성이 강한 콘텐츠다보니 그 밸런스를 잡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바이닐의 오리지널리티를 여러 창작자들이 쉽게 소화하지 못했다. 디렉터가 튜닝을 거듭하며 나아가야 하는데, 그걸 지속해서 끌고 갈 사람도 찾기 어려울뿐더러 그 과정에서 콘텐츠가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진정성 측면에서 봤을 때, 박인선 실장이 그간 쌓아온 내공이 음레코드의 균형을 잡는 핵심이다. 이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서 계속 조율 중이다.
해외에서는 바이닐 레코드를 소비하는 층과 그 시장 규모 역시 커지는 추세지만, 국내 실정은 여전히 호황과는 거리가 있다고 들었다. 실제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로컬 레코드숍 ‘향 뮤직’ 역시 흔들리지 않았나. 바이닐로 치장된 맛집이 아닌 레코드숍을 선택한 이유는? 그 안에서 어떤 경쟁력을 내세울 계획인가.
전우치: 사실, 우리는 특별히 주변 레코드숍을 의식하면서 일하지는 않는다. 가장 가깝게는 바이닐 앤 플라스틱과 견주어 이야기하는데 사실, 노선이 다르다. 현대카드에서 야심 차게 선보인 바이닐 앤 플라스틱은 자본력이 뒷받침된 영향력으로 구축할 수 있는 바이닐 문화가 있고, 크리에이티브한 영역에서 음레코드가 구축할 수 있는 바이닐 문화가 있다. 최근에는 바이닐을 활용하는 가게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긍정적인 상황이다. 음레코드는 오랜 시간 바이닐을 수집한 박인선이 있으니 진짜 바이닐을 좋아하는 이들이 이곳을 찾는 것, 즉 진정성 있는 공간으로 인식되고 싶다.
음레코드의 소개말을 빌리자면 ‘어렵게만 생각했던 레코드와 턴테이블을 직접 손으로 만지고 귀로 듣는다면 듣는 음악이 아닌 경험하는 음악의 순간을 맞이할 것’이라고 지향점을 밝혔다. 현대카드 역시 바이닐 앤 플라스틱을 ‘음악을 보고 듣고 만지고 소유하는 체험형 공간’이라고 소개한다. 표면상으로는 비슷해 보인다.
박인선: 바이닐이 특정 아이템이 아닌 하나의 경험이었으면 한다. 그래서 이곳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옆에서 보는 사람도 없고, 우리도 그저 기본적인 사용법을 안내하는 수준이다. 어렵게 모은 판을 타인이 만지면 거슬리지 않냐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오히려 난 그편이 좋다.
전우치: 노선이 다르다. 현대카드의 바이닐 앤 플라스틱이 문화 트렌드를 분석하고 선점해서 대중적 친밀성을 높이기 위한 작업이라면, 음레코드의 시작은 바이닐 그 자체를 사랑하는 박인선이다. 결국, 바이닐을 좋아하는 ‘박인선’이 있었기에 시작한 일이다. 그가 레코드를 전부 헐값에 팔려고 한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뜯어말리면서 조금만 기다리라고 설득했다. 순수한 컬렉터가 만들고자 하는 문화를 지키고 싶었다. 문화를 연구하는 게 내 일인데, 그 문화가 없어지면 안 되지 않나. ‘서울 레코드 페어’를 보라. 문화에 애정을 가진 이들이 하면 다르다. 바이닐 앤 플라스틱 역시 대중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일종의 활로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공이 크다.
음레코드 방문객은 굉장한 다양한 층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보이지만 최근 화보 촬영장소로도 많이 노출되서 그런지 인스타그램 촬영에 힘쓰는 이들도 눈에 띈다.
전우치: 음레코드가 생기면 크리에이터 신(Scene)에 속한 친구들의 아지트가 될 줄 알았다. 그런 공간이 되길 바라는 욕심도 있었고. 그런데 오히려 바이닐을 전혀 모르는 이들이 손님의 대부분이다. 생각지도 않은 부분에서 발생한 수익에 놀라기도 했다. 뮤지션이나 셀레브리티가 와서 촬영한 이미지도 영향을 미쳤다. 콘텐츠의 몰입도 측면에서는 그리 좋지는 않은데, 예측하지 못한 현상을 일단 재미있게 보는 중이다.
힘든 점이라면.
전우치: ‘함께 산다는 것’을 고민한다. 예전 기자 생활하면서 하고 싶은 걸 하려고 원치 않은 콘텐츠를 다룬 적도 있다. 지금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서로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음레코드는 이를 위한 발판이기도 하다. 그러니 장사가 잘되느니, 브랜드 이미지가 좋아지느니 하는 것보다도 좋아하는 일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붐박스, 카세트와 같은 빈티지 아이템에 특별한 추억이 있나?
박인선: 매체에 따라 음악의 질감이 달라진다. 나도 어릴 땐 라디오를 끼고 살았다. 그 감성이 좋다. 지금 세대에게도 카세트에서 나오는 어떤 따스한 사운드를 느끼게 해주고 싶다. 날 좋을 때는 옥상에서 90년대 음악을 붐박스로 들을 수도 있다.
레코드숍 안에 작업실이 있다는 점도 멋져 보인다.
박인선: 음악을 듣다가 떠오른 영감을 옮겨놓거나 샘플을 딸 수 있게 마련한 공간이다. 물론, 뮤지션이 아닌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음악 하는 사람들은 알 거다. 영감이 떠오른 그 순간에 녹음하지 않으면 다 까먹지 않나.
음레코드 휴무일인 월요일에 특별한 이벤트, ‘월요주점’이 열린다고 들었다. 음식에 일가견 있는 전우치가 운영하는 주점이라 더 호기심이 생긴다.
전우치: 음레코드의 백업도 할 겸 우리 공간을 더 활용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숍이 쉬는 날이라 월요주점은 엘로퀀스 에디터들이 직접 운영한다. 수익도 ‘N빵’이다. 멤버들이 더 자유롭게 프로젝트를 기획하거나 진행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일 수도 있고.
‘월요주점’의 스페셜 메뉴는 ?
전우치: 세계 곳곳의 로컬 음식을 선보일 예정이다. 셰프들이 외국 도시를 다니며 로컬 음식을 맛보고 취향을 쌓는 일명 ‘푸드 어드벤처’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작년 8월에는 베트남 하노이에 ‘반미를 찾아서’라는 타이틀로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올 1월에는 태국 방콕도 다녀왔고, 5월에는 일본 고베로 떠날 계획이다. 나중에는 푸드 어드벤처에서 즐긴 음식들을 음레코드 메인 메뉴로 들여오는 거지.
현재 음레코드의 방향성에 만족하는가.
전우치: 아직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걸 다 보여줬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요즘에는 대부분 음원으로 음악을 소비하지 않나? 음레코드에서는 음악의 가치를 한 번 더 상기시키고 그 감정을 즐기게 하고 싶다.
음레코드의 미래를 묻고 싶다.
전우치: 다른 말 필요 없이 여기 있는 박인선이 돈 잘 벌고 행복하면 이 신이 사는 거다. 이 양반조차 허덕이면 한국에서 바이닐의 미래는 없다고 봐야지. 우리는 구조를 만들려고 한다. 음레코드라는 매개체를 통해 생존 가능성을 테스트하려는 것이다. 엘로퀀스가 살아남는 방식을 음레코드에도 적용할 계획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진행 / 글 ㅣ 이철빈
사진 ㅣ 홍성오
커버 이미지ㅣ 박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