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니커 러브(SNEAKER LOVE)는 말 그대로 신발을 사랑하는 사람과 그 신발에 관한 이야기다. 발을 감싸는 제 기능 이상으로 어느덧 하나의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한 스니커. 이제 사람들은 신발 한족을 사기 위해 밤새도록 줄을 서고, 야영하고, 심지어는 매장문을 부수는 한이 있더라도 손에 넣고자 한다. 그들이 신발에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VISLA와 MUSINSA가 공동 제작하는 콘텐츠, 스니커 러브는 매달 한 명씩 '신발을 무진장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그가 아끼는 스니커의 이모저모를 물을 예정이다. 애인보다 아끼고, 엄마보다 자주 보는 스니커,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에 주목해보자.
자타가 공인하는 빈티지 마니아이자 세계에서 인정받는 체어 브랜드 헬리녹스(Helinox)의 어드바이저 김태헌은 나이키(Nike)사의 클래식 슈즈 에어 포스-1(Air Force-1)을 모은다. 그가 구매한 물건 대부분은 자신이 학창시절을 보낸 90년대에 태어났다.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하나둘씩 다시 구매한 빈티지 에어 포스-1. 신발은 마치 예술가의 작품처럼 하나의 컬렉션이 되었다. 최신 기술이 난무하는 지금의 스니커 시장 속에서 ‘클래식’이 된 에어 포스-1, 그리고 김태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많은 스니커 중 올드 에어 포스-1 모델을 모으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나이키를 좋아한다. 다른 브랜드의 스니커도 많이 신어봤지만, ‘역시 남자는 나이키!’처럼 촌스러운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 하하. 나이키 스우시가 주는 고유한 매력도 있다. 에어 포스-1은 워낙 오래된 모델이기도 하고. 거슬러 올라가자면, 고등학교 1학년 때, 올백 포스-1 미드를 사기 위해 급식비를 몇 달간 빼돌리고 먼 길을 매번 걸어 다녔다. 그때는 포스가 20만 원 정도 했으니까 죽자사자 모아야 겨우 한 켤레를 살 수 있었다. 정식 매장에 나오지도 않아서 지금처럼 쉽게 살 수 없었다. 지금은 지역에 따라 패션이 나뉘는 경우가 없지만, 예전엔 또 강북, 강남 패션이 달랐다. 당시 강북 패션이 쫙 줄인 바지에 자신의 발 치수보다 큰 스니커를 신발 끈을 꽉 조여서 신는 게 유행이었는데, 어느 날 포스를 딱 맞게 신고 등교하니 친구들이 손가락질하더라. 레드윙(Redwing)이나 팀버랜드(Timberland) 부츠를 신어도 등산화라고 놀리던 시대였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온라인에서 정보를 찾기 어려웠다. 유행이라는 게 인터넷이 아닌 동네에서 나오던 시기였다. 이태원에서 죽치는 무서운 형들한테 돈 뜯기면서 옷을 사는 거지. 형들이 셔터를 닫고 물건을 강매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어두운 데서 올백 포스-1 직거래를 했는데, 밝은 곳에서 확인해보니 신발 측면에 구멍이 나 있더라. 괜히 바꿔 달라고 했다가 얻어맞았다. 그때부터 나이키 에어 포스-1에 특별한 집착이 생긴 것 같다. 별것 아니지만, 가지지 못 했던 물건을 향한 열망 같은 거 있지 않나.
이렇게 계속 제품을 모으다가 지금까지 왔다. 에어 포스-1 모델은 대체로 발볼이 넓다. 어퍼 주름 잡히는 것도 자연스럽고 오래 신어도 멋진 신발이다. 이런 게 진짜 클래식이지. 대부분 91, 93, 94년도에 발매된 신발이다. 일단 신발 사이즈가 최근에 나오는 사이즈보다 조금 더 작은데, 비교해보면 실루엣도 확연히 다르다. 올드 에어 포스-1은 앞코가 조금 더 낮다. 옆에서 보면 완벽하게 차이점이 드러난다. 보통 힐컵 부분을 엉덩이라고 하는데 이게 볼록 튀어나와 있다. 이런 걸 계속 보다 보니 변태처럼 세세한 디테일까지 집착하는 거다. 하하.
오래 전 모델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보통 어떤 경로를 통해 구매하는지 궁금하다.
주로 이베이(eBay)나 일본 야후 옥션, 국내 ‘나이키 매니아’ 커뮤니티에서 구매한다. 박스가 없어도 상관없다. 어차피 직접 신을 거니까. 특히, 일본 옥션 같은 경우에는 제품명을 잘못 기재해놓은 매물이 종종 나타난다. 그 허점을 공략하는 거지. 이런 매물은 경매 시작 가격에 멈춘 경우가 많은데, 낙찰되면 그대로 보내주더라. 그래서 비싸게 산 경우가 드물다. 일본에서도 에어 포스-1의 인기는 그리 높지 않은 듯하다.
가장 애착이 가는 에어 포스-1 네족을 골랐다. 각각 소개 부탁한다.
AIR FORCE-1 HI CVS SC – MIDNIGHT NAVY / YELLOW GOLD
이 모델은 오래전부터 가품이 많았다. 남색과 노란색이 섞인 컬러웨이부터 밸런스가 굉장히 좋다. 폴로 랄프 로렌(Polo Ralph Lauren)이 즐겨 사용하는 색상 조합이잖아. 어린 시절부터 엄청 가지고 싶었는데, 좋은 상태의 매물이 나오지 않아 마냥 기다렸다. 중학교 때 한 친구가 외국에 사는 친척에게 선물로 받아서 신고 다니던 기억이 난다. 그땐 이런 스니커를 어떻게 사는지 당최 몰랐지. 매장에서 파는 모델도 아니고, 지켜보는 나로서는 엄청나게 부러웠다. 이 모델을 보면 아직도 그 친구가 떠오른다.
