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허브(Pornhub). 아마도 유튜브(Youtube) 다음으로 큰 동영상 플랫폼이 아닐까 싶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폰허브는 음란물 웹사이트 가운데 단일 사이트로서는 가장 많은 음란물을 무료로 제공한다. ‘폰허브’라는 사이트 제목값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포르노를 보기 위한 전 세계 인터넷 유저의 욕망을 자양분 삼아 폰허브는 빠르게 성장했다. 아마존(Amazon)의 인공지능인 알렉사(Alexa)의 분석 결과, 폰허브는 세계 웹사이트 트래픽 순위에서 당당히 29위를 차지한다.
폰허브는 음지의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늘 노력해왔다. 웹사이트 내 대부분 정보가 성인 콘텐츠일지언정, 외부에서만큼은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 한다. 크리스마스 당일, 가족에게 폰허브 기프트 카드를 선물하는 따뜻한 광고를 만들고, ‘공격적이지 않은 폰허브의 광고를 만들어달라’라는 챌린지를 직접 열어, 우승자를 직원으로 채용했다. 이미지 쇄신을 위해 나무도 심고, 유방암 재단에 ─ 비록 거절당했지만 ─ 기부하길 원했다. 폰허브는 자신들의 브랜드를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데, 그중 하나의 콘텐츠로 폰허브 레코드(Pornhub Records)를 꼽을 수 있다. 폰허브 레코드에 올라온 뮤직비디오는 2018년 7월 기준으로 총 8개, 이중 가장 유명한 이의 뮤직비디오는 와카 플라카 플레임(Waka Flocka Flame)의 “Bust”다.
폰허브에서 음악과 관련된 콘텐츠가 오직 폰허브 레코드뿐인 것도 아니다. 한 유저는 자신의 채널에 비틀즈(The Beatles)와 존 레논(John Lennon)의 음악 영상을 업로드하고, 유튜브에서 뮤직비디오를 다운로드해서 공유하는 이 또한 넘쳐난다. 최근 이러한 트롤링이 아닌, 진지하게 폰허브를 뮤직 비디오 채널로 쓰는 이들이 등장했다. 영국의 UK 드릴(UK Drill) 래퍼들이다. 이들은 단순 마케팅이나 폰허브가 좋아서가 아니라 마지막 수단으로 폰허브를 사용한다. 이들이 폰허브에 뮤직비디오를 올리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드릴 뮤직과 UK 드릴을 향한 현 영국의 시선을 살펴봐야 한다.
드릴 뮤직(Drill Music)은 시카고에 기반을 둔 트랩의 하위 장르다. 시카고의 청소년층의 살인, 강도 등의 심각 범죄 행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당시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음악을 윤리에 기대어 막아야 한다고 했고, 또 어떤 이들은 드릴 래퍼들의 가사가 시카고의 현실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양쪽의 의견 중 승리한 건 결국 후자였다. 칸예 웨스트(Kanye West), 드레이크(Drake), 릭 로스(Rick Ross) 같은 스타들은 드릴 래퍼들을 자신의 앨범에 참여시켰고, 치프 키프(Chief Keef)나 릴 더크(Lil Durk) 등은 많은 돈을 벌었다.
영국의 UK 드릴은 시카고 드릴 뮤직에서 영향받은 이들과 로드 랩(Road Rap)이라는 색채가 더해지며 만들어졌다. 이는 마찬가지로 폭력과 강력 범죄에 점철된 자신들의 삶을 다룬다. 영국의 갱스터 문화와 깊이 연관된 만큼, UK 드릴의 가사는 영국 거리의 폭력 문화와 슬랭 등으로 이루어진다. 미국의 드릴 뮤직이 시카고라면, UK 드릴은 주로 브릭스톤(Brixton)에 기반을 둔다. 하지만 이들이 떠오른 곳은 링크 업 TV(Link Up TV), 그라임 데일리(GRM Daily), SB TV, 팩맨 TV(PacMan TV) 등의 인터넷 매체였다.
