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LA 매거진의 라디오 프로그램, ‘동향사람끼리’. 매달 진행되는 본 방송은 서울 커뮤니티 라디오(Seoul Community Radio)의 스튜디오를 찾은 VISLA의 에디터 두 명과 특별한 손님이 특정한 주제와 걸맞은 음악을 소개하는 두 시간의 여정이다. 사랑의 명절 발렌타인데이를 충실히 준비하기 위해, 애디터 홍석민과 황선웅은 파티 브랜드 게토레이(GHETTO-RAY)를 운영하며 크루 우주비행(WYBH) 소속 디제이로도 활동 중인 코커(Co.kr)를 초대했다. UK 개러지(UK garage)와 발리 훵크(Balie Funk)로 발렌타인 기운을 불어넣어 준 코커와 나눈 음악과 만담은 지난 방송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아래 본문은 홍석민과 황선웅이 각자의 발렌타인데이를 위해 준비한 셀렉션이다.
Bobby Brown “Rock wit’cha”
홍석민: 소중한 이와 함께 보내고 싶은 하루, 밸런타인데이. 이날만큼은 정신을 핑크빛으로 유지하고 싶다. 그럴 때 듣는 바비 브라운의 88년 앨범 [Don’t Be Cruel] 수록곡 “Rock wit’cha”는 부대찌개도 로맨틱하게 만드는 사랑의 보증수표다. 80년대 바비 브라운의 달콤함에 그 휘트니 휴스턴도 홀랑 반해 그와 결혼하기 이르렀으니 효능은 이미 검증되었다. 그저 밤새도록 흔들고 싶다는 그의 목소리에 취해 오늘은 평소와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The Love Unlimited Orchestra “Love’s Theme”
황선웅: 바다코끼리를 닮아 더 월러스 오브 러브(The Walrus of Love)라는 애칭으로 불린 배리 화이트(Barry White). 그냥 바다코끼리도 아닌 로맨틱한 ‘사랑의 바다코끼리’란다. 이를 중심으로 결성된 러브 언리미티드 오케스트라는 40인조 훵크 빅밴드 오케스트라다. 그리고 1973년 발표된 첫 번째 앨범 [Rhapsody in White]에서 사랑의 수치가 무한대로 발산한다. 특히 앨범의 대미를 장식한 트랙 “Love’s Theme”는 바이올린을 바탕으로 꽃이 만개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한다면, 아마 이 음악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 같다.
Simone “Naquela Noite com Yoko”
홍석민: 자고로 남미 언어로 노래하는 사랑은 이해를 넘어 아름답다. 브라질 MPB(브라질 대중음악, Música Popular Brasileira)의 스타, 시모네의 인기가 절정을 찍은 81년도 앨범 [Amar]의 수록곡인 “Naquela Noite com Yoko”의 내용은 오노 요코(Yoko Ono)와 함께하는 밤에 나눈 그녀의 슬픔이다. MPB에 내재한 로맨티시즘이 더욱 아름답게 승화한 80년대, 시모네는 그 주축이었다. 격정의 남미 감수성으로 밸런타인을 보내자.
山下達郞 (Tatsuro Yamashita) “Only with You”
황선웅: 아내인 타케우치 마리야(Mariya Takeuchi)를 위해 많은 세레나데를 제작한 야마시타 타츠로는 일본 음악계 사랑꾼으로 소문났다. 영화 “Big Wave”의 사운드 트랙으로 제작된 동명의 앨범 [Big Wave]. 여기 수록된 트랙 “Only with you”는 오직 당신밖에 없다는 서정적인 가사와 살랑거리는 기타로 사랑을 연출한다. 비록 그가 작사에 참여하지 않은 트랙이지만, 특유의 사랑꾼 기질이 어딜 가겠는가?
F.G.’s Romance “What Is Love Today?”
홍석민: 해시태그 30개보다 이모지 하나가 더 강렬한 때가 있듯, 대놓고 파국으로 달리는 발라드보다 넌지시 눈빛을 흘리는 블루 아이드 소울(Blue Eyed Soul)이 더 효과적일 수도. 벨기에 브뤼셀 기반의 눙크 레코드(Nunk Records)가 84년 발매한 블루 아이드 소울 명곡 “What Is Love Today?”에 관해 알려진 사실은 많지 않다. 느린 모던 훵크 리듬에 맞춰 알 것 다 아는 어른이 능글맞게 노래하는 요즘 날의 사랑이다.
