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EAKER LOVE : 구민현

스니커 러브(SNEAKER LOVE)는 말 그대로 신발을 사랑하는 사람과 그 신발에 관한 이야기다. 발을 감싸는 제 기능 이상으로 어느덧 하나의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한 스니커. 이제 사람들은 신발 한족을 사기 위해 밤새도록 줄을 서고, 야영하고, 심지어는 매장문을 부수는 한이 있더라도 손에 넣고자 한다. 그들이 신발에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VISLA와 MUSINSA가 공동 제작하는 콘텐츠, 스니커 러브는 매달 한 명씩 '신발을 무진장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그가 아끼는 스니커의 이모저모를 물을 예정이다. 애인보다 아끼고, 엄마보다 자주 보는 스니커,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에 주목해보자.

각종 스니커 발매 뉴스가 패션 매거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요즘,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방대한 정보를 놓치지 않고 체크하기란 도무지 쉬운 일이 아니다. 계속해 마니아를 내놓는 다양한 브랜드의 스니커, 좀처럼 식을 줄 모르는 스니커 수집의 열기는 몇십 년간 복잡한 패션 시장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번 화의 주인공인 구민현은 헨즈숍, 더 헨즈 클럽의 공동 디렉터다. 그는 끊임없는 스니커 게임 속에서 그 누구보다 발 빠르게 스니커를 수집한다. 나이키(Nike)의 야심작 알파 프로젝트(Alpha Project)부터 아크로님(Acronym)과 같은 최신 스니커까지, 언제나 애정 어린 눈으로 세계의 스니커 신(Scene)을 바라보고 있는 스니커 컬렉터 구민현을 만나보았다.

 

오늘 가져온 스니커의 선별 기준은?

특별한 주제가 떠오르지 않아 요즘 내가 즐겨 신는 스니커와 나에게 의미가 있는 스니커를 골라봤다. 굳이 주제를 정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신발 모음 정도다.

 

다양한 하이테크 스니커가 눈에 띈다.

어떤 제품이든 디테일이 있는 것은 왠지 모르게 관심이 간다. 디테일에 신경 쓴다는 건 그 물건을 연구했다는 이야기니까. 그것은 새로운 도전이고, 신발을 넥스트 레벨로 올리는 과정 아닌가. 아크로님의 지퍼, 버클 디테일이 그 좋은 예겠지. 신발에 발을 집어넣고 뺄 때 불편함을 단번에 해결했을뿐더러 외관 역시 훌륭하다. 테크니컬은 기본적으로 편의를 위한 것이니 매력적일 수밖에.

 

스니커를 좋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컬렉터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어릴 때부터 신발을 좋아했다. 그땐 내가 스니커를 좋아하는지도 몰랐을 땐데, 항상 옷을 입을 때 신발에 신경 썼던 것 같다. 그게 브랜드 스니커도 아니었는데 말이지. 이런 기질을 깨달은 계기가 중학교 3학년 때다. 춤을 추던 친구 한 명이 어느 날 나이키에서 출시한 세이즈믹(Seismic)이라는 신발을 신고 왔다. 남색과 노란색이 섞인 오리지널 컬러였다. 그 신발이 내 눈에 꽂혔을 때, ‘나이키에서도 이런 모양의 신발이 나오는구나’ 하고 충격을 받았다. 이후 NBA를 보며 조던(Jordan)에도 관심이 생겼다.

 

오래전, 스트리트웨어 편집숍 카시나(Kasina)에서도 일하지 않았나.

카시나에서 일을 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가 신발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멋진 신발을 많이 다루고, 매니악한 녀석들도 볼 수 있던 곳이었으니까. 어린 시절에는 거기서 일하는 것 자체가 꿈같은 일이었다.

 

다양한 스니커를 발 빠르게 구매한다고 소문이 났더라. 특별한 구매 경로가 있나.

특별한 경로가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각종 온라인 스니커 매체를 통해 스니커 릴리즈 소식을 모두 꿰고 있다. 국내 발매 여부까지 알아본 후 여의치 않으면 브랜드 해외 공식 웹사이트나 해외 스니커 편집숍을 거쳐서 구매한다. 과거 올드 스니커를 모을 때는 이베이(eBay)나 일본 야후 옥션을 자주 이용했다.

