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AY BIDDING STRATEGY – 항공점퍼 길라잡이 -下-

 

B-10/15

지난 E-BAY BIDDING STRATEGY – 항공점퍼 길라잡이 -上-에서 소개한 가죽의 시대를 지나 미 공군(The United States Army Air Forces) 기준 최초로 가죽이 쓰이지 않은 재킷이 나왔다. 그것이 바로 1943년에 나온 B-10. 칼라에 달린 무통 퍼(Fur)라던가 알파카 라이닝을 비롯한 전체적인 모양새는 앞서 본 해군 주력 아이템 M-422과 유사하지만, 외부는 코튼 트윌 소재를 사용했다. 내부 알파카 라이닝의 효과가 상당했던지 버즈 릭슨(Buzz Rickson)의 제품 설명서에 따르면 가죽을 사용했지만, 라이닝이 허술했던 A-2보다 따뜻했다고 한다. 경량화와 보온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굉장한 스펙을 보유한 본 제품의 수명은 의외로 1944년에 마무리되는데….

곧바로 1944년에 B-15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 사이 B-11부터 B-14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B-10과 비교했을 때 외관상 칼라가 좀 더 커졌는데, 포럼에서는 칼라가 작은 B-10의 밸런스를 조금 더 높게 사는 분위기다. 더불어 디테일을 본다면 왼쪽 팔뚝에 펜 포켓이 생겼고, 주머니가 사선으로 바뀌었으며, 가슴팍에 산소마스크 코드를 고정하는 옥시즌 탭(Oxygen Tab)이 부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디테일은 모두가 알다시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항공 재킷의 표준이 된다.

 

[B-15 초기 드로잉으로 추정되는 그림, 옥시즌 탭이 없다]

특기할만한 점은 사실상 여기에서 더 이상의 개선은 없다고 판단했는지, 아니면 이보다 완벽한 제품은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여하튼 이전 제품이 1~2년 정도 나오다 신상이 나왔던 역사에 비교해 B-15는 사실상 터빈 엔진이 도입되는 제트 에이지(Jet Age), 약 1950년 중반까지 10여 년에 걸쳐 꽤나 다양한 형태로 발매되며 오늘날 우리가 ‘봄버 재킷’이라고 했을 때 가장 빠르게 떠올릴 수 있는 클래식이 된다.

 

[1944년 Aero사의 B-15 제품]

[대략 40년대로 추정되는 B-15A. 휴먼 메이드(Human Made)에서 복각한 제품이기도 하다]

제트 에이지에 이르며 모든 것이 바뀌었다. 비행기는 더 높은 고도로 올라갔고, 그에 따라 더욱 유선형의 모양을 갖췄으며, 조종석은 좁아졌다. 그만큼 기민한 움직임이 중요해지는 와중 두꺼운 가죽 재킷을 입고 있기란 고역이었으리라. 거기에 조금이라도 젖으면 금방 얼어버리니, 방한과 기능성 모두에서 기존의 가죽, 캔버스 옷과는 작별을 고해야 할 시점이 다가온 것이다.

따라서 나일론(Nylon)이 전격적으로 도입된다. 듀퐁(DuPont)이 1934년 개발한 나일론이 본격적으로 군복에 쓰인 게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역시 B-15라고 추정한다. 누가 봐도 저렴하고 생산도 쉬운데 가벼웠으며 활동성까지 좋았다. 탁월한 방수/발수력에 잘 마르고 심지어 더욱 튼튼한 나일론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문헌에서는 고품질 나일론으로 첫 샘플작이 나온 게 40년대 중후반이라고 하며, 실제로 대략 B-15A를 지나 B 시리즈부터 본격적인 나일론 제품이 눈에 들어온다.

 

[B-15B. 나일론으로 제작된 본 버전부터는 옥시즌 탭이 세로로 변경되었는데, 이 디테일의 위치는 이후 D버전까지 계속된다.]

C 타입의 매력이라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바로 새로운 컬러가 도입되는 무렵의 제품이라는 것이다. 1950년대 이후 공군은 육군항공대로부터 독립하면서 육/해군과의 차별성을 두기 위해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담은 색을 고르는데, 그것이 바로 에어 포스 블루(Air Force Blue)다. 이 색깔이 기존의 올리브 드랩(Olive Drab)을 대체하기 시작한다. 멀리 갈 것 없이 만인의 연인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가 한국전쟁 당시 입은 파란색이 바로 그것이고, 그때 누나가 입고 있는 제품이 바로 B-15C다. 뭐 이런 사연이 있어서인지, 꽤나 인기가 많을 뿐 아니라 필요 이상으로 비싸다.

