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vorite Top 5 : Cho Kwang Hoon

조광훈은 세계적인 운동선수도 아니고 연예인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누군가에게는 손흥민이나 유재석보다도 더 큰 인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레전드라는 말이 여기저기에 널려있듯, 서울을 대표하는 스케이터라는 수식어 역시 왠지 진부하게 느껴지지만, 조광훈은 진정 그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는 몇 안 되는 스케이터일 것. 그러니 서울을 주제로 지지고 볶는 이번 5호에 가장 적합한 Favorite Top 5는 그가 즐겨 타는 스케이트보드 스팟이어야만 했다.

 

1. 수내 스팟(Sunae Spot)

수내역?

분당 수내역 공영주차장 위에 자리한 대리석 공원. 비교적 최근 들어 분당의 상징적인 스팟으로 주목받았으며, 그 역사 또한 오래되었다. 로컬 스케이터는 예전부터 존재했지만, 미국에서 온 스티븐(Steven Clemensen)이란 친구가 스팟을 갈고 다듬어서 지금의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계단과 렛지(Ledge), 매뉴얼 패드 등 없는 게 없으며, 그라인드나 슬라이드를 할 때 발바닥에 전해지는 거친 렛지의 느낌은 뉴욕의 플러싱 메도우(Flushing Meadow), 바르셀로나의 마크바(MACBA)만큼 최고다.

 

수내 스팟을 중심으로 제작한 비디오 중 가장 멋진 것이라면?

물론, 수내 로컬이 모여서 만든 “Mama Boyz”. 다음 시리즈가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기다려진다. 그리고 스티븐의 비디오 “아저씨”. 수내역의 바이브를 느끼는 데 이 두 비디오만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2. 능동로 분수 광장

스팟을 소개해달라.

일명 건대 분수 스팟으로, 검은색 마블 렛지가 기다랗게 커브로 이어져 있으며, 분수를 둘러싼 원형의 슬래피 커브(Slappy Curve)가 이곳의 매력 포인트다. 렛지의 틈새가 많이 벌어져서 펀박스만 타는 친구들에겐 조금 벅찰 수도 있지만, 그것 또한 분수 스팟의 매력. 왁스를 바르지 않고, 속도와 밸런스로 버티고 긁는 데 중독된 스케이터들은 이곳을 찾을 수밖에 없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라면?

이곳에서 스케이터가 누군가를 다치게 한 적도, 위협을 가한 적도 없으나 어느새 많은 이들의 미움을 샀는지, 작년 말부터 민원이 들어왔다. 언젠가부터 스케이트보딩을 금지하는 현수막이 걸렸는데, 조금 타다 보면 어김없이 경찰이 찾아와서 스케이터들을 내쫓았다. 덕분에 몇 달간 이곳은 죽은 스팟이 되었다. 그러나 공원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스케이터가 법을 어긴 적도, 남에게 해를 끼친 적도 없기에 우릴 막을 법적 근거가 없었다. 이제 현수막은 사라졌고, 뜨거운 태양 외에는 우리의 스케이팅을 방해할 요소가 없다.

 

3. 여의나루

스팟을 소개해달라.

몇 년 전 마포대교 위를 건너다가 공사 중인 여의나루를 보았다. 서서히 윤곽이 드러날 당시 이곳은 스케이트 플라자 또는 유럽 어딘가에서 봤던 유명 스케이트 스팟을 연상시켰다. 스케이트 파크에 있을 법한 여러 종류의 조형물은 스케이터에게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4월부터 10월 말까지는 내부에 물을 채워 시민들의 물놀이 공간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11월부터 3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한파와 싸우며 타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여의나루 스팟에서 주로 함께한 스케이터는?

김평우, 김준영, 안대근. 이 셋은 여의나루 개장만을 기다리는 것 같다. 물빛광장의 벽을 사랑하는 김평우는 언제나 힘차게 벽을 긁어대고, 김준영과 안대근은 광장 안에서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낸다. 이 둘은 항상 퍼즐을 맞추듯이 조형물을 조합하여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난 이들에게 영감을 받아 “Daily Grind Montage: 여의나루 편”을 만들었다.

 

4. 훈련원 공원

스케이터들에게 ‘컬트’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이곳을 소개해달라. 