Tyler, the Creater “Hot Chocolate”
황선웅: 세월이 흘러도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기는 정말 힘들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낯간지러운 건 질색이라 부모님께도 사랑한다는 표현을 못한다. 그래서 밸런타인데이 같은 기념일을 좋아한다. 초콜릿 같은 달콤한 선물로 그간의 고마움을 쉽게 표현할 수 있으니. 준비한 트랙 “Hot Chocolate”은 달콤한 초콜릿 그 자체다. 기념일을 빌미로 뭔가 팔아먹으려는 장사꾼의 상술에 넘어간 사람이라 생각될지도 모르겠지만, 달콤한 초콜릿은 가장 밸런타인데이에 어울리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순 없다. 그리고 “It’s Christmas time”이란 가사를 들어 알겠지만, 이는 크리스마스를 위해 탄생한 트랙이다. 디트로이트를 살다 온 혹자에 따르면, 밸런타인데이는 주머니 가득 선물을 챙길 수 있어 크리스마스와 함께 가장 기대되는 기념일 중 하나였다고. 따라서 밸런타인데이에도 적격인 음악이겠다.
Jeff Lorber “Back In Love”
홍석민: 스무스, 퓨전 재즈계 미다스의 손이라 불리는 제프 로버의 음반은 보이는 대로 집는 편이다. 가격 대비 매우 훌륭한 내용을 자랑하는 그의 음반에는 언제나 흥미로운 포인트가 있기 마련인데, 86년의 [Private Passion]도 마찬가지다. 90년대 소울 차트를 흔든 케린 화이트(Karyn White)와 타워 오브 파워 출신의 마이클 제프리스(Michael Jeffries)가 같이 보컬로 참여한 점이 바로 그것. 이들이 열창한 “Back In Love”는 바이브와 장혜진의 “그 남자 그 여자” 급의 조화를 자랑하는 매끄러운 프로덕션의 R&B 명곡이다.
정원영 밴드 “Thanks #6 (선물)”
황선웅: 2004년 정원영은 뇌종양 판정에 청력을 잃을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음악가로서는 사망 선고와도 같은 이야기. 다행스럽게도 독일에서 뇌종양을 치료하고 무사히 돌아왔다. 긍정과 감사의 일환으로 오래전부터 발표됐던 ‘Thanks Series’ 넘버가 그를 도왔을 것이다. 치료 후 곧바로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정원영 밴드를 꾸리고, 삶 그 자체가 소중한 선물이란 의미와 감사를 담아 첫 번째 EP [정원영 밴드 EP]를 발표한다. 그리고 여기 수록된 “Thanks #6 (선물)”을 내 밸런타인 뮤직으로 낙점했다. 여담으로 9년 전 MBC 음악 소개 프로그램 ‘문화 콘서트 난장’에서 이 음악의 라이브 무대를 우연히 본 적이 있다. 큰 여운이 남아, 그 후 무대 영상을 검색했지만, 그 어디에도 영상은 남아있지 않았다. 아쉬움이 남지만, 한편으론 이 멋진 음악을 소파에 누워 우연히 찾아낸 것 자체가 나에게 큰 감사였다.
Carole Bayer Sager “It’s The Falling In Love”
홍석민: 마이클 잭슨의 [Off The Wall]에 수록된 동명 곡의 원판인 본 곡은 싱어송라이터 캐롤 베이어 세이거의 78년 앨범 […Too]에 실린 수려한 AOR 명작이다. 세계적인 작곡가 데이비드 포스터(David Foster)가 공동작곡하고 밴드 시카고의 빌 챔플린(Bill Champlin) 그리고 한 장르의 정점을 찍은 스틸리 댄(Steely Dan)과 노래한 마이클 맥도날드(Michael McDonald)가 백업 보컬로 참여한 점이 흥미롭다. 여담으로, 마츠바라 미키(松原 みき)의 79년 히트곡 “真夜中のドア~Stay With Me”와 우연히도 닮은 부분이 많은데, 머지않아 일본 시티팝 수십 곡을 뽑아내게 되는 데이비드 포스터의 미래를 암시하는 복선 같아 닭살이 돋더라. 훗날 데이비드 포스터는 자신이 참여한 일본 시티팝은 모두 돈을 위해서 쓴 최악의 것들이라 일축하지만 뭐 듣는 사람이 좋으면 그만 아니겠는가. 하나하나 신경 쓰다간 밸런타인데이가 전부 지나가고 만다. 어서 회심의 플레이리스트를 들고 실전에 임하자.
Art of Noise “Moments in Love”
황선웅: 상단에 소개된 9개의 음악이 로맨틱한 멜로디와 이를 받쳐주는 가사로 사랑을 표현했다는데, 사실 사랑이 어떤 감정인지 복잡하기만 해서 감히 사랑이 뭐라 쉽게 정의 내리기 어렵다. 따라서 나에게 사랑이란,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 이 느낌은 “Moments in Love”가 잘 나타냈다. 1983년 처음 세상 밖으로 나온 트랙 “Moments in Love”는 구체 음악 그룹 아트 오브 노이즈를 대표하는 러브 발라드 트랙으로 사랑의 순간을 담아냈다. 그리고 이 오묘한 음악에 대한 해석의 여지는 분명 존재했다. 1985년 가수 마돈나(Madonna)와 영화배우 숀 펜(Sean Penn)의 웨딩 마치로도 사용했으니. 그리고 이 커플은 1989년 이혼했다.
진행 / 글 │ 홍석민, 황선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