 

에어 조던 1 브레드에 선인장을 심어놓은 게 인상 깊다. 아깝지 않았나?

저 제품 역시 오래전에 이베이를 통해 구입했다. 조던 시리즈 레트로가 잦지 않았을 때, 2004년 쯤 구매했다. 당시 이베이를 통해 구매했는데, 더 이상 신을 수 없는 컨디션이 되어 뭘 해보면 좋을까 고민하다 선인장을 심었다. 하나는 집에 보관하고 나머지는 헨즈 숍에 두고 있다. 선인장을 심으려고 바닥에 구멍을 뚫은 게 나로서는 큰 결심이었지. 하하.

 

스니커 시장이 과열되면서, 여러 스니커 브랜드가 판매 방식을 캠핑에서 추첨제 형식으로 바꾸고 있다. 

스니커 구매 방식에 각자 어떤 의미를 부여하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사고 싶은 신발이 있다면, 그것을 추첨이라는 불확실한 확률에 맡기는 것보다 차라리 밤을 새우는 게 마음 편하다. 캠핑하고 줄을 서는 게 가장 정직하지 않나. 분명, 캠핑은 많은 육체적 피로를 동반한다. 하지만, 이런 행위가 신발뿐 아니라 본인이 갖고 싶은 것을 위해 쏟을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이 게임에 얼마나 애착을 가졌는지를 나타내는 척도가 될 수도 있겠지. 예전 같은 경우에는 스니커 관련 정보를 얻기도 힘들고 그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도 없어서 직접 발로 뛰고 그만큼 어렵게 구했기 때문에 더 값졌다.

 

스니커 캠핑에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지.

오래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주변에 나이키 타운이 있었는데, 매주 토요일마다 스니커가 발매됐다. 당시 조던 카운트다운 패키지라고 해서 조던의 등 번호 23을 기념하기 위해 각 에어 조던 시리즈 번호를 더해 23이 되는 조합으로 조던을 매월 발매했다. 당연히 경쟁이 치열했다. 미국도 물론 한정판 스니커를 사기 위해 캠핑을 한다. 하지만, 그곳은 인종도 다양하고, 총이라던가, 위험한 무기를 소지할 여지가 있어서 겁이 난다. 신발을 사러 들어갈 때까지는 주변에 사람이 많아 큰 문제가 없는데, 사고 나서 홀로 돌아가는 길은 무섭고 불안했다. 상점을 나서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주차장에 가서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다. 이런 경험 덕분에 조금 더 스니커에 애착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신발을 구매하는 일이 상당히 쉬워졌다. 과거엔 어디서 어떻게 신발을 구매했나.

이대와 압구정 쪽에서 많이 구매했지. 이베이 역시 엄청나게 많이 뒤졌다. 운 좋게도 미국에 친척이나 친구가 살아서 친구 부모님에게 돈을 보내고 친구가 한국으로 신발을 보내주는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구매했다. 하하. 당시에는 구매대행이라는 시스템이 너무나 생소했기에, 많은 시간과 수고를 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이키 외 좋아하는 스니커 브랜드가 있는지 궁금하다.

아디다스(adidas)의 슈퍼스타(Superstar), 스탠 스미스(Stan Smith), 마이크로 페이서(Micro Pacer)라던가 푸마(Puma)의 스웨이드(Suede)같은 모델을 좋아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갖고 싶었던 스니커는 주로 나이키 제품이 많았다. 끝내 갖지 못한 제품이 많아 레트로될 때, 무척 반갑다.

 

어린 시절 염원했지만, 결국 못 가진 드림 슈는 무엇인가.

아, 이제는 없다. 하하. 오래전부터 갖고 싶었던 제품은 다 가졌다. 대신 앞으로 나오는 것, 확실한 내 취향의 스니커에는 항상 관심을 두고 있다. 조던 시리즈 중에 유독 그런 게 많았는데, 내가 미국에 있을 때만 하더라도 OG 컬러가 레트로된다거나 조금이라도 비슷하게 나오면 그걸 무조건 사야만 했다. 하지만, 최근 나이키가 그런 제품을 꾸준히 재발매하면서 흥미가 떨어졌다. 에어 조던 1 브레드(Air Jordan 1 Black/Red)를 예로 들면, 85과 94년 두 차례 발매했다. 굉장히 긴 텀을 가지고 발매하는 데다가 두 제품이 완전히 똑같은 디테일을 갖고 있지 않기에 그다음 시리즈를 미드 컷으로 발매하더라도 억지로 샀는데, 그 이후에는 3, 4년 주기로 레트로를 되풀이하다 보니 그 욕심을 많이 내려놓게 됐다.