컬트는 90년대 중반, 양동철 스케이터가 처음 발견했다고 들었다. 컬트의 상징인 내리막 렛지와 계단, 물 갭(Gap)은 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이후 스케이터들이 직접 여기저기서 가져온 기물이 더해졌다. 또한, 몇 번의 리뉴얼과 존폐위기를 겪은 후에야 스케이트파크로서 컬트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컬트가 지닌 상징성이라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스팟으로, 한국 스케이트보딩의 모든 역사가 스며든 곳이다. 컬트를 단순히 기술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는 누구에게나 정복하고 싶은 스팟이었고, 그 수많은 경쟁은 역사적인 장면을 만들었다. 스케이터들이 나서서 기물을 제작, 기증하며 컬트를 꾸몄다. 결정적으로 컬트가 한국 스케이트보딩의 중심이 된 계기는 몇 년 전 버스 주차장으로 바뀔 위기에 처했을 때라고 생각한다. 당시 단체 또는 개인으로, 모든 스케이터가 컬트를 지키기 위해 한마음이 되어 청원을 넣고 반대한 끝에 컬트를 지켜냈으며, 그 결과 공식적인 스케이트파크로 인정받았다. 스케이터 스스로 스팟을 지켜냈다는 사실은 누군가에게는 별 볼 일 없는 일일 수도 있지만, 국내 스케이터에게는 인생의 큰 의미를 찾아준 계기가 되었다.

 

컬트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

컬트를 처음 찾은 건 1999년 봄쯤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스케이트보드 성지에 처음 발을 디딘 기억이 뚜렷하다. 형형색색의 벨트를 늘어뜨린 펌프 마니아, 칼춤을 추며 대사를 외우던 오타쿠 무리, 화장실을 점거한 노숙자 사이로 BMX, 인라인, 스케이트보더들이 헤집고 다녔다.

한창 컬트에서 탈 때, 나는 아날로그 시대를 살았다. 소셜 네트워크나 유튜브 같은 건 생각치도 못한 PC 통신 시절이었다. 장비가 간편해진 지금 시대와는 달리 영상 촬영은 굉장히 번거롭고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힘든 만큼 그 영상을 남기는 일은 우리에게 굉장히 의미 있는 행위였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컬트는 모든 스케이터가 정복하고 싶은 곳이었고, 그 수많은 경쟁 속에서 역사적인 장면이 탄생했다. 암묵적인 기술 경쟁은 비밀리에 이뤄졌고, 그 기술은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며 훗날 비디오를 통해 공개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설레며 기다리던 시간에는 모든 것이 편리하고 빨라진 지금보다 순수한 즐거움이 있었다.

 

5. 뚝섬유원지

스팟을 소개해달라.

국내에서 가장 이용객이 많은 스케이트 파크. 열악한 국내 파크 중에서 그나마 제일 잘 꾸며놓았으며, 트랜지션과 스트리트 스케이팅을 연습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지녔다. 한강 최고의 유원지인 ‘뚝섬유원지’에 자리해 접근성 또한 매우 좋다.

 

뚝섬 파크라는 이름에서 떠오르는 스케이터와 그 이유는?

뚝섬의 파수꾼, 구현준. 뚝섬 파크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친구다. 그의 올드스쿨 기술은 대부분 뚝섬에서 탄생했으며, 그의 영상에서 보이는 갈색과 녹색 바닥은 모두 뚝섬 파크다.

 

X- GAME이라는 단어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지?

이제 그 단어는 좀 한물간 느낌이다. 나는 애초에 스케이트보드가 다른 종목과 한 틀로 묶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극한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스케이트보드를 스포츠로 생각한 적도 없다. 스케이트보딩은 예술과 스포츠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 경쟁 안에서 다양함을 포용하는 문화로 성장했다. 어쨌든 현재의 스케이트보드는 올림픽의 독자적인 종목으로 채택되었고, 단순히 익스트림 스포츠의 틀로 묶기엔 너무 거대해졌다. 거대 자본이 움직이는 스포츠 산업이 되었으며, 현재 한국의 스케이트 신(Scene) 또한 그 안에 들어가는 과정이다.

위에도 말했듯이 난 익스트림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엘리트 선수의 육성을 목적으로 한 스케이트보딩 또한 아직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고집과는 다르게 스케이트보드 문화는 변화 중이다. 그 미래가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는 미지수인 채로 흘러가고 있다. 국내를 대표하는 스케이트보드 매체이자, 신을 이끄는 주체로서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만을 추구하기보다는 굳건한 중심과 뿌리로 이 문화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광훈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
Daily Grind 공식 웹사이트


진행 / 글 │ 권혁인
사진 │ 배추

*해당 기사는 지난 7월에 발행한 VISLA Paper 5호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VISLA Paper는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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