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De Mode #1 21세기 이전 패션의 역사

영화는 수천 년에 걸쳐 발전해온 연극, 음악, 회화, 무용과 비교했을 때, 이제 겨우 100년이 갓 지난 예술 장르다. 그러나 다른 예술 분야보다도 영화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총체적인 예술로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인간의 예술적 욕망과 호기심을 충족시키며 흥미로운 대중매체로 자리 잡았다. ‘Film De Mode(필름 드 모드)’란 프랑스어로 ‘패션에 관한 영화’라는 말이다. 제1화 21세기 이전의 패션 역사를 시작으로 6회에 걸쳐 영화 속 패션을 중심으로 패션과 영화 사이의 다양한 관련성을 알아보고자 한다.

영화와 패션은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시각적 영향력이 있다는 점에서, 자유로운 표현 구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언어라는 점에서 결을 함께한다. 다만 여기서 소개하는 영화는 각 회차에서 이야기할 ‘패션’의 전파자 역할에 충실할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Film De Mode는 영화 속에서 패션이 기능하는 바를 중점적으로 다루며, 특정 장르의 구분 없이 영화와 패션의 교집합이 될 만한 흥미로운 콘텐츠를 소개하는, 영화와 패션을 결부 짓는 일종의 종합적인 담론이 될 것이다.

 

#1 21세기 이전의 패션 역사

제1화 21세기 이전의 패션 역사에서는 거대한 협곡의 물줄기를 타고 내려오듯 지난 19~20세기의 패션의 흐름을 큰 틀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시대별로 특징이 될 만한 스타일을 중심으로 당시의 사회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영화를 선정해보았다. 여기서 소개하는 특정 시기를 분명하게 나타낸 영화 속 패션은 단순한 장식적 도구가 아니라 영화 전반의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표현적 기능을 수행한다. 또한 극의 분위기에 통일성을 주며 작품을 드러내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1세기 이전의 패션 역사와 이를 잘 반영한 영화들을 살펴보자.

 

1800’S 초 영국 <오만과 편견>

이 시대는 신고전주의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 로마풍의 디테일과 구조를 따랐다. 가령, 드레스의 소매를 호크나 단추로 채우는 방식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여성 드레스에서 사용하던 기법의 하나였다. 비교적 풍성한 스커트과 비교해 웨이스트 라인은 가슴 바로 아래까지 파격적으로 높아졌다. 이를 ‘엠파이어 스타일’이라고 부른다. 엠파이어 드레스의 기원은 프랑스 혁명 전 마리 앙투아네트가 즐겨 입던 슈미즈 드레스라고 알려져 있다. 슈미즈 드레스는 가벼운 천으로 만들고 목을 깊게 파서 노출을 많이 할수록 아름답다고 여겼다. 팔과 가슴을 드러낸 데콜테 가운도 유행이었다. 영화 속 무도회 장면에서 볼 수 있듯, 팔꿈치 위로 올라오는 짧은 소매에 목선이 넓게 드러난 것이 특징이다. “오만과 편견”을 통해 1790~1810년대의 영국 엠파이어 드레스를 확인해보자.

 

엠파이어 스타일에 영향 받은 Fendi 2016 Couture Collection

 

1830’S 프랑스 <레미제라블>

“레미제라블”은 1832년, 프랑스 6월 항쟁의 역사적 사건을 다룬다. 영화가 그리는 1800년대 프랑스의 사회상은 물론, 패션 역시 충실히 반영했다. 1800년대에는 런던과 파리의 교류가 활발했기에 패션에서도 서로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830년대 프랑스는 1820년대의 패션이 더욱 과장된 스타일로 표현된 시기였다. 게다가 낭만주의의 영향이 매우 강하게 작용하여 소매와 허리를 강조한 의상이 주를 이뤘다. 부풀린 소매는 네크라인을 방해하지 않도록 어깨 밑으로 내려왔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역시 거대한 소매로 인해 어깨와 목선이 드러난 디자인이 성행했는데 이는 극 중 코제트의 의상을 보면 이해가 빠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 나폴레옹 시대를 재현한 Dolce&Gabbana 2017 F/W

남배우들의 의상을 살펴보면, 먼저 목에 정갈하게 두른 크라바트가 돋보인다. 크라바트는 모슬린 또는 실크를 매듭지어 두른 것을 말한다. 하의는 주로 브리치즈라 불리는 타이트한 바지를 입었다. 낮에는 밝은색의 브리치즈를 어두운 색 코트와 함께 입고, 저녁에는 어두운 색상의 브리치즈에 실크 스타킹을 신는 등 코트와 바지 색을 달리 입는 패션이 유행이었다. 브리치즈와 함께 통이 넓은 터키식 팬츠도 인기를 끌었는데 이 역시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베르가 입은 테일코트는 브리치즈와 함께 착용했던 코트다. 연미복이라고도 하는 이 맞춤복은 뒤는 길게 내려와서 테일이 달렸고 앞은 확연히 짧게 재단했다. 혁명기의 불안한 상황이 반영된 옷이 바로 테일코트라고 한다. 레미제라블의 의상 담당 파코 델가도의 디테일이 어떻게 발현됐는지 따라가 보면 영화가 더욱 풍요롭게 다가올 것이다.

