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커버스커는 잠시 넣어두자. 굳이 “벚꽃 엔딩”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마음을 살랑이게 해 줄 노래는 많다.
1. Jamiroquai – Talullah
한 때는 자미로콰이(Jamiroquai)의 그루브가 전 세계에 흐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질렸다는 표현도 부족할 정도로 많이 들었고 또 많이 들려 왔던 “Virtual Insanity”를 비롯해 Jay Kay가 만들어낸 수많은 명곡은 시간이 흘러서 다시 귀에 꼽아도 촌스럽지 않다. 오늘 소개할 10곡 중에서 첫 번째 곡은 자미로콰이의 여섯 번째 앨범 [Dynamite]에 실렸던 ”Talullah”다.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자미로콰이의 황홀한 그루브 보다는 Jay Kay의 서정적인 면모를 즐길 수 있는 트랙이다. 도입부의 색소폰에서부터 퍼져나가는 감미로움을 온전히 받아들이자.
2. Steely Dan – Peg
사실 “Peg”이 수록된 스틸리 댄(Steely Dan)의 앨범 [Aja]는 모든 명반이 그렇듯, 한 곡을 꼽는다는 것이 별 의미 없는 앨범이다. Jazz, Rock, Funk을 절묘하게 버무려서 심혈을 기울인 세션과 함께 주조해낸 앨범 [Aja]는 기타 부연적인 설명 없이 앨범 통째로 듣기를 추천한다. “Peg”을 선정한 이유도 앨범의 트랙 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받을 곡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대중음악의 표본을 제시하라는 물음을 받는다면 별 고민 없이 이들의 이름을 대겠다.
3. 윤석철 트리오 – 음주권장경음악
겨울에는 소주를 찾았고 이제는 날이 더워지니 목이 따가울 정도로 시원한 맥주가 생각난다. 그리고 처음 윤석철 트리오의 “음주권장경음악”이라는 트랙 제목을 확인했을 때는 두 말 할 것 없이 와인 권장 음악이라 짐작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랐다. 그의 건반은 직설적이고 그래서 “음주권장경음악”은 소주와 닮았다. “소주 한 잔 할까?” 가 아니라 “소주 한 잔 하자!” 로 들린다. 다음날, 마신 만큼 머리가 아픈 소주는 한국에서 가장 정직한 술이 아니던가. 중반부에 등장해서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신시사이저는 소주 두 병이 넘어갔을 때. 일말의 여운 없이 끝나는 건 필름이 끊겼기 때문이다.
(최근 그는 Moodschula와 함께 [Noon] EP를 발매했다. 영리한 두 아티스트의 위트 있는 실험을 놓치지 말자.)
4. Bloodstone – Nite Time Fun
블러드스톤(Bloodstone)은 국내의 대중들에게 약간은 생소할 수도 있는 밴드다. 말 그대로 소울(Soul)이 충만했던 70년에 등장해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금에까지 이른 밴드인데, 그 당시에는 워낙 기라성 같은 아티스트와 명곡들이 많아 인지도에서 조금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Nite Time Fun”은 제목처럼 추위가 물러간 봄밤에 창문을 열고 드라이브를 하면서 시원하게 들을 수 있는 트랙이다. 쥐 훵(G-Funk)의 원류라고 볼 수 있다. 네잇 독(Nate Dogg)의 목소리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쉽게 그루브를 즐길 수 있을 듯.
5. Herbie Hancock – Chameleon
위대한 허비 행콕(Herbie Hancock)의 “Chameleon”이다. 카멜레온이 색을 바꾸듯이 신시사이저를 비롯한 각종 악기의 연주가 응집되고 사라진다. 허비 행콕의 솔로 연주는 새가 지저귀는 것만 같다. 자유롭지만 세밀하게 가공된 “Chameleon”은 만물이 샘솟는 봄의 기운을 만끽할 수 있는 트랙이다.
6. Curtis Mayfield – Tripping Out
1999년에 타계한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가 1980년에 발표한 앨범 [Something to Believe In]의 수록곡 “Tripping Out”이다. 반복적인 기타 리듬 사이로 커티스 메이필드의 목소리가 스며들어 청자의 감성을 찌른다. 사랑에 빠진 심경을 노래한 곡이다. 그래서 그런지 애틋하고 그윽하며 조금은 씁쓸하다. 밤에 들으면 더욱 멋진 곡이 되겠다.
7. Miles Davis – Swing Spring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의 사연 있는 앨범 [Miles Davis and the Modern Jazz Giants]의 수록곡 “Swing Spring”은 위대한 재즈 피아니스트 텔로니오스 몽크(Thelonious Monk)와 마일즈 데이비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연주했던 곡이기도 하다. 둘의 불협화음이 현실에서는 결별로 끝이 났지만 곡 안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경쾌한 비브라폰은 봄이 왔음을 알린다. 베이스를 중심으로 트럼펫을 부는 마일즈 데이비스와 텔로니오스 몽크의 피아노가 서로 솔로 연주를 주고받는 것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8. Exmag- True Love From the Future
굉장히 섹시하고 낭만적인 트랙이다. Future Funk, Electro Soul을 표방하는 Exmag의 음악은 국내로 치면 진보(Jinbo)의 음악과 지향점이 비슷하게도 느껴진다. 착 감기는 드럼과 부드러운 신시사이저 위로 소울풀한 기타와 보컬이 적절히 녹아들었다. 보컬부터 재료의 사용까지 모두 제 역할을 충분히 다 한 인상이다. 트랙의 제목까지 조화롭다. 이런 훌륭한 그루브는 사시사철 들어도 관계없지만 봄의 연인들을 위한 “True Love From The Future”라는 억지스러운 이유를 갖다 붙이겠다.
9. 말로- 벚꽃지다
우리는 수많은 한국적인 무엇을 접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대개 원래의 무엇보다 수준이 떨어진다. 사실 고유한 문화는 억지로 섞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화를 수용하고 내재화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 그러나 말로(Malo)의 세 번째 앨범 [벚꽃지다]는 굳이 ‘한국의 재즈’라고 대문짝만하게 내걸지 않더라도 그것이 바로 머릿속에 그려진다. “벚꽃지다”는 말로식 보사노바로, 세월의 덧없음을 벚꽃에 빗대어서 노래하고 있다. 그녀는 섬진강, 벚꽃, 어머니 등 한국적인 정서를 재즈로 노래했다. 도입부에서 전제덕이 연주한 하모니카는 쓸쓸한 감성으로의 몰입을 돕고 말로의 목소리는 사라져 가는 것들을 노래하기에 더없이 적절해 보인다.
10. 회기동 단편선 X VOVO – 동행
회기동 단편선의 “동행”이 새로운 옷을 입었다. 원곡이 어르신들이 고집하는 진로 소주, 혹은 포천 막걸리 같았다면 VOVO에 의한 “동행”은 향과 맛을 가미한 매화주나 청하다. 뭐라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회기동 단편선의 ‘포크’가 훵(Funk)이라는 틀에 옮겨지면서 원래의 개성은 사라진 듯 하지만 보다 다양한 이들의 입맛을 다시게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보보의 신시사이저는 회기동 단편선의 보컬을 어느 봄날의 꿈결처럼 편집했다. 버스커버스커나 이적보다 더욱 뇌리에 남는 회기동 단편선의 “같이 걸을 까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