 

스니커는 마니아에게 어떤 추억의 매개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에어 줌 스피리돈(Nike Air Zoom Spiridon). 이게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발매된 스니커다. 그때 이 신발을 너무 사고 싶었는데, 도무지 살 수가 없었다. 학창시절 때는 누구나 돈이 없지 않은가. 하하. 아무튼 96년도에 만든 제품이지만, 최근 나오는 스니커의 쿠셔닝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당시 저 스니커를 갖지 못해 그때보다 여유가 있는 지금, 그 소원을 마음껏 풀고 있지. 세이즈믹은 중창이 오래 지나면 쉽게 가수분해가 나는 제품이라 망가지면 수선을 불사하며 신다가 결국, 이제 이것 하나 남았다. CO. JP – ‘Concept Japan’의 준말로 일본에서 단독 진행한 별주 모델 – 로 나온 컬러로 아까 말했던 것처럼 신발덕후로 입문하게 만든 신발이고 여전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니커다. 소문에 의하면 올해 이 스니커를 레트로한다는 소문 있던데. 이제 좀 할 때도 되지 않았나. 하하.

 

스니커 시장의 협업 트렌드가 컬러웨이 조합을 넘어서 신발의 구조를 변형하는 형태로 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꽤 재미있는 현상인 것 같은데.

신발 수집의 새로운 재미가 바로 그거다. 기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의 신발인데, 어떤 하이브리드 모델은 전혀 내 취향이 아닌 것도 있고, 또 어떤 퓨전 제품은 내 취향을 완벽하게 저격한다. 긴 텀으로 발매하는 드림 슈를 갖고 싶다기보다는 앞으로 나올 신발에 이전에 없던 또 다른 기대를 하게 한다.

 

그렇다면 최근 기대 중인 스니커는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나이키 에어 맥스 97(Air Max 97) 모델을 굉장히 좋아한다. 근래 발매한 메탈릭 실버 컬러에 이어 이제 메탈릭 골드 컬러가 나오는데, 어릴 때도 그 두 제품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오랫동안 큰 애착을 갖고 신던 신발이었지만, 망가져서 결국 버렸다. 그 신발을 새롭게 구매할 수 있다니 뭔가 감회가 새롭다. 그 외에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데? 아, 맥스 97 아시아 컬러가 다시 출시된다는 소문이 있어서 그것도 기다리고 있다. 맥스 97이 OG 컬러 외에도 새로운 컬러가 등장한다는 소문이 있다. 여기에도 많은 관심이 간다.

 

나이키와 협업하는 브랜드 중 선호하는 브랜드가 있다면?

보다시피 내 컬렉션에 아크로님을 빼놓을 수 없다. 아크로님의 디렉터 에롤슨 휴(Errolson Hugh)가 브랜드를 내기 전, 프리랜스 디자이너로 스톤 아일랜드(Stone Island)나 틸락(Tilak) 등의 브랜드를 디자인할 때부터 주의 깊게 보고 있었다. 아크로님의 슬로건이 굉장히 멋지다. 마케팅에 쓸 돈이 있으면, 그 돈으로 프로덕트를 디자인하고 소재 개발하는 데 쓴다는 것이다. 제품 그 자체로 말을 하겠다는 이야기다. 이런 브랜드가 나이키와 협업한다고 하는데, 기대되지 않을 수 있나.

아크로님은 역시나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기술적인 디테일을 내가 좋아하는 스니커에 제대로 때려 박았다. 실제로 컬러웨이나 갖가지 디테일이 놀라운 수준이다. 나이키와 아크로님의 프로젝트가 단발성으로 끝날 줄 알았지만, 에어 포스1(Air Force 1) 이후 프레스토(Presto)가 나오고 샘플로만 존재하던 에어 포스 1 다운타운 하이(Air Force 1 Downtown Hi SP)가 나왔는데, 다음에는 또 무엇을 보여줄지 너무나 기대된다. 아직 새로운 프로젝트와 관련된 어떠한 루머도 없지만, 언제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해외 스니커 숍도 자주 들린다던데.