 

1920’S <위대한 개츠비>

1차 세계대전 후 영향력이 커진 미국은 경제 호황을 누렸고, 미국인의 생활양식이 빠른 속도로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무성영화, 연극과 뮤지컬, 음악과 댄스 등 오늘날의 대중문화가 탄생한 것도 이때였다. 여성은 투표권을 얻었고, 보란 듯이 길에서 담배를 피우며 기존 관습에서 탈피하려고 했다. 1920년대는 패션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여성의 당당한 태도를 뒷받침하듯 어깨선을 드러낸 상의를 입었고, 긴 드레스는 그 길이가 종아리까지 짧아졌다. 웨이브가 들어간 짧은 헤어스타일과 더불어 종 모양의 챙이 없는 클로슈라는 모자도 유행했다. 1920년대 초 남자들은 포마드를 이용해 긴 앞머리를 말끔하게 뒤로 넘기는 헤어스타일을 선호했으며, 허리가 살짝 들어간 짧은 재킷을 많이 입었다. 영화 의상 감독 캐서린 마틴에 따르면, 남성 의상은 초기의 것에 가깝게 더 마르게 보이게 했고 여성 의상은 후기 의상에 가깝게 편한 실루엣으로 몸의 형태를 살리는 데 집중했다고 한다.

 

‘위대한 개츠비’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은 Ralph Lauren 2012 S/S

한편, 재즈의 열풍으로 찰스턴 댄스가 유행하자 그에 맞는 찰스턴 드레스도 인기를 끌었다. 춤추는 여성의 다리가 자유로울 수 있게 스커트는 더욱 짧아지고 흔들리는 움직임을 강조하기 위해 프린지나 장식용 띠를 달았다. 이러한 의상은 감독 바즈 루어만에 의해 화려한 파티 신(Scene)에서 재해석된다. 이때 사용된 드레스는 미우치아 프라다가 디자인했고, 남성복은 브룩스 브라더스의 도움을 받았다. 현대적인 감성으로 풀어낸 의상이 영화의 완성도에 막대한 지분을 차지하는 작품.

 

Ralph Lauren Purple Label 2012 S/S (MEN)

 

1950’S <캐롤>

1950년대는 여성 패션이 우아함의 극치를 달리던 시기다.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캐롤의 의상은 정확히 1950년대 상류층 여성의 패션을 대표한다. 여성은 완벽한 옷차림을 열망했고, 이에 부응하듯 의상은 아름답게 재단되었다. 이 시기 여성의 패션에서 액세서리가 매우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 장갑, 귀걸이, 스카프 등 액세서리를 의상과 조화롭게 코디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우아함의 정석, Fendi 2017 F/W

 

1960’S <헬프>

1960년대는 젊은이들이 자유를 외치는 시대였다. 사회 질서가 재구성되면서 패션에서도 새로운 스타일이 출현하는데, 그것이 미니(Mini)다. 미니의 유행은 영 패션을 선도했으며, 캐주얼이라는 말을 통용시키기도 했다. 또 의상의 다채로운 색상도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데 기여했다. 이를 확인하고 싶다면 영화 “헬프”에서 셀리아 역의 제시카 차스테인의 의상에 주목해보자.

 

60년대의 Colorful, Prada 2012 S/S

 

1970’S <벨벳 골드마인>

1970년대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시대다. 경기 침체로 소비가 줄었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의상을 찾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0년대 영국 글램 록의 성행은 큰 반향을 일으키며 역사에 기록되었다. 영화 “벨벳 골드마인”은 글램 록스타에 관한 이야기다. 글램 록의 선구자 데이빗 보위를 모티브로 한 영화의 주인공은 머리를 깃털로 장식하고, 짙은 눈 화장을 하며 온몸이 글리터로 덮여 있는 등 화려함의 집합체인 글램 록 스타일을 선보인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의 흔적을 감상해보길 권한다.

 

글램록의 부활, Saint Laurent 2015 S/S

 

1990’S <8mile>

1990년대에는 미국에서 태동한 힙합이 새로운 문화의 주류로 떠올랐다. 힙합 뮤지션들이 즐겨 입던 옷과 아이템은 빠르게 대중에게 흡수되었고, 스트리트 패션의 한 축을 형성했다. 그들은 청바지를 엉덩이 중간에 걸쳐 입는다거나 거대한 사이즈의 상의를 입었다. 큼지막한 목걸이를 걸치고, 후드 티셔츠 위에 야구 모자를 걸치기도 했다. 영화 “8mile”은 미국의 랩 레전드 에미넴의 자전적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며 1995년 디트로이트를 배경으로 둔다. ‘8mile’이라는 단어는 실제 디트로이트의 도로 명칭으로 부유촌과 빈민촌의 경계가 되는 지점이었다. 에미넴은 당시 흑인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던 랩, 나아가 힙합 신에 백인이 들어가는 과정에서 갖가지 어려움에 부딪히는데, ‘8mile’은 지리적 경계인 동시에 심리적 혼란의 경계이기도 했다. 영화 속 에미넴을 비롯한 등장인물은 당시 패션을 충실히 재현한다. 90년대 힙합이 그리운 이들에게 영화 “8mile”은 만족감을 선사할 것이다.

 

하이엔드 패션에서 재해석한 Hiphop, Moschino 2014 F/W

 

이렇듯 각 시대에 유행했던 패션은 당시 사회상과 맞물리며 변화하고 발전했다. 패션의 역사는 과거를 뒤돌아보는 일, 즉 그 시대의 단면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지금 또다시 빠르게 변화하는 패션의 현주소를 떠올려본다면 추후 또 어떤 이야기로 묶일지 흥미로울 것이다.

글 │ 최세담
커버 이미지 │ 박진우
제작 │ VISLA, MUSI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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