AIR FORCE-1 HI – WHITE / TRUE RED
이건 올드 포스의 스탠다드와도 같은 거다. 개인적으로 가장 나이키다운 컬러가 빨간색과 주황색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너무 갖고 싶은 모델이었다. 중학교 때 슈프림(Supreme) 박스 로고 티셔츠를 샀는데, 이 신발과 신으면 정말 너무 멋질 것 같았다. 하하. 근데 뭐 학생 신분에 완창은 그림의 떡이었지. 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박스로고 티셔츠와 이 스니커를 구하는 데 성공했다. 하하. 옛날에 생각해 놨던 코디를 십수 년이 지나서야 이룬 거다. 개인적으로 요즘은 이런 낭만이 덜한 것 같다. 결국, 돈만 있다면 못 구하는 게 없으니까. 아저씨 같은 이야기지만, 그런 얘기가 있지 않나. X세대는 차에 집착하고, N세대는 신발에 집착한다고. 난 영락없는 N세대다. 하하.
AIR FORCE-1 HI SC – BLACK MOSS / BLACK MOSS-BLACK
검창이라면 역시 에어 포스-1 된검창 모델이 유명하다. 이건 된장색이 아닌 올리브색으로 이루어진 완창 에어 포스-1이다. 실제로 보기가 굉장히 어려운 신발로 나에겐 마치 상상 속의 동물 같은 신발이었다. 올리브 검창 포스가 있다는 얘기만 들었고 실제로 본 적은 없었으니까. 되게 우연한 기회로 손에 넣었다. 경매 사이트를 뒤지다 된검창 하이 모델인 줄 알고 입찰했는데, 물건을 받고 나니 이게 올리브 검창이었던 거다. 애착이 참 많이 가는 스니커다. 많이 신은 탓에 슬슬 망가지는 중이다. 이런 모델이 다시 레트로되면 좋겠다고 매번 생각하지만, 막상 나오면 너무 다른 모습으로 발매되니 그게 좀 아쉽다.
AIR FORCE-1 HI CVS EVER GREEN / WHITE
이건 지금 헬리녹스 매니저로 일하는 형이 선물해준 모델이다. CVS 모델을 모으긴 하지만, 내 신조가 또 20만 원 넘으면 죽어도 안 산다. 하하. 값싼 매물이 나왔을 때 사는 거지, 광적으로 사들이지는 않는다고. 컬렉터도 실제 착용하려고 사는 사람, 관상용으로 구매하는 사람으로 구분되지 않나. 나는 전자다. 아웃도어 오리털 파카를 꽤 많이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 깔맞춤할 때 참 유용하다. CVS 모델이 파카 컬러와 잘 어울려서 코디하기 좋더라. 이런 실루엣 자체가 하이 탑으로 나왔을 때 참 멋지기도 하고. 발목을 잡아주는 스트랩도 좋다. 아, 예전엔 이 스트랩을 또 밖으로 빼서 신었다. 옛날 일본 패션 잡지에 이 스니커가 자주 등장했다. 대부분 스트랩을 뒤로 빼고 신더라. 그땐 저게 뭔지 너무 궁금했다. 당시 한국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발이었으니까.
오랜 시간 스니커를 모았다. 신발에 관련된 재밌는 이야깃거리를 들려 달라.
엄청 아끼는 신발이 훼손됐을 때 기억은 잘 잊히지 않는다. 하하. 최근 나이키 삭다트(Sock Dart)를 샀다. 신은 지 얼마 지나지 안 됐을 때 담배를 잘못 털어서 검정 신발에 구멍이 났다. 검은색이 아닌 양말을 신으면 티가 확 나더라. 어릴 적, 맥스 95 형광 모델에 얽힌 이야기도 있다. 이 모델은 발매 당시에 굉장히 비쌌다가 금세 시들해졌다. 그땐 신발을 무조건 크게 신는 게 유행일 때라 내 사이즈 맥스 95를 가진 여자애들이 몇 있었다. 덕분에 새것 같은 맥스 95를 공짜로 몇 족 얻었다. 들뜬 마음에 친구와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 신발이 체인에 걸려서 다 찢어졌다. 하하. 지금은 웃을 수 있지만, 당시엔 되게 속상했지.
아직 신발장에 없는 꿈의 신발이 있다면?
어느 순간부터 어떤 신발이라도 언젠가는 가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최근 나이키에서 스페셜 필드 에어 포스-1 하이(Special Field Air Force-1 High)를 발매하지 않았나. 너무 갖고 싶어서 예약까지 했다. 결국, 이 스니커를 구매했다. 그런데 며칠 뒤 여자친구가 나 몰래 매물을 찾아서 똑같은 걸 선물해준 거다. 두족이 생겼지. 둘 다 신어도 되지만, 뭐 그럴 필요까지 있나. 그래서 나머지 한족을 환불했다. 여자친구에게는 마음은 받았으니까 이건 네가 사준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돈은 내가 냈지만, 네가 사준 거라고. 하하. 옛날에 발매된 스니커를 모으는 이유는 정말 단순하다.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가지고 싶던 물건이었으니까. 그때부터 이어진 땡깡 같은 거지.
* 이 기사는 무신사 매거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진행 / 글ㅣ 오욱석
사진ㅣ 김남현
커버 이미지ㅣ 박진우
제작ㅣVISLA / MUSIN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