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의 임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지금보다 더 나은 세계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지난 달 세상을 떠난 이탈리아의 위대한 그래픽 디자이너, 마시모 비녤리(Massimo Vignelli)의 말이다. 우리는 눈을 뜨는 그 순간부터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디자인을 접한다. 흔하게는 아침마다 받아 보는 신문이나 슈퍼마켓에 진열된 오만가지 상품들의 포장 디자인에서부터 다양한 기업의 광고, 회사의 아이덴티티를 규정하는 로고 디자인까지, 그래픽 디자인은 정보의 전달을 훨씬 더 용이하게 만들었다. 또한 정보의 시각적 전달이라는 본래의 목적뿐만 아니라 하나의 예술로서, 산업과 자본의 결합물로서 그래픽 디자인은 그 영역이 크게 확장되었다.
그래픽 디자인은 결국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이 가지고 있는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형태(이미지)로 구체화하기 위한 하나의 ‘소통’ 방법이다. VISLA는 이처럼 다양한 비주얼 요소를 배열하여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묻다’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올해 JMG 디자인 스튜디오를 오픈한 진무(Jinmoo),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남무(Nammoo), 그리고 그래픽 디자이너 겸 일러스트레이터, 아트모스피어(Atmosphere)가 이번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묻다’의 주인공이다. 그들이 말하는 그래픽 디자인, 클라이언트, 그래픽 디자이너로서의 삶은 어떤 것인지 한 번 들여다보자.
1.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남무(이하 남) : 그래픽 디자인을 하는 남무(Nammoo)다. 작은 개인 작업실을 하나 차려서 일을 하고 있다. 주로 로고 디자인이나 북 디자인, 포스터 디자인을 한다. 주변에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디제이나 가수들의 작업 역시 많이 하고 있다. 더 이상 소개할 부분은 없을 것 같다. 하하.
아트모스피어(이하 아) : 서울 홍대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현직 그래픽 디자이너/일러스트레이터다. 아트모스피어(Atmosphere)라는 이름을 쓰고 있으며, 주로 공연 포스터나 북 커버, 의류 그래픽 디자인까지 전방위적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진무(이하 진무) : 2014년 현재 JMG라는 작은 디자인 스튜디오를 설립해서 운영하고 있다. 새로 창립하는 회사의 브랜딩을 진행한다거나, 주위 친구들을 위한 그래픽 디자인, 덩치 큰 브랜드의 이벤트 진행, 기타 로고 디자인 등 그래픽 디자인이 요구되는 크고 작은 일들을 맡아서 한다. 또한 360Sounds의 창립 멤버로 디제잉도 계속 하고 있다. 요즘에는 음악을 트는 일이 많이 적어지긴 했지만. 하하.
2. 주로 어떤 작업을 하는지?
남 : 나는 그림을 그리지는 않는다. 대개는 폰트나 여러 요소를 가지고 컴퓨터로 레이아웃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사실 학교에서 배운 건 별로 없었다. 졸업할 즈음에는 대부분 일러스트레이션 기반의 작업을 했는데, 처음 입사한 곳이 북 디자인 계통의 회사여서 북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많이 배웠다. 그 때부터 작업 성향이 많이 바뀐 것 같다.
아 : 공연 포스터나 음악에 관련된 아트워크, 의류 머천다이즈까지 다양하다. 최근에는 군산의 애드밸류어(Addvaluer)라는 친구들과 스트릿 브랜드 VINIPH의 콜라보레이션 티셔츠 작업을 진행했다.
진 : 하나를 콕 집어서 설명하기에는 디자인의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전체적으로 비주얼에 관련된 일이 많다. 브랜딩이나 로고 개발, 아트 디렉션 등 그래픽 작업뿐만 아니라 기획에 관련된 일도 늘어나고 있다. 결론은 5D! (Design, Direction, Development, Discussion, Dirt)
3. 그래픽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남: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고, 그중에서도 로고나 어떤 문양과 같은 것들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고교시절, 축구 팀 엠블럼이나 친구들 이름으로 로고를 만들어주기도 했고, 결정적으로는 스케이트보드 데크 그래픽을 꼭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시각디자인과에 진학한 것 같다.