드릴 래퍼들은 음악으로 서로를 디스하는 동시에 현실에서도 싸움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죽거나 다치는 이들도 실제로 존재했다. 이러한 과정이 쌓이고 쌓이면서, 런던의 흉기 사용 범죄율의 증가 원인으로 UK 드릴의 가사를 꼽는 매체가 등장했다. 더 타임스(The Times), 선데이 타임즈(The Sunday Times)와 같은 매체는 ‘Drill, the ‘demonic’ music linked to rise in youth murders’라는 제목으로 UK 드릴 뮤직을 공격했다. 더 선(The Sun)은 ‘Sound of Violence’, ‘the violent soundtrack at the heart of London’s gangland’라는 제목으로 UK 드릴을 다뤘다. 마치 8~90년대 레이브 문화를 다루듯이 말이다.
결국, 인터넷 대중 매체에서 드릴 뮤직은 검열당했다. 지난 5월 말, 유튜브는 약 30개가 넘는 UK 드릴 뮤직비디오를 삭제했다. UK 드릴 그룹, 1011은 아예 채널이 사라졌다. 여전히 UK 드릴 뮤직비디오는 영국 경찰에 의해 거의 실시간에 가깝게 검열당하는 중이다. UK 드릴 래퍼의 공연을 막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공적인 매체들이 UK 드릴을 막는 동안, 그 반대 세력 또한 당연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바이스(Vice)는 드릴 뮤직이 런던의 청소년이 서로를 죽이는 이유가 아니라는 기사를 냈다. 또한, UK 드릴 래퍼들의 이야기가 현실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이 두 진영이 다루는 중심 주제는 “과연 UK 드릴을 향한 검열이 범죄율을 낮추는 데에 도움이 되는가?”다. 이러한 양상은 약 몇 년 전 미국의 드릴 뮤직을 다루던 방식과 매우 흡사하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의 가장 큰 차이점은 미국의 드릴 뮤직이 메인스트림으로 올라간 것과 달리, UK 드릴은 다시 한 번 음지로 돌아간 점이다. 유튜브라는 가장 거대한 플랫폼을 잃은 UK 드릴 래퍼들은 검열에 맞서기 위해 폰허브로 들어갔다. 프린스 로드맨(Prince Roadman), 퀭페이스(Kwengface), 스컬리(Skully), 디가 디(Digga D) 등의 UK 드릴 래퍼들은 폰허브에 라이브 영상과 뮤직비디오 등을 올리며 자신들의 음악을 아카이빙하는 중이다. 팀 웨스트 우드 TV(Tim Westwood TV) 또한 이에 가세하여 폰허브에 “1011 CRIB SESSION”이라는 제목의 라이브 영상을 올렸다.
검열에 맞서 싸우는 방식은 다양하다. 그중 UK 드릴 래퍼들은 어떻게든 자신들의 음악을 아카이빙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 방식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에 주변의 우려도 물론 존재한다. 폰허브에서 ‘UK Drill’을 검색해도 나오는 동영상 대부분은 포르노이며, UK 드릴 뮤직비디오의 연관 동영상 또한 죄다 포르노뿐이다. 플랫폼과 콘텐츠의 양상이 맞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촌극인 것. 어쨌든 UK 드릴 뮤직은 자신들을 돌보지 않는 플랫폼에 저항하여 음지에서 계속 싸우는 중이다. 익숙한 일이다. 영국은 늘 검열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탄생시켰다. 야외 파티를 법으로 금지하니 클럽 문화가 태어났고, 그라임을 억압하자 해적 라디오가 태어났다. 이번에는 UK 드릴이다. 하지만 국가와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음지에서 태어난 음악이 또다시 국가에 검열당하여 음지인 폰허브로 돌아갔단 점은 어딘가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