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의 거리 : 수도권에서 가장 무서운 동네 일곱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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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한민국 땅에서 위험하지 않은 곳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VISLA는 그 중에서도 유독 힙합의 냄새가 짙게 밴 지역에 주목했다. 켄드릭 라마가 묘사하던 위험한 컴튼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고 싶다면 야심한 밤, 아래에 소개할 일곱 동네를 당당히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지. 또한 각 지역에 어울리는 배경 음악을 글의 말미에 덧붙였으니 소소한 공감의 재료로 사용하길 바란다. ‘소문의 거리’는 지역감정을 조장하기 보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을 하나의 웃음 코드로 풀어낸 글이니 예능을 다큐멘터리로 받아들이질 않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그럼 이제 가볍게 즐겨보도록 하자.

 

 

1. 성남 종합시장, 모란

성남-모란시장

이 일대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투박하고 색이 또렷한 편이다. 신림과 영등포, 그 외에도 서울 각지의 소년협객을 동네별로 구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성남의 친구들은 바로 티가 난다. 그만큼 이곳은 지역 특유의 투박하고 구수한 정서가 깊게 배어있다. 그것을 증명하는 듯 족발집, 전집을 비롯한 유수의 맛집이 곳곳에 위치해 있고 5일마다 열리는 모란장은 성남 어르신들의 고단한 일상을 녹일 수 있는 동네 축제로 자리 잡았다. 지역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나이트 클럽 스타돔은 근처의 청춘들이 모이는 사랑방의 냄새도 풍겨서 정이 충만하다 할 수 있다. 이 안에서는 서로의 출신 학교를 묻고 이를 바탕으로 공감대를 형성하여 결국은 모두가 ‘원(One)’을 외치는 아름다운 장면이 빈번히 연출된다.

그러나 이곳에는 불문율이 하나 있는데 성남의 남자를 절대 성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가장 강력한 충돌은 이 일대에서 일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 지역의 힘깨나 쓰는 친구들도 성남의 응집력과 억셈에는 한 수 접는다고 들었다. 또한 오랫동안 터를 잡고 있는 지역 건달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는 점도 하나의 이색풍경이다. 그분들에게 바니와 미키마우스 캐릭터 니트는 2014년에도 여전히 사랑받는 클래식 아이템으로, 이것은 그들의 뿌리 깊은 외유내강 정신을 대변한다. 이렇게 투박하고 거친 성남의 음악은 Mobb Deep외에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Just to give up the goods”로 시작한 남자다운 모란의 하루는 “Shook One Part2″로 깔끔하게 마무리 된다. 맙딥 본인들조차도 이곳을 방문한다면 성남시에 앨범을 헌정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될지도..

 

 

2. 영등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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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입에 올린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실례가 될 정도로 엄청난 게토인 영등포 역시 소문의 거리 타이틀을 차지하기에 손색이 없다. 모란과 종합시장에서 느꼈던 코리안 갱스터의 기운에 신림의 다채로운 색감을 더했으며, 심지어는 그 두 지역을 한꺼번에 상대해도 쉽사리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영등포는 동네계의 군계일학, 낭중지추, 인중여포라고 할 수 있겠다. 작년에 클럽에서 필자에게 담배 연기를 뿜으며 취조를 했던 그녀, 워싱 청바지에 푹 파인 흰 색 블라우스, 빨간색 립스틱이 강렬했던 아레사 프랭클린을 닮은 그녀도 영등포에 살았다. 영등포는 마치 어렸을 때부터 상상하던 항구 도시의 거친 질감이 그려지는 곳이다. 오늘만을 살 것같은 강렬하고도 가녀린 남자들의 생이 머무는 곳이며, 하루 사이에 생과 사의 교차를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느껴볼 수 있는 진귀한 곳이다.

역 근처의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 같은 펍 안에서는 팔뚝 굵은 아저씨들이 진한 향기를 풍기며 팔씨름을 하고 있을 법하다. 게다가 적절하게 위치한 경마장도 영등포의 게토 분위기 조성에 한몫하고 있는데, 웬만한 기운을 가진 전사가 아니면 이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아저씨들의 패기에 바로 다리가 후들거릴 것이다. 영등포 롯데 백화점 뒷골목의 하수구에서 월드워Z의 좀비들이 기어 나오는 상상을 하며 본능적으로 뉴욕의 브롱스가 매치됐다(물론 가본 적은 없다). 그리고 Flatbush Zombies가 떠올랐다면 당신과 우리는 생각이 일치한 것이다. 시대를 대표하는 MC가 태어나도 부족할 것이 없는 게토, 영등포에 좋아요를 누르자.

 

 

3. 수원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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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뜨고 코가 베인다는 서울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수원역은 방심하는 사이 장기가 척출될 것만 같은 짜릿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다만 2003년 이후로는 그 일대를 가본 적이 없어서 현재의 상태는 잘 모르겠다. 숀 오코넬이 담아낸 사진 한 장의 정수와 같이 수원역에 대한 단상은 단 하나의 컷으로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것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저씨라는 단어조차 조금은 젊게 느껴지는 중년의 남성과 팬티와 반바지의 경계가 모호한, 빨간 핫팬츠에 딱 붙는 베이지 니트를 입은 10대(로 추정되는)의 여성이 수원역 앞의 벤치에 앉아 소주를 정답게 나눠 마시는 풍경이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멀찌감치 서서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누가 그녀를 밖으로 내몰았을까. 복잡했던 심정의 수원역은 Ludacris의 “Runaway Love”를 연상케 한다.