아 : 어렸을 때부터 여기저기 낙서를 많이 했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서 제대로 그림을 배운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 일을 안 하면 내가 죽을 것 같아서 제대를 한 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원래는 화학을 전공했고 26살 때 진로를 바꿨다. 음악을 굉장히 좋아해서 앨범 커버 디자인을 하고 싶었는데, 그것이 그래픽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 같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디자이너가 되었다. 남들보다 늦은 만큼 더 열심히 했다.
진 :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본능에 가깝다. 똑같은 기능을 가진 제품을 쓰더라도 더 예쁜 것을 쓰고 싶지 않나. 자연스럽게 하게 된 것 같다.
4. 본인의 그래픽 디자인을 평가한다면? 장단점을 말해 달라.
남 : 강점이라고 말하긴 부끄럽고 최소한의 작업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것이 내가 지향하는 바이다. 잘 되진 않지만. 하하. 편집 디자인에 대한 공부, 센스, 이해가 아직도 많이 부족한 것 같아서 계속 공부할 생각이다.
아 : 내 그래픽의 장점을 내 입으로 설명하긴 좀 부담스럽다. 특징이 있다면 작업할 때 콜라주를 즐겨 쓴다는 점이다. 일반 사진을 쓰지 않고 요소요소 직접 소스별로 만들어 놓은 다음, 그것들을 다시 배치해서 작업을 완성한다. 모든 소스를 벌려놓고 다시 한 데 모아서 형태를 만들어 나가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밑그림을 대충 그리고 레이아웃을 짜서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러다보니 내 생각에 갇혀버리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콜라주 방식으로 작업 스타일을 바꿨는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재밌는 형태나 레이아웃이 나오더라. 그래서 요즘엔 그렇게 많이 하고 있다. 내가 먼저 틀을 짜놓으면 작품이 그 안에 갇혀버린다. 물론 시간이 덜 걸리고 간편한 방식이라서 상업성을 띤 작업을 할 때는 이 방식이 수월하다. 반면에 내 작업의 단점은 대중적인 요소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워낙에 서브 컬처를 좋아하다보니 모든 연령대를 아우를 수 있는 그래픽을 만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아직도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 내 개인 작업은 디자인이라 부르기에도 좀 쑥스럽다. 습작, 내지는 취향이 담긴 일러스트일 뿐이다.
진 : 글쎄. 스스로 그런 얘기를 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게 많다. VISLA의 독자들이 평가를 해주신다면 달게 받겠다. 하하. 굳이 꼽자면 360Sounds라는 DJ 크루의 색깔을 디자인의 요소들로 풀어냈다는 것? 물론 그 당시의 디자인이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포스터, 로고, 의류 등 우리 크루 안에서 모든 디자인을 만들어냈다는 점을 주위에서 좋게 봐준 것 같다.
5.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국내 대학의 교육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남 : 교육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학교 때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절실히 느끼는 것 같다. 그러나 작업을 하고자 하는 개인의 욕구가 최우선이다. 자기 스스로 디자인을 만들고 꾸준하게 작업 스케줄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 : 나는 뒤늦게나마 4년제 대학에 들어갔지만 솔직히 말해서 필요 없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수업이 내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특히 학교 교수님의 수업은 정말 고등학교 수업 같았다. 과제를 내주고 제출하고 스타일을 규격화하는 작업이 반복됐다. 결국, 자기 것을 하고 싶은 친구들은 학교 커리큘럼과 상관없이 자신의 커리큘럼을 만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렇게 하던 녀석들이 개인 스튜디오를 하거나 자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더라. 대학생이 됐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스스로 찾아서 능동적으로 해야지, 학점에 매달린다고 자신의 실력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일반 대학은 일단 기본적으로 수능 성적이 좋고 정형화된 입시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 위주로 선별하지 않나. 그러다보니 막상 모아놓으면 성실하긴 한데 이도저도 아닌 친구들이 많다. 학벌이 좋은 친구들이어도 별 다를 건 없다. 내 주변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오히려 비전공자가 훨씬 많다. 나도 4년제 대학을 나왔지만 순전히 그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학교의 커리큘럼만 믿고 따라가는 건 정말 위험한 생각이다.
진 : 나는 우리나라에서 디자인 교육을 받진 않았기 때문에 국내 교육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할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학생들의 감각을 끄집어 낼 수 있는 교육이 좋은 교육이 아닐까 싶다.
6.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디자인이란?