지금도 자주 간다. 주로 도쿄 키치조지의 스킷(Skit)을 방문하는데, 다른 나라에 비해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뉴욕의 유명 세컨 핸드 스니커 스토어 플라이트 클럽(Flight Club)도 가봤지만, 요즘 트렌드에 맞는 스니커는 많아도 내 취향의 스니커는 드물더라. 스킷은 숍보다는 박물관 같은 느낌이 든다.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거든. 일본을 방문했을 때 관광만큼이나 재미있는 요소는 스니커를 구경하는 일이다. 어딜 가더라도 휴양이나 관광지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걸 볼 수 있는 장소를 찾는데, 미국도 지역을 잘 선택해서 가면 귀한 빈티지 스니커를 오프라인으로 볼 수 있는 재미가 있다.

 

해괴하게 생긴 하이 탑 맥스는 정말 생경한 모델이다.

에어 맥스 95 젠 벤티 부츠(Air Max 95 Zen Venti)라는 제품이다. 내 사이즈의 신발은 아닌데도 그냥 소장하고 싶어서 샀다. 사실, 맥스 95는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스니커는 아니다. 하지만,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본다면 두말할 것 없이 훌륭한 제품이지. 에어를 후방에만 적용한 맥스를 젠(Zen)이라고 칭하는데, 여기에 패션적인 요소를 접목해 부츠로 만든 것이 이 스니커다. 발매 당시엔 인기가 없어서 아웃렛으로 넘어갔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얼른 구매했다.

 

다양한 스니커 잡지 역시 눈에 띈다. 

스니커 관련 매거진은 계속 사보고 있다. 특히 일본의 스니커 매거진 슈즈 마스터(Shoes Master)를 많이 본다. 다루는 스니커 대부분이 내 취향과 맞고 스니커를 심도 있게 다루는 점이 마음에 든다. 일본어를 전부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슈즈 마스터는 신발의 아카이브를 상세히 보여주기 때문에 도움이 된다. 신발을 막 좋아하게 된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잡지다. 거슬러 올라가면 신발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거든. 그리고 볼륨이 어느 정도 지날 때마다 특별 이슈를 제작한다. 특정 인물이나 신발을 선정해서 그 아카이브를 몽땅 보여준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자료가 절대 아니지. 개인적으로 하라주쿠의 대부 후지와라 히로시(Hiroshi Fujiwara) 편을 좋아한다.

 

마지막으로, 왜 그토록 나이키를 좋아하는가?

나이키는 스토리텔링에 굉장히 뛰어나다. 나이키의 다양한 프로젝트 중 90년대에 진행한 알파 프로젝트를 알고 있나? 박스도 당시의 빨간 박스가 아닌 검정 박스에 점 다섯 개가 그려져 있었던 특별한 프로젝트였다. 어릴 때 이 알파 프로젝트가 너무 궁금해서 인터넷도 잘 안 되는 환경인데, 외국 사이트를 뒤지며 번역까지 했다. 말하자면, 나이키에서 다음 레벨을 보여주기 위해 다섯 단계를 준비하고 만든 제품이 알파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총 다섯 스포츠군 중 퍼포먼스를 잘하는 운동선수 다섯 명에게 설문조사를 진행해서 각 퍼포먼스를 할 때 필요한 소재를 파악하는 1단계, 2단계에서는 그것을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는지 묻고, 소재를 분석하고 이후 실제로 디자인을 하는 게 3단계, 그것을 선수에게 준 다음 테스트를 거치는 4단계를 거쳐, 마지막으로 제품을 만드는 단계를 통틀어 알파 프로젝트라고 칭한거다. 여기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혼자 막 벅차올랐던 기억이 난다.

내가 소유한 스니커 중 알파 프로젝트의 제품이 유독 많다. 그걸 의도해서 산 건 아니었는데, 어느새 그렇게 모이더라. 나이키는 그냥 스니커를 시장에 내놓는 브랜드가 아니다. 스토리와 디자인의 기원, 영감을 찾아보게 한다. 스니커의 태생을 멋지게 포장하는 능력은 언제나 날 놀라게 하지.

* 이 기사는 무신사 매거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진행 / 글ㅣ 오욱석
사진ㅣ 백윤범
커버 이미지ㅣ 박진우
제작ㅣVISLA / MUSI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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