 

[옥시즌 탭이 나일론으로 바뀌었다]

 

[마릴린 먼로와 기분을 심하게 내시는 형님들]

 

[날마다 폭발하는 구매욕을 막아주는 라쿠텐의 수호신 역시 입었다]

 

[사실상 마지막 수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B-15-D(MOD) 제품, MOD는 1957년(54년이란 사람도 있다), 헬멧과 재킷의 칼라가 간섭을 일으켜 칼라를 수정한 모델이란 뜻이다. 거기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세이지 컬러까지 등장하며 본격적인 MA-1의 모습이 나오기 시작했다. MOD는 역시 50년대 후반부터 나온 것이니 주로 C와 D에서 많이 보이지만 A, B 역시 존재한다]

이렇게 제트 에이지를 맞이하여 나름의 개량을 시도한 B-15는 위 사진과 같은 마지막 모양새를 남기며 이곳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위 디자인을 바탕으로 몇 가지 제품이 등장하게 되는데, 모든 제품이 꽤나 캐주얼하게 입기 좋은 탓인지 인기가 상당하다. 이 모델 또한 버즈 릭슨에서 복각했다.

 

L-2

[리얼 맥코이의 L-2 재킷]

제트 에이지 최초의 항공 재킷으로 알려진 본 제품의 L이 의미가 뭔지 정확히 찾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라이트 존으로 분류되는 제품이니 ‘Light’의 L이 아닐까. 스펙이 정해진 건 1945년이지만 본격적으로 생산되어 지급된 건 1947-49년 정도로 보는 본 제품의 가장 큰 특징은 말 그대로 경량화다. 딱 봐도 B-10/15의 두꺼운 맵시와는 다른 L-2는 대략 화씨 42~65도(섭씨 5~18도)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굳이 따지자면 B-15B의 S/S 버전으로 적정온도로 보면 15년 만에 나타난 A-2의 직계라 할 수도 있겠다.

적정온도별로 나일론 시대를 여는 제품이라면 여기 라이트 존(10~30도)의 L-2, 앞서 본 인터미디어트 존(-10~10도)의 B-15B, 헤비 존(-30~-10도)의 N-2, 그리고 베리 헤비 존(-50~-30도)에 N-3가 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연도/온도별 항공점퍼 역사]

나름 재미있는 건 L-2A라는 이름으로 나온 옷. 전쟁사로 보면 한국전쟁에서 ‘Jet-On-Jet’ 항공 전투 때 최초로 사용된 옷으로서 의미가 있다. 다만 잠깐 언급한 에어 포스 블루 컬러를 전격 채용한 제품이다. 아쉽게도 이 제품의 수명은 무척이나 짧았는데, 그 단명의 이유가 바로 한국전쟁이었다. 아쉽게도 산과 들이 무성한 이 땅에서 지상에 착륙한 군인이 시퍼런 색을 입고 있으니 눈에 잘 보이는 건 당연한 일. 기존 올리브색이나 카모플라주에 비해 발각 확률이 현격히 높았다.

덕분에 이 L-2A는 전시에는 사용되지 않고, 그냥 기념품 내지는 활동복 정도로 쓰이고 말았다고 한다. 대체 이런 걸 왜 알아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가 왜 자꾸 같은 옷 사냐고 할 때 설명하기 좋다.

 

[우측에 두 형님이 입고 있는 것이 바로 L-2A]

이러한 문제 덕에 L-2A는 곧바로 L-2B로 대체된다. 당연하지만 색상은 다시 세이지 그린으로 복귀, 그 외 사이즈와 라벨 디자인, 나일론 종류를 미묘하게 수정한 본 제품은 대략 70년대까지 널리 사용되며 아직도 현행 제품으로 발매되고 있다.