 

 

 4. 강남역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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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라고 생각할 필요 없다. 많은 사람들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강남역 지오다노 일대는 따스한 연인들의 사랑이 이뤄지거나 반가운 인연들이 오가는 만남의 장소를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20대 청춘의 치기와 취기가 진하게 배어있다. 이곳은 많은 인파가 붐비는 만큼 사람들의 목소리도 높고 시시비비한 충돌도 잦다. 교통사고는 사실 고속도로보다 시내의 교차로에서 많이 나는 법. 그 일대의 터줏대감인 강남 NB, 새롭게 떠오른 밤음사를 주축으로 즐비한 가지각색의 술집은 지금도 우리들의 청춘을 유혹하고 유린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은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는 곳은 아니다. 영등포와 수원역의 분위기가 완전한 생명 그 자체가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라면 강남역은 술의 힘을 빌린 호기, 젊음을 등에 업은 패기에 더 가깝다. 필자와 같이 평범한 청춘들이 만끽하는 순간의 일탈이니 전기 충격기를 들고 다닐 필요까지는 없다는 말이다. 불빛을 보면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단 하루를 불태우기 위해 우리는 강남역의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 모여들었고 2000년대 중반, 이 일대 거리의 찬가와 같았던 Ja Rule의 음악은 강남역을 대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5. 안산 원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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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지만 지인 2명의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단숨에 리스트에 오른 시티 오브 갓, 안산 원곡동이 다섯 번째 소문의 거리를 장식했다. 이곳은 삶과 삶이 부딪히는 전쟁터, 혹은 화려한 불빛 아래 모든 것이 소비되는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차가운 바람이 불고 살을 에는 냉기가 흐르는 곳이라 한다. 새벽의 원곡동은 마치 영화 “나는 전설이다”의 세상과 흡사하다는 친구의 말에 오금이 저려왔다. 적외선 카메라를 비추면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는 이곳에서 술을 마시게 된다면 허튼 생각 말고 집으로 가란다. 원곡동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아 불법 체류 문제로 항상 시끄러운데, 소문에는 외국인 갱스터들끼리 지역 분쟁을 일으키며 총격전을 벌였다는 말도 있다. 대한민국 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으로 섬뜩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뛰어난 살인 내러티브와 무지막지한 랩으로 수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은 Eminem의 “Stan”이 안산의 BGM으로 적절할 것 같다는 발칙한 생각을 하며 서둘러 안산편을 마무리하겠다. 온갖 기괴하고 잔인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검증되지 않은 글로 공포를 조장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6. 수유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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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논현의 한신포차를 한신포차의 으뜸이라고 했던가. 클럽에서의 시간이 모자라는 이들을 위해 생겨난 것이 애프터 클럽이라면 수유의 한신포차는 하루 종일 술을 먹고 싶은 이들을 위한 ‘애프터 포차’다. 거리상 강북을 제대로 느낄 기회가 없던 차에 우연찮게 수유에서 보낸 하룻밤은 왠지 모르게 야릇했다. 수유의 에너지는 뜨거웠고 본능에 가까웠다. 또한 근처에 위치한 유서 깊은 ‘수유 샴푸 나이트’는 각지에서 원정을 오는 검증된 러브 파라다이스라고 하니 수유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대체 언제쯤 맘 편히 잠을 잘 수 있을까 하는 사치스러운 걱정을 해봤다. 이곳의 여성들은 도도한 콧대를 치켜세우기 보다는 함께 사랑과 평화를 외칠 수 있는 이들이었다. R Kelly가 혹시 수유를 다녀와서 Ignition Remix에 대한 영감을 얻진 않았을까. 수유의 유흥가는 이명박이 와서 놀아도 모를 것이라는 친구의 메시지를 끝으로 이 일대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하겠다.

 

 

7. 구로 가리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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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밍에서 풍겨지는 강력함에서는 안산의 원곡동도 한 수 접는 구로 가리봉동이 마지막 소문의 거리다. 언젠가 이곳에 들렀다가 밤이 깊어 허기도 달래고 목도 축일겸, 일행과 함께 근처의 양꼬치집으로 홀린듯 빨려 들어간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주문을 하기 전에 주위를 자세히 둘러봤어야만 했다. 일행을 제외한 전 좌석에 중국인들이 앉아있는 기이한 풍경을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가장 무서웠던 것은 바로 옆 테이블의 남자4명 일행이었는데 ,그중 완전한 삭발에 용호의 권2에 등장하는 잭 터너의 복장을 한 아저씨는 살아있는 공포 그 자체였다. 중국 무술 영화의 최종보스를 실제로 맞닥뜨린 기분이랄까. 가래침을 뱉으며 테이블을 탕탕 치는 그 모습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그 때 마신 술이 코로 들어갔는지 입으로 들어갔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우리가 정말로 이곳에서 양꼬치를 먹었단 말인가. 본능적으로 필자의 뇌는 가리봉동을 지워버렸고 지금까지도 온전히 살아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름 모를 중국집에서 Ghostface Killah를 느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귀면살수의 “Apollo Kids”가 더없이 어울렸던 가리봉동의 어느 날을 회상하며 부족한 글, 소문의 거리를 마친다.

 

+쟁쟁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일곱 곳을 꼽으려니 아무래도 개인적인 경험 위주의 서술이 되었다. 또한 편의상 숫자를 붙인 것일 뿐, 무서운 동네의 순위는 따로 정하지 않았다. 아쉽게 리스트에서 탈락한 신림(예상과는 달리 사랑이 충만한 동네였다), 노원(정보가 부족했다), 부천(가장 강력한 리스트였지만 역시 정보가 부족했다), 안양(탄탄한 학원가를 중심으로 엘리트를 배출하고 있다), 천호(연령대가 너무 낮았다)는 기회가 될 때 다시 탐구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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