남 : 클라이언트와 작업을 할 때,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서 보내면 꼭 거절당하고 결국에는 내가 싫어하는 디자인이 채택된다. 그래서 이제는 나도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하하.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디자인이 가장 좋은 디자인이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어쨌든 최대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디자인, 심플함을 바탕으로 최대한 많은 기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아 : 오베이(Obey)의 셰퍼드 페어리(Sheperd Fairly)다. 정치적으로 좌파의 성향을 띤 디자인도 멋있지만 문화에 스며들어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어낸 것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서브컬처 씬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일이다.
진 : 디터 람스(Dieter Rams) 선생님이 디자인 10계명을 통해 이미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번 달에 운명한 마시모 비녤리(Massimo Vignelli)의 말에 답이 있을 듯…. RIP.
7. 디자인은 예술과 구분된다고 하지만 제품 판매에 혈안이 된 디자이너들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남 : 디자이너들에게 되게 중요하고 필요한 부분이다. 사실 그림만 파는 것이 더 멋진 일이긴 하지만 꼭 그렇지 않다고 해서 나쁠 건 없다. 그게 디자이너가 할 일 아닌가. 개인적으로는 스케이트보드 데크 그래픽을 만들고 싶다.
아 : 글쎄. 나는 디자인이 예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디자이너에게는 클라이언트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맞춰줄 줄 알아야 한다. 자기 멋대로 하는 사람은 디자이너가 아니라 아티스트다.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실험적인 작품만을 추구하는 것은 위험하다. 정말 좋은 작품이라면 잘 팔리겠지만 쉽지 않다. 그럴 바엔 진짜 예술을 해야지. 자기 생각대로 만들어 놓고 왜 안 팔릴까 하는 의문을 가지는 것은 어리석다. 내가 만든 이미지들이 결국 대중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침투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게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대중들과 같이 숨 쉴 수 있어야 디자인이지, 액자에 자신의 그림을 걸고 전시를 해야 우월한 디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대중들과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졌을 때, 그들이 “이게 대체 뭐지?”라며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 했다면 그건 디자인이 아니다. 디자인은 주체가 명확하게 있어야 한다.
진 : 예술성이냐 상업성이냐에 대한 질문인가. 자신의 노선을 명확히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8. 디자인의 트렌드를 따라가는 편인가.
남 : 나는 트렌드를 따라갈 생각이 전혀 없다. 오히려 옛날 디자인을 많이 찾아보는 편이다. 모든 새로운 디자인은 과거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음악도 예전의 것들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 더욱 멋진 곡이 나오지 않나? 그래서 역사를 공부하고 지식을 쌓는 것이다.
아 : 아무래도 의류 디자인도 병행하다보니 트렌드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시즌에 유행할 제품도 체크해야 한다. 나 같은 경우는 한 가지 스타일에 금방 질려서 딱히 트렌드에 얽매이지는 않는 편이다. 원래는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안 하고 실사 콜라주 작업만 하다가 다시 벡터 그래픽 작업을 했고, 일러스트 작업이 다시 지겨워져서 요즘에는 작품에 타투를 섞고 있다. 나는 굳이 내 스타일대로 밀지는 않는다. 대신 손에 익은 것이 있기 때문에 다른 방식의 작업을 해도 어느 정도는 내 색깔이 묻어나는 것 같다. 나는 나름 다른 스타일로 했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알아보더라. 내 손에서 나온 거니 그러려니 하지만 다양한 시도는 계속 할 생각이다.
진 : 일을 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는 트렌드를 알 필요가 있다. 트렌드를 좇는다기보다는 흐름을 반영한다는 말이 적절하겠다. 내가 70년대 스타일을 좋아한다고 해서 모든 작업을 70년대 스타일로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느 시대에나 유행은 존재했다. 애플이 헬베티카로 폰트를 쓰고 나서부터 세계적으로 다시 헬베티카 흐름이 왔다. 예전에는 싸이키델릭 풍의 그래픽 포스터도 많았고 히피 음악도 많았고 모두 그 시대의 흐름이 있었다. 예전 힙합 앨범의 커버와 현재의 것도 많이 다르지 않나? 칸예 웨스트(Kanye West)나 제이 지(Jay Z)의 최근 앨범 커버들을 유심히 살펴봐라.
9. 과거의 디자인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디자이너들에게서 더욱 멋진 작업물이 나온다고 생각하나?
남 : 물론이다. 글자는 왜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쓰는 것인지, 황금 비율이라는 것이 왜 존재하는지 등 역사를 통해 인간은 보다 과학적이고 실용적이고 아름다운 디자인을 연구해왔다. 이 보물과도 같은 자료들을 놓치고 간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아 : 만약에 오베이를 좋아해서 비슷한 느낌의 작업을 한다고 치자. 아무 맥락 없이 오베이의 디자인만을 레퍼런스 삼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겉 핥기 작업이 아닌가. 그 디자인의 내부에는 오베이가 추구하는 프로파간다(Propaganda)가 자리하는데, 그런 부분까지 찾아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에는 작업을 할 때, 책을 보면서 내가 하는 그래픽 심볼의 기원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상징하는지 알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것만 붙잡고 있는 것도 웃긴 일이지만 마냥 손 놓고 있을 부분은 아니다.
진 : 당연하다. 디자인은 시스템을 표현하는 것이다. 과거를 보면 미래가 보인다는 말도 있지 않나. 디자인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는 경우도 있지만 본질은 결국 같다.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연구하는 것을 바탕으로 디자인이 구현되는 것이다. 시행착오를 거치고 다시 자료를 모으고 수정하는 과정을 통해 지금의 디자인이 존재할 수 있었다.
10. “Simple is Best”라는 문구에 얼마나 공감하는지.
남 :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다만 아이덴티티가 살아있어야 한다. 애플(Apple)사의 로고도 굉장히 단순하지만 그 영향력은 엄청나지 않은가. 물론 그것이 단순히 로고의 힘만은 아니겠지만.
아 : 절대적인 공식은 아닌 것 같다. 심플한 게 좋을 때도 있다.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일 때 그렇다. 그럴 경우에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뭘 이야기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다양성을 놓고 봤을 때는 심플함이 꼭 좋은 것이라고만 얘기할 수는 없다. 나는 장식적인 클리셰가 많이 들어간 그래픽들도 좋아해서 내가 만든 디자인을 보는 사람들의 감정에 맡기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Simple is Best”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절대적인 진리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문구는 사람들을 규격화한다. 모든 사람들이 유니클로 옷을 입고 다닐 수는 없지 않나.
진 : 디자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삶의 방법에서 ‘Simple’이라는 단어가 많이 보편화됐다. 디자인이 쉬워야 한다는 것에는 언제든지 동의한다. 하지만 어렵다.
11. 한글 폰트 디자인에 대한 생각은?
남 : 개인적으로 취약한 부분이라 공부를 하고 있다. 원래는 한글로 작업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디자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외국에서 들어온 것이라 그런지 한글에 대입시키기 까다로운 부분이 있다. 한글은 원래 붓으로 쓰던 글자가 아닌가. 그래도 요즘에는 한글을 연구하는 디자이너들이 많아져서 자극받을 때가 있다.
아 : 요즘 한글 폰트를 연구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김기조씨를 비롯해서 많은 디자이너들이 그렇다. 다만 나는 폰트를 다루는 작업에는 흥미가 생기질 않는다. 성격이 꼼꼼하지 않으면 못하는 작업이다. 글자간의 시각보정, 자간, 행간까지 일일이 신경을 써야 하는데,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난 글자를 다루는 정서가 약하다. 하하.
진 : 새로운 한글 폰트를 디자인하지는 않지만, 한글의 형태를 이용하여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은 항상 즐거운 작업이다.
12. 로고(Logo) 디자인을 할 때 포인트는 무엇인가.
남: 나는 로고를 최대한 심플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심플하면서도 로고 소유주의 아이덴티티가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는.
아 : 로고 디자인의 포인트는 트렌드다. 보통 트렌디한 성향을 가진 친구들이 로고 디자인을 많이 의뢰하더라. 그러나 로고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하는 건 아니고 대부분은 친분에 의해 그냥 해주는 편이다. 그냥 부담 없이 개인적인 재미를 위해서 재능기부라 생각하고 한다.
진 : 나는 헬베티카(Helvetica)나 유니버스(Universe) 폰트를 자주 쓰는 편이다. 기하학적인 요소들도 좋아한다. 세모, 네모, 원, 그리고 점, 선, 면과 같은 기본적인 요소들을 즐겨 쓰는 것 같다. 형태에 대한 근거를 찾고 발전시키려고 노력한다.
13. 오마주, 패러디 디자인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다. 패러디의 허용이 가능한 한계선은 어디까지인가.
남 : 형태를 똑같이 가져다 쓰면 베끼는 거다. 윤곽을 그대로 따거나 색을 그대로 쓴다거나. 일단 이런 작업을 대놓고 포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불편하다. 어느 정도 영감을 받고 작업하는 거면 몰라도 패러디라는 타이틀로 포장해서 베끼는 거나 다름없는 작업물을 내놓는 행위는 절대 좋게 봐줄 수 없다. 스스로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없다. 작업하기에는 편할 수 있지만 패러디나 오마주 작업이 자신의 주된 일이 된다면 결국 자기 발전은 없을 것이다. 또한 패러디 작업에 있어서 위트나 센스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베끼는 것에 불과하다. 위트 없는 패러디는 죽은 패러디다.
아 : 자기만의 해석이 분명하게 살아있으면 오마주라고 할 수 있겠지만 원본이 해석되지 않거나 메시지가 없고 아무런 맥락 없이 만드는 것들은 그저 팬픽이라고 생각한다.
진 :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보면 많은 오마주를 느낄 수 있지 않나. 분명 하나의 재미있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비슷한 작업을 많이 해봤지만, 패러디 디자인이 나의 메인 작업 스타일이 되는 건 경계하고 있다. 여러 가지 방법 중에 하나일 뿐. 패러디만 고집한다면 분명 창작의 한계점에 일찍 도달하지 않을까?
14. 요즘 시대에는 자신을 홍보할 수 있는 수단이 굉장히 다양해진 것 같다.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를 알리고 있나.
남 : 작업 그 자체다. SNS나 전시회와 같은 수단도 있지만 사실, 정말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서 내가 굳이 안 알려도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 SNS로 작업물을 깨작깨작 올려봐야 얼마나 홍보가 되겠나. 작업물의 높은 퀄리티가 제일 중요하다.
아 : 퇴사할 때, 미리 준비를 다 마치고 나왔어야 하는데 성격상 그러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특별히 인맥도 없고 딱히 포트폴리오도 없어서 나를 알린다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잡지사에 이력서를 보내서 컨택을 시도한 적도 있다. 상업적인 일뿐만 아니라 아티스트를 뽑는 공모전에도 참여했다. 이처럼 자신의 작업을 홍보할 수 있는 베이스가 터무니없이 낮은 일러스트레이터나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있어서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SNS인 것 같다. 내가 볼트 에이지(Volt Age)에 발을 들이게 된 것도 이디오테입(Idiotape)의 공연을 보고 만든 작업을 SNS에 올렸기 때문이다. 작업을 많이 하고 SNS를 통해 꾸준히 알리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좋은 기회가 올 것이다.
진 : VISLA Magazine? 하하. 요즘 SNS를 많이 하지 않나. 나 역시 개인 웹 사이트나 SNS를 조금씩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SNS가 나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는 채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주변 사람들의 소개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 알려진 것 같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15. 그래픽 디자이너가 무료로 작업을 해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남 : 나 역시 공짜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가까운 사람끼리는 품앗이 개념으로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이번에 도와줬으니 나도 나중에 부탁할 일이 생기면 꼭 도우라고 말한다. 하하. 최근에 전시를 했을 때도 내 그림이 많이 팔려서 기쁜 것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서로의 일을 돕고 완성해나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아 : 재능기부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것을 나쁘게 써먹는 기업들이 있다. 기업의 권위를 등에 업고 선심이라도 쓰는 양 남의 작업물을 가져가려는 태도가 싫다. 친한 사람이 부탁하면 해준다. 그들이 내 작업에 고마워할 때 기분이 참 좋다. 하지만 내가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내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로 아무런 감흥 없이 맡기는 경우는 친해도 싫다.
진 :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것 같다. 금액이 오고가건 물물교환이 됐건 재능 교환이 됐건 간에 어쨌든 무언가가 오간다. 처음에는 얘기 안하지만 나중에는 다 오가게 되어 있다.
16. 요새는 디자이너들의 전시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디자이너들이 활발하게 전시를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남 : 전시회를 여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다만 전시회가 과대포장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하다. 요즘에는 순수한 아티스트가 아니더라도 많은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전시회를 연다. 전시를 하기에는 더욱 좋은 상황이 됐지만 정말 볼 것이 많은 전시회는 줄어들었다. 그래픽 디자이너라고 입에 담기에도 힘든 친구들이 개인전을 하더라. 예술에 대해서 비판적이고 싶지는 않은데 점점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아 : 작년에도 쿤스트할레와 같은 곳에서 몇 번 전시회를 했다. 디제이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건 파티가 최고의 무대라 한다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개인전을 하는 게 그와 같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전시회를 여는 지금의 상황이 보기에 좋진 않다. 장재인과 버스커버스커가 길에서 버스킹하는 걸 보고 사람들이 너도나도 나와서 버스킹하는 것과 비슷하다. 더 진지하게 자신의 작업을 대하고 전시회를 여는 일에도 더 신중해야 한다. 그래픽 디자이너가 될 것인지, 일러스트레이터가 될 것인지, 스타가 될 것인지, 작가가 될 것인지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진 : 전시회가 많아지는 것은 분명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이 다 하니까, 혹은 주변 사람들을 불러서 한 번 논다는 식의 전시회는 지양해야 한다. 전시회를 연다는 것은 자신의 작업을 비평이란 도마 위에 올려놓을 준비가 됐다는 뜻이다. 전시회를 통해 디자이너들의 작업이 합당한 평가와 많은 피드백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전시회가 돼도 좋고, 온라인으로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공개하는 방법이어도 좋다. 또한 작품을 대하는 사람들이 더욱 적극적이고 비판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 작업자들도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Discussion!
17. 즐겨보는 잡지를 말해 달라.
남 : 해외잡지를 많이 보는 편이다. 국내잡지 중에는 그래픽(Graphic)을 즐겨본다. 잡지도 잡지지만 요새는 인터넷에 워낙 정보가 많아서 책에 손이 잘 안 간다. 하하.
아 : 나는 CA를 좋아하고 또 자주 본다. 대학 시절부터 봐왔다. 그래픽디자이너가 접할 수 있는 잡지 중에는 CA가 제일 괜찮은 것 같다. 다만 영국에서 넘어온 잡지라 일부 해외에 맞춰진 컨텐츠가 국내 실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우리나라 디자인 베이스는 상태가 너무 안 좋은데 말이다. 하하.
진 : 그래픽이나 컴퓨터아트? 또 각종 패션, 컬쳐 잡지들. 모두 다 좋은 잡지들이다.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 꾸준히 찾아본다.
18. 프리랜서로 독립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남 : 게을러서다. 하하. 약 7년 정도 회사생활을 하면서 개인 작업에 대한 욕심도 생겼고, 보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내 색깔이 드러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아 : 나도 내가 프리랜서가 될 줄은 몰랐다. 패션 그래픽보단 다양한 그래픽 디자인을 접하고 싶어서 무작정 나온 건데, 한동안 표류하게 되었다. 그런데 다시 회사 시스템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아서 남는 시간동안 아무 생각 없이 계속 작업을 했고, 어느 정도 자연스레 반응이 와서 프리랜서가 됐다.
진 : 파트너들과의 불협화음? 서로의 의견을 조율해야하는 부분에서 무조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없지 않나. 각자 바라보는 목표가 다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19. 프리랜서의 매력이란?
남 :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내가 주체가 되어서 일을 할 수 있어서 좋다. 다이렉트로 클라이언트와 소통할 수 있어서 좋은 점도 있다.
아 : 퇴근 시간이 자유롭다는 점. 디자이너나 일러스트레이터나 영감을 많이 받아야 잘 풀릴 수 있는 직업이라서 시간 활용에 제약이 없다는 것은 큰 메리트로 작용한다. 단점이라면 일이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불안하다는 것이다. 과연 내가 이 생활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불안이 내재돼 있다. 모든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자기 작업이 지금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지라도 그 이미지가 모두 소모되고 나서 그 이후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것이다. 그래서 나도 더 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작업을 하려고 노력한다. 롤링스톤즈나 비틀즈와 같은 뮤지션들의 음악은 어느 세대가 들어도 공감할 수 있는 명곡이지만 한 곡을 히트시키고 사라지는 밴드 역시 무수히 많지 않나. 나의 작업이 클래식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그게 아니라면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런 고민들을 많이 하고 있다.
진 : 내가 계획한 방향으로 일을 주도할 수 있다. 책임도 물론 나의 몫이다.
20. 하루의 일과가 어떻게 되나? 출퇴근의 개념을 더욱 철저하게 관리해야 할 것 같은데.
남 : 일을 하기 전에 꼭 샤워를 하고 옷을 챙겨 입는다. 그러고 나서 컴퓨터 앞에 앉는다. 지금 살고 있는 오피스텔이 집이자 작업실이기 때문에, 구분을 해야 한다. 늦은 아침부터 밤까지 일을 한다.
아 : 홍대 작업실로 출근한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인천에 있어서 출퇴근은 명백하게 구분된다. 밤 11시가 되면 꼭 퇴근하고 다시 아침 10~11시쯤 홍대의 작업실로 출근한다. 웬만하면 낮에 일하려고 한다. 예전에는 건대 자취방에서 작업을 했는데, 돈을 벌고 있으면서도 내가 백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하.
진 : 아침 10시~11시쯤 스튜디오로 출근한다. 일이 끝나는 시간은 대중없다.
21. 클라이언트와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든 점은?
남 : 결제가 미뤄질 때? 하하. 계약서를 쓰지 않고 일을 진행하면 굉장히 피곤한 경우가 생긴다. 작업도 늦어지고 클라이언트 측에서 끊임없이 수정을 요구할 때가 있다. 얼마 전에 계약서 없이 일을 진행했다가 로고를 50개까지 만든 적이 있다. 그래서 시안의 개수를 잡고 초과 시엔 추가로 페이를 받는다든지, 세부 사항을 정하고 계약서를 작성한 뒤 작업에 들어가는 게 좋다.
아 : 일단은 내가 대중들에게 유명하지 않기 때문에 큰 기업에서 나를 많이 낮춰보는 경향이 있다. 자존심이 상할 때도 있고 간혹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뭐 페이를 많이 준다면야…. 하하. 사실 계약서에서부터 갑, 을이 확실하게 명시되어 있어서 아무래도 우리 입장에서는 기업에 많이 맞춰야 한다. 아무래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컨텐츠가 아니라는 인식이 있다 보니 일러스트레이터나 그래픽 디자이너를 존중하는 문화는 약한 것 같다.
진 : 클라이언트와의 일은 항상 긴장된다. 또 그 과정을 통해 목표로 다가가는 것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비슷하다. 힘든 부분은 모두가 공감하겠지만 수정 작업.
22. 클라이언트가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시안은 디자이너 본인이 가장 올리기 싫은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남 : 사실 내가 한 디자인 중에는 포트폴리오에 올리기 싫은 것들도 꽤 있다. 보통 철저한 갑 마인드로 무장한 클라이언트와 일을 진행할 경우가 그렇다. 그들의 요구사항을 계속 맞춰주다 보면 결국 죽도 밥도 아닌 디자인이 나온다. 물론 안목도 높고 젠틀한 클라이언트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대다수다. 그래서 페이가 없어도 주변 사람들과 일을 할 때는 훨씬 즐겁다. 내 디자인의 의도를 파악하고 존중해주니 소통도 원활해진다.
아 : 갑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절대적인 갑 마인드로 일을 시키는 입장에 설 것이냐, 아니면 진정으로 콜라보레이션을 원하느냐의 차이다.
진 : 첫 번째로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충분히 클라이언트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가 소통해야한다. Discussion! 그리고 디자인은 추한 것과의 싸움이라는 사실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Fight against the ugliness” – Massimo Vignell)
23. 클라이언트의 안목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남 : 잘 모르겠다. 그런 클라이언트를 많이 만나는 것도 복이다.
아 : 인지도가 생기고 경력이 쌓이다 보면 클라이언트들이 디자이너의 스타일을 존중해주는 날이 올 것이다. 일단 경력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디자인을 업으로 삼을 것이라면 처음부터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작년에 나이키(Nike)와 좋은 조건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처음 나의 의도와는 많이 달라져서 결국 굉장히 심플한 디자인이 나왔다. 처음엔 이게 맞나 싶었는데 나중에 좀 멀리 생각해보니 확실히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거친 이미지가 더 좋았다. 대중은 사실 디자이너의 연구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디자이너의 실험이 대중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으므로 그들의 취향을 맞춰주고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이 언제나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이키와 진행했던 일의 경우도 대중들에게는 최종 시안이 더 깔끔하고 좋은 디자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진 : 안목의 높고 낮음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 아니면 그게 정말 중요한 문제일까?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24. 일과 휴식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고 있나.
남 : 여행을 가고 싶은데 현재는 여건이 안 되기 때문에 작업실에서 식물을 키우고 있다. 프리랜서가 작정하고 여행을 떠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고정적인 수입이 없기 때문에 일이 들어오면 그것을 마다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식물을 키우고 바라보면서 여유를 가지려 한다.
아 : 예전에 건대에서 일할 때는 밤낮이 없었다. 한창 힘들었을 때 일자리를 찾으려고 돌아다니다가 여름에 한번 쓰러졌다. 그때 신경을 다쳐서 한동안 정상정인 생활을 못했다. 지금은 물론 많이 좋아졌지만 이제는 건강을 생각해서 절대 야근을 하지 않는다. 작업은 오히려 새벽에 잘 되지만 병치레를 하고 나서 휴식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디자이너들이 은근히 병이 많다. 밤샘 작업도 많고 페이가 딱히 센 것도 아니고…. 게다가 프리랜서가 혼자 영업 일까지 뛰다 보면 몸이 남아나질 않는다.
진 : 에이, 그냥 일하는 거지! 24시간이 부족하다. 하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새로운 이벤트를 기획한다. 에너지를 얻기 위해 DJ도 꾸준히 하고 있다. 사무실에서는 섬 시리어스(Som Serious)의 팟 캐스트를 듣는다. 그리고 가족, 친구들과의 여행! 이 모든 것을 즐기면서 살고 싶다.
25. 에이전시에 대한 생각은?
남 : 필수는 아니지만 있으면 좋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중간 과정(에이전시)을 한 번 거치기 때문에 클라이언트의 의중을 파악하는 것이 힘들 수도 있다.
아 : 필수까진 아니어도 있으면 좋다. 다만 클라이언트와 연결해주는 에이전시보다는 전시를 잡아주는 에이전시가 훨씬 낫다. 전시 에이전시는 몇몇 그룹을 짜서 전시회에 필요한 작업 요청을 하고, 행사를 잡아준다. 에이전시는 개인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규모의 행사를 기획할 수 있기 때문에 아티스트나 디자이너의 입장에서는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든든한 친구가 생기는 것이다. 또한 에이전시의 사람들에게서 전시회 기획에 대한 노하우도 들을 수 있다. 다만 클라이언트와 연결해주는 에이전시에서는 대개 유쾌하지 못한 일거리들이 들어오기 십상이다. 아티스트를 무분별하게 뽑아서 무작위로 클라이언트에 연결시키기 해당 디자이너에게 적합한 일을 받기가 힘들다. 효율성이 떨어진다.
진 : 훌륭한 에이전시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면 더 바랄 게 없지만 에이전시의 특성상,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한 번 거쳐서 전달하기 때문에 중간에서 꼬이는 경우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반대로 디자이너를 위한 일종의 방어막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에이전시의 장점이 될 수 있다.
26. 클라이언트와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노하우를 하나 말해 달라.
남 : 클라이언트와 의견 차이가 생기면 나의 경우는 보통 중간지점을 찾는 편이다. 이럴 때는 구체적이고 솔직하게 말한다. 궁극적으로는 서로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그게 없으면 진짜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하하. 클라이언트가 내 기분을 상하게 하면 나도 똑같이 반응한다. 그리고 갑 정신으로 무장한 클라이언트와 일을 진행할 때는 각자의 노하우가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
아 : 나는 아직까지 슈퍼 을이 아니기 때문에 웬만하면 클라이언트들의 요구에 맞춰주는 편이다. 친구는 배신해도 클라이언트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하하.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세울 필요는 없다. 디자이너라면 응당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진 : 그건 내 노하우인데 말하면 안 되지 않나. 하하. 대화를 많이 하고 많이 들어라. 클라이언트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충분히 들어야 한다. 그들의 의중을 파악해야 한다. Be a good listener! 그러나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사실 가장 어려운 일이다.
Websites
남무: (http://www.nammoo.net)
아트모스피어: (http://cargocollective.com/atmosphere82)
진무: (http://jmg.kr)
진행 ㅣ 최장민 권혁인 박진우
텍스트/편집 ㅣ 권혁인 최장민
이미지 ㅣ 박진우