 

[50년대 L-2B]

 

[60년대에 쓰인 L-2B]

 

MA-1

[50년대 MA-1]

B-15 이후, 맨 앞쪽에서 잠시 언급한 해군의 G-1을 지나 비로소 등장하는 MA-1. 무슨 말이 필요할까. B-15D(MOD)와 매우 유사한 본 제품은 L-2 기준으로 견장이 사라졌다. 더불어 나일론 쉘과 나일론 라이닝 사이에 폴리에스터 충전재가 들어가 있어 영하 5도의 날씨에서도 사용 가능했다. 덕분에 조종사 외 지상 엔지니어의 동계복으로 유명했으며, 당시에도 지금만큼이나 인기가 상당해서 군인 사이에서 쟁탈전을 벌였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보는 눈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색상은 대부분 세이지 그린으로 통일되었는데, MA-1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전쟁인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이 일어난 두 나라 모두 어딜 가든 수풀이 우거져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60년대 이후 모델에서부터 보이는 오렌지색 라이너는 다들 알다시피 불시착 시 시안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인데, 요 디테일은 오늘날 복각 브랜드가 아니더라도 MA-1을 만들 때는 꽤나 많이들 채용할 정도로 대표적인 상징이 되었다. 위쪽의 L-2B 역시 50년대와 60년대의 라이너 색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60년대 MA-1의 상징, 오렌지 라이너]

항공 재킷 역사상 가장 인기가 많았으며, 가장 오랫동안 보급되었고, 가장 많은 브랜드에 의해 재해석되고 지금까지도 팔리고 있는 불멸의 역작이지만 엄마 눈에는 옷장의 80%가 넘는 옷이 다 이거 아니냐는 의문을 들게 하는 옷이다. MA-1 하나만 가지고 우려먹은 기사들이 수도 없으니 디테일한 이야기나 복식사적 역사성은 다른 곳에서 찾아보길 권장한다.

 

[오늘날의 MA-1, 시보리가 울 대신 아크릴이고, 마스크 고정 스트랩은 진작에 사라졌다]

이처럼 무결점인 줄만 알았던 나일론이 실은 불에 취약하다는 걸 알게 된 이후 1972년 CWU(Cold Weather Uniform) 재킷이 등장한다. 본 제품은 가벼운 36/P, 여기에 안감이 좀 더 들어간 45/P 이렇게 두 종류로 발매되는데,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MA-1에 칼라가 달렸고 주머니가 좀 더 커졌으며, 무엇보다 노멕스(Nomex) 소재로 만들어져 더는 불에 타지 않는다. 이 제품은 공군뿐 아니라 해군, 육군 항공대까지도 모두 사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MA-1을 은퇴시킨 후 지금까지도 현역이다(현재 밀스펙 MIL-J-83388D). 즉, 구하기가 꽤 힘들다.

 

[(좌) 70년대 CWU-45/P (MIL-J-83388A)와 (우) 현행 Houston의 CWP-45/P, 더 예쁘고 저렴하다]

 

준비한 글은 대략 여기까지, 다루지 않은 부분은 아마 이 정도인 것 같다.

  • 해군 쪽 항공 점퍼의 조상님 G1의 밀스펙은 M-422을 지나 AN-6552, AN-J-3, 55-J-14, 이후 50년대 이후 J-1823에서 A~E만 달라지는 식이나 여기까지 기술하기는 너무 힘들다.
  • 해군의 라이트 존 제품이라면 역시 M-421. 일본에서는 ‘베리 라이트 존’이라는 괴상한 카테고리를 만들어 그쪽으로 분류하기도 한다(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이 모든 온도별 분류를 일본 애들이 한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이쪽 역시 협업 제품이 있다.
  • B-3까지 하고 말았던 동계용 제품은 연대표와 같이 1945년의 본격 나일론 제품인 N-2로 이어진다. 그리고 B-7의 명맥을 잇는 쪽이 바로 우리의 N-3 시리즈. 연도로 따지면 앞에서 열심히 이야기한 MA-1보다 먼저 나오는 게 N-3다.
  • 그 외 디테일한 밀스펙의 변화, 매뉴팩처에 따른 구분은 그냥 구글 검색을 권한다.

 

[지금까지 나온 친구들의 연대표는 대략 이러하다]

제목은 거창하게 썼지만, 사실 밀덕이나 복식사 따위와는 전혀 관계없는, 그저 따뜻한 옛날 옷을 인터넷으로 싸게 사고 싶은 일개 변방의 이베이 초짜가 그야말로 여기저기서 눈탱이 맞고 일본 야후 옥션 판매자 글 보며 배운 지식에 이것저것 책 몇 권 읽으며 덧붙인 결과다. 가령 항공 복식계의 최태성 같은 분들이 보면 뭔가 수상하거나 구린 부분이 많을 수 있다. 그럴 때 메일을 보내주면 성실하게 수정하여 반영하겠으니 부디 너그러운 이해를 바란다.

글 │ 김선중
커버 이